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 스릴러 영화. 131분. 대의명분으로 포장한 부패가 도려내질 때의 쾌감. 화려하지 않아도 짧고 간결하게 화끈함을 선물하는 액션. 8점/10점(별 넷)


2. 사촌동생의 보석금을 내기 위해 한갓진 마을을 찾은 전직 해병대원 교관. 돈가방을 실은 채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뒤에서 경찰차가 들이받는다.(그러기에 자전거를 탈 때는 외부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도록 이어폰을 너무 크게 듣지 맙시다 ^^;;) 보석금을 포함해 자신의 미래를 위해 계획해 둔 자동차 살 돈까지 경찰에 뺏긴 주인공이 몸을 추스리고 경찰서로 돈을 찾아 나선다. 이래저래 합법적인 모양새로 돈을 가로챌 것 같은 지역 경찰들에게 협상을 시도하지만, 끝내 목숨까지 위협받으며 쫓겨난다. 이대로 물러나면 사촌동생의 목숨까지도 위험한 상황, 주짓수 해병대 교관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해 부패한 세력들을 응징하러 나선다.


3. 꽤 그럴듯하게 현실에서도 벌어질 것만 같은 부패상을 보여 준다.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자립이 힘들어 진 지자체가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법원과 경찰 등이 합세해서 아주 가벼운 범죄마저도 보석금을 지불하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돈을 만들어낸다. 마을의 자립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기에 섣불리 대항하기도 쉽지 않다. 공권력이 작심하고 못된 짓을 꾸미면 당해 낼 재간이 좀처럼 없다. 다만 영화처럼 이 부패 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우린 이런 부패를 도려내는 칼날같은 사람이 되고 싶거나, 그들을 지지한다. 그래서 영화 <레블 리지>는 보통의 소시민들에게 통쾌함을 선물한다.  


4. 부패한 권력에 도전하는 이들이 성공하기 위해선 조력자가 필요하다. 영화 속에서도 법원에서 일하는 조력자가 등장한다. 일종의 '두 번째 펭귄'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펭귄이 위험을 무릅쓰고 먹이를 얻기 위해 물에 뛰어들 때, 이를 지켜보고 안전을 확인한 두 번째 펭귄이 물에 뛰어들면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측면도 있지만, 이런 두 번째 펭귄으로 인해 나머지 무리들도 물에 뛰어들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일종의 임계치에 이르도록 만드는 도화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의 변화는 첫 번째 도전자와 함께 두 번째 펭귄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영화 <레블 리지>에서도 조력자가 있음으로 인해 한 마을에 도사리고 있던 부패를 도려낼 수 있었다. 첫 번째 도전은 못할 지라도 두 번째 조력은 할 수 있는 용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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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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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 이해하기 3탄으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을 선택했다. 1,2탄으로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와 <자본의 미스터리>를 읽었는데, 두 책은 상반된 시선을 가지고 있다. 반면 두 책이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체제다. 즉 자본주의의 폐해로써 가난이 발생한다는 의견과, 자본주의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음으로써 가난하다는 서로 반대되는 주장이었다. 


<공정하다는 착각>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접근보다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낸다. 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한마디로 사람들의 몸값이다.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매일 8억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제 3 세계 국가의 누군가는 평생을 모아도 전혀 만질 수 없는 금액을 하루에 버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호날두의 몸값은 일당 8억 원의 가치를 지니게 됐을까. 그의 축구 실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일 8억 원의 가치를 지닌 활동을 하고 있다는 데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의 능력이 탁월하다고는 하지만 이 능력이라는 것도 축구라는 운동이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시대적 운과 맞아 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리라. 호날두 못지않게 운동 신경이 뛰어난 세계적 핸드볼 선수가 있다. 니콜라 카라바티치라는 선수인데, 연봉이 약 20억 원 가량이다. 이 연봉 또한 웬만한 사람들이 평생 모아야 할 금액 수준이지만 호날두에 비하면 그야말로 '껌값'이다. 똑같이 타고난 또는 탁월한 운동신경을 지녔지만, 어떤 종목에서 뛰는, 어떤 종목과 어울리는 운동 신경을 가졌느냐에 따라 몸값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발생한 것이다. 단순히 능력 만으로 따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호날두나 카라바티치 만큼의 운동 신경을 가졌다 할 지라도 이런 능력을 발굴해서 키워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환경을 만나지 못하면 이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즉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 역량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또 하나. 호날두나 카라바티치가 타고난 운동신경만으로 자신의 종목에서 탁월한 성과를 이룬 것은 아니다. 이들도 엄청난 노력을 통해 이런 성과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호날두의 행운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의 능력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반대로 당신은 능력이 부족해서 그 수준에 있다는 좌절감을 안겨준다는 것에 문제점이 도사린다. 또한 축구와 핸드볼 처럼 단순히 어떤 종목이냐에 따라 연봉의 수준이 달라지듯,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느냐에 따라 수입의 수준이 달라지는 것 또한 능력의 차이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수입이 적은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멸시, 반대로 수입이 높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자칫 노동에 대한 차별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도 문제라 할 수 있다.(최근 한 의사가 간호사들을 향해 '장기말'이라거나 '건방진'이라는 표현을 한 것도 이런 능력주의의 표상이라 할 것이다) 


능력주의라는 이름 하에 차별은 정당한 것처럼 보여지지만, 실상 능력이라는 것이 순전히 개인적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별이 정당한 지를 살펴봐야 한다. 애당초 이런 극심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럼에도 자본주의의 속성에 의해 이런 차별이 발생한다면, 또는 이런 차별이 성장의 동력이 된다할 지라도 어떻게 이런 차별의 극대화를 줄여갈 수 있을까. 


마이클 샌델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차원에서 소득세를 폐지하는 대신, 소비세와 부유세를 제안한다. 즉 우리의 노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에 세금을 부과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비하고 보유하는 것에 세금을 부여해, 그 세금으로 소득차로 인한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사용하기를 제안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금융거래세를 통해 투기적 거래, 즉 돈이 돈을 버는 거래를 억제하고 이 세수를 사회적 복지에 사용하도록 하자는 의견이다.(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투세에 대한 갈라진 의견도 샌델이 주장하고 있는 그 취지에 부합한지를 따져서 결정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연간 수조원씩 벌어들이는 투자자들을 바라보고 있자면,또는 똘똘한 집 한 채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도 연간 수 억원을 벌어들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면, 또는 코인이나 주식에 투자(투기?)해서 원금의 몇 배를 벌어들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반대로 하루종일 돌을 깨뜨리고 몇 천원을 버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힘든 노동을 통해 겨우 몇 만원을 버는 노동자들을 보고 있자면, 세상이 능력 껏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허울 좋은 속임수이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세상은 능력에 따라 얻어간다는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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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판타지 액션 영화. 108분. 용의 둥지에 갇힌 공주가 스스로의 지략과 힘으로 빠져 나가는 이야기. 단순 명료하다. 5점/10점(별2개반)


2. 가난한 백성을 위해 부유한 나라의 왕자와 결혼하기로 마음 먹은 공주 엘오디. 하지만 이 결혼은 용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한 함정이었다. 동굴에 빠진 엘오디는 용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생명을 지켜낼 수 있을까. 영화 제목 댐즐은 Damsel in distress 의 댐즐로 보인다. 곤경에  빠진 아가씨라는 뜻으로, 문학 작품의 주 모티프이기도 하다.


3. 엘오디는 동굴에 갇혀 용에게 잡아 먹힐 위기에 처했다. 그녀는 그녀를 구해 줄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냥 자포자기해 용에게 먹힐 생각도 아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기필코 살아돌아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의지를 다진다. 이 동굴엔 자신 말고도 그 이전에 제물로 바쳐졌던 여인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일종의 동굴 지도도 남겨져 있다. 엘오디는 이 곤궁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4. 영화의 재미는 엘오디와 용의 싸움일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의 싸움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극박함이나 반전 또는 지혜 싸움이 크게 도드라지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용이 나오는 판타지인 만큼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터인데, 동굴 속에선 치유하는 벌레 정도만 나오는 단순함도 재미를 떨어뜨린다.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여 주인공 엘오디 만의 의지만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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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액션영화. 106분. 하이스트(케이퍼) 무비. 인물간 갈등이나 사연은 없다. 그저 비행기 안 금괴만을 털면 그만. 그래도 눈 요기는 제법이다. 6점/10점(별 3개)


2. 전문털이범 일당이 테러리스트에게 전달되는 금괴를 터는 이야기. 그런데 금괴는 비행기로 이동 중이다. 비행기를 하이재킹해서 금괴를 뺏는 것이 아니라 12,000미터 상공에서 이동 중인 비행기 안 금괴 만을 턴다는 것이 이 영화의 특색. 이 금괴털이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과 실제 금괴를 터는 장면에서 나오는 특수효과들이 생동감 있게 보여진다는 것이 재미. 


3. 전문털이범 일당이 모였으니 갈등도 있을 법한데, 단합이 최고! 각기 다른 장기를 가지고 있지만, 마음을 끄는 캐릭터가 없다는 것이 아쉬움. 킬링타임용으로 그럭저럭 즐길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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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SF영화, 102분. 스콧 웨스터펠드의 원작 소설 어글리 3부작이 있다. 소설은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성형, 획일적 아름다움 등을 주로 다루지만, 영화는 소설이 말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잘 보여지지 않고, 액션도 폭발적이지 못해 두루두루 어정쩡하다. 5점/10점 만점(별 2개 반)


2. 과거의 일류는 각자 다른 개성과 생각, 욕망으로 인해 다툼이 일어나 멸망의 길을 걸었다. 이들을 러스티라 부른다. 현재는 이런 차이들을 없애는 방식으로 16세가 되면 모두 성형수술을 받아 최고의 외모를 지닌다. 이들을 프리티라 부르고, 아작 성형수술을 받지 않은 아이들을 어글리라 칭한다. 모두 도시에 모여 산다. 하지만 이런 생활방식을 거부하고 자연과 접해 자급자족하는 무리들이 있다. 이들이 사는 곳을 모스크라 부른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참신한 설정이지만 다소 개연성이 부족해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3. 도시인의 획일화된 아름다움이 과연 유토피아일까. 16세에 받는 성형수술은 단지 외모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뇌에도 수술을 가해 주체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만든다. 아름답지만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들. 

그 반대편에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자연과 벗 삼아 자급자족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외모보다는 내면의 모습이 중요하다. 이들 사이에는 자연을 죽여가며 동력을 만들어가는 꽃들이 존재한다. 이 꽃은 자연을 없애며 자신의 지역을 확장해가고, 이들이 만든 동력으로 도시는 생활이 가능하다. 


4. 그래서 아름다움과 추함, 또는 외면과 내면의 대립으로 보기보다는 차라리 도시와 시골, 기생과 자립의 문제로 영화를 바라보는 것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처럼 세상을 싹둑 잘라서 내면의 아름다움과 시골의 자립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영화는 힘을 잃고 어정쩡하게 진행된다. 액션의 재미라도 크다면 다행일텐데, 미래의 모습과 무기들이 그다지 눈길을 크게 사로잡지 못하다는 것도 감점. 아쉬움이 많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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