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일 맑음


올해 묘목을 새로 심은 체리나무 8그루 중 2그루는 여태 잎을 내지 못하고 있다. 3그루는 가지 상단까지 잎을 내놓고 나머지 3그루는 밑둥에서만 잎을 내놓았다. 밑둥만 내놓은 3그루는 불안하긴 하지만 어쨌든 두고 볼만 하다. 하지만 2그루는 아무래도 죽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뿌리를 캐보았다. 썩거나 말라비틀어지지는 않아보인다. 그럼 다시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찰진 흙이라 뿌리가 숨을 잘 못쉬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부숙된 톱밥을 섞어서 다시 심었다. 

늦더라도 살아만 준다면 고마운 일이다. 나날이 성장하고 변해가는 모습 그 자체가 바로 생명력이요, 삶의 이유다. 부디 잠에서 깨어나 잎을 내놓길 바라본다. 



계속된 가시오가피 파종 실패로 가시오가피 씨앗을 물에 담가두었다. 이틀이 지나고 나니 곰팡이가 스는 것이 나온다. 물에 계속 두는 것도 정답은 아닌가 보다. 물을 먹고 축축해진 씨앗을 다시 심어보았다. 물에서 싹을 틔운 후 심어볼 생각이었지만 곰팡이로 인해 싹을 보지는 못하고 심게되었다.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나무의 씨앗을 받아 싹을 틔워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자연 속에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신비로울 따름이다. 물론 확률상 쉽지 않기에 나무 한 그루에서 그렇게도 많은 씨앗을 매달았을 것이지만 말이다. 


생명을 키우는 일은 우주를 키우는 일임을 깨닫는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가시오가피도 인삼처럼 개갑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3개월 정도 모래나 상토에 묻어두고 하루에 두세번 물을 주어서 마르지 않도록 관리해 껍질이 벗겨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후 본땅에 옮겨심어 자라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복잡한 과정 없이 가을에 열매를 채취한 후 바로 땅에 묻어두어도 이듬해 봄 싹을 틔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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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일 맑음


여기저기 감자꽃이 보이기 시작한다. 감자꽃 하면 생각나는건 권태응 시인의 동시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꽃 색깔따라 감자색도 다르다고 노래한다. 대체적으로 그렇지만 100%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동심파괴인가? 과학적 사실이 궁금하다. 

그건 그렇고 감자꽃도 꽤 예쁘다. 이렇게 감자꽃이 피면 어떤 농가는 감자꽃을 잘라버린다. 꽃에 가는 양분을 뿌리쪽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다. 즉 감자를 더 굵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그냥 놔두는 농가들도 많다. 꽃을 딴 것과 안 딴 것의 차이가 유의미한지 실증사례가 있다면 좋겠다. 



감자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조만간 포실포실한 찐감자 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감자꽃을 따서 한 손에 모아보니 꽃병에 꽂아둬도 될만큼 예쁘다. 빈 병에 감자꽃을 꽂아놓고 보니 예쁜 꽃병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하나 덜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쌓아가는 욕심만 든다. ^^; 그래도 계절이 주는 아름다움을 생활공간 속으로 가져와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감자꽃이 주는 작은 행복. 감자꽃 자리에 절기따라 피는 꽃들을 하나하나 놓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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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일 13도~25도 맑음


아침에 밭에 물을 주다 깜짝 놀랐다. 체리나무 옆에 있어야 할 백합이 안 보이는 것이다. 잠이 덜깼나?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안 보인다. 가만, 이곳이 아니었던가. 순간 백합의 위치마저 의심했다. 하지만 역시 안보였다. 



백합이 심겨졌던 자리로 가보니 백합줄기가 모두 쓰러져 있다. 그리고 뿌리 부분은 파헤쳐져 있다. 도대체 뭐야, 이건?



보아하니 누군가 백합의 뿌리, 구근을 먹어치운 것이다. 누구? 멧돼지? 고라니? 꿩? 누가 범인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멧돼지나 고라니가 지나갔다면 개들이 짖었을텐데... 한밤중에 왔다면 짖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수도 있고. 최근엔 꿩들이 많이 보이기도 했고. 



뿌리를 잃어버린 백합들을 보니 속이 쓰렸다. 아까웠다. 체리나무 주위에 길드를 형성하기 위해 심은 것인데 말이다. 백합의 구근이 땅속벌레의 침입을 억제해 줄 수 있다고 해서 심은 것인데 땅 위 동물에게 침입을 받은 것이다. 길드는 이렇게 땅 위 동물의 침입을 저지할 수 있는 식물도 함께 심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작동시키도록 디자인하는 작업이다. 아직 시험단계고 초창기라 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서 이런 변(?)을 당했다. 백합이 아까운 것은 백합에 투자한 시간이 아까운 것이다. 지난해부터 키워온 것인데.... 그 시간이 얼마인데...


자꾸만 아까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본다. 멧돼지든 고라지든 꿩이든 누가 먹었든 배부를 정도는 아니더라도 잘 먹었을거라고. 인간이 자신들의 거주, 먹이 환경을 침입해 자기 땅이라고 우기지만 실은 자신들의 것이었음을 알리는 일이라고. 이미 먹어버린 것을 어떡하겠는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미련을 가져봐야 속만 아플 뿐이다. 


자, 그럼. 대책을 세워야 한다. 뭐, 계속 나눠먹을 생각이면 그냥 백합을 실컫 뿌려두고 먹이주듯 주면 될테지만 이건 자포자기의 대책이고. 백합을 심고 테두리를 망으로 쳐서 침입을 막아야 할지. 아니면 백합 심는 것을 포기해야 할지, 백합과 함께 멧돼지나 고라니, 또는 꿩이 싫어할만한 무엇인가를 함께 심어야 할지 고민이다. 묘책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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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 미래 - 헬레나와의 대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음, 최요한 옮김 / 남해의봄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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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오래된 미래>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과거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볼 수 있을 때 쓰는 말일텐데, 이것이 복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속에서 과거의 문화나 정신들을 새롭게 살려내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작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이 <오래된 미래>라는 말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1992년에 발간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마을 라다크에 방언을 연구하기 위해 방문하였다가, 평화롭고 지혜롭던 그들의 삶이 인도 정부의 개방정책으로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후 헬레나는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로서의 라다크 사회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와 대조되는 것은 세계화를 외치며 몸집을 키워가는 신자본주의로 사회가 분열되고 환경이 파괴되는 부작용에 신음하고 있다. 


헬레나는 라다크 복원운동을 통해 지금까지 계속해서 행복의 경제학을 전파하고, 로컬 경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책 <로컬의 미래>는 그의 주장을 대화 형식으로 싣고 있다. 그는 환경과 사회 파괴는 경제 규모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세계화가 아닌 지역화를 통해서만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지역화란


경제를 인간적인 규모로 되돌리자는 것


이다. 대도시 중심이 아닌 마을 단위 생활 형태가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화든 대도시든 중요한 것은 <규모>다. '규모의 경제'는 단일화를 가져오고, 힘의 집중을 불러온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대규모 단일작물 농장과 소규모 다품종 유기농장의 생산성은 단위면적당으로 따지면 소규모 농장이 더 높다. 하지만 대규모 단일농장은 기계를 가지고 소수의 인원으로 움직일 수 있기에 1인당 생산량으로 따지면 훨씬 더 높게 된다. 즉 소수의 사람이 많은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다. 실제 유럽의 농장 3퍼센트가 유럽연합 전체농지의 50퍼센트 이상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소규모 다품종은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기에 그만큼의 일자리 증가를 의미한다. 단위면적당 생산성이 높고 일자리도 증가하고, 여기에 더해 지역 중심의 유통이 이루어진다면 한쪽에선 배고파 죽는 곳이 생기고, 한쪽에선 남는 음식물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은은 최소한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 정치체계가 무엇이든 말이다. 


대규모의 농사로 지어진 농산물은 어떻게든 팔려나가야 한다. 필요(수요)에 의한 것이 아니기에 새로운 욕구를 불러일으켜야 하고, 이것이 실패할 땐 버려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필요를 알아채고 그것에 맞추어 생산할 수 있는 소규모의 경제 활동이 인간적인 규모의 경제이지 않을까. 화석연료를 펑펑 써가며 세상 반대편까지 농산물이 날아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지역에서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들은 지역과 지역간의 나눔이 필요할 터. 그런 부분에서 지역화의 세계화는 필요하다. 대도시로 대도시로 몰려가는 사람들, 그로인해 치우쳐진 힘의 균형, 군중 속의 고독과 환경 파괴는 대규모가 가져다 준 상처다. 이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 <로컬의 미래>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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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일 12도~25도 맑은 후 흐림


건강에 관한 속설 중 하나로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가 있다. 누워서 꼼짝않는 것만큼 건강에 나쁜 건 없다는 뜻이다. 

나무도 눕고 싶은지 모르겠다. 강한 바람에 기울어져 눕든지, 너무 많은 열매를 매달아 눕든지 말이다. 세파에, 삶의 무게에 짓눌려 눕고 싶은 사람의 마음처럼.



올해는 블루베리 열매를 솎지 않았다. 열린대로 그냥 놔두었다. 지난해보다 키도 커진데다 열매까지 많이 매달아서인지 블루베리 몇 그루는 가지가 누워버렸다. 산의 가장자리인데다 사면이어서 바람이 간혹 세차게 부는데, 그 바람에 못이겨 누운 것들도 있다. 이렇게 누워 있으면 아무래도 통풍이 안되어 습해져 병에 취약해지고, 흙의 균이나 벌레의 침입이 쉬워질 터. 나무도 일어서야 한다. 



지난해 가지를 쳤던 뽕나무의 마른 가지를 깨끗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이 가지들을 블루베리를 세우는 지지대로 삼았다. 혹여 이 가지의 곰팡이나 나쁜 균이 있어서 블루베리에 안좋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있었지만, 기우일 것이라 생각하고 재활용을 결심했다. 



뽕나무 가지를 지지대로 세우고 쓰러진 블루베리 가지를 끈으로 묶었다. 힘은 조금 약하지만 그래도 땅에 바싹 누워있던 것을 어느 정도 세우는 역할은 톡톡히 하고 있다. 나중에 비바람이 몰아칠 때도 잘 견딜수 있을지 지켜보아야 겠다. 쓰러진 가지를 정리하다보니 주위에 풀들이 어느새 무릎깨까지 자라 있었다. 블루베리 수확 전에 한 번 정도 더 풀정리를 해주어야 할 듯싶다. 



직파에 실패한 도라지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다. 스티로폼에 상토를 붓고 도라지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물을 듬뿍 준 뒤 그 위를 비닐로 덮었다. 싹이 날 때까지 비닐을 걷지 않을 계획이다. 풀씨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점점 뜨거워지는 한낮 온도다. 더워지기 전에 조금 일찍 이 방법을 시도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올해 시험해보고 괜찮은 결과가 나오면 내년엔 일찍 이렇게 도라지싹을 틔워보아야 겠다. 

하지만 이렇게 직파를 하지 않고 옮겨 심으면 도라지에 잔뿌리가 많아진다고 한다. 뭐, 그것도 올해 시험해 볼 수 있으면 정말 차이가 나는지 검증해보고 싶다. 더불어 도라지 직파로 농사를 잘 짓는 분들의 노하우도 알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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