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상상력 풍부한 애니메이션. 나는 어떤 동물로 변하면 좋을까? 기분좋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2. 오웬은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가족을 위해 장인어른의 회사에 다닌다. 그러던중 삼촌이 남긴 동물모양의 크래커가 담긴 요술상자를 얻게된다. 이 크래커를 먹으면 그 모양의 동물로 변신한다. 그리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신의 형태로 된 크래커가 하나 생긴다. 오웬은 동물변신이라는 신비한 능력으로 서커스를 일으켜세운다. 하지만 이 비밀을 눈치챈 호레이쇼가 애니멀 크래커를 노리면서 좌충우돌 사건이 벌어진다. 


3. 동물로의 변신이 유쾌하다. 서커스 장면은 짜릿하다. 동물의 특성을 살려 서커스의 이야기를 꾸려가는 것도 재미있다. 어른도 아이도 동심에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총알맨을 비롯한 서커스단원들은 물론 악당 캐릭터들도 개성이 철철 넘친다. 


4. 오웬은 동물로 변신해 있는 와중에 자신의 모습을 띤 크래커를 잃어버린다. 사람으로 돌아갈 순 없는 것일까. 이때 호레이쇼가 크래커를 가지고 등장한다. 그리고 사람으로 돌아갈 것인지, 서커스를 넘길 것인지 선택을 강요한다. 오웬은 가족들이 서커스를 사랑하는 것을 안다. 가족들을 위한다면 자신이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서커스를 지키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오웬은 서커스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람이 될 수 없는 오웬이라도 가족은 그를 사랑해줄까. 겉모습은 아무래도 좋다. 사랑만 있다면. 

비록 판타지일지라도 아이들과 이런 판타지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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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6일 25도~33도 태풍전야 폭염 밤부터 비바람


아무래도 올해는 집에서 키운 과일을 먹기는 글러보인다. 최장 기간의 장마가 큰 타격을 준데다 이후 폭염에 태풍이라니..... 물론 이런 환경적인 영향과 함께 농약을 치지않고 기르겠다는 야심도 한몫했지만 말이다.



사과는 벌레들이 가한 흔적으로 점박이가 됐다. 점점 익어가고는 있지만 제대로 따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포도는 말벌을 비롯해 개미 등 벌레와 곤충들 좋은 일만 시켰다. 열과로 인해 벌레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남은 것 하나없이 싹 먹어치웠다. 약을 한 번 쳐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냥 두었다.



대추는 용케 잘 버티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열매가 전부 다 땅에 떨어져버렸다. 상한 것들이야 떨어지는게 당연하지만, 성한 것들도 다 낙과가 되니 허탈하다. 대추가 심겨진 곳은 지난번 장마로 땅이 쓸려내려간 곳이라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려나. 



올해 과일은 다 먹었구나 포기하고 있는데, 어라? 생각지도 못한 미니사과 알프스오토메가 열려있는 것이 보인다. 과연 이것들은 익어가는 기간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과일을 심고 관리하다보니 계속 유혹이 생긴다. 농약에 대한 유혹! 생태계의 균형을 통해 어느 정도는 수확할 수 있는 양이 생겨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과연 그게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생태계 균형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2~3년 정도 더 두고 보아야 할련지, 아니면 친환경약재라도 쳐서 관리를 할 것인지 고민이다. 대부분 식물추출물들로 이루어져 있는 친환경약재는 현재 유기농인증을 받는 농가에서도 사용하는 것들인지라 인체에는 해가 없다. 하지만 이런 친환경약재는 외부투입을 최소화한다는 원칙에도 맞지않을뿐더러, 약재를 구입하는 비용도 만만치않다. 일단은 내년까지는 두고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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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 23도~35도 폭염



진주대평무 씨를 받기위해 꽃대를 잘라 말려둔 것을 얻었다. 진주대평무는 토종무로 다른 무에 비해 직립성이 강하고 뿌리가 짧은 원통형이다. 조직이 치밀하고, 맛은 달면서도 쌉싸름해서 김장을 담가 먹기에도 좋다. 



씨를 따로 받아두지않고 바로 씨방을 부서가며 땅에 뿌렸다. 줄뿌림으로 심었는데 한군데에 대여섯개씩 씨가 뭉쳐있는 것도 그냥 놔두었다. 나중에 솎으면서 알타리무처럼 작은 상태로 먹기 위해서다.  



김장용 무는 보통 처서 즈음에 파종한다. 중부 지방에선 처서보다 조금 일찍 심기도 하는데, 그렇게 보면 조금 늦은 감도 있다. 진주대평무 씨앗을 뿌리고 나서 물은 따로 주지않았다. 태풍 예보가 있어서 놔 둔 것이다. 


무는 스무개 쯤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줄뿌림으로 세 줄 정도만 씨앗을 뿌렸다. 남은 것은 한달 후 쯤 다시 뿌릴 생각이다. 김장 시기가 한참 지나서 무를 뿌리는 이유가 있다. 바로 녹비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최대한 외부투입없이, 특히나 화학비료는 쓰지않기로 작정했기에, 녹비작물을 잘 활용해야 한다. 가을에 무를 심는 것은 무가 자라다 겨울에 성장을 멈추고 죽어서 뿌리가 썩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무가 자라다 썩으면 먼저 땅 속에 무가 들어가 물리성을 개선해준다. 또 무가 인을 잘 빨아들이는데 썩으면서 인을 내뱉어주어 봄에 심을 작물에 흡수될 수 있는 것이다. 


가을에 텃밭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가능한 공간엔 모두 무를 심을 생각이다. 올해는 무로 내년 작물에 인을 공급하고, 내년엔 후작으로 콩 종류를 심어서 질소를 공급하고.... 녹비를 활용한 텃밭농사가 잘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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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규꽃이 한창이다. 한 줄기에 두세송이씩 피기도 한다. 금화규를 10주 심었는데, 날마다 10송이 이상씩 핀다. 금화규꽃은 아침 일찍 피었다가 오후 늦게면 진다. 진 꽃은 다시 피지 않는다. 즉 겨우 한나절 피는 것이다. 그래서 금화규꽃을 이용하려면 아침 일찍 따야한다. 



금화규꽃을 말려서 차로 이용해보려 했지만, 건조기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햇볕에도 말려보고 응달에도 말려봤지만, 하루가 지나면 금세 꽃이 오므라들면서 말리는게 힘들다. 

꽃을 그대로 두면 씨방이 생겨 씨를 맺는다. 이렇게 씨방과 씨를 이용해도 되지만 꽃이 많이 피다보니 적절하게 나누어 이용하면 좋을성싶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금화규꽃밥. 밥을 할 때 금화규꽃을 두세송이 함께 넣는 것이다. 



그러면 밥 위에 노랗게 비단처럼 스며드는게 보인다. 



주걱으로 저어서 공기에 퍼 담으면 금화규꽃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된다. 기분탓인지는 모르지만 밥에 윤기가 더 흘러보인다. 맛은 크게 차이가 없는듯하다. 



라면에도 금화규꽃을 넣어봤다. 라면물을 끓일 때 금화규꽃을 넣는 것이다. 물이 끓기 시작할 때쯤이면 꽃에서 우러난 물이 노랗게 보인다. 



라면을 넣고 끓이면 꽃이 흐물흐물해져서 면과 섞인다. 식물성콜라겐이 많다고 해서인지 면이 쫄깃쫄깃한듯한 느낌이다. 라면국물의 맛은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이번에는 금화규꽃으로 담금주를 만들어보았다. 금화규꽃 일부는 설탕에 재었다. 반나절만 지나도 물이 생긴다. 



여기에 금화규꽃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뒤 병에 차곡차곡 쌓는다. 그리고 소주를 붓는다. 



과연 금화규꽃주는 어떤 맛일까. 콜라겐의 끈적함이 묻어나는 술이란 어떨지 기대가 된다. 금화규꽃주의 맛 평가는 내년 이맘때로 미루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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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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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천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40명이나 되는 인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2020년, 올 여름에도 용인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가 사람의 잘못으로 발생한 사건이다. 특히 12년전 사고로 배운 것이 없이 똑같은 사고로 똑같이 사람을 잃었다. 


화재로 인해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게 된 큰 원인중의 하나는 소위 샌드위치 패널이라는 단열재, 가연성의 우레탄 폼을 이용한 마감 자재다. 불에 잘 타는데다 유독성 연기를 내뿜어 치명적이다. 그런데 왜 물류창고에 이런 위험한(?) 단열재, 마감재를 쓰는 것일까. 비용때문이다. 물류창고를 짓는 비용을 낮추기 위한 선택인 것이다. 하지만 이 선택이 사람의 목숨을 위협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2008년 이천 화재가 분명 이것을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목숨보다는 비용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선택을 한 사람들이 악당이어서 비용을 중시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분명 이들도 누군가에게는 따듯한, 인정넘치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약탈적' 자본주의에 물들어져/길들어져 있기에 아무런 고뇌없이 비용만을 고려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생명보다 효율, 또는 돈이라는 것을 더 중시하게 됐을까. 


자신이 속해있는 일상 속에 묻혀살고 있을 때는 그 일상의 문제점을 잘 파악할 수가 없다. 일상은 당연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럴 땐 외부의 시선으로, 또는 외부를 기준점으로 삼아 우리의 일상을 비교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김누리 교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는 독일을 준거로 삼아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바라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당연한 일상이 왜 우리의 불행이 되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 알게된다.


대한민국은 이번 코로나19를 대처하는 모습에서 보듯이 세계에 내놓을만한 자랑스러운 것들을 많이 갖고 있다. 더군다나 5천만 이상의 인구를 갖춘 나라에서 3만 달러 이상의 GDP를 올리는 7개 국가 중의 하나이다. 또한 촛불혁명이 보여주듯 정치적 민주주의는 세계로부터 탄사를 받을만큼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일상의 민주주의로 스며들지 못했다. 즉 정치적 현장에서는 민주주의를 달성했지만, 일상에서는 권위주의가 만연해있는 것이다. 게다가 경제, 문화 등에서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요원하다. 소위 꼰대라고 말하는 권위주의적 행태가 만연해 있다. 또한 경쟁을 당연시하고, 오히려 찬양할 정도다. 경쟁 없이는 모든게 도태될거라는 엄포와, 경쟁을 이겨냈을 때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는 승자독식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인다. 이런 가치관이 우리를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모른채 말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마음가짐을 체화했을까. 그 원인을 쫓아가보면 분단이라는 조건이 상식을 벗어난 가치관을 수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행을 당연시하지 않고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을 전쟁이 없는 평화적 상태, 나아가서는 통일에 두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은 아도르노가 말한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라는 것을 잊지않은 강한 자아가 되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김누리 교수의 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읽게되면 우리의 고통이 우리의 불행이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땅에서의 행복을 꿈꾸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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