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인 1
이케가미 료이치 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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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살인청부업자다. 그것도 단돈 5달러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 인간의 값어치가 그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물론 5달러라는 가치는 뒤에 이유가 밝혀지지만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땐 충격이었다. 늙은이가 사고로 죽어도 보험사에서 측정하는 몸값은 그보다 더할 것인데 말이다. 5달러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삶을 포기한 자가 풍기는 인간의 독특한 냄새는 꽤 매력적인가 보다. 주인공을 둘러싼 사람들은 그에게 빠져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위해 희생을 바칠 수 있다는 건 단순히 그 사람에게 빠져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여진다.

주인공의 형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보이다가 한 순간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희생임을 밝힌다. 그 희생의 각오는 바로 어렸을 적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다. 주인공 또한 형을 그토록 믿었고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은 어렸을 적 형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분명 사람의 인생은 세월을 따라 변해가지만 그 변화의 흐름을 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어렸을 적 경험임에 틀림없다. 나 또한 지금의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다보면 그 모습들 속에 잊혀지지 않는 어릴 적 경험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만화는 환경을 떠나 피를 말한다. 혈통을 중시하는 사회, 그것은 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피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이 사회에 반기를 든다. 피의 역류. 모숨을 건 오기. 세상의 혈맥이 거꾸로 돌 때까지 끝내 버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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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신 1
마츠모리 타다시.코이케 카즈오 지음 / 세주문화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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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케이블 투니버스에서 방영하고 있는 '더 파이팅'이라는 재패니메이션에 흠뻑 빠져있다. 페더급 신인왕에서 챔피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주인공과 그 라이벌의 실력쌓기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시합 전 벌벌 떨고, 강한 상대를 만나 겁에 질리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기어코 이겨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나로 하여금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카운터 펀치는 타이밍과 (가슴을 두드리며)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은 그대로 우리네 인생살이의 가르침으로 바뀐다.

만화 <권신>은 여기에 정의에 대한 참뜻을 가르친다. 주인공은 항상 초인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급성장하지만 그 변화의 과정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심성이다. 강하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또는 살기 위해 누군가를 해쳐야 한다면 그런 강함과 그런 삶은 도대체 나의 생명을 지탱해 줄 수가 없다. 만화 속에선 실존인물의 이름이 거명되면서 흥미진진함을 더하는데 그 진위는 잘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참이든 거짓이든 중요한 것은 그가 강하기 때문에 정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지키는 과정 속에서 강함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간혹 착각을 일으키고 산다. 그 순서를 말이다. 착하기 때문에 부자가 되는 동화가 수도 없이 많지만 우리네 속담은 곳간에서 인심이 나는 법이라고 가르친다. 우린 이 순서를 잘 파악해야 한다. 강하고 싶어한 것이었는지, 정의를 지키고 싶어한 것이었는지, 부자가 되고 싶어한 것이었는지 마지막 목표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지만 우리는 그 앞의 순서를 실행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정의를 지키고 강하게 산다는 것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된다면 우리는 오늘도 땀을 흘려야 한다. 그것은 그냥 그대로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만화를 보고 오늘도 허공에 주먹을 한번 질러본다. 쉐도우 복싱. 내가 쓰러뜨려야 할 적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허공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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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찍은 사진 한 장 - 윤광준의 사진 이야기
윤광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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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은 디지털 카메라 시대에선 셔터를 아낌없이 누를 수 있다. 누구나가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그 즉시 촬영장면을 확인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워버릴 수 있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왠지 오락이 되버린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분명 이런 디카 속 사진들도 추억을 담아내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해서 추억을 담아낸 사진들이 꼭 잘 찍은 사진일리는 없다.

디카가 아닌 필름 카메라라고 해서, 필름 값이 아까워 한장 한장 신중하게 찍는다고 해서 추억이 더 값진 것이 되거나 하진 않을 것이며 또 더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오히려 디카의 경우 많이 찍어본 경험이 보다 나은 사진을 위한 전제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으로써 다독 다작 다상량을 이야기하듯 사진이라는 것도 많이 보고 많이 찍어보고 많이 생각해야 잘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책 읽지 않는 독서광, 음악 들지 않는 음악광, 영화보지 않는 영화광이 있던가, 사진광이 되려면 사진부터 보아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p25)

사진에 대한 관심 혹은 재능을 좀더 높은 단계로 상승시키고 싶다면 지루하고 고달픈 연습을 생략할 방법이 없다. (p73)

무엇이나 쉬운 길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례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이 책의 장점은 사진찍기가 지루한 과정을 필요로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지루해서는 안되며 보다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는데 있다. 어떤 카메라를 고를 것이며, 사진 찍는 대상을 어떻게 선택할 것이며 사진을 이루는 조건인 빛과 카메라의 구성요소인 렌즈, 그리고 카메라가 읽는 빛을 받아들이는 필름 등에 대해 전문적이기 보다는 알기 쉬운 용어로 쓰여져 일반 사람들이 참고하기에 적당하다.

나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당장 카메라 한 대를 사들고 이번 등산길에 사진을 잔뜩 찍어와야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언젠가 기필코 잘 찍은 사진 한 장을 품에 간직하리라는 희망을 갖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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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레시아스의 역사 - 서울대 주경철 교수의 역사 읽기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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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글이나 영상은 당대의 시대적 배경을 안고 있다. 이 책 또한 그러한 시대적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날카로운 메스를 끊임없이 갖다대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 또한 작가 자신이 책으로 엮으면서 고백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고백은 2부에서 보여지고 있는 문학작품의 분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먼저 1부에선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적 사고의 위험성과 다양성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데, 현재의 사건이 과거의 역사적 사건과 어떻게 맞닿아있고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모습 그대로 다시 나타나는 역사의 복제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모습이 현재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모두 단상에 그쳐있어 깊은 사색을 요하는 것은 아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2부에서 보여주고 있는 <신곡>의 지옥 모습이나 <멋진 신세계>속의 유토피아의 모습등을 분석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흥미롭다. 지옥이나 천국의 모습또한 그 시대적 상황과 연계되어져 있음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근저엔 육체의 고통과 쾌락이라는 극명한 대조가 있지만 그것을 이루는 체제는 정말 그 시대적 상황을 역추리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멋진 신세계 속의 신세계가 과연 천국이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곳에서 살고싶다는 희망을 표하고 있지만 저자는 이것이 단순한 쾌락일 뿐 자신을 잃어버린 허상임을 역설하고 있다. 즉 그에게 있어 천국이란 쾌락이 가져다 주는 행복이 아니라 진정한 자아찾기를 통한 행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대학생들이 인정하듯 이 시대의 행복은 어찌보면 쾌락의 도가니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진정한 이 시대의 유토피아를 그려보는 것, 바로 그 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출발을 시작해야 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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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 - 일상용품의 비밀스러운 삶
존 라이언.앨런 테인 더닝 지음, 고문영 옮김 / 그물코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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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생산 체제가 낳은 대량소비의 시대. 그리고 오직 끊임없는 생산만을 양산하는 발전지상주의.도대체 이것은 왜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이 독이 될 것인지를 알면서도 그렇게 허겁지겁 마셔대는 것일까? 지구에 나무가 사라지고 그곳에서 노래하는 새들이 없어졌을 때 정녕 인간은 이 지구위에서 살아남을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생명의 다양성을 상실하고 단지 인간에게 이로운 가축들을 공산품마냥 대량생산하는 것이 살아가는 맛을 잃게 하는 요소일까? 아마 과학의 발전은 나무없이도 산소를 생산해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과학이 인간이 직면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낙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양성이 중요시되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골치아픈 다양성보다는 단순명료한 것을 좋아할지도 모르고 그저 욕구를 충족시키고 쾌감을 얻는 것에 더한 기쁨을 느낄지도 모른다.

녹색시민이 되기 위해선 먼저 이러한 전제들을 이겨낼 수 있는 이념이 필요할 듯 싶다. 책에서 아무리 우리의 일상용품들이 어떠한 노동착취와 자연착취로 이루어졌다고 강조할 지라도 만약 사람들이 그것으로 인한 편리성과 감각적 쾌락을 용인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소귀에 경읽기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식생활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패스트푸드를 정크푸드라고 말하면서도, 성인병의 주요 요인으로 들썩이면서도 결코 그 소비량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관심도 없을 뿐더러 그것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달콤한 혀의 자극만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그 자극만을 사랑할 뿐이다.

우리는 이런 잘못된 자극을 먼저 지적하고 진정한 혀의 맛을 찾는데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녹색시민 구보 씨 또한 우리의 일상용품이 주는 편리성에 대해 먼저 분석을 하고 이것이 왜 우리에게 덫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이것의 폐해만으로는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어낼 수는 없을 듯 싶다. 그래서 녹색시민은 아직도 요원한 일일 수도 있다.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쾌락에 빠진 소돔과 고모라임을 먼저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구보씨는 사람들이 모두 녹색시민이 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마냥 사물을 설명하고 우리에게 행동을 요하지만 아직 우린 그런 마음의 준비마저 덜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녹색시민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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