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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불가능의 시대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회 기획, 엮음 / 교육공동체벗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제목, 무척 도발적이다. 현직 교사들이 주축이고, 또 현직 교사들을 주요 독자로 삼고 있는 책을 펴내는 곳에서 낸 책치고는 참, 학교와 먼 제목을 달았다.
교육불가능의 시대라니... 그렇담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일에도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하나 안 하나 상관없는 일이 있는데, 이 말대로라면, 교육은 할 필요가 없는 일에 들어감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이미 교육불가능이라고 규정을 했는데, 아니다, 가능하다고 말하고 이 일에 종사하는 모습 자체가 동키호테라는 소리를 듣기 딱 좋기 때문이다.
시대와의 불화, 그러면 시대를 고치면 되든지, 아니면 자신이 떨어져 나가든지 해야 하는데, 시대와의 불화를 인식하지 못하다면, 풍차를 향해 창을 들고 돌진하는 동키호테처럼, 남들이 보기엔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어이없는 짓, 무모한 짓을 하고 있는 사람이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제목이 이렇듯 도발적인 이유는, 이 현실을 인정하자, 현실을 직시하자, 그래야만 근본적인 대책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공교육부터 시작해서, 전문계 교육, 대학 교육까지 그간 우리 교육을 지탱하고 있는 큰 틀들이 왜 불가능한지,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에필로그에서 안준철, 이계잠, 윤지형의 글로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고 있는데...
두 문장을 생각했다.
하나는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글에 있었던 제목, 절망보다 사악한 것은 없다는 말, 그리고 또 하나나는 맹자에 나오는 말인 오십보 백보
절망보다 사악한 것은 없다는 말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사실, 이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 있는 안준철의 글에 나오는 '절망의 심화'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는 니체가 했다는 말인, 절망한 자들은 대담해지는 법이다는 말로 대체하며 될 테다. 이런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이계삼이고, 이계삼은 이런 관점에서 교육불가능의 시대라고 했단 생각이 든다.
절망을 맛본 사람, 아니 절망까지 자신의 사유를 극한으로 밀고 간 사람, 이 사람은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고, 이 절망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전혀 새로운 방법을 내세운다. 이처럼 절망한 자들은 대담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절망의 심화를 계속 밀고나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책은 절망의 심화가 아니라, 교육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으며,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요구하고, 실천하고자 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오십 보 백 보라는 말, 저 멀리서 보면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말로 대체가능한데, 이는 멀리서 보았을 때, 또는 자신이 우위에 있어서 한참을 내려다보며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가까이서 보면 과연 오십 보와 백 보가 같을까?
아니다. 엄청나게 다르다. 맹자처럼, 준성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왕이 그 왕일테지만, 통치를 받고 있는 백성 입장에서 보면 오십 보와 백 보는, 전제적이고 백성을 괴롭히는 왕과 그래도 백성의 처지를 조금은 고려해주는 왕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절대로 오십 보 백 보가 될 수 없다.
'오십 보 백 보'라는 틀에 갇혀 버리면 지금, 여기, 학교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으며, 교사들의 노력은 쓸모없는 일에 자신의 정력을 소비해버리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한다는 자괴감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교사들이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맺는 작은 만남들이 하나하나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 이런 논리가 에필로그의 안준철의 글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우슈비츠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 사실, 삶에 어떤 의미를 찾아야지만, 희망을 발견해야만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프랭클의 말처럼, 학교에서 작은 실천을 하는 교사들, 그들이 있기에 아직도 학교는 살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결국, 거대 담론인, 교육불가능을 인식하되, 이를 큰틀에서도 접근해야지만, 작은 실천들도 필요하다는, 교육불가능과 교육가능은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이 책의 다른 글이 마음에 와닿는다.
큰 틀을 잊지 말되, 그 틀에만 매몰되지 말고, 자신이 처해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러나 그 자리에만 매몰되지 말고, 큰 틀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실천하려는 자세를 지니는 모습, 그것이 바로 교육불가능의 시대를 돌파해나갈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