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가게 마음이 자라는 나무 12
데보라 엘리스 지음, 곽영미 옮김, 김정진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아프리카가 배경이다. 에이즈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곳. 에이즈가 무슨 천형인양 취급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편견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에이즈 환자는 많이 발생하고 있으니 (HIV바이러스 보균자라고 할 수 있지만, 편의상 그냥 에이즈라는 말을 쓴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특히 부유한 나라에서는 치료제 등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만성질환처럼 관리가 되지만, 부유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치료제를 구하기 힘들 뿐더러, 에이즈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도 힘들다. 지금은 좀 나아졌겠지만, 이 소설이 쓰일 때는 더 심했으리라.


말라위라는 나라에서 관을 만드는 일을 하는 아빠와 함께 살고 있던 빈티 가족은 아빠의 죽음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아빠 역시 에이즈로 죽었다고 하고. 이때문에 친척들에게로 간 빈티 남매들은 친척들에게 구박을 받는다.


죽은 형제의 재산을 얻어가는 친척들. 그들에게는 남겨진 아이를 소중하게 키우겠다는 생각은 없다. 오로지 짐일 뿐이다. 결국 할머니 집으로 탈출하고, 할머니 집에서 에이즈로 고통받는(부모들이 에이즈에 걸렸든, 자신들이 걸렸든)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할머니와 다른 메모리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와 함께 다른 아이들을 돌보는 빈티. 그러면서 에이즈의 현실에 눈을 떠간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에이즈에 걸렸다고 무조건 피해야 할 사람도 아니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질병이라는 것.


말라위가 가난한 나라라서 제대로 치료하지 못할 뿐이니 그들을 잘 돌본다면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간다. 다른 아이들을 도우면서,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성장하는 빈티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줄거리다.


에이즈. 천형이 아니다. 인간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하여 소설 속에서는 예레미야라는 이름을 가진 이는 자신도 보균자지만 어떻게 하면 에이즈를 예방할 수 있나, 또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일을 한다.


그렇다. 인간이 함께 하면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인데, 이를 그 나라의 경제-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 더 큰 비극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말라위도 마찬가지다. 국가적인인 의료체계를 갖추고, 예방과 치료를 잘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하며, 개인들에게도 지켜야 할 수칙들을 명확히 알려준다면 더 큰 비극은 막을 수 있다.


문란한 성생활이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수혈을 통해서 또 부모를 통해서, 그리고 모유 수유를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으니, 이 질병은 개인의 책임도 책임이지만 사회, 국가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이미 감염된 사람들도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 소설에서처럼 개인이 해결하게 해서는 안된다. 개인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서 감염되는 사람들... 빈티의 언니가 그런 상황에 처하지만 이들은 이제 혼자가 아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소설은 희망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하늘나라 가게라는 이름은 관을 만드는 가게 이름이다. 어쩔 수 없어서 죽은 사람, 잘 보내주기 위한 가게. 그러한 일들. 


그들을 잘 보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빈티의 성장을 통해서 에이즈가 빈곤한 국가들의 사람들을 어떻게 어려움에 빠뜨리는지를 잘 보여준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깨뜨릴 수 있는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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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잡지가 나오는 이 시대. 꾸준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잡지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의 취향에 맞든지, 사람들의 취향을 선도하든지. 그렇지 않은 잡지는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다른 잡지와는 차별되는 자신들만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가령 몇 해 쉬다가 다시 발간한 [녹색평론] 같은 경우는 생태, 환경을 중심으로 글을 구성한다. 우리 지구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생각에,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려고 한다.


  그렇다면 [빅이슈]는 어떤 차별성을 지니고 있을까? 한달에 두 번 나오는 잡지라서,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걸맞는 속도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그런 속도를 따라가려다 보면 자신만의 색깔을 잃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식상한 내용을 담아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잡지는 팔려야 하기 때문이다. 팔려야 한다는 말이 너무 자본을 강조한 말이라고 한다면 (사실 빅이슈는 팔려야 한다. 그래야 빅이슈 판매원들이 자립할 수 있는 돈을 모을 수 있으니까) 좀 그렇다면, 읽혀야 한다고 하자.


이 빅이슈를 꼬박꼬박 읽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들의 취향에 맞으면서도 취향을 선도해야 한다. 그런 숙명을 지닌 잡지다. 


편집자의 말에 '비밀 클럽'이라는 말이 있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활동하는 모임이라고 하면 되겠다. 비밀 클럽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빅이슈를 비밀 클럽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편집자는 이 빅이슈가 비밀 클럽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잡지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렇다. 많이 읽혀야 한다. 새로운 경향을 알 수도 있고, 요즘 사람들이 함께 하는 문화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외된 이웃들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으니... 다양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잡지다. 


책도 읽고 나름대로 기부도 되는 그런 잡지. 이번 호에는 '리뷰'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리뷰를 리뷰하다인데, 자기가 직접 경험하기 힘든 사람들은 리뷰를 참조할 때가 많다.


조금 유명해진 곳들은 대부분 리뷰 덕을 많이 본다. 온갖 SNS를 통해서 자신이 간 곳이나 자신이 읽은 것, 자신이 한 일들을 올리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따라하고 싶은 욕구를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그러한 리뷰에 대해서, 리뷰의 경향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번 호에서 다뤄주고 있다. 여기에 리뷰를 주제로 한 드라마까지 소개하고 있으니, 리뷰가 요즘 시대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빅이슈]를 읽는 시간은 즐겁다. 두 주에 한번 내가 모르던 분야에 대해서 알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고.


소수가 읽는 [빅이슈]가 아닌 다수가 읽는 [빅이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나 역시 편집자와 같다.


편집자의 말처럼 길거리에서도 많이 보이는 [빅이슈]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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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산이 현대사 2 : 사회·문화 - 전우용의 근현대 한국 박물지 잡동산이 현대사 2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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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이어서 여러 물건들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들어왔고, 우리 생활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여러 유용한 내용들이 있어서 읽으면 좋은데... 역사학자답게 우리말이 어떤 역사적 기원을 지니고 있는지도 살펴보고 있어서 좋다.


가령 이 책에서는 '도로(道路)'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데, 도로에서 도와 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말로는 '길' 하나뿐이지만, 한자는 길을 내고 이용하는 방식에 따라 '도'와 '로'를 구분한다. 우선 '로'는 자연 지형에 순응하는 길이며, 인위적이되 인위적이지 않은 길이다. ...좁고 구불구불하며 위태롭고 불편하지만 꾸밈없고 소박하다. 이런 길은 종대만 허용할 뿐 횡대는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도'는 그야말로 인위적으로 만든 길이다. 거대 권력을 윈 자가 수많은 동원하여 풀과 나무를 베고 언덕을 깎아내며 도랑을 메우게 해서 넓고 평평하며 곧고 길게 다져 놓은 길이다. '로'가 '나는 길'인 반면, '도'는 '닦는 길'이다. '도 닦는다'는 말도 그래서 생겼다. (408쪽)


이 말이 맞다면 우리가 한글로 길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로'와 '도'가 합쳐진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도와 로'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길'로 쓰고 있는 상황이지만 도로명 주소라는 말에서 아직도 도로가 남아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읽다가 무슨무슨 '~로 다음에 몇번 길'이 나오니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가 통상 길이라고 했을 때는 '로'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도로명 주소에 '도'는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다양한 물건들을 통해서 근현대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볼 수 있으니...


이런 말의 의미를 넘어서 이 책에서는 '자동차, 비행기, 전화기'와 같은 근대 문물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이들이 언제 들어왔고, 어떤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어떤 상황에서 쓰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들의 생활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까지 살펴보고 있다.


방대한 내용이지만 하나하나가 흥미롭기 때문에 읽으면서 우리 역사와 우리들 생활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제 3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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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산이 현대사 1 : 일상ㆍ생활 - 전우용의 근현대 한국 박물지 잡동산이 현대사 1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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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물건들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이 지구에 존재한 이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존재들이 필요했다.


먹을거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도구가 필요했으며, 추위나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도 다른 물건들이 필요했다. 살기 위해서 필요한 물건들이 있는데, 그런 물건들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살펴보면 우리들의 생활 변화를 알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한 전우용이 여러 물건(존재)들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왔는가가 실려 있다.


우리들에게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될 물건들이 어떻게 우리 곁에 왔는지, 또 한때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물건들이 어떻게 해서 사라지게 됐는지를 살피고 있다.


많은 물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물건들이라고 하기에는 아파트와 같이 커다란 존재들도 있으니 물건(존재)라고 하면 좋겠다. 


많은 존재들이 있는데, 그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사실을 깨우치게 된 것도 이 책이 내게 준 유익함이라면 유익함인데... 


그런 존재 중에 하나가 '혼인신고서'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혼인신고를 하니, 이것이 마치 오래 전부터 당연히 있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혼인신고서는 일제시대에 생겼다고 한다. 


'혼인은 국가의 공인이 필요 없는 가문과 가문 사이의 사적 결합으로서, 혼례식이라는 의례를 통해 혈연 공동체와 지역 공동체에 '선포'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혼인을 취소하는 행위, 즉 이혼도 유교적 가부장제가 지배하기 전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343쪽)고 한다.


이런 사적인 일이 공적인 일이 되고, 법에 의해서 혼인과 이혼이 결정이 되게 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라고 하니, 참...


이런 내용에 더해서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승만 부인하면 프란체스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왜 그가 조혼을 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당연히 일찍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주로 생활했기에 조선에 부인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혼인을 했고, 그의 부인은 조선에서 시부모를 봉양했다고 한다. 그것도 남편이 칭찬받을 수 있게 좋은 일도 많이 했다고...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문전박대뿐이었다고 하니...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라니...


'1945년 가을에 이승만의 본처 박승선도 같은 일을 겪었다. 남편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거처로 찾아갔으나, 이승만의 비서들에게 쫓겨났다. 본처는 법에 호소할 수도 없었다.'(351쪽)


왜냐하면 이승만이 법적으로 정리를 했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법은 아는 자가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니, 이것 참.


<함께 참조할 만한 글 : 사라진 이승만 호적 미스터리 (daum.net)>


이런 사실들과 더불어 우리 일상생활에 들어온 많은 물건(존재)들을 소개하고 알려주고 있어서 제목과 같이 '잡동산이'들을 통해 우리들의 삶을 알 수 있게 된다.


'잡동산이'는 잡동사니라고 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 안정복이 쓴 책 제목도 '잡동산이'라고 하니, 우리들의 삶과 물건들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다양한 물건들, 그리고 우리가 살아왔던 근현대의 모습들. 우리 일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한꼭지 한꼭지씩 읽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총 세 권으로 되어 있는데, 다른 책들에서는 다른 분야를 다루고 있으니,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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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은 국적이 중국이다. 중국에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돌아가셨다고 한다.


참조 기사 : 조선족 대표시인 김철 별세,향년 91세 - 모이자 뉴스 (moyiza.kr)


  고향은 남한에 있는 곡성이라고 하는데, 일제 시대에 중국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조선의 말과 글을 잊지 않았고, 조선의 말과 글로 시를 썼다고.


  중국에서는 꽤 알려진 시인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시집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1997년에 발간된 이 시집을 통해 그가 추구했던 시세계를 어느 정도 맛볼 수 있다.


이 시집은 그가 북한을 방문하고 느낀 점을 쓴 시다. 남한과 북한에 속하지 않고 중국 국적을 지니고 있는 시인이 통일을 염원하면서 쓴 시.


시집 말미에 있는 후기에서 시인은 '나는 내가 두 번의 북녘땅 기행에서 보고 들은 더 많은 것을 싣고 싶었다'(163쪽)고 썼다. 많은 이야기를 시를 통해 하고 싶었지만, 이 정도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그러면서 그는 '남녘엔 풍요의 비극이 휩쓸고, 북녘엔 빈곤의 비극이 천지를 뒤덮어'(163쪽)라고 하고 있는데, 이후에 남녘도 IMF라는 비극을 겪게 된다. 물론 지금은 극복해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지만.


북한은 지금도 힘든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인의 말이 다시 30년이 지나서도 의미를 잃지 않고 있으니, 이야말로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남북이 교류를 하던 때, 시인이 바라던 대로 남한 사람들도 금강산을 갈 수 있었고, 개성도 갈 수 있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고, 풍선을 이용해 서로를 자극하고 있으니...


시인이 바라던 통일은 아직도 멀리 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시집에 실린 이 시를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낙지발에 걸려 있는지도, 낙지 발에 있는 그 빨판이 남과 북을 꽉 움켜쥐고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런 낙지 발의 빨판은 우리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이겨내야만 하지 않을까. 이제 고인이 된 시인은 그것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낙지


  반세기 만에 만나는

  동생을 주려고

  함흥 사는 언니는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낙지 한 마리를 들고 왔다


  깡마른 낙지를 사이에 두고

  떨구는 눈물은

  낙지보다 더 찝찔하고


  서로 다른 이야기는

  낙지발에 걸려서

  시종 엇갈리기만 하는데


  정성은 고마워도

  차마 들고 살 수 없는 그 낙지

  우리는

  여덟 개 낙지발에 걸려

  서로의 아픔에 뼈마디가 저린다


김철, 북한기행, 문학사상사, 1997년 초판 2쇄. 88쪽.


지금 우리는 낙지발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낙지발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오래 가게 해서도 안 되고.


늦었지만 김철 시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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