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군의 열두 달 - 그리고 이곳 지곳의 스케치, 대안신서 2
알도 레오폴드 지음, 송명규 옮김 / 따님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코로나19로 인해 온 세계가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바이러스 전파 확대를 막고, 진정시키기 위한 싸움이 격렬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코로나19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여러가지이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의 민낯을 보고 있다는 관점도 등장했다. 일련의 사태를 개인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골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이용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않다. 개인적 문제가 아닌 집단,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상호간의 믿음과 윤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생명체란 스스로 건강을 지키고 관리하는 체계를 갖추었다. 만약 이런 방어체계가 없다면 생명체가 스스로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이런 스스로의 자기 회복 능력 체계를 넘어 의학과 방역 시스템 등을 통해 인류 전체의 자기 회복 능력을 키워왔다. 인간의 이런 능력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코로나19를 극복해내는 것이 먼저이겠지만, 한편으로 어떻게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메르스와 사스, 신종플루, 조류독감 등등 각종 전염병의 창궐을 모른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전염병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내는 것은 쉽지않다. 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건대, 생명체가 갖고 있는 자기복제와 자기 회복 사이의 균형이 깨져서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이 균형이 깨진 원인 중의 하나는 인간이 야생과 밀접한 접촉을 자주 갖게 된 것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발전이나 개발이란 이름으로 야생의 서식지가 줄어들었다는 직접적인 원인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서식지 변경으로 인한 간접적인 원인으로 살펴볼 수 있을듯하다. 즉 뭇생명이 살아갈 건강한 땅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알도 레오폴드는 '근대 환경 윤리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약 100년 전 토지윤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래 군의 열두달]이라는 책이 발간될 즈음 세상은 여성에게, 흑인에게 참정권이 주어지고, 인권의 대상이 확대되고 있었다. 그는 이런 윤리의 확대가 인간을 넘어 뭇생명의 어머니인 토지에게로까지 이르리라고 내다봤다.하지만 현실은 아직도 요원하다. 그의 말마따나 땅이 없어진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슬퍼하지 않기 때문이다. 흙은 우리의 삶과 너무나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거나 친밀하지 않은 대상의 죽음은 우리에게 슬픔을 자아내지 못한다. 흙은 우리의 일상과 멀어지면서 슬픔의 대상에서 지워졌다. 하지만 생명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흙이 전제되어져야만 한다. 건강한 흙이란 다양한 미생물이 살아있는 흙이며, 이 흙을 토대로 뭇생명들이 균형을 유지하며 온생명을 다할 수 있다. 레오폴드는 인류가 인권을 확대해 온 것처럼, 토지의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생태계에 대한 관심을 불러오고, 생태계의 모태인 흙의 건강함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켜주었으면 좋겠다. 그동한 흙은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고, 흙의 소중함은 잊혀진지 오래이다. 지구온난화를 최대한 저지하고, 생태계의 균형을 위한 흙의 건강성을 되찾기 위한 각성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알도 레오폴드의 [모래 군의 열두달]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과 함께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의 아름다움과 건강성을 유려한 필체로 이야기하고 있다. [월든]은 월든 호숫가 옆 숲에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간 살아온 이야기이다. [모래 군의 열두달]은 위스콘신 강 주위 농장과 오두막을 사고 수년 간 주말농장 비슷하게 꾸려오며 생활해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 중 레오폴드의 다음 주장을 귀담아 들어본다.

 

 

바람직한 토지 이용을 오직 경제적 문제로만 생각하지 말라. 낱낱의 물음을 경제적으로 무엇이 유리한가 하는 관점뿐만 아니라 윤리적, 심미적으로 무엇이 옳은가의 관점에서도 검토하라. 생명 공동체의 통합성과 안정성 그리고 아름다움의 보전에 이바지한다면, 그것은 옳다. 그렇지 않다면 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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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따뜻해지니 이곳저곳에서 벌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집벽에는 날파리 같은 것들이 군데군데 붙어있다. 한두마리면 괜찮은데 여러 마리가 붙어있으니 소~름이! 정확한 이름을 몰라 이 벌레가 주위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론 벌레 이름 하나하나에 얽매이는 편은 아니다. 생태계가 균형잡혀 있으면, 그 어떤 종류의 해충이다 하더라도 균형을 잡아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멸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해충을 대하다보면 무리하게 화학약품을 쓰게 되고, 이것이 연쇄적으로 어떤 작용을 가져올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건강한 흙과 건강한 생태환경을 목표로 한다. 좋다고 여기는 것들의 우세나 점령을 꾀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것만 가득차 있는 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양분이나 환경의 치우침이 결국엔 해를 끼칠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그럼에도 간혹 개별 벌레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블루베리 가지치기를 하다가 발견한 고치. 새알처럼 생겼는데 크기는 새끼손톱보다 조금 작은 정도다. 고치를 벗겨보니 노란 애벌레가 있다. 검색해보니 노랑쐐기나방애벌레였다. 허걱! 손으로 만졌다면 큰일 날뻔 했다. 애벌레에서부터 성충까지 털(가시에 가까운)이 있는데 독을 품고 있다. 이 털에 찔리면 피부가 붓고 엄청난 통증이 몇일씩이나 간다고 한다. 

 

각각의 벌레를 다 알려고 집착하지는 않는다지만, 알 수 있는 것들은 차근차근 알아두는 것도 도움이 될 성 싶다. 균형을 잡는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균형을 잡아가는 사이 균형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는 것들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치가 아닌 생태적 관리!란 이런 순간을 포착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노랑쐐기나방의 독이 바짝 정신을 차리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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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2 날씨 맑음 최고온도 11도 초저온도 1도

 

농부가 본격적으로 몸놀림을 바삐 움직여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포근한 날씨에 씨앗을 뿌려봅니다(파종).

요즘 대부분의 씨앗은 농약사에서 구입을 하거나, 씨앗이 아닌 모종을 구입해서 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 할머니, 할아버지는 지난해 곡식과 채소 등을 갈무리하면서 씨앗을 받아두어 다음해에 심곤했는데 말이죠. 이렇게 계속해서 씨앗을 간직하고 심어 내려오는 것들은 소위 말하는 토종이나 재래종이라 불립니다. 이것들은 우리 땅과 가온, 환경에  잘 맞고 성질도 어느 정도 일정한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농약사에서 파는 개량된 씨앗에 비해 맛이나 생산량, 병충해에 대한 저항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반면 이런 씨앗들은 채종해서 뿌려보았자 같은 특성을 내지 못하기에 계속해서 구입을 해야만 합니다. 씨앗값도 만만치 않게 들어갈 뿐 아니라, 자신의 성향에 맞춘 작물이 아닌 농약사에서 제시해주는 대로 따라가는 수밖에 없게 되죠. 개성과 독립성을 포기하는 대신 편리와 경제성을 갖게 되는 셈입니다.  

 

유난히 포근했던 겨울 날씨 덕분에 다소 이르게 씨를 뿌려봅니다. 구입한 씨앗도 있고 자가채종한 씨앗도 있습니다. 구입한 씨앗은 주로 민트와 같은 허브 종류로 다년생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서 씨앗이 떨어져 다음해에도 날 수 있도록 해볼 생각입니다. 실제 민트깥은 경우는 같은 자리에서 계속 자리를 잡는 모양새입니다.

 

 

수박은 지난 여름에 먹었던 수박씨를 받아두었다가 심어봅니다. 보통 수박은 호박을 대목으로 해서 접을 붙인 것이 많아 제대로 자랄지 모르겠습니다. 

호박은 지난 가을에 열렸던 늙은 호박의 씨앗을 채종한 것입니다. 올해도 잘 열리기를 바라봅니다. 지난해 다소 늦게 심는 바람에 겨울이 다가오도록 채 익지않아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조금 서둘러봅니다. 

 

 

가시오가피는 지난 가을에 점심을 먹으러 갔던 식당 정원에서 탐스럽게 열린 것을 몇 개 따온 것입니다. 이것도 시험삼아 심어보는 것인데 제대로 자랄지 궁금합니다.

 

 

코로나19 탓에 개학이 연기돼 학교를 가지 못하는 딸내미가 물을 주고 있습니다. 흙 만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ㅜㅜ) 물주고 꾸미는 것은 좋아합니다. 명찰을 달아주고 물 주는 일은 신나게 하네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씨앗들이 찬바람 부는 새벽을 이길 수 있도록 덮어줄 비닐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주후반부터 영하로 다시 떨어진다니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물 주는 것을 끊어볼 심산입니다. 그냥 흙에 묻어둔 채로 놔두었다 영하권에서 벗어나는 다음주 다시 물을 주어 싹을 틔울 생각입니다. 아니면 급하게 비닐이나 보온덮개로 몇일을 날 수 있도록 해 주어야겠지요.

 

씨앗이 전해주는 봄이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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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믹액션 하면 떠오르는 것은 성룡이다.(옛날사람인가? ^^;) 액션의 움직임 그 자체가 웃음의 요소가 된다. 그렇다고 슬랩스틱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고난위도의 액션이 함께 하기 떄문이다.

성룡과 결이 다른 코믹액션으로는 주성치가 있다. 주성치의 영화를 코믹액션으로 분류하는 것은 마땅치않다. 코미디 + 액션에 가깝고 좀 더 나눠보자면 코미디에 방점을 찍는 액션이다. 액션의 움직임에서 웃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액션의 표현이 과장되어서 웃기다. 슬랩스틱에 가까울 수 있다. 하지만 떄론 정통액션을 보여주기도 한다. 주성치 웃음의 포인트는 액션에 있기 보다는 오히려 이야기의 상황에서 나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

 

2. 권상우가 표현해내는 코미디는 성룡보다는 주성치에 가깝다. 즉 코믹액션이라기 보다는 코미디+액션 쪽이다. [히트맨]또한 그렇다.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만들어 웃음의 포인트로 삼는다. 액션은 화려하게. 다만 황우슬혜의 깜짝 액션은 티나는 와이어액션으로 코믹을 품고 있다(요즘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이런 티나는 와이어 액션을 코믹한 소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영화 [시동]이나 드라마 [유령을 잡아라]등)

하지만 주성치의 코미디는 이야기의 흐름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지만, 권상우의 코미디는 이애기의 흐름과는 관계없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즉 웃음이 터지는 장면을 빼버려도 이야기 전개상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권상우식 액션은 그래서 성룡과 주성치 사이 애매하게 자리잡고 있다. 뭐, 그것이 그만의 특징이라고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3. [히트맨]은 전직 국정원 암살요원 준이 죽음으로 위장해 평소 자신이 꿈꾸었던 만화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악플만 잔뜩 달리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그러던차 술김에 딸이 조언한대로 자신의 국정원 경험을 웹툰에 실어버리면서 사건이 커지게 된다. 이 웹툰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비밀정보가 만천하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4.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말한 소감은 [히트맨]에서도 적용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준의 개인사가 가장 창의적인 것으로 빛을 발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의 비밀프로젝트를 누가 경험, 아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비단 이런 특별한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라 함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자신만의 것이기에 창의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창의적인 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 문제인 셈이다.

 

5. 다른 누군가의 관심을 끄느냐 끌지 않는냐는 실상 중요하지 않다. 다만 가장 개인적인 것이 정말 가장 창의적인 지를 돌아볼 필요는 있을성싶다. 지금 나의 삶이 사회나 시대가 요구하는 판에 박힌 듯한 삶을 살아가는 기계같은 삶, 또는 기계의 부속품 같은 삶은 아닌지 말이다. 영화 [히트맨]이 이런 말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장 개인적인 것을 향한 개인적 소망을 위해 자신의 과거를 던졌던 준에게서 이런 향기를 맡을 수는 있겠다. 

 

6. 그냥 피식 웃으며 현실을 잠깐 잊어버리고 싶다면, 가벼운 코미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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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를 심고 첫겨울을 나던 2018~2019년. 10여 그루가 동사한듯 보였다. 말라죽은듯 보이는 블루베리 한 그루를 뽑아보니 뿌리가 내리지(활착)못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떤 나무는 뿌리를 뽑아내는게 쉽지않았다. 아마 뿌리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가끔 찾아온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지는 못한듯하다.

 

아마 밭의 효율성을 따진다면 즉시 이 나무들을 다 뽑아내고 새로 심는 것(보식)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들은 봄이 되어 새 가지를 뻗어내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죽은 줄 알았던 블루베리의 절반 정도가 새롭게 가지를 내놓았다. 생명의 힘을 느낀다. 생명을 지닌 것을 대하는 자세를 배운다. 끝까지 믿고 기다려보는 것. 

 

반면 끝내 새가지를 내지 못하고 죽은 것들도 있다. 안타깝지만 이들은 뽑아내고 새 나무를 심어야한다. 유능한 농부라면 살아날 것과 살아날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눈을 가져야할 듯 싶다. 나무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눈 말이다. 그것은 세심한 관찰과 애정,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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