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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변호사는 괜찮지만 ...... 그렇게 썩 끌리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죄 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준다거나 하는 일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변호사가 되면 그럴 수만은 없게 되거든. 일단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몰려다니면서 골프를 치거나, 브리지를 해야만 해. 좋은 차를 사거나, 마티니를 마시면서 명사인 척하는 그런 짓들을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다 보면, 정말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고 싶어서 그런 일을 한 건지, 아니면 괸장한 변호사가 되겠다고 그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게 된다는 거지. 말하자면, 재판이 끝나고 법정에서 나올 때 신문기자니 뭐니 하는 사람들한테 잔뜩 둘러싸여 환호를 받는 삼류 영화의 주인공처럼 되는 거 말이야. 그렇게 되면 자기가 엉터리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겠니? 그게 문제라는 거지.(P228)
소설은 콜필드라는 학생이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몇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학교친구들과 선생님, 가족은 물론 모텔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의 접촉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는 이 책은 마치 일기장을 훔쳐보는 즐거움과 함께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에 미소를 그칠줄 모르게 만든다.
하지만 그 미소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조롱에서 비롯된 것이라 마냥 웃고 넘어가기에는 찝찝한 구석이 남아있다. 콜필드의 조롱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식의 옷이라는 구속복을 입고 자유를 잃어버린채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탐독했다는 존 레논의 암살범 마크 챔프먼은 아마도 존 레논이 위의 변호사처럼 자신이 엉터리인줄 모르면서 세상을 구원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를터이다.
거울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을 한번 보자. 모든 옷을 벗어버린채 발가벗은 모습으로 나를 들여다보자. 거기엔 정말 내가 있는가, 세상이 나에게 준 가식의 옷을 잔뜩 껴 입은 내 모습만이 보이지 않는가? 그래도 내가 대학을 나왔는데...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남자가 말이야... 벗어도 벗어도 끝이 없는 가식의 옷들. 우리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는 어린아이인지도 모른다. 콜필드가 지켜주고 싶어한 호밀밭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