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연습 -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질문 34
리자 하글룬트 지음, 서순승 옮김, 강전희 그림 / 너머학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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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도 해본 사람이 하나? 아니, 생각이란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지 않나?

 

우리나라 학생들을 생각해 보라고. 도대체 언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거야?

 

아침부터 밤까지 정신없이 애들을 돌리고서는 생각도 못하는 애들이라고 비난하지 않나?

 

도대체, 언제 생각하라고...

 

학문이나 학교라는 존재가 이미 여유에서 나왔듯이, 여유가 없으면 도저히 생각할 겨를이 없는데...

 

이 책은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질문 34개로 구성되어 있다. 생각의 근육이라? 좋은 말이다. 근육도 자꾸 써야 더 튼튼해지듯이, 그리고 우리가 안 쓰던 근육을 갑자기 쓰면 알이 배겨 무척 아프듯이, 그렇지만 그 부분을 계속 쓰면 그 아픔은 사라지듯이, 생각도 처음에는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자꾸 해서 근육이 생기면 삶의 모든 분야에서 생각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그러면 아렌트가 말하는 생각없음의 인간들, 즉 성찰하지 못하는 인간이 아니라, 성찰하는 인간으로 거듭나겠지.

 

이 책은 나로부터 시작하여 점점 범주를 넓혀간다. 그 범주들을 꼼꼼하게 생각하면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많은 부분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리라.

 

이 책의 장점 중의 하나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 그냥 생각해 보라다. 그래, 생각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러한 정답없음에 익숙하지 않다.

 

정답없음이 얼마나 깊고 넓은 사고를 요구하는지 알지 못하고 그냥 뭐 이래 하고 넘어가기 일쑤다.  이 정답없음에 자신의 정답을 만들어가야 함을 알게 된다면 정말로 그 때부터 철학이라는 분야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철학의 입문서쯤 된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목표는 바로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는 성찰적 인간을 키우겠다는 목표와 같다고 보면 된다.

 

마지막 부분에 부록으로 간략한 인물 중심의 서양철학사를 정리해주고 있으니, 바로 이 책이 철학으로 들어가는 입문서라는 사실을 알 수 있기도 하고.

 

이 책을 권유해도 좋지만, 이 책을 그냥 주욱 읽어가서는 남지 않는다. 이 책은 한 장 한 장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해가면서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근육이 생긴다. 물론 답은 없다. 답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만들어 가야 한다. 그래서 더욱 튼튼한 생각 근육이 생길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을 읽으려면 시간이 있어야 한다. 여유가 있어야 한다. 우선 책을 읽을 시간, 그리고 생각할 시간, 그 생각이 다른 문제로 갈등에 빠지지 않을 여유 말이다.

 

여유가 우선이다. 심심하게 하자. 아이들을. 심심하다 못해, 왜 심심할까, 어떻게 하면 심심하지 않을까 부터 고민하면, 이 책은 생각근육을 키우는데 정말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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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 제자백가의 귀환 2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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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의 귀환 2권이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제자백가의 사상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처음에 관중을 이야기한다. 관중 부분을 읽으면서 서양 산업사회가 막 대두하던 시기, 엄청나게 많은 사회사상가들이 생각나고, 결국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이 생각났다. 성공한 사람. 그는 다른 모든 사상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다음 사람들은 그를 계승하거나 극복하려고 한다.

 

1. 제자백가에 왜 관중이 나오는가?

 

관중이 제자백가 시리즈 제일 앞에 나온다. 의외다. 관중이라 함은 관포지교의 주인공으로, 그냥 우정의 대명사로 생각하고 말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관중을 보아준 포숙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기도 하는데...

 

이 책에 의하면 관중은 어지러운 세상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뜻을 펼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모신 사람을 춘수시대의 패자가 되게 만든 사람. 그러면서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다 펼친 사람이다.

 

이 덕분에 관중은 춘추전국시대 많은 학자들의 역할 모델이 된다. 다들 관중을 꿈꾸었으나, 관중처럼은 되지 못했기에, 관중은 제자백가를 다루는 이 책에서 맨 앞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즉, 관중을 계승하거나 넘어서려는 노력들이 제자백가들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2. 관중에 의한 국가주의의 탄생

 

그렇다면 관중은 어떤 사상을 지니고 있었는가? 강신주에 의하면 관중은 자신의 겪은 현실체험을 정치사상으로 승화시키고 완성시킨 사람이다. 나와 남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며, 이상적이 아닌 현실에서의 정치를 이해했던 사람. 그래서 그는 백성(여기서 백성은 귀족층을 의미한다)만이 아닌 민중을 발견한 사람. 민중을 국가의 힘으로 전환시킨 사람이다.

 

이러한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현실정치에서 다른 나라들을 굴복시키고, 제나라 환고을 패자로 모시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주어야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힘을 바탕으로 무조건 누르지 않고, 우호적인 자세로, 주변국들이 또 민중들이 자발적인 복종을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민중들의 자발적인 복종이 바로 국가주의의 시초가 된다. 이 때부터 우리는 국가주의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고, 국가라는 개념이 우리들 삶에 깊숙히 들어오는 계기가 된다.

 

국가는 모든 사람의 삶을 통제하는 기구인데, 이를 억압적기구로 인식되지 않고, 이데올리기적 기구로, 합의와 동의하에 자발적인 복종을 유도하는 기구가 된다. 이런 국가가 삶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국가를 벗어나는 사유를 할 수 없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도 된다.

 

관중은 처음으로 이 일을 해낸 사람. 그래서 제자백가들의 귀감이 되는 사람. 그를 계승하려든, 극복하려든 말이다.

 

 

3. 공자는 핵심 사상은? 

 

관중이 왕을 중심으로 민중까지 아루르는 국가를 꿈꾸고 건설했다면, 공자는 민중은 배제하고 있다. 그리고 예가 중심이 되는, 즉 주나라의 예를 다시 회복하는 목적을 지니고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나간다고 한다.

 

우리는 공자의 핵심사상을 인으로 알고 있다.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그것이 인이고, 이로인해 공자가 예수나 부처와 같은 반열에 든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강신주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그가 주장하는 공자의 핵심사상은 예이다. 그것이 주나라의 예.

 

강신주에 의하면 이 때 한자어에서 사람을 의미하는 인은 귀족을 나타내며, 백성을 의미하는 민은 민중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인민이라고 했을 때에야 모든 사람이 된다고 하는데, 공자는 인과 민을 철저히 구분하고, 민은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닥 한다. 

 

도를 함께 할 수 없는 소인에 불과한 존재들일 뿐이다.

 

그러면 귀족 중심의 예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예를 실현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하니, 이는 왕을 전복시킬 수 있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고 한다. 사람들 자신이 예를 회복했을 때 비로소 이상적이 나라가 실현된다고 했으니, 그의 주장이 서로 권력을 잡으려 한 춘추시대나 전국시대 때 뜻을 펼치기는 어려웠으리라.

  

 

4. 왜 공자의 학파가 주류가 되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공자의 학파는 주류 학파가 되었고, 나머지 학파들은 이단이 되었다. 이는 국가주의의 확립과도 관계가 있다. 한 나라로 통일이 되었을 때, 이제는 안정이 필요하다. 변혁이 필요없는 시대에는 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는 간단히 말하며 제 자리를 알고, 제 자리에 맞는 행위를 하라는 규범이 아니던가? 모든 것에 제자리가 있다는 사상, 그 자리를 지켜야 훌륭한 인간이라는 사상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어 있던 나라에서 통치자들에게 유용한 사상이 되리라.

 

그러니 공자의 사상이 후대에 올수록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런데 왜 춘추전국시대에 사라지지 않았을까? 이때 공자의 사상은 개에게나 주어버려도 될 사상이었을텐데 말이다. 이를 강신주는 귀족계급이 공자의 사상을 지지했다는 데서 찾는다.

 

왕에게는 쓸모없고, 또 자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사상이지만, 귀족계급들에게는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또 언제든지 권력을 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상이기 때문이란다. 자신들이 예를 지켰다면 예를 지키지 않는 군주를 몰아낼 수 있는 근거, 그게 바로 공자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예를 보면 그렇게 예에 관한 논쟁이 많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말이다.

 

국가주의의 확립으로 철저한 신분제를 유지하면서, 신분에 맞는 예를 구현하는 사회, 이를 공자의 사상에서 찾았기에 공자의 사상은 주류로 남을 수 있었다고 본다.

 

 

5. 우리는 이들의 사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나?

 

결국 관중에게서 시작된 국가주의의 탄생이 공자에게서 확립되었다고 나는 강신주의 책을 읽으면서 정리하였는데, 이 근거를 관중의 끝부분에서 강신주는 아나키즘을 언급하고 있으며, 공자의 사상을 귀족들의 예로 정리한데서 찾는다.

 

관중은 시혜라는 탈로 국가의 억압을 가리는데 성공했는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유를 빼앗긴 줄도 모르고 자발적으로 국가에 복종하게 되었으며, 이는 공자의 예를 통해 더욱 확고하게 굳어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의 삶과 철학을 통해 다른 세상을 꿈꾸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찾아야 한다.

 

최근 복지국가의 논의에 빠져, 국가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를 뒤로 미루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사회의 혼란을 이야기하면서 예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논의도 있는데...

 

우리의 자유는 우리의 철저한 성찰을 통해서만이 찾아질 수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관중과 공자를 통해서 재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의 관중 부분을 읽으면서 김수영의 푸른하늘을 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진정한 자유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 이걸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목민에게 길들여지는 가축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이 국가권력이든, 예라는 올가미든.

 

른 하늘을 제압하는/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부러워하던/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사람이면 알지/노고지리가 / 무엇을 보고/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왜 고독한 것인가를/혁명은 /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김수영, 푸른하늘을. 전문

 

 

이제 출간될 3권에서는 국가주의가 발현되는 모습을 손자와 오자를 통해서 이야기한다고 한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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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시대 -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제자백가의 귀환 1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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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전환의 법칙이라고 하던가. 물이 끓어오르다가 일정한 온도에 이르면 자신의 존재를 다른 존재로 바꿔버리는 현상, 그리고 쌓이고 쌓인 지식들이 어느 한 순간부터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현상.

 

일정한 양이 되지 않으면 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는 운동선수들이 처음에 기본기를 충실히 익히는 자세와 같다. 일류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기가 철저한 상태에서, 그 기본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방법을 지녀야 한다. 이도 역시 양질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양이 충족되지 않으면 질적인 저서가 나올 수가 없다. 공부가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제는 내 안에만 쌓아놓지 않고,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한다. 내 공부를 남과 함께 공유하게 된다. 이도 역시 양질전환이다.

 

최근 강신주는 많은 책들을 내놓고 있다. 자신의 안으로 쌓았던 공부를 이제는 남들과 공유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반갑다. 그 많은 지식을, 생각을 자신만 지니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번에 강신주가 내놓은 책은 무려 12권으로 기획되어 있는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다. 춘추전국시대, 그 혼란한 시기를 온몸으로 감당해나갔던 사람들이, 혼탁한 세상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 그것이 바로 제자백가다.

 

여기서 우리는 김춘수의 꽃이란 시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전문

 

아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이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라는 구절이 주목을 한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말이지만, 우리는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그 많은 학자들을 제자백가라는 이름으로, 또는 유가, 묵가, 도가, 법가라는 이름으로 불렀을 때 그들 고유의 사상을 놓칠 수 있다.

 

즉 우리가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의 고유성은 이름이라는 형식에 귀속되어 버리고 만다. 이를 '꽃이 되었다'고 이 시에서 표현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의미없는 존재를 나와의 관계를 통해서 의미있는 존재로 바꾸는 모습, 이것이 김춘수의 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언어는 존재를 의미있는 존재로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그 존재를 의미에 구속되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사상사의 측면에서 보면 이름을 지어 규정하는 순간, 고유성보다는 보편성이 더 확연하게 다가오게 된다. 그래서 강신주의 말처럼 같은 유가라도 공자와 맹자와 순자는 다른데, 이들을 하나의 개념인 유가로 묶었을 경우 우리는 차이점보다는 동일성에 더 주목하게 되고 만다. 이것이 제자백가를 다루는데 있어서 우리가 지니는 커다란 위험성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유가, 묵가, 법가 등은 그 시대 그 사람들이 자신들을 그러한 학파로 인식하고, 행동하지 않았음에도 우리가 그들을 생각할 때 그 틀 내에서 생각하도록 우리를 강제하기 때문이다.

 

이 책, 철학의 시대에서 강신주가 강조하는 내용은 바로 이것이다. 후대에 붙여진 이름에 얽매이지 말자. 우리는 그들이 무슨 학파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그들의 사상이 어떤 경로를 통해 나왔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고 강신주는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제자백가들 각자를 고유명사로 보고, 그들의 삶과 사상을 살피자고 한다. 그러한 작업을 2권부터 하겠다고 한다.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 중 첫 번째 권인 이 책은 그래서 우리에게 제자백가를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혼탁한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 이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지금 이 세계에서 우리는 어떠한 철학을 지녀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

 

단지 지식욕구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그 시대를 극복하려는 철학을 통해, 우리 시대를 잘 살아낼 수 있는 철학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제자백가 시리즈를 읽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강신주의 책을 읽으면서 늘 느끼는 점이지만, 글이 쉽게 읽힌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읽기 쉽게 전개하는 그의 글쓰기 솜씨에 감탄을 하게 된다. 이는 오랜 동안 쌓였던 내공의 힘이 드디어 바깥으로 발현되어 그러리라 생각한다.

 

우리도 천천히 그러나 꼼꼼하게, 지금을 중심에 놓고, 나는 어떻게 사유하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고민하면서 이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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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 - 어떤 ‘삶’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김진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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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 하면 4대강 사업을 반대한 국회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상당히 논리적으로 4대강 사업의 허구성을 알린 국회의원.

 

아니 그 전에 건축가로서 알려져 있다.

 

나역시 김진애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오래 전에 읽은 "이 집은 누구인가"의 지은이로 건축가로 알고 있었다. 상당히 인문학적인 지식이 풍부한 건축가로.

 

만만한 건축가가 아니구나 싶었는데, 이 책을 읽고는 역시나 했다.

 

그는 한나 아렌트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 우리나라에서 아렌트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꽤 있다고 하는데... 김진애도 그 중 한 명이라고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다.

 

아렌트의 책 "인간의 조건"을 빌려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그만큼 이 책은 아렌트에게 헌정된 책이라고 봐도 된다.

 

이 책은 아렌트의 책에 나온 '활동적인 삶이란 노동, 작업, 행위'다라는 말에서 촉발되어 시작된다. 즉 인간의 삶이란 노동, 작업, 행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리라.

 

이러한 세 가지 편제에 맞게 이 책도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노동과 작업이 이 책의 전반부, 즉 김진애란 인간을 만들어내는 초기라면, 행위는 김진애란 인간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를 노동과 작업은 나를 완성시키기 위한 과정이라고 하고, 행위는 나에서 우리를 만들어가는, 즉 공적인 삶에서의 나를 완성시키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김진애가 건축가가 되고, 도시 계획가가 되는 장면까지가 바로 '나'를 완성해가는 과정이었다면, 이는 사적인 인간 완성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러한 사적인 완성과정에서 자신의 선택들이 결국은 자신의 운명이 되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까지는 김진애의 개인사로 읽으면 된다. 물론, 여기에 계속 나타나는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 있지만 말이다.

 

다음부터가 바로, 행위가 나오는 순간부터가 사적인 삶에서 공적인 삶으로, 사적인 인간 김진애에서 공적인 인간 김진애로 나아가게 된다.

 

행위를 소통이라고 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을 위한 노력이라고 한다면, 이 행위에 해당하는 가장 큰 개념이 바로 정치이리라. 그래서 그는 정치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아니, 우연인 듯하지만,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자신의 삶에서 구현하고자 했다면 필연적으로 밟게 될 과정이었다.

 

정치란 바로 공적인 삶의 대표 아니겠는가?

 

지역구에 출마해 낙선하고,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가기까지, 들어가서 어떤 자세로 어떤 활동을 했는가 하는 이야기들이 죽 펼쳐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삶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하여 정말로 김진애가 쓴 "인간의 조건"에서 핵심부는 바로 뒷부분이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삶도, 사적인 삶의 완성에서 공적인 삶의 완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치를 비껴갈 수가 없다.

 

우리가 아무리 눈 감고 피하려 피할 수 없는 대상이 바로 정치이기 때문이다. 김진애처럼 국회로 들어가 정치와 즉 인간의 공적인 행위가 직접 맞닥뜨리지 못한다 해도, 우리 역시 너무나 많은 정치적인 행위들을 할수가 있다.

 

그러한 정치적인 행위들을 통해 우리는 공적 인간으로서의 우리 삶을 제대로 살아낼 수 있다.

 

그래 우리도 이 책의 표지에 나와 있는 말처럼 "어떠한 '삶'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에 관심을 가지고, "가치"를 추구한다면, 우리 삶은 사적인 삶의 완성인 나의 완성에서 공적인 삶의 완성인 '우리'의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인간이게 만드는 인간의 조건이 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생계를 위한 노동, 자신의 완성을 위한 작업, 그리고 인간의 완성을 위한 행위. 우리도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서 행위에, 공적인 삶에, 자기 성찰에 힘쓰는 사람이 되자.

 

국회의원 김진애, 건축가 김진애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인간됨을 위해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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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보이는 창을 읽으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훈훈해지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알 수 있고.

 

삶의 진솔한 이야기는 생활글로, 노동현장에서 겪는 일들은 또다른 부분으로, 시에 대한 이야기도, 그리고 기획기사들도 다들 읽을 만하다.

 

이번 호는 강정마을에 대한 이야기.

 

세계 7대자연경관으로 뽑혔다고 온갖 홍보를 다하고,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제주도.

 

그 곳에 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문화유산, 자연유산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터를 파괴하는 일들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으니...

 

자신들이 홍보하는 내용과 정책이 모순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 안타깝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제주도는 이미 평화의 섬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지 않은가. 이 평화의 섬에 군 기지라니... 말로는 군과 민간의 배들이 함께 쓰는 곳을 건설한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삶터에서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과 뭇생명체들과, 그리고 자연들... 그 아름다운 자연들. 한 번 파괴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자연들...

 

여기에 제주도에 또 한 번의 피해를 주는 행위라니...

 

이번 호에 실린 강정마을에 대한 사진과 글들이 읽을 만하다.

 

아니 우리들이 마음 속에 새겨야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평화비행기를 타고 그 곳에 들르기도 했지만... 이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이 일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기억은 제2의 비극을 막을 수 있게 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갑갑한 세상, 삶에 대한 창을 내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자. 두 달에 한 번 나오는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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