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그림 찾기 1 - 1998년 제29회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윤기 외 / 조선일보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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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나 혼자 살아갈 수 없는 법. 관계라는 그물망 속에서 허우적 대는 모습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로 표현되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톱니바퀴속의 한 이빨이 되어 다른 이빨들과 함께 다른 톱니바퀴와 엇물려 있을 때만이 자신의 자리에 제대로 서 있음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닐 것이다. 톱니바퀴가 제대로 돌고 있을 때엔 자신이 그 속에 속해 있음을 알지 못한다. 톱니바퀴중 한 이빨이 빠져 삐걱거릴 때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있었던 그 이빨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된다.

함정임의 <내 마음의 석양>과 전경린의 <밤의 나선형 계단>에서는 남편이 죽거나 직장을 잃음으로써 발생하는 생활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잘 맞물려 돌아가던 톱니바퀴가 덜덜 거릴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했던가? 나의 마음속의 한 공간을 차지했던 것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인가가 대신 채워지겠지만 그 변화는 결코 쉽게 적응되어지지는 않으리라.

어렸을 적 몇년을 키웠던 개가 사라지던 날 혼란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자신을 지탱해주던 그 무엇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경험이 꼭 혼란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 빔으로 인하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나를 찾아갈 수도 있을테니까.

각기 다른 소설은 이런 혼란과 자아찾기를 보여주고 있다.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이들의 방황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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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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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첫 페이지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싶었다고.(P5)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실은 안정된 삶이 아니었던가. 경제적 어려움을 없애줄 수 있는 직장과 심리적 안정을 꾀할 수 있는 결혼이라는 제도,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일상이라는 것, 가끔은 탈출하고 싶긴 하지만 결국엔 그곳으로 돌아갈 것을 알기에 즐기는 일탈들. 그러기에 주인공의 독백은 참으로 놀라웠다. 순간 나의 머리를 강타하고 지나가는 충격이 거의 메가톤급이다. 위태위태한 삶을 즐기겠다고...

하지만 그가 말하는 위태위태한 삶이란 그다지 놀랄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안다. 그는 결국 밖으로 드러나는 위태로운 삶을 즐긴것일 뿐 진정 그 자신의 마음까지도 그런 위태로움을 바란 것이 아니었음을 듣게 되니까.

나는 하늘을 가릴 지붕없이는 살수 있지만 내면과 외면 사이의 평정을 확립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것을 알았다.(P87)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맨처음 고백이 그냥 헛말이라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삶 그자체가 우연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기에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은 우연이라는 사건앞에서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은 내가 그런 위태로운 삶을 원한 것이 아니라 그런 삶을 살수밖에 없음을 고백한 것은 아닐련지 모르겠다. 주인공 자신의 삶 속에서 아버지 할아버지를 만나고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만나는 과정이 모두 우연처럼 다가오고 그 자신의 삶 전체가 이런 사건 속에서 이젠 그런 우연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과율은 이제 더 이상 우주를 지배하는 숨은 재판관이 아니었다.(P93)
어떤 것도 절대로 당연시해서는 안돼. 특히 나같은 사람을 상대하고 있을 때는.(P163)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 한 켠엔 나도 조금은 위태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숨어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그 조그만 마음이 실은 나를 살아숨쉬게 만드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 것은 아마도 주인공에게 감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 우연에 대한 매혹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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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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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들어서면 하는 일이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해본다. 주로 텔레비젼을 보거나 좋아하는 비디오를 보거나 가끔 책을 읽는 것 외에는 그다지 할 일이 없다. 물론 책을 읽거나 그 외 집안 일을 할 때는 라디오를 켜 놓고 음악을 듣기도 한다.

대부분의 이런 활동은 매스컴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나는 단지 수동적 입장에서 이것을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한다. 내가 수동적 입장에 놓여있다는 것이 때론 쾌락을 주는 원천이 된다. 그런데 그러한 쾌락이라는 것이 진정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 것이라면...

책은 우리가 쉽게 접하고 있는 대중문화의 구조에 대해 알기쉽게 까발려 놓고 있다. 텔레비젼의 프로그램은 철저한 계산하에 만즐어진 것이며 스타라는 것이 왜 생겼으며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또 광고라는 것과 광고주,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와의 관계등 피상적으로 그 결과품(우리가 문화로 즐기는 상품들)만을 누려왔던 수용자들에게 그것의 구조를 생각하게끔 만든다.

책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문제제기들. 문제속에 이미 답이 있다고는 하나 그 해결방안이 시원하게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다소 아쉽다. 원론적인 해결법인 대중문화 교육이라는 제안이 너무나 상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도... 하지만 모든 답안이 그 책속에 있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무리였으리라.

다만 그 구조를 어는 정도 밝혀주고 여러가지 문제점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수용자에 머물지 않고 생각하며 받아들이는 능동적 수용자가 되도록 깨우쳐준다는 점에서 꽤 괜찮은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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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으로 가는 주역탐구
금오 / 신농백초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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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주역이라 하면 점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주역속에는 점을 보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주역이 갖는 의미는단순한 점괘의 소개가 아니라 동양인이 가지고 있는 우주관, 생명관을 드러내는 데 있다. 이러한 주역은 <세심경>이라고도 불린다. 마음을 씻는 경전이라...

저자 김홍경은 신심불이라는 전제하에 이러한 마음의 씻음이 바로 몸을 건강하게 하는 비결임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건강으로가는 주역이 된 것이고.

주역의 주된 사상은 책 제목의 역(易)이 말해주고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란 없는 것이며, 이는 절대주의로부터의 환상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인삼은 누구에게난 만병통치약이 되는 것은 아니며 웃음만이 명보약일 수는 없음을 말한다.

세상의 맨처음엔 극이란 없었으며 (무극), 그것이 음양으로 갈라지고 다시 이것이 사상이 되고, 이것은 다시 팔괘로... 즉 세상의 이치는 이 음양의 관계로부터 시작되며 이 관계가 조화를 이루었을 때에서야 건강함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음적으로 치우쳐 있으면 양으로 이것을 보완하고 양에 치우쳐 있으면 음으로 보완하는 것. 그래서 중용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건강이다.

이러한 음양은 마음의 씀씀이, 감정의 상태에까지 적용되며 인간의 칠정을 잘 관찰하고 그 뜸과 가라앉음을 조절할 수 있을때 중용의 상태는 가능한 것이 된다.

변화의 상태를 직시하고 그것이 극한에 치우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 그것은 항상 깨어있는 관심(觀心)이 있을 때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세심경은 관심경이라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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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논어 1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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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눈깜짝할 사이에 변해버리는 첨단의 시대, 컴퓨터, 인터넷등 디지털이 지배하고 있는 시대에 고리타분한 공자라니. 그것도 TV속에서 살아난다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공자를 다시 이 세상속으로 불러낸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살아난 공자는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논어>라는 책 제목과 상관없이 내용은 공자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시대 전반을 알고 있어야 하듯이 한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상가의 전반을 알아두는 것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책을 읽어나가면서 좀더 확신을 갖게된다. 그 사람의 일생과 따로 떨어진 그리고 그 시대적 상황과 결별된 생각이라는 것은 애시당초 가능한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인지 공자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지금의 언어로써 이해하는 논어가 아니라 공자가 직접 말하고 듣고 의심을 품고 사유하는 그 시대의 언어로 논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쾌쾌한 먼지속에서 향긋한 꽃냄새를 맡는 기분이다.

책은 전반부에 공자의 생애를 다루고 후반부에서 논어의 한 장인 학이편을 다루고 있다. 그 많은 논어중 비록 한 장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성인의 생애와 그의 말씀이 일치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는 점에서 책의 장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학이편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꽤 많지만 그것의 주된 생각은 바로 실천의 중요성이라고 여겨진다. 논어를 읽기전과 읽고 나서의 모습이 같다면 어찌 논어를 읽었다고 할 수 있겠는냐는 말에서부터 공부(學)라는 것은 실천을 행한 이후에 그 여력이 남았을 때 행해야 하는 것이라는 등. 학이편의 대부분은 바로 행함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중심생각은 자신의 일생전체를 되돌아봤을 때 어김없이 지켜져왔던 절대적 덕목이었으리라.

말이 난무하고 글이 범람하는 시대, 매체가 폭발함에 따라 늘어난 다양한 정보들은 그야말로 홍수 그 이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들, 글, 말들이 그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건, 그것을 찾던 사람들의 실천이 행해졌을 때만이 아닐련지. 입만 또는 손만 살아 숨쉬는 이 시대에 뜨거운 일침을 가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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