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레시아스의 역사 - 서울대 주경철 교수의 역사 읽기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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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글이나 영상은 당대의 시대적 배경을 안고 있다. 이 책 또한 그러한 시대적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날카로운 메스를 끊임없이 갖다대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 또한 작가 자신이 책으로 엮으면서 고백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고백은 2부에서 보여지고 있는 문학작품의 분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먼저 1부에선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적 사고의 위험성과 다양성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데, 현재의 사건이 과거의 역사적 사건과 어떻게 맞닿아있고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모습 그대로 다시 나타나는 역사의 복제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모습이 현재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모두 단상에 그쳐있어 깊은 사색을 요하는 것은 아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2부에서 보여주고 있는 <신곡>의 지옥 모습이나 <멋진 신세계>속의 유토피아의 모습등을 분석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흥미롭다. 지옥이나 천국의 모습또한 그 시대적 상황과 연계되어져 있음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근저엔 육체의 고통과 쾌락이라는 극명한 대조가 있지만 그것을 이루는 체제는 정말 그 시대적 상황을 역추리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멋진 신세계 속의 신세계가 과연 천국이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곳에서 살고싶다는 희망을 표하고 있지만 저자는 이것이 단순한 쾌락일 뿐 자신을 잃어버린 허상임을 역설하고 있다. 즉 그에게 있어 천국이란 쾌락이 가져다 주는 행복이 아니라 진정한 자아찾기를 통한 행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대학생들이 인정하듯 이 시대의 행복은 어찌보면 쾌락의 도가니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진정한 이 시대의 유토피아를 그려보는 것, 바로 그 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출발을 시작해야 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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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 - 일상용품의 비밀스러운 삶
존 라이언.앨런 테인 더닝 지음, 고문영 옮김 / 그물코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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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생산 체제가 낳은 대량소비의 시대. 그리고 오직 끊임없는 생산만을 양산하는 발전지상주의.도대체 이것은 왜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이 독이 될 것인지를 알면서도 그렇게 허겁지겁 마셔대는 것일까? 지구에 나무가 사라지고 그곳에서 노래하는 새들이 없어졌을 때 정녕 인간은 이 지구위에서 살아남을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생명의 다양성을 상실하고 단지 인간에게 이로운 가축들을 공산품마냥 대량생산하는 것이 살아가는 맛을 잃게 하는 요소일까? 아마 과학의 발전은 나무없이도 산소를 생산해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과학이 인간이 직면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낙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양성이 중요시되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골치아픈 다양성보다는 단순명료한 것을 좋아할지도 모르고 그저 욕구를 충족시키고 쾌감을 얻는 것에 더한 기쁨을 느낄지도 모른다.

녹색시민이 되기 위해선 먼저 이러한 전제들을 이겨낼 수 있는 이념이 필요할 듯 싶다. 책에서 아무리 우리의 일상용품들이 어떠한 노동착취와 자연착취로 이루어졌다고 강조할 지라도 만약 사람들이 그것으로 인한 편리성과 감각적 쾌락을 용인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소귀에 경읽기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식생활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패스트푸드를 정크푸드라고 말하면서도, 성인병의 주요 요인으로 들썩이면서도 결코 그 소비량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관심도 없을 뿐더러 그것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달콤한 혀의 자극만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그 자극만을 사랑할 뿐이다.

우리는 이런 잘못된 자극을 먼저 지적하고 진정한 혀의 맛을 찾는데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녹색시민 구보 씨 또한 우리의 일상용품이 주는 편리성에 대해 먼저 분석을 하고 이것이 왜 우리에게 덫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이것의 폐해만으로는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어낼 수는 없을 듯 싶다. 그래서 녹색시민은 아직도 요원한 일일 수도 있다.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쾌락에 빠진 소돔과 고모라임을 먼저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구보씨는 사람들이 모두 녹색시민이 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마냥 사물을 설명하고 우리에게 행동을 요하지만 아직 우린 그런 마음의 준비마저 덜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녹색시민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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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쫓는 자 1
이케가미 료이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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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을 굶는다고 하자. 누구나가 다 배고픔에 괴로움을 느낄까? 자신의 건강을 위해 단식을 하는 사람에겐 이 사흘간의 기간이 고통보단 행복으로의 초대일 것이다. 어떤 행위의 고통과 행복을 가르는 것은 그것의 목적성의 유무에 달려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스포츠 스타로서 잘 나가다 정체불명의 집단에 의해 사랑도 명예도 모두 잃어버리고 겨우 목숨만을 부지한채 브라질로 도망을 간다. 그리고 오직 한가지 그 집단에 대한 복수를 목표로 삶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다소 과장되고 폭력적이며 음란하기까지한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가 매력적인 것은 그것이 마초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리라 본다. 물론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남자에 대한 사랑때문에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여자들의 모습이 바보같이 느껴질테지만, 분명 종속적 존재로 비쳐지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만화가 환상을 품는다고 생각해볼 때 이것은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수퍼맨을 꿈꾸지만 망토를 두를 수 없는 일반 사람들에게 있어 이 만화는 상상적 빨간 망토인 것이다. 자신이 이루고자 한 목적을 향해 아무런 두려움 없이 불도저처럼 밀고나가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진짜 사나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속엔 헤라클레스가 되고픈 욕망이 꿈틀대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폭력과 선정성을 필터로 걸러내고 남녀평등적 사고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이 만화는 분명 본능적 쾌감을 만족시켜주는 지극한 오락임을 자랑으로 삼다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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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아프리카 1
박희정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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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난 만화를 글 중심으로 본다. 그냥 쓱쓱 그어버린 듯한 그림일지라도 그 속에 잘 짜여진 이야기가 있다면 만족해버린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근사하게 한마디 해 줄 수 있는 대사라도 발견할라치면 그 한줄 때문에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그런데 이런 나의 만화읽는 습관을 호텔 아프리카를 통해 통째로 바꿀 수밖에 없는 경험을 하게됐다. 그림 하나하나를 쳐다보는라 만화읽는 속도가 뚝 떨어져버린 것이다. 만화란 글과 그림이 함께 공존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맑은 눈, 선한 눈, 슬픔에 가득 찬 눈, 사악한 눈, 지혜로 반짝이는 눈, 개구쟁이 눈...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정도의 아름다운 캐릭터들이 어느 순간 머리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성격과 태도를 드러내기도 하고,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공간들. 때론 그림이 글 이상의 많은 것들을 한순간에 전하기도 하는 것이다.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감추고, 진실이 가져올 변화를 감내할 수 없을 것 같아 숨기는 것들로 인해 우린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할 것인지, 주인공들의 깊은 눈을 통해 보여주는 호텔 아프리카는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기댈 수 있는 사랑의 공간으로 자리잡는다. 자신의 모습을 진실되게 소박하게 드러내며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호텔 아프리카는 그래서 우리의 집이 됐으면 한다. 아니 우리가 만들어가는 집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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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뢰전 가이 1
후쿠모토 노부유키 지음, 서현영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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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은 첫장과 끝장에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뿔뿔이 흩어져서... 고립하라!고립하라는 뜻은 고립되어 살다라는 뜻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번역상의 까다로운 문제로 보이는데 아마도 가장 가까운 뜻은 자수성가 정도가 아닐지 싶다. 노부유키의 만화가 그렇듯이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추악함과 세상의 벽에 부딪혀 한없이 나약함을 드러내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 그는 세상은 혼자 살아나가야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삶. 최근 우리는 더불어 숲을 이루는 화해와 협동을 강조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는 가슴이 따뜻해져옴을 느낀다. 하지만 숲은 나무들의 어깨동무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무들은 스스로 자신의 위치에 서 있음으로 해서 숲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이렇게 스스로 서 있는 나무가 되기를 원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 그러한 삶들이 모였을 때 숲은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숦을 이루기 위한 어떤 희생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노부유키는 인간이 나약하고 누구에게 기대고 싶은 정신 때문에 협동, 희생, 공공의 선을 말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느끼는 것인지만 우리는 혼자임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고립해야 한다.

ps 그러나 이런 고립도 사랑앞에선 힘없이 무너진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언제나 서로에게 기댔을 때만이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실은 사랑도 독립된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고립을 위한 무대로서 이 작품에선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녀간의 사랑도 없다. 이것은 고립을 위한 최소의 전제조건인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남녀가 모두 존재하는 세상은 고립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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