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10. 맑음. 오후 기온 10도까지 오름

 

농사를 지으며 무투입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무투입의 요건은 갖추어야 한다. 즉 충분한 땅심을 기른 후에야 무투입으로의 농사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지난해에는 땅심을 점검해볼 겸 거의 무투입에 가까운 농사를 지었다. 체리나무의 경우, 1년 동안 풀은 두 번 정도 깎아주고(제초제 투입 없이), 일체의 농약이나 비료를 주지 않았다. 벌레는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들은 손으로 잡고, 대부분 그냥 두었다. 다만 가문 시기에 3~4일에 한 번 정도 꼴로 물을 듬뿍 주었다.

 

그 결과는 다소 참담했다. 20그루 중 8그루가 죽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같은 나무 묘목을 심었던 다른 농가들도 절반 이상 나무가 죽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묘목의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살아있는 나무들도 성장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묘목을 심었던 크기에서 거의 한두뼘 정도 더 자랐을 뿐이다. 근처 비료를 듬뿍 주는 복숭아 농가에서 새로 심은 묘목은 한 키 만큼 자랐으니, 비교가 된다.

 

아무래도 땅심이 충분하지 앟은 모양이다. 먼저 땅심을 길러줘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퇴비를 넣어줄 수도 없다. 비용의 문제다. 그래도 2년 전 받아두었던 폐버섯배지가 있다. 땅에 골고루 집어넣어주기 위해 놔둔 것들이다. 올해는 이것을 활용하기로 했다.

 

체리나무 한 그루에 20리터들이 바께쓰 2통 분량의 폐버섯배지를 부어주었다. 여기에 좋은 미생물을 조금씩 넣어줄 생각이다. 마음이야 4통 분량정도로 듬뿍 주고 싶지만, 이또한 비용과 관련있다. 지금 있는 퇴비더미를 꽃 필 즈음 한 번 더 줄 생각이라 아껴두기로 한다. 그나저나 생장점이 모두 뚝뚝 끊어져버린 듯한 체리나무들이 어떻게 커갈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따뜻한 겨울 날씨 덕에 살아있는 체리나무들의 가지에 잎눈이 맺혀있다. 조만간 죽은 나무를 뽑아내고 보식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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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은 최근에 본 영화중 가장 깔끔한 영화. 범죄 형사물 액션 영화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야기의 진행이 군더더기가 없다. 현실적 감각의 액션영화를 좋아한다면 강추.

 

2. 경찰 7명이 죽고 1명이 중태에 빠지는 마약 탈취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을 맡게 된 형사는 맨해튼 섬을 봉쇄하고 3~4시간 안에 범인을 잡아야 한다. 한정된 시간 안에 범인의 행방을 찾고, 쫓는 과정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범인과 경찰과의 총격신을 비롯한 액션이 과장없이 깔끔한데다, 속도 또한 빨라 액션신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3. 범인을 쫓고 잡는 것만으로 끝나는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엄청 복잡한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것도 아니다. 범인을 쫓는 과정에서 자꾸만 범인을 생포하지 않고 죽이려 드는 경찰들. 동로의 죽음에 대한 단순한 복수심일까. 범인을 쫓는 과정이 쫄깃쫄깃한 이유는 거기에 있다.

 

4.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왔던 [더티 해리]류의 영화인 듯 시작한다. 주인공의 아버지 또한 경찰인데 3명의 범인과의 총격전에서 2명을 처치하고 죽게된다. 주인공은 성장해서 경찰이 됐는데, 9간 사건 처리 과정에서 8의 범인을 죽여 내사를 받는다. 더티 해리처럼 스스로 정의의 심판을 내리는 형사처럼 보인다. 정말 완벽한 밑밥이다. 선입견이 사람의 행위를 예측하게 만들고, 그 예측을 이용해 영화는 이야기를 비트는 재미를 선사한다. 

 

5. 영화 초반부 내사를 받는 주인공 형사의 대화. "남북전쟁때 총을 쏘지않고 장전만 해대는 병사들이 있었죠. 베트남전에선 10명의 병사중 실제 총을 쏜 사람은 3명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7명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남북전쟁이나 베트남전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준 영향력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맥락상 정의로움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연관된다. 실제 통계치인지는 모르겠지만, 형사가 말한 숫자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당신이라면 그 전장에서 방아쇠를 당겼을까?

 

6.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을 보면서 느끼는 점. 영화의 흥행은 광고와의 상관관계가 얼마나 될까. 시간가는줄 모르고 액션과 범죄드라마를 즐기고 싶다면 절대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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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극한직업]과 [엑시트]의 대성공으로 코미디 장르가 꽤 만들어지고, 눈길도 끌고 있다. 올해 첫 코미디 영화로 상영된 [해치지않아]가 과연 대박의 기운을 이어갈지 궁금했다.

 

사람들은 대박이 난 작품들을 분석해보곤 하는데, 지난해 [극한직업]과 [엑시트]에서는 웃음 뒤에 숨겨진 슬픔이라는 칼날을 지녔다고 평을 받는듯 하다. 소위 웃픈 영화라는 것이다. [극한직업]은 소상공인의, [엑시트]에서는 청년백수의 아픔이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의미를 '찾는다'는 행위는 관객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우선 코미디영화라면 웃겨야 한다. 그 웃음을 발생시키는 부조리가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면 더욱 좋은 것이고. 

 

[해치지않아]는 이런 측면에서 다소 애매모호하다. [해치지않아]는 사람도 찾지않고 동물도 없는 다 망해가는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동물탈을 뒤집어쓴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동물탈을 뒤집어쓰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웃음을 준다. 그런데 아쉽게도 웃음이 쏟아질 정도는 아니다. 그럭저럭 웃기다. 

 

[해치지않아]는 '동물원'을 통해 동물을 좋아한다는 의미와 동물원의 의미 등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듯했다. 동물탈을 뒤집어 쓴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발각된 이후 사건이 어떻게 결말을 맺는냐에 따라 그 기회가 폭발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정말 결말이 궁금했다. 그런데 영화는 아주 급하게 무난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그덕에 영화의 시선이 누구의 시선인지를 가늠하기가 쉽지않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래도 가끔 아무 생각없이 피식피식 웃고싶다면 동물탈을 뒤집어쓴 사람들의 소동을 즐겨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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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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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대한 개념이 생긴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인권이 인종, 성별, 나이, 지역 등의 차별없이 인간이라면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된 것은 체 100년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국민인권위원회가 생긴 것도 불과 20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인권을 넘어 동물권에 대한 개념이 사회 전반에 확대되고 있다. 동물을 학대하면 처벌을 받는다. 또한 초중고 교육과정에 동물보호와 동물복지교육이 곧 포함될 예정이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은 이들도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고,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덕분일 것이다. 

 

이렇게 생명에 대한 권리의 대상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식물권에 대해선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최근의 연구 등을 살펴보면 식물들도 자신의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주위 나무들과 서로 의사소통을 하며, 벌레로부터 공격을 당하면 고통을 느끼고, 땅 속 미생물을 포함해 주위 생명체와 협력하는 등등, 동물과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즉 동물권에 이어 식물권도 생각할만큼 우리의 사고가 확장돌 수 있는 지식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식물권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 필요한 시기에 들어선 것이다. 

 

인권, 동물권, 식물권 이라고 나누긴 했지만, 이는 모두 생명에 대한 권리이다. 인간의 이로움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자각이 필요한 것이다.   

 

2019년 풀리처상을 수상한 소설 [오버스토리]는 나무와 숲을 통해 식물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려 7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100여년에 다다르는 수대에 걸친 시간과, 십여명의 주인공이 잘 직조된 방직물마냥 꽉 짜여진 이야기다. 

 

소설 초반부에는 마치 성경의 창세기 마냥 어떤 가족들의 계보가 이어진다. 그리고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처럼 잠언이라 여겨지는 문구들이 시시때때로 나타난다. 하지만 결국 소설 속 인물과 이야기는 한 사건으로 응결된다. 내가 어렸을 적 외신을 통해 보았던 사진 중 아직도 인상 깊었던 바로 그 사건을 모티브로 한 듯하다. 숲과 나무를 지키기 위해 수십미터 되는 나무 위에 집을 짓고 환경운동을 펼쳤던 모습 말이다. 소설 속에서는 극렬한 저항을 통한 환경운동이 비극을 자아낸다.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소설 속 이야기는 나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나무를 베고 숲을 파헤치는 것을 보면서도 막지 못하는 것을 방관자 효과라고 지적한다. 분명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도움을 줄거라며 자신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체 방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가 UN에서 외친 것처럼 환경을 지켜내기 위한 당장의 행동이 시작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자, 이제 우리도 식물권을 위해 행동에 나설 때다. 그럴 때가 돘다. [오버스토리]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일어서라고 말을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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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화두는 '공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갑질이나 금수저 등의 단어가 세간을 떠도는 이유 또한 이 공정과 떼놓을 수 없다. 가진 자들이 더 가질 수 있는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히 더 갖고 있다는 것 하나로 힘마저 챙길 수 있는 현실이 슬프기 때문이다.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와 sbs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는 '공정'한 주인공의 활약이 쾌감을 안겨준다. 갑질하는 자들을 향한 맞섬과 마침내 거둘 승리를 예감하며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 [스토브리그]-저항하지 않으면 썩는다 

야구팀 드림즈의 (사실상)구단주와 사장의 횡포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람은 백승수(남궁민 분) 단장이다. 그는 '한 번 굽히면 편해지는 것을 알지만, 한 번 굽히면 평생 굽혀야 하는 것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갑질에 맞서고, 부조리한 조직을 바꾸기 위해 휘두르는 무기는 바로 '합리'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식과 합리로 그는 당당하게 횡포에 맞선다.

임미선 마케팅 팀장이 사장의 불공정한 지시대로 시구자를 선정하자 백 단장은 단호하게 호통친다. "부정한 지시라면 단 한 번이라도 저항이라는 것을 해보세요. 그렇게 썩어가는 겁니다. 우리 팀이"

 

 

■ [이태원 클라쓰] - 소신에 대가가 없는 삶을 살련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주인공 박새로이(박서준 분)는 무릎을 꿇지 않는다. 잘못한 행위에 대한 죄값은 치르데, 잘못하지 앟은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 일은 없다. '소신대로 살라'는 아버지의 가훈을 지키기 위해서다.

'장가'라는 대기업의 총수와 그의 아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그를 무릎꿇리고자 하지만 새로이는 끝내 굽히지 않은 것이다. 마치 [스토브리그]의 백승수 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의 친구 오수아(권나라 분)는 자신이 따르던 새로이의 아버지를 장가 총수의 아들이자 같은 반 친구인 근원이 교통사고로 죽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장가의 장학금을 받고 장가에 취직해 일을 한다. "나는 새로이 너처럼 용기가 없다"면서. 하지만 새로이는 수아에게 '너의 삶을 그냥 살라'고 말한다.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이다. 백승수 단장과 새로이의 차이는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흙수저이자, 을이다. 무수한 타협을 거치며,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그곳에 서 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괴로움과 분노, 슬픔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들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를 자위한다. 그것을 넘어 자기합리화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가 새로이나 백승수 단장을 보며 환호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그들처럼 갑질에 굽히지 않고 맞서지 못하는 것일까.

바로 체념과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임미선 팀장이 한때 열정을 불태우며 팀의 발전에 힘을 쏟다 불성실해진 것은 체념이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 순간 체념은 찾아온다. 그리고 체념은 갑질에 순응토록 만든다.

수아가 장가를 받아들인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학비가 걱정이고 생계가 걱정인 상태에서 잠깐 눈만 감으면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릴 순 없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더 나아가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부당한 것에 쉽게 저항하지 못한다. 저 마음 속 밑에 꼭꼭 숨겨둔 용기라는 것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만약 우리에게 기본 생계권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본다. 돈이나 권력으로 갑질하는 대상에게 저항할 수 있는 작은 용기를 꽁꽁 싸매둔 마음 한켠에서 꺼낼 수 있도록 매듭을 풀고 뚜껑을 여는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든든함만 우리가 갖고 있다면 가슴을 펴는 당당함과 굽히지 않을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공상에 빠져본다. 나약한 '을'의 실없는 주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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