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역사 3 - 홀로코스트와 시오니즘
폴 존슨 지음, 김한성 옮김 / 살림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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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은 홀로코스트에 이어 나라를 건설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시온주의라고 나라를 건설하자는 움직임이 처음부터 힘을 발휘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들이 나라를 건설할 때도 종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관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들은 이제 그들의 나라를 원하게 된다. 그들이 더 이상 학살을 당하지 않게 할 그런 나라.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관점들이 있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홀로코스트로 인해서 이스라엘의 건국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음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나서 문제가 해결되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물론 이제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대량 학살은 일어날 수가 없다. (그렇게 믿고 싶다. 여전히 세계 여러 곳에서 홀로코스트까지는 아니어도 증오 범죄들이 일어나고, 테러는 빈번하니)


하지만 반-유대주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세계는 여전히 서로를 인정하는 관용과 포용보다는 밀어내는 배제와 배척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건국한 이스라엘이 아랍국가들과 전쟁을 벌여 자신들의 영토를 더욱 확장해 간 사실, 지금도 이스라엘은 영토를 많이 확장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이 지역에서 평화가 정착되지 않은 이유를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지내온 역사에서 저자는 찾고 있다.


아랍인들이 쉽게 유대인들의 국가를 받아들이고 평화협정을 맺지 않았던 이유가 그들이 수천 년 동안 정복국가로서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말, 여러모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 이유보다는 수천 년 동안 살아온 곳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 그 땅을 넘겨주는 것이 평화라고 하면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이런 관점에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전쟁을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홀로코스트가 벌어질 때 유럽 각국에 만연했던 반-유대주의가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이런 반-유대주의를 집약해서 불을 붙인 사람이 히틀러라고 할 수 있고, 히틀러까지는 가지 않았어도 러시아에서의 반-유대주의도 심각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반-유대주의를 넘어 이스라엘은 건국되었지만, 그럼에도 세계 각지에는 유대인들이 공동체를 형성해 살고 있다고 한다.


나라가 있다고 모두가 그 나라로 가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당연한 일인데,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세계는 여전히 반-유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인류가 평화공존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데, 그런 평화로운 세계에 대해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대인의 역사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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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역사 2 -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폴 존슨 지음, 김한성 옮김 / 살림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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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방대한 역사를 다룬다. 유대 왕국이 멸망한 다음에 도처에 흩어져 살게 되는 유대인의 역사.


1차 세계대전 전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각 나라에서 유대인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그들이 겪은 고난과 성공은 어떠했는지를 다룬다.


유대인들도 유대교를 벗어나 다른 종교로 개종하기도 하는데, 이들이 개종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살아가는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개종하는 유대인과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는 유대인. 크게 보면 유대인의 역사는 둘로 나눌 수 있는데, 개종했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그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지는 않았음을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한때 어떻게 유대인을 구분하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들의 역사에서도 유대인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을테다. 수천년 동안 동화된 유대인들이 있었을테니.


하지만 동화되지 않은 유대인이 그들의 종교를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었고, 이들은 쉽게 탄압의 대상이 된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박해를 받는 유대인들, 거주지 제한부터 시작해서, 재산 몰수는 물론이고 생명을 잃는 일까지 수시로 겪게 된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 결실이 나중에 시온주의라는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운동으로까지 나아간다.


시온주의 하면 모든 유대인이 찬성하고 동조했을 것 같은데, 이 책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유대인 중에서도 상류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시온주의를 반대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런대로 다른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로 오면 유대인을 학살하는 일이 그리 빈번하게(?러시아나 그밖의 나라에서는 수시로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모든 서양 나라에서 유대인을 학살하지는 않았다. 특히 영국에서는 유대인들이 보호를 받고 나름 자유롭게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일어나지는 않게 된다.


빈번하지는 않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언제든 학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었을테고, 드레퓌스 사건을 중심으로 시온주의가 대두되고, 유대국가의 건설이 논의된다. 이 논의의 중심에 영국이 있고.


유대인들도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고 보면 안 된다. 그들도 다양한 분파가 형성되었으며, 그 분파에 따라서 다른 의견과 행동 양식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분파의 다양성, 그리고 그들이 서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한 선택들. 2권은 그것을 다뤄주고 있다. 여기에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들이 몇 나오는데... 유대인들이 그 사회에 적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거금을 지닌 재산가로서 유명하고, 디즈레일리라는 이름은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둘 다 유대인이다.)


이렇게 자리잡은 유대인들이 각 분야에서 큰 활약을 펼치게 되는 것이 바로 근대인데... 2권에서는 이런 인물들을 다뤄주고 있다. (세계를 바꾼 인물로 프로이트와 아인쉬타인을 들 수 있으니) 그리고 이제 홀로코스트로 넘어가게 된다. 3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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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역사 1 - 성경 속의 유대인들
폴 존슨 지음, 김한성 옮김 / 살림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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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분쟁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유대인들의 갈등이 일어나는 곳. 엄밀히 말하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특정 지역에만 거주하도록 한 곳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동을 하더라도 목숨에 위협을 느끼면서 이동해야 하고, 수천 년 동안 살아온 곳에서 쫓겨나 살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 유대인들의 역사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다. 왜 그들은 그들도 엄청난 박해를 받았으면서 다른 민족을 박해할까?


자신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인식한다면 다른 민족들이 그러한 일을 겪었을 때 어떠한 심정이었을지 이해할 수 있을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대인의 역사를 알게 된다면 그들이 그렇게 하는 까닭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첫권은 성경 속 유대인들 이야기다. 성경 속 유대인 하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스라엘), 요셉을 비롯해서 모세를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으며, 모세 이후에 여호수아, 또 다윗, 솔로몬을 다루고 있다.


유대인 왕국을 건설하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들이 멸망해 가는 과정을 성경 속 인물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 기독교, 이슬람의 탄생과 유대인의 탄압을 첫권에서 다루고 있다.


유대 종교과 기독교가 양립할 수 없음을, 그리고 로마시대에 기독교가 국가 공인 종교가 되면서 유대인들을 탄압하게 되는 과정이 나와 있는데...


이렇게 유대인은 아주 오래 전부터 서양 사회에서 박해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을 박해한 역사가 근대에 이르러서 시작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데...


여기까지가 첫권의 전개인데, 이들을 보면 그들 역시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하기 위해서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아랍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로마인들에 의해서 멸망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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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숲 -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의 자연 순간들
피터 S. 알레고나 지음, 김지원 옮김 / 이케이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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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숲'


이 '어쩌다'란 말에서 숲이 아닌데, 숲이 되어버렸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어디가 숲이 되었을까? 바로 도시다.


도시, 삭막한 공간이라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이 도시에도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다. 인간만이 아니라. 


도시는 철저하게 인간을 위한 공간이다. 인간이 자신들의 편리를 위해서 만들어낸 공간이고, 자신들의 생활이 최적화 되도록 설계한 공간이다. 그래서 도시는 인간에게 좋지 않다고 여겨지는 생물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차단되어 있다.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도로들이 그런 통로를 막는다.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죽임을 당했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소위 로드킬이라고 불리는 죽임들.


그럼에도 도시에는 동물들이 살아간다. 반려동물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야생동물들도 도시에서 살아가려 하고 있다.


비둘기와 같은 새들이야 이제는 친숙해졌고, 길고양이들도 익숙해졌으나, 멧돼지는 아직도 친숙해지지 않았다.


가끔 언론에 도심에 멧돼지가 출몰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도시는 멧돼지가 나타나서는 안 되는 지역인가 보다.


멧돼지만으로도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데, 만약 멧돼지보다도 더 무섭다고 여겨지는 동물들이 도시에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까?


이 책은 그런 상황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야생에 살던 동물들이 도시로 오게 된 모습을, 미국 도시의 상황을 통해서.


저자는 보브캣을 보았을 때로 이 책을 시작한다. 야생에 있는 동물을 도심에서 봤을 때의 놀라움, 신기함. 그러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더 많은 동물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다람쥐, 흰꼬리사슴, 캘리포니아모기잡이, 코요테, 흑곰, 흰머리수리, 퓨마, 박쥐, 땅다람쥐, 참새, 바다사자 등을 언급한다.


이 중에 참새는 우리에게도 친숙하니까 빼자. 다만 저자는 그 많던 참새가 도시에서 줄어든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참새가 많았다가 많이 줄지 않았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활 방식 때문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얼마 전에 언론에서 '가마우지'를 다뤘다. 본래 철새였던 가마우지가 거의 텃새가 되어 양식장의 송어들을 먹어치우고 있다는 뉴스.


이 책에서 다룬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야생동물들이 자신들의 먹이를 찾아 인간에게 점점 더 다가오는 것. 동물들도 살기 위해서, 인간이 살고 있는 도시로 올 수밖에 없음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공존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는 고라니나 멧돼지가 농작물을 파헤쳤다는 기사, 가마우지가 송어를 잡아먹어 양식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기사 등등을 접하면서 그 동물들을 어떻게 퇴치할까를 이야기한다.


퇴치가 아니라 공생이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들을 퇴치할 생물로만 여길 때 결국 피해는 인간에게도 오게 된다.


그러니 여러 동물들과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가마우지나 멧돼지, 고라니 등이 왜 인간 근처로 자꾸 오겠는가. 그들이 살아갈 생태계가 파괴되어 먹이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들도 살아가야 하므로.


아마 이대로 가면 지리산에 방사된 반달곰들도 미국의 흑곰들처럼 도심으로 내려올지도 모른다. 그들이 살아갈 생태계를 자꾸 잠식해 들어가면.


저자의 말을 인용한다.


'인간이 자연을 바꿀 수 있다 해도 완전히 통제할 힘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자연과 상호작용하고, 자연을 키우고, 우리의 공통된 미래를 계획하는 방식을 좀더 의도적으로 이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연을 지배하고 조작하고 소소한 것까지 전부 통제하려 하는 옛날 방식에 집착하거나 단편적인 해결책으로 전체적인 문제를 계속 풀려고 하면, 도시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사람과 야생동물 사이에 공존 같은 건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공존에는 통제가 아니라 보살핌이 필요하다. 응징이 아니라 호혜가 필요하다. 상황이 항상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하는 겸손함을 갖고서 상호 번성을 위한 배경을 만들어야 한다.' (357쪽)


도시로 내려오는 야생동물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이런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은 야생동물을 보호하자는 관점에서 쓰였다고 보면 된다.


우리 역시 해마다 겨울철에 철새들을 위해서 많은 곡식을 논에 뿌리는 일을 하기도 하지 않는가. 이런 일을 하면서도 도심에 나타나는 동물들, 또 인간의 일에 피해를 주는 동물을 퇴치하라고도 한다.


인간은 지구에서 최고의 포식자다. 다른 생물들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 결과로 예측할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공존을 생각할 때다. 최종 포식자로서 인간이 계속 존속하려면 생태계의 다양성 유지가 필요하다. 그런 다양성 유지에 도시로 오게 되는 동물들과 공존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답은 없다. 그 답을 찾아가야 한다. 저자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 도시에 나타나는 수많은 야생동물들, 단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여러모로 참조할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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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이는 물결 - 작가, 독자, 상상력에 대하여
어슐러 K. 르 귄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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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귄이 쓴 에세이 선집이다. 많은 글들이 있다. 글 한편 한편을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만큼 글에 깊이가 있다. 깊이 내려가 글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제목에 대해 생각에 본다. 마음에 이는 물결이라? 참 마음에 드는 제목이다. 글은 마음에 이는 물결이어야 한다. 마음을 일게 하지 않으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마음을 일게 한다는 마음을 울린다로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을 울리는 글은 내 마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도 울리는 글이고, 그런 글들이 마음과 마음을 울림으로 연결시켜준다.  좋은 글이다.


마음을 울린다는 면에서 보면 르 귄이 쓴 소설도 좋지만, 에세이도 좋다. 여러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그 중에 이 책의 제목과 연결되는 글들이 후반부에 나온다. 아니, 후반부뿐만이 아니라 도처에서 나온다. 그것이 르 귄이 글을 쓰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목이 된 말은 버지니아 울프에게서 따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몇몇 작가의 작품을 꼭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중에는 이미 읽은 책도 있지만, 다시 읽고 싶어진다. 또 뒤로 미뤄두었던 소설들을 찾아 읽고 싶어지기도 하고. 그만큼 르 귄이 쓴 이 책은 마음을 울린다. 다른 책들과 공명(共鳴)하게 한다.


우선 작가를 중심에 두면 작가가 어떻게 글을 쓰는가에서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가 말하는 '길들이기'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 길들이기가 무엇인가. 바로 기다림이다. 상대에게 곧장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천천히 스며드는 것. 그리고 책임지는 것. 


울프는 이를 마음에 이는 물결이라고 했다고 한다. 마음에 이는 물결을 통해 단어가 나오고, 그 단어들을 통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서는 안된다. 또 다른 '길들이기'다. 르 귄의 말을 인용한다.


'기억과 경험 아래에, 상상과 창조 아래에, 울프의 말처럼 단어 아래에 리듬이 있고, 기억과 상상력과 단어는 모두 그 리듬에 맞춰 움직인다. 작가가 할 일은 그 리듬이 느껴질 만큼 깊이 내려가서 리듬을 찾아 거기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다. 그 리듬이 기억과 상상력을 움직여 단어를 찾아내게 가만히 가두는 것이다. ...울프는 그것을 마음에 이는 물결이라고 부른다.' (462쪽)


'울프의 이미지는.... 그녀가 생각한 물결은 파도다. 조용하고 매끄럽게 바다 위를 1천 킬로미터 넘게 가로질러 와서 해안에 철썩 부서지는 파도. 파도가 부서져 날아오르면서 단어라는 거품이 된다. 그러니 그 파도, 일정한 박자의 충격은 단어 이전에 존재하며, "단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작가가 할 일은 그 파도를 알아보는 것이다. 저 멀리 바다에서, 마음이라는 대양 저편에서 조용히 부풀어 오르는 파도를 알아보고 해안까지 따라오는 것이다. 해안에서 파도는 단어를 변화시키거나 스스로 단어가 되어 품고 있던 이야기를 내려놓고, 자신의 이미지를 토해내고, 비밀을 쏟아낼 수 있다. 그러고는 이야기의 대양으로 스르르 다시 물러간다.' (462-463쪽)


산문과 시, 모든 예술, 음악, 춤은 우리 몸, 우리 존재, 이 세상의 몸과 존재가 지닌 심오한 리듬에서 솟아나 그 리듬과 함께 움직인다. 물리학자가 읽는 우주는 아주 다양한 진폭의 진동,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술은 그 리듬을 따라가며 표현한다. 일단 올바른 박자를 찾기만 하면, 우리의 아이디어와 단어가 그 리듬에 맞춰 춤춘다. 누구나 합류해서 춤출 수 있는 윤무(輪舞)다. 그러면 나는 당신이 되고 장벽이 내려간다. 잠시 동안.' (463-464쪽)


인용한 글들, 참 아름답다. 작품이 이렇게 탄생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마음을 열고 함께 춤출 수 있다. 


이런 글들은 편견에 머물지 않는다. 편견을 깨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그래서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편견도 깨지만, 다른 사람의 편견을 깨는 역할도 한다. 그것이 바로 작가다. 


그렇게 편견을 깨기 위해서는 기다림, 적절한 단어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많은 작품이 언급되지만, 꼭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작품들을 마음 속에 담게 한다. 그 작품들은 마음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마음껏 읽고 함께 춤출 때까지는.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 톨킨의 [반지의 제왕]. 그리고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 세상에 내가 아는 허클베리핀의 모험이 그런 소설이었어? 다시 읽어봐야겠네 라는 생각이 들게 한 이 에세이집이다.('작가와 등장인물',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가설들' 387-410쪽)


무엇보다도 이 에세이집은 르 귄의 소설을 읽을 때 도움이 된다. 물론 이 책에서 르 귄은 자신의 경험과 소설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많은 도움이 된다.


르 귄이 말했듯이 독자 역시 이 글을 읽으면서 글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또 르 귄 소설을 읽을 때 이 글들을 떠올리는 것은 독자의 몫이니... 작가도 이해할 것이다. 왜 자신의 소설을 읽는데 이 글들이 도움이 된다고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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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7-23 2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물결, 작가가 할일은 마음에 이는 파도를 알아보는 것! 넘 멋있는 표현이네요. 뭉클한 느낌!

kinye91 2023-07-24 06:02   좋아요 2 | URL
르 귄의 글(소설도 에세이도)을 읽으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