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2024 노벨경제학상 수상작가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 시공사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제목이 자극적이다. 뭐야, 국가는 실패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드는 제목이다. 국가가 실패한다는 이야기는 자칫하면 국가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로 비약하기 쉬운데.. 이 책의 제목은 국가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이 제목을 좀더 세분화해서 말하면 "왜 어떤 국가는 성공하고, 어떤 국가는 실패했는가"이다. 즉 국가들에 관한 얘기이고, 실패한 국가가 왜 실패하게 되었는지, 성공한 국가는 왜 성공했는지 그 이유를 찾아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그렇다면 성공한 나라와 실패한 나라의 기준이 무엇인가부터 따져야 한다. 그 기준은 바로 "풍요"다. 풍요는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합친 것이고, 특정 집단만의 풍요가 아니라 국가 구성원 모두의 풍요를 말한다.

 

이 기준에 의하면 성공한 나라는 서유럽의 나라들, 미국, 일본, 한국, 보츠와나 등이고, 실패한 나라는 동유럽의 나라들, 서남아프리카 국가들, 멕시코, 남아메리카 국가들 등이다. 우리가 지금 잘사는 북반부와 못사는 남반부로 쉽게 나누는 그 선이(다소의 변동은 있더라도) 대체로 들어맞는다.

 

이 원인이 무엇일까? 도대체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 왜 국가들에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가?

 

이런 흥미로운 질문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시작도 흥미롭다. 오랫동안 한 도시였지만 인위적으로 갈린 도시 노갈레스에서 시작한다. 한 쪽은 미국 땅, 한 쪽은 멕시코 땅이고 한 쪽은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한 쪽은 다른 쪽에 비해서는 한참 모자란 삶을 유지하고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여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남한과 북한을 예로 들기도 한다. 오랫동안 한 민족으로써 한 국가로써 동질적인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38선이 생긴 이후 엄청나게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도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어떤 국가는 실패하고 어떤 국가는 성공하는가이다. 답은 명료하다. 포용적인 경제제도, 정치제도를 지니고 있는 국가는 성공하고, 착취적인 경제제도, 정치제도를 지니고 있는 국가는 실패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지리적, 문화적, 무지를 이러한 차이를 유발하는 요소로 들었지만 이 책의 2부에서 이 이론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 반박하고 있다. 이러한 반박을 토대로 지금 국가들의 차이는 바로 정치와 경제에서 포용적인 제도를 택했느냐, 착취적인 제도를 택했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길고 긴 장들을 통해 증명해가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지은이의 주장에 수긍을 할 수밖에 없다.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많은 국가들을 통시적으로 그리고 공시적으로 꿰뚫어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책 지은이의 주장이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의 이론과 지금 현재 국가들의 모습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그의 이론이 무척 단순 명료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 단순함은 다양한 포용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표용적인 정치, 경제 제도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고 그를 추구하는 자세를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 포용적인 정치는 특정 집단에 권력이 독점되지 않고, 다원화된 집단들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또는 함께 하는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다당제라고 해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는 없고, 정당들이 또는 정치인들이 대표하는 집단이 다양해야 하고, 그리고 그러한 정당, 정치인이 배타적인 권한을 지니고 있지 않고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는 제도가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즉 다양한 집단이 모두 동등한 권리를 지닐 수 있는 제도가 확립된 국가, 그 국가가 포용적인 정치제도를 지닌 국가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어느 특정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집단들의 이익이 모두 고려되는, 그리고 창조적인 활동이 가능해, 발전을 위한 창조적 파괴가 용인되는 그러한 경제 제도를 택하고 있는 국가가 포용적인 경제제도를 택하고 있는 국가이다.

 

이 두 요소는 따로따로 가는가? 아니다. 함께 간다. 무엇이 먼저이든 상관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데, 좋은 쪽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 선순환이 되어 풍요로운 국가로 가는 길이 열리고, 나쁜 쪽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 악순환이 되어 빈곤과 독재에 시달리는 국가로 가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선순환인지 악순환인지는 우발적인 요소도 있지만, 결정적인 분기점에 그 국가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두 요소를 우리나라에 대입해보자. 우리나라는 이 책에 의하면 상당히 발전해온 국가에 해당당한다. 포용적인 경제제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독재정권이 집권하기도 했지만 민주화가 된 이후 포용적인 정치제도도 어느 정도 확립해가고 있는 국가이다.

 

그러나 지금 선진국인 북유럽에 비하면 우리는 과연 얼마나 포용적인 정치,경제 제도를 지니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에 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더 발전하고, 국민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지, 아니면 여기서 멈추고 지지부진한 상태로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답을 구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때마침 대선을 앞두고 있기에 정치적인 면에 대입을 해 볼 수도 있고, 경제 쪽에서는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되고 있는데, 이를 이 책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해가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국가들의 부, 그것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물론 우발적인 요소도 있지만, 그 나라의 제도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 그것을 명심한다면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고 할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int236 2012-10-12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용적인 국가가 성공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세부적인 사항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겟네요. 착취하는 제도가 있는 나라는 실패한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 의문이 듭니다.
 
고우영 열국지 세트 - 전6권 고우영 열국지
고우영 글 그림 / 자음과모음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고우영의 열국지 세트를 구입했다. 만화 책을 사놓기란 많이 망설여지는 일인데, 고우영이란 작가에 대한 믿음이 그다지 망설이지 않고 사게 만들었다.

 

고우영의 만화는 만화를 어린이의 영역에서 어른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일지매를 비롯해 여러 작품들을 보면 말이다.

 

어린이들보다는 오히려 어른들이 읽어야 더 감칠맛이 나는 만화, 어른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풍자, 해학, 그리고 약간의 성적인 요소들이 그의 만화들에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열국지 하면 소설 식으로 편찬한 책도 많고, 집에 있는 것도 김구용이 편역한 "동주 열국지" 10권짜리가 있는데, 그런데도 고우영의 열국지를 산 이유는 만화라는 장르와 소설이라는 장르는 차이가 있고, 또한 열국지라는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고우영 나름대로의 해석을 바탕으로 만화를 만들었으리라는 생각, 그리고 아이들이 열국지라는 방대한 소설을 읽기보다는 이 만화를 통해 열국지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결론은 아이들이 읽기에는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글이 많다. 지금 아이들은 가능하면 글이 적은 만화를 좋아하는데, 고우영의 만화는 글에서 느끼는 재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낄낄거리면서 읽을 수 있는 이 만화를 아이들은 "학습"한다는 생각으로 읽게 될 가능성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두 번째는 아이들에게 읽히기에는 "열국지" 내용에 성적인 부분이 많은데, 이게 참,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라 나름대로 검열을 해서 별로 선정적이지는 않지만, 고등학생 이상에게는 좋겠지만 중학생은 이런 표현들을 잘 이해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림체도 요즘 웹툰의 그림체에 익숙한 아이들에게는 좀 뭐랄까 고답적이라고 할까, 촌스럽다고 할까 아니면 눈에 확 안 들어온다고 할까 하는 인상을 주기 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고등학생 이상에게는 이처럼 재미있는 만화는 없으리라. 슬픈 대목에서도 웃음을 유발하는 해학이 잘 살아있고, 그림과 더불어 글들이 종횡무진 나타남으로써 풍자를 해주고 있으며, 단지 열국지-중국의 과거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연재 당시 사회상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상황도 제시되고 있어서 볼만하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꼭 봐야하는 만화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고사성어를 아는 즐거움이야 그렇다고 쳐도 중국의 방대한 역사를 만화를 통해서 재미있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만화는 커다른 장점을 지니고 있다.

 

주나라의 실질적인 멸망부터 시작하여(그래서 사람들은 동주 열국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진시황이 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하는 부분까지 춘추전국시대의 주요한 사건 또는 인물을 다루고

있으니, 만화로 보는 이야기 중국사라고 할 만도 하다.  

 

책의 겉표지에는 그의 유고작이 되어버린 작품이라고 했는데, 연재를 마치고 단행본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의 말을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의 말이 없는 무언가 한 군데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만화인데, 그 비어있음을 독자인 우리들이 채워야 하겠단 생각이 든다.

 

아마, 이 만화를 먼저 보았다면 소설로 된 열국지를 읽으면 더 좋을 것이고, 소설로 된 열국지를 먼저 읽었다면 이 만화를 보면 또다른 재미와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이틀 동안 나를 열국지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 고우영의 만화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 하반기에 들어와서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선정적인 내용이 지나치게 많아졌단 생각이 들었다.

 

이 방송 저 방송 가릴 것 없이 내용이 비슷하고 별 차이도 없는데...

 

정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은 방송이 되지 않고, 사건 사고들만 내리 방송이 되고 있었는데...

 

왜 저럴까? 저것 말고도 뉴스거리가 훨씬 많을텐데...

 

우리 삶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건사고들로 도배를 하다니...

 

여기에 뉴스인데 영화소개를 한다든지, 대중가요, 대중가수 홍보를 한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건강정보랍시고 온갖 병들을 들이대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이게 뉴스의 전부인가? 경제적인 정치적인 사회적인 다른 문제들, 좀더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룰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

 

여기에 생각나는 책이 부르디외의 "텔레비전에 대하여"였는데...

 

읽은 지 오래되어 다시 읽어보니, 사회학자답게 텔레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사회구조 문제까지 생각하면서 언급하고 있다.

 

텔레비전으로 인하여 다른 사회 문화 양상이 왜곡될 수 있으며, 텔레비전은 다른 많은 일들을 은폐하기도 하며, 또한 깊고 긴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여기에 텔레비전을 하나의 장으로 파악하고 그 장이 움직이는 구조의 문제를 들여다보도록 하고 있는데...

 

읽으면서 아, 그래... 그러니 우리나라 텔레비전도 이럴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하지만 그는 텔레비전, 시청률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텔레비전의 장에 속한 사람들을 적대자의 위치에만 놓지는 않는다.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또 함께 해야만 한다고 한다.

 

지금 텔레비전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한 텔레비전을 움직이는 요소는 부르디외가 지적했던 시청률이고, 우리를 알게 모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텔레비전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학생 토론학교 : 교육과 청소년 - 학교와 배움에 대한 일곱 가지 물음 중학생 토론학교
한국철학교육연구원 지음 / 우리학교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학생을 대상으로 '토론'에 관한 책을 연속해서 내고 있다. 첫번째 책이 "문학"이었는데, 문학작품 속에 나온 상황이나 인물에 관해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게 하는 책이었다.

 

이번에 나온 "교육과 청소년"은 좀더 청소년들의 처지에 다가간다. 청소년들이 알게 모르게 인식하고 있던 문제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생각해보라고, 그리고 말해보라고 한다.

 

즉, 토론을 해보라고 한다. 아니 토론을 하자고 한다. 왜냐하면 토론이란 나를 정립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남을 인정하고 그 인정의 바탕 위에서 나를 다시 생각해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토론이다.

 

하여 토론이 활발하단 얘기는 편견에 빠져 있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자신의 의견을 정립할 줄 알고, 남 앞에서 이야기할 줄 알며, 그와 같은 비중으로 남의 이야기를 듣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태도를 갖추게 된단 얘기다.

 

그래서 토론은 교육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학생 수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아니면 입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간 우리 교육에서 등한시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사회가 토론을 경원시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침묵의 제국, 윤휴"란 책을 읽다가 윤휴가 나중에 했다는 말, '생각이 다르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 까지야 없지 않은가'란 말,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는 당쟁이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있었는데, 당쟁, 즉 다른 당파와의 논쟁에서 지면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 할 정도였던 적도 있었으니, 토론보다는 두루뭉수리로 그냥 묻어가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 퍼지기도 했으리라.

 

여기에 전란을 겪으면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고, 지금까지 사상으로 인해 고초를 겪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면 우리나라 교육에서 토론이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자기 머리 속에만 있다면 쓸모가 없다는 말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정교하게 또 바르게 정립해나가는데는 반드시 남의 생각을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

 

남의 생각을 듣고, 내 생각을 펼치는 과정, 이것이 바로 토론이며, 그래서 토론은 대등한 두 사람이(혹은 여러 사람이) 대등하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하여 토론이 잘 된다는 얘기는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필요없이 가장 좋은 방법을 말을 통해, 토론을 통해 찾을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이런 토론의 습관을 길러주는 역할을 교육이 해야 하고, 이는 시간이 없다, 학생수가 많다, 입시에 도움이 안된다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이다. 오히려 사람답게 잘 살기 위해서는 토론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토론을 할 수 있을까? 우선 학생들 자신이 겪는 문제부터 생각하게 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이것을 시도하고 있다.

 

토론거리로 주어진 주제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학교를 꼭 다녀야 할까?

좋아하는 과목만 공부하면 안될까?

시험을 꼭 봐야 할까?

우리에겐 어떤 선생님이 필요할까?

남녀 합반이 좋을까 남녀 분반이 좋을까?

학생은 생활 지도를 받아야만 할까?

폭력 학생을 힘으로 막는 동아리가 생긴다면?

 

학생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된 주제들 아닌가? 학생들 스스로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 아닌가? 이 문제들을 안으로 안으로 감추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내서 우리 공개적으로 토론해 보자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도입부분과 찬반에 관한 글들과 정리글들이 잘 배열되어 있지만, 정리글을 읽다보면 어느 한 쪽 편에 강조점을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글들도 있다.

 

그리고  한 쪽 정도 여백을 두고 자신의 생각을 쓰게 했으면 더 좋겠는데, 단편적인 생각거리를 제기하고, 종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있는 점이 아쉽다. 물론 이 책이 토론글을 적은 연습책이 아니기에 그러하겠지만, 이 책의 목적이 토론을 하게 하는 데 있는지, 아니면 이런 주제를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에 있는지 조금은 헷갈린다. 그 점이 명확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학년말에 이런 주제로 토론을 학교에서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는 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신문을 보니 이런 기사가 실려 있다. 홉스봄이 아직 살아 있었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건, 그가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역사책을 썼고, 번역도 많이 되어 있는데, 나는 읽은 책이 몇 권 되지 않았고, 또한 그의 책은 두껍고 값도 비싸서 선뜻 사기가 좀 그랬던 책이기도 했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정확하고 공정하게 평가하려고 했던 학자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연휴가 끝나고 온 신문에 그의 타계 소식이 실려 있다니... 내 젊은날, 영향을 준 학자들이 이제는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단 생각에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으니...

 

나에게 깊은 감명을 준 그의 책은 무슨무슨 시대라는 제목이 붙은 그의 대표적인 책들보다는 작은 책이었던 "의적의 사회사"다. 그런데 이 책을 구할 수가 없다. 이제는 출판이 되지 않는지.. 여러가지로 생각할거리가 많은 책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작품이었던 "홍길동전"의 홍길동이나 "임꺽정"의 임꺽정을 어디에 놓아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단지 체제에 반항하는 부류에서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부류까지 다양하게 나타났지만, 이들이 단지 사회반항세력이 아니라 이들이 있음으로해서 사회가 조금씩 변해왔다는 것을 인식했었는데...

 

그러다 한 번 더 읽은 책이 "극단의 시대"다. 90년이 넘어서 나온 책. 우리는 극단의 시대를 거쳐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에 그 시대에 대한 고찰은 지금 여기를 인식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제 그는 격동의 시기를 지나 영면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가 이룬 업적들은 이 세상에 남아있을테니, 그가 편안히 쉬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