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어제(2013년 2월 12일) 언론에 대서특필이 되었다.

 

북한은 자위의 차원에서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하고, 우리의 입장에서는 무기의 불균형을 이루어 오히려 평화를 저해한다고 하고, 국제적으로는 핵폭탄 금지 조약이 있으니, 북한을 제재해야 한다고 하고...

 

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네 나라, 그리고 멀리 있는 한 나라, 러시아, 중국, 일본, 우리나라, 그리고 미국.

 

모두가 이 북한핵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고, 어떻게 대응할지를 논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더 심각하다. 당장 그들이 핵폭탄을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핵폭탄 실험으로 방사능이 나오지 않았을리 없을테니, 현재적인 입장에서도 무언가가 불안하고, 핵폭탄이라는 무기는 무기간의 균형을 한 순간에 파괴하는, 균형추가 완전히 무너지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의 안보를 더 불안하게 해, 미래의 입장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이런 정치적인 판단을 넘어서 인간적인 판단을 하자.

 

과연 핵무기는 존재해야 하는가?

 

핵무기를 만든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그 무기에 자부심을 느끼는가? 아니면 부끄러움을 느끼는가?

 

전쟁을 빨리 끝내 더이상의 희생을 막자는 의미로 핵폭탄 제조에 참가했던 과학자들 중, 핵폭탄의 실질적인 사용에 놀라 반핵주의자로 돌아선 사람도 많다던데...

 

핵무기가 과연 자위의 수단으로, 평화의 수단으로 존재할까?

 

정말 이들은 그 무기의 비인간성을 의식하기는 한단 말인가?

 

핵무기... 참...

 

다른 방향이긴 하지만, 어제 오늘 일본 만화가 생각이 났다.

 

"맨발의 겐1-10"

 

 

핵폭탄이 일본에 떨어져 겪게 되는 그 비참함. 그 무기의 비인간성. 그리고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고통.

 

일본 만화와 더불어 김원일이 쓴 "히로시마의 불꽃" 피폭 3세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이렇듯 핵무기는 대대로 우리들에게 고통을 주는데, 우리는 그 무기를 아직도 개발하고, 또 사용하려고 하고 있는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학습효과가 없는 건지.

 

과학자들... 시간 내서... 이런 책들을 읽었으면...

 

안보, 자위, 평화를 운운하는 북한의 과학자들... 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 개발 경쟁을 하던 미국과 독일의 이야기를 공부하길... 일부 과학자들은 그런 무기의 개발을 끝까지 반대하기도 하고, 태업을 하기도 했다는 그런 얘기.

 

전문가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결과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아니 이들에게 읽으라고 할 게 아니다. 우리가 읽어야 한다. 우리가 알아야 한다. 우리가 깨어있어야 막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남북 평화 시대를 이뤄가야 하는데... 평화와는 자꾸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그러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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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기술
피터 펜윅.엘리자베스 펜윅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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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달 사이에 연달아 세 번의 죽음을 만나게 되었다. 이제는 죽음을 만날 나이가 되었다는 서글픔도 있지만, 어느새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잘 죽음, 이것은 잘 삶만큼 중요하다고 하는데, 어떤 죽음이 잘 죽는 죽음일까? 도대체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의문은 끝없이 드는데, 답은 없다.

 

최근에 읽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죽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을 해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면, 이 책은 구체적인 죽음 순간의 모습과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역시 죽음에 대한 어떤 기술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아니, 죽음에 대해서 기술을 알려줄 수는 없다. 죽는 순간은 단 하나뿐인 순간이며, 이는 남에게 알릴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죽음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누구나 한 번은(?) 겪을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죽음의 순간에 영혼으로 나타나든, 연기로, 구름으로, 또는 바람으로, 아니면 다른 자연현상으로, 또는 텔레파시로 나타나든, 죽음에는 어떤 영적인 요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단지 인간은 뇌와 육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뇌에는 우리가 규명하지는 못하지만, 분명 영적인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례들을 언급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순간에, 또는 친족,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는 순간에 겪었던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소개하면서 사람은 단지 뇌만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아직은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 없는 어떤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영적인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죽는 사람이든, 남아서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이든 마음은 훨씬 편안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마음이 편안해진다.

 

죽음이 그냥 소멸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죽음을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라고 한다. 그 여행을 떠날 때 미리 알려주기도 하고, 여행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도 하며, 다시 만나지 못할 여행이기에 그동안에 쌓여 있던 감정들을 해소하기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이라는 여행을 떠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죽음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요양원)에서 죽는 경우가 대다수다. 자신의 삶을 구성하던 친숙한 공간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생의 첫발을 대딛고, 생의 마지막 발을 내딛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 탄생의 순간이든, 죽음의 순간이든, 친숙한 공간에서 친밀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 두렵다고 해서 그냥 멀리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죽음의 기술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이렇게 죽음을 받아들이면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떨쳐버릴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허황된 얘기로 치부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죽음, 그는 곧 삶에 동반한 그림자이자, 삶의 길에서 잠시 벗어나면 만나게 되는 뒤안길이라는 사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이것은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라는 얘기가 아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삶을 더욱 충실하게, 즐겁게 영위하라는 뜻이다.

 

"죽음의 기술"이라는 책은 결국 "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잘 죽음"은 곧 "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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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 나보다 타인이 더 신경 쓰이는 사람들 심리학 3부작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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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심리학이라고 하면 우선 어렵다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고, 또 웬지 구름 따먹는 소리를 하는 것 같은, 마치 전문적인 학자나 의사, 상담사 등이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심리학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우선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여기에 '사회심리학'이라니... 심리학에 사회학이 더해졌다는 느낌마저 준다. 더욱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우리는 선입관을 지니고 심리학이나 사회학을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학교에서 배웠던 공부가 주로 이들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생각이 들고, 대학에서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닌 한 교양과목으로 겨우 들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사회학이나 심리학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의식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사회심리학'이라는 분야가 사회학고 심리학이 기계적으로 합쳐진 그런 분야는 아니다. 그냥 쉽게 생각하면 된다.

 

어짜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하니, 사람들은 함께 모여 살고, 또 모여 살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공부를 '사회심리학'이라고 하면 된다.

 

우리를 괴롭히는 학문이 아니라 우리 삶에 도움을 주는 아주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생각을 하면 '사회심리학'에 조금 더 쉽게 접근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아마도 그런 의도에서 쓰여지지 않았나 싶다.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이 때, 개인적인 치유도 중요하고, 개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그러한 문제가 생겼는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해결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하는 학문이 바로 이 '사회심리학'이다.

 

그러므로 결코 어렵지 않다. 아니, 오히려 재미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삶에서 흔히 겪는 사례들을 예로 들어 왜 그런 문제가 발생했고,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명제에서 시작하여, 결국 인간은 소속욕구와 인정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충족시켜야지만 행복한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이끌어내며, 우리들의 심리가 기본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심리상태에서는 어떻게 하면 더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부터, 그것이 곧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며, 생존을 위해서 함께 지내야 하는 직장에서는 상사는 어떤 심리상태를 지니고 있는지, 왜 그런지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면 어떤 방법으로 다가가야 하는지도 알려주고 있으니, '사회심리학'이란 다른 말로 '행복한 삶을 사는 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힐링"이 넘치는 시대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시대다. 이 책은 그런 시대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마음을 지녀야 할까에 대한 '사회심리학자'의 답이라고 보면 된다.

 

나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고, 또 내 주변의 사람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결코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기도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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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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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할 수 없는 것은 더 아쉬움을 갖게 한다.

 

책이 분명히 출판이 되었는데, 시일이 지났다는 이유로 구할 수 없을 때, 물론 상업적 이익을 위해서는 판절이든, 품절이든 할 수밖에 없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지만, 그 책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강해진다.

 

꼭 소유해야지 하는 욕구.

 

어렵사리 구하면 먼저 손에 쥐고 읽기 시작한다. 읽기 시작할 때의 기쁨은...

 

그럼에도 그 기쁨을 끝까지 이어가기는 힘들다. 특히 이렇게 카프카의 본질적인 모습이 드러난 글들은.

 

어렵게 구한 책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무언가를 소유하지 못할 때 그것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강해지는데, 혹시 카프카는 자신의 문학을 여인들을 통해서 이루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도 그렇지만, 펠리체에게 보낸 편지도 그렇게 누이들에게 보낸 편지도, 그리고 밀레나라는 여인에게 보낸 편지에도 자신의 문학에 대한 자의식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의 삶과 여인들을 보면 펠리체, 율리에 보리체크, 도라라는 약혼과 결혼을 생각했던 여인들을 중심에 놓고, 자신을 어머니처럼 돌보아주던 누이동생인 오틀라를 그의 오른쪽에 놓는다면, 편지를 통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 밀레나는 왼쪽에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여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가고, 또한 삶을 유지해나간다.

 

그런 모습이 이 편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카프카가 쓴 편지만 남아 있는 상태에서 밀레나가 어떤 마음으로 카프카를 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년의 카프카는 밀레나와의 편지 교류로 자신의 삶을 유지해나가지 않았나 싶다.

 

품절이 되어 구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카프카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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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 승효상의 건축여행
승효상 지음 / 안그라픽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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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말보다는 "건축은 인문학이다"는 말이 더 마음에 꽂힌다. 인문학적 사유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고,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고, 또한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는데... 여기에 "건축은 인문학"이라고 하니... 무엇이, 도대체 왜?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건축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과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축은 삶을 통해 완성된다. 바로 삶을 통해 완성되기에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건축을 돌과 시멘트와 나무와 흙으로 무언가를 짓는 행위라고만 정의해서는 안되고, 건축에는 우리들의 삶이 녹아 있으며, 건축은 그 존재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형성해간다. 그래서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인문학이라고 해야 한다.

 

이런 인문학이 상실된 건축이 얼마나 흉물스럽게 다가오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우리나라 건축물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만 현실을 지금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만약에 도시건축을 하는 행정가들이 인문학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아니 그들이 인문학적 상상력을 지니지 못했을지라도 오래 된 것들의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했더라면 이렇듯 회색도시의 모습을 우리나라 도시들이 지니지는 않았으리라.

 

승효상이란 건축가, 자신의 건축 철학을 비움의 건축이라고 한다. 비움이라? 이 비움은 우리나라 전통 건축인 한옥에서 실현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좋은 건축이라고 일컬어지는 건축들은 바로 이 비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든 꽉꽉 채우려고 하는 이 시대에 이는 새겨들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 비움은 곧 채움을 의미하기에, 이 비움은 부족함이 아니다. 오히려 비움은 넉넉함이다. 이런 넉넉함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삶을 더욱 여유롭게 한다.

 

건축이 삶을 규정한다고 하고, 삶이 건축을 규정한다고 하면, 인간미 없이 빡빡하게 지어진 건축물들이 즐비한 도시의 삶에서는 넉넉함과 여유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각박함만을 느낄 뿐이다. 그래서 작가는 우리나라 골목의 사라짐을 안타까워하고, 막개발을 개탄하고 있다.

 

이런 생각없는 건축을 막는 길은 모두가 건축에서 인문학적인 향취를 느낄 수 있도록 교육받거나, 또는 배우려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을 외부에서 보지 말고, 내부에서 자신의 삶과 관련지어서 보기 시작한다면 건축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우리들이 지금 살고 있는 건축들이 오래 되어 시간이 흐른 다음에 아름다운 존재로 남게 노력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 있는 건축들을 소개하고, 그 건축에서 느낀 감흥을 글로 펼쳐내고 있다. 글들도 좋고, 건축에 대한 생각을 읽는 것도 좋고, 그런 건축들의 사진을 보는 것도 좋다.

 

그렇게 보면서 건축에 대한 안목이 인문학적인 안목에 조금 더 다가갔다는 뿌듯함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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