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월계동 아스팔트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한 때 비행기를 타고 다녀도 방사능에 많이 노출된다고, 비행사들은 극지방으로 비행하는 것을 극히 꺼린다는 말도 있었는데... 이것도 이야기가 되다가 어느 때부터 논의가 종결되었는데...

이젠 아스팔트에서 세슘이 나오다니... 그리고 그 곳엔 집들이 밀집해 있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지 않은가? 

시민단체에서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는 인체에는 무해하다고 한다. 누구 말이 맞을까? 

이런 대립은 원자력이 생긴 이래 지속되어온 문제 아니던가.  

원자력이 나온 지 50년이 넘었는데, 이 정도면 임상적으로 결과가 나왔어야 하는데, 세계 여러나라에서 기준이 다 다르고, 이를 의사들이 의학적인 기준으로 제시하는 경우도 드물다. 오히려 원자력 관계자들이 한계치를 정해놓고 있는 상태 아니던가.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우리가 원자력을 대하는 태도는 세 가지가 있다. 

우선 원자력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긍정적인 점으로 상쇄하고도 남는다. 원자력과 관련된 과학자들, 학자들, 그리고 관계자들. 

둘째, 원자력은 우리가 반드시 없애야 할 괴물이다. 지금 없애지 못하면 후손들에게 부담을 떠넘기게 된다. 원자력의 장점은 부정적인 점을 상쇄하지 못한다. 오히려 장점이 부정적인 면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환경, 생태주의자들. 그리고 일부 원자력을 공부한 과학자들. 

셋째, 뭐가 뭔지 모르겠다. 과학자들이 어련히 알아서 주장하겠나. 하지만 웬지 찜찜하긴 하다. 대다수의 사람들.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자력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몰라서 어떻게 이야기할지 모른다. 대학교육을 70%이상이 받는 우리나라에서 몰라서 못한다는 얘기는 원자력이 그만큼 알기 힘든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만큼 정보가 공개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다행히 서울시에서는 2001년 이후에 공사한 아스팔트는 전수조사하기로 했다는데...  

이제 녹색평론도 성년이 되었다.  

무려 20년 동안 이 잡지가 우리에게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해준 공로는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람이 없다. 이제는 이 잡지가 스스로 서는, 공자 말에 의하면 이립을 향해서 가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많이 할 것이라 믿는다. 

이 문제제기를 받아 해결하려는 노력들을 해야 한다. 이미 많이 노력들을 하고 있지만, 특히 농업 분야에서는 개인적인 노력들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 하지만 이 노력들을 한 방에 거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정책들이 많으니... 개인적인 노력들에 더하여 정책들을 바꿀 수 있는 노력들도 하여야 한다. 

이 점에 대하여는 이번 호, 배병삼의 글이 좋다.  

유교에서의 정치. 공자가 경제만 생각하는 염유를 파문한 이야기. 우리에게는 진정한 정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공자를 국민이라고 한다면 염유는? 

그리고 원자력에 관한 이야기. 정말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원자력은 첫 번째 입장도 아니고, 세 번째 입장도 아니지 않을까. 원자력 관계자들, 그리고 정치인들이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데... 

몸에 유해한 물질이 왜 유해한지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이 어떻게 무해한지를 만든 사람이 입증해야 하듯이, 원자력은 여러 시민단체, 환경단체에서 이래서 유해하다가 아니라, 원자력 관계자들이 이래서 유해하지 않다고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껏 제시된 피해사례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해명해야 한다. 

해명하지 못하면 원자력은 유해하다고 봐야 한다. 그게 요즘 원칙 아니던가. 

성년이 된 녹색평론은 원자력은 유해하다고 분명히 선언했다. 그렇담 입증 책임은? 일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입증이 되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실을 담는 시선, 최민식 - 우리시대 마이스터 3
최민식 지음 / 예문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퓰리처상 사진]이라는 책이 최근에 발간되었다고 한다. 세상을 변화를 이끈 사진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또 퓰리처상 사진전도 우리나라에서 개최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들을 보면 사진이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는데...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사진은, 베트남 전쟁에서 폭탄을 피해(?) 달리는 어느 소녀의 모습이 찍힌 사진과, 1987년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을 친구가 안고 있는 모습, 그리고 걸프만에서 기름에 흠뻑 젖어 있는 새의 모습인데... 

하나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을 형성해 냈고, 이한열의 사진은 우리나라가 민주화되는데 큰 기여를 했으며, 새의 모습은 석유로 인한 전쟁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인지를 알려주는역할을 했다. 

여기에 50년이 넘게 사람을 찍어온 작가가 있다. 그가 바로 최민식이다. 

최민식은 "나는 사진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다. 사진으로 세상이 조금이나마 변화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언제나 현실을 담기를 원한다. 그것이 내 삶이고, 내 사진에 담긴 구호다(142쪽)"라고  말한다. 

이런 철학으로 사진을 찍어왔기에 그는 독재정권시대에 사진으로 인해 엄청난 고난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자신이 지닌 철학을 지키고 굳건하게 사진으로 우리의 역사를 기록해 왔다. 

그의 사진의 "주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고, "인간 중에서도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렌즈에 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사진의 램브란트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그 작품은 베토벤의 심포니에 비겨 "휴먼 심포니" 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어렸을 때 영향을 받은 밀레의 그림을 그는 사진 속에서 구현했다고 볼 수 있어서, 그의 사진은 사진으로 보는 밀레의 그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사람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은 이유는 "사진을 찍는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류 평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위해서(77쪽)"이고, 그럼에 "그 안에 담긴 철학은 리얼리즘이(77쪽)"라고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찍은 이유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없는, 그들이 활기차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추구하기에 애써 감추려고 하지 않고 그들을 촬영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 꿈이 있었기에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그런 활동이 지금의 최민식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최민식의 사상과 활동을 담은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의 출생에서부터 사진작가가 되기까지, 그리고 자신작가가 되어서 활동한 내용과 그의 사진에 담긴 사진철학, 인생관까지 모두가 담겨 있다. 

꼭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격동기에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감동을 준다. 

특히 사진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사진은 기교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그의 말, 그리고 꾸준한 노력만이 좋은 사진을 만든다는 그의 말을 명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은 죽었다는 선언이 있었다. 문학이 사회 현실에 대응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이어 나온 말이다. 그만큼 문학은 작은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회 현실을 포괄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횟수가 점점 줄어 요즘은 거의 읽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읽은 책이 [광장]이었고, 이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었다. 

우습다. 문학이 죽었다고 선언된 시대에 한참 옛날에 쓰인 소설을 읽고 있다니. 그런데도 이 책들이 아직도 우리에게 소설 속의 현실은 지속되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으니... 

옛날 책을 뒤져보니 1978년 초판이라고 하던데...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책은 2009년 114쇄고. 

무려 114번이나 찍어냈는데... 그래도 읽히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젠 그 땐 그랬지 하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노동자들의 지난한 삶도, 자본가들의 몰상식한 삶도 웃으며 그 때는 왜 그랬을까 이러면서 지냈으면 좋겠는데... 

70년대에 비해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와 있을까? 

이 질문을 던진다. 이 소설 속의 난장이들에서 우리는 거인이 되었나? 아니 거인은 아니더라도 보통사람은 되었나? 

2대8사회니, 승자독식사회니 하면서, 가뜩이나 살기 힘든데, 자유무역협정이다 뭐다 하여 일반 소시민은 더욱 살기 힘들어지지 않았나? 

고등학교 교실에서 시작하여 고등학교 교실에서 끝나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러한 반복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난의 재생산, 부의 세습... 

난장이 아들의 저항을 이해할 수 없는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편의 주인공처럼,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으니... 하긴 얼마 전엔 의무교육에서 급식을 의무로 하자는 주장도 포퓰리즘이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201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이 70년대를 다룬 소설이 가슴에 와닿으니,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이런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난장이 아들 영수의 행동이 결국 개인적인 저항으로 그치고 말았다면, 아니 그의 저항이 다른 이들의 의식을 깨우치는데 일조를 했으니, 개인적인 저항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해야 하나, 지금 우리는 1%의 지배를 거부한다는 세계적인 움직임에 동참해야 하지 않나. 

이 책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다. 슬프게도 지금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다. 70년대엔 난장이들이 내국인들로 채워져 있었다면, 이젠 난장이들은 내국인에다가 외국인노동자까지 더해져 있는 상태이니... 

난장이 딸인 영희가 난장이들이 함께 남들을 의식하지 않으며 사는 마을, 릴리푸트를 꿈꾸었듯이 우리도 우리들만의 릴리푸트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움직임이 이미 있지 않은가? 작은 마을, 또는 생태 마을, 협동 조합 만들기. 이것이 은강그룹과 같은 거대 자본과 맞설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오랫만에 읽은 소설. 

마음이 편하진 않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알려주는 소설이기에, 아직도 진행 중인 이야기기에 이 소설은 2010년대인 오늘날까지도 우리들에게 의미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민식의 사진문고를 보았다. 

사람, 또 얼굴을 중심으로 낸 사진집들 중에서 몇 편을 골라 문고로 낸 책이다. 

사진은1957년 소녀의 사진으로 시작해, 1987년 청년의 사진으로 끝난다. 30년의 삶이 이 작은 사진문고에 들어 있다. 

그는 사진을 통해 이 세상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싶다고 했는데, 그의 사진을 보면 없는 사람들, 힘든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 애정은 이들이 아직도 이렇게 힘들게 살게 되는 현실에 대한 분노로 바뀌기도 한다. 

그는 "내 사진은 일상에서 일어나는소소한 사건들에서 비롯된, 일종의 사소설(私小說)에 비유할 수 있겠다."고 했다. 그의 사진에는 우리의 일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 일상은 저 멀리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 우리보다 더 낮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 책에 나온 한 사진, 선거벽보의 사진과 초상화들이 대조를 이루듯이, 최민식의 이 사진문고는 화려하게 치장하고 나오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과 대조를 이룬다. 

사진은 모두 흑백이고, 이 흑백이 삶의 지난함을 오히려 따스함으로 감싸고 있다.  

더 화려하게, 더 예쁘게 꾸미려고 하는 지금, 자신의 본 모습은 사라지고 가식적인, 오로지 남의 눈을 의식하는 모습만 남아있는 삶은 최민식이 포착하려는 현실이 아니다.  

서민들의 삶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신물이 나도록 보아왔다. 우리는 아직도 이 사진에 나오는 삶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 삶을 가린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주변의 삶을 바로 볼 수 있게 최민식과 같은 작가의 작품이 자주 보였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다리로 서 있는 새 리토피아시인선 22
임강빈 지음 / 리토피아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세상은 늘 어지럽다. 

그래서 세상을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던가. 얼마나 많은 답들을 내놓았던가. 그런데도 세상은 아직도 어지럽다. 

이런 어지러운 세상에, 조그마한 돌멩이를 던지는 일. 그게 시를 쓰는 일이다. 그 조그만 돌멩이가 일으키는 파장에 마음을 맡기는 일, 그게 시를 읽는 일이다. 

이런 상황을 임강빈 시인은 이렇게 파악하고 있다. 마음이 간다. 그래 수긍이 인다. 

조용한 수면에/돌을 던진다/풍덩 하는 소리가 크다/파문이 인다/돌 하나로 시작되는/TV동화 <행복한 세상>/짤막한 이야기/밖으로 밖으로 원을 그린다/이 잔잔한 울림          -TV동화 전문 

시는 이처럼 잔잔한 울림을 준다. 이 울림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건너가 사람들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이런 따스함 이는 바로 임강빈 시인이 말하는 이러한 사랑이다. 

오랜 사랑은/빙점(氷點) 언저리에서 머물다가/손을 잡아주는 일이다/따스하게 감싸주는 일이다-사랑 3연 

시는 우리를 채근하지 않는다. 그냥 우리 곁에 있다가 어느 순간 우리의 마음이 우울할 때, 우리의 손을 잡아준다. 그 따스함이 어지러운 세상을 견디게 해준다. 

그래서 시는 가난을 극복하게 해준다. 물질적인 가난이야 어찌할 수 없지만, 그 물질적 가난을 우리가 해결해야 하겠지만,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우리의 행복은 찾을 수 없다. 물질적 가난을 해결하고, 정신적 가난까지 해결한다면 세상은 더욱 아름다운, 살만한 곳이 되어 있을 것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하지만 / 어찌 넉넉함에 비하랴 /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간다 / 시린 나무 등에 업히는 찬 바람 

가난은 춥다 / 불을 지펴도 / 여전 썰렁하다 

이 가난에서 벗는 날은 / 파릇파릇 새싹이 / 시가 되는 날이다 / 시가 부자 되는 날이다. 

 - 가난 전문

이 시집에는 유년시절을 그리워하는 내용부터 나이들어감이 여유로움으로 변하는 내용까지 다양하게 시들이 펼쳐져 있다. 머리 속으로 이 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하는 난감함은 없다.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젊은 사람부터 나이 든 사람까지 아무나 아무 때나 손에 들고 읽으면, 이 시는 호수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처럼 우리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