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의 과학공부 - 철학하는 과학자, 시를 품은 물리학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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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게 참 신기해서 그냥 살면 될 것을, 굳이 삶의 의미를 찾거나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애를 쓴다. 그런 삶의 의미와 삶의 설명은 종교와 철학이 주된 역할을 해오고 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과학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예 대놓고 과학철학이라는 분야를 통해 과학과 철학을 융합하기도 하지만 꼭 철학이 아니더라도 과학이 설명해주는 현상을 통해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영화 <양자물리학>에서처럼 삶의 모토를 양자물리학의 법칙으로 삼기도 하면서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 '상황은 항상 변한다'를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과학이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과학의 방법은 만능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과학은 명제의 참, 거짓을 땨지는 데 유용하지만 가치를 판단하는 데 종종 무용지물이다. 꽃이 왜 아름다운지를 설명하는 것은 과학의 능력 밖이다. ... 학문의 역사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인문학의 몫이었다. .,.,. 가치를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이란 없기 때문이다. 정의, 사랑, 인권, 아름다움 같은 것을 정의하거나 왜 중요한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은 이것들 없이 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사고는 현대인의 삶에 중요한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과학적 사고의 핵심은 간단하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증거에만 의존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특히나 요즘같이 거짓이 판을 치는 시대, 가짜 정보가 힘을 얻는 시대에서는 과학적 사고가 꼭 필요하다.

과학적 방법은 세 단계로 구성된다. 첫 단계는 관찰과 실험을 통해 정확하고 정량적인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다. 둘째 단계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는 것이다. 셋째 단계는 다시 관찰과 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다.

언론이든 SNS든 넘쳐나는 정보, 상반된 정보들을 판단할 때 우리는 과학적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이 진실인지를 판단하고 가늠하는 이유 또한 명확하다. 

과학은 신화와 동요를 고발하고, 권력을 거부한다. 결국 과학은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은 이제 과학을 통해 그 길을 넓혀가고 있다. 우리가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책은 과학이 어렵고 접근하기 두려운 법칙이 아니라, 자유롭고자 하는 우리의 삶 속에 녹아있는 동반자임을 쉽고도 명쾌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아주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우리는 놀기 위해 일한다. 일이 목적이 아니라 잉여가 목적이었다는 말이다. 잉여의 중요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계로 절약된 시간을 우리의 행복으로 전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언어와 통신에서의 잉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자연에서 잉여는 그 자체로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사회란 잉여를 누리는 사회이다. 사실 우리의 삶을 살 만하게 만들어주는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운동, 오락 등은 모두 잉여가 아니었던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잉여의 가치를 잊어버린 것 같다.

자연에는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의 네 가지 힘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중력과 전자기력만이 공간을 전파하는 파동을 만들어낸다.

카오스는 복잡해서 얼핏 보면 불안정해 보인다. 하지만 카오스계는 선형계보다 외부의 간섭에 대해 훨씬 안정적이다. 규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침에 1시간 지각을 하면 하루종일 엉망이 되겟지만, 대충 살아가는 사람은 2시간 지각을 해도 큰 문제가 업슨 것과 비슷하다고 할가. 자연은 카오스와 프랙탈을 통해 안정과 효율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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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을 할 곳과 작물이 결정되었다고해서 정착할 땅과 집, 논이나 밭을 먼저 찾지 마라. 집과 밭은 내가 농사에 자신이 생기고, 도전하겠다는 결심이 굳건한 이후 천천히 진행해도 된다. 농사를 짓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먼저 농사 기술이다.

 

■ 책만으론 배울 수 없다

한때 사랑에 서툰 이를 보고 '연애를 책으로 배웠나?'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한 적이 있다. 농사도 자칫 책으로만 공부하고 다 아는 듯 시작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귀농해서 농사를 지을 경우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실제 맞닥뜨리는 농사현장은 실로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예술 분야에선 도제식 공부가 남아있는데, 농사도 이 도제식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옛날처럼 폐쇄적 방식이 아닌 열린 방식의 인턴십 과정이어야 한다.

우공의 딸기 정원

 

영광포도원

 

 

■ 최소 1년은 배워

귀농해서 젖소를 키우고 싶다면 우리나라 최고의 목장에서 최소 1년 이상을 거주하며 스승에게 젖소를 키우는 방식을 배우는게 가장 좋다. 딸기, 토마토, 버섯, 수박, 참외..... 다른 모든 농산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스마트팜 딸기 농장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경북 상주의 '우공의 딸기 정원' 박홍희 대표도 딸기 농장을 만들기 전 멘토를 찾아 1년간 딸기를 키우는 과정을 거쳤다. 이 경험이 딸기 재배 중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 할 수 있는 딸기묘 키우기에 자신감을 갖게 해 주었다. 

명품 포도를 생산하는 전북 완주의 영광포도원 강혜원 대표도 "품삯을 받지 않고도 배울 각오를 세워라. 품삯을 받으면 기술을 전수해주는 것이 아니라 일꾼으로 생각해 자신만의 노하우를 모두 다 가르쳐주지 않을 수도 있다"며 적극적인 인턴 자세를 강조한다. 

 

■ 최고에게 배워라

비단 농사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귀농해서 농산물 가공에도 도전할 수 있는데, 이 분야 또한 인턴 과정은 필수라 여겨진다. 

청와대 만찬에 올려졌던 수제 맥주(솔티 맥주)를 만드는 충북 제천의 뱅크크릭 브루어리 홍성태 대표는 맥주에 이어 치즈와 초콜릿에도 관심이 많다. 홍 대표는 맥주도 그랬지만 치즈, 초콜릿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유럽으로 떠날 계획을 갖고 있다.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곳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배워야지만 최고를 만드는 그 미묘한 차이를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최고라 하는 농장에 찾아가 인턴과정을 요구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걱정하지 마라. 대부분의 농장에서는 농삿일을 배우러 오는 이들을 환영한다. 물론 농삿일을 배우겠다는 의지와 태도가 명확하고, 근면 성실함은 기본으로 갖추어야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농장을 찾아 문을 두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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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 오프라 윈프리, 세기의 지성에게 삶의 길을 묻다
오프라 윈프리 지음, 노혜숙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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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은 오프라 윈프리가 <슈퍼 소울 선데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들과 오간 말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출연자들은 소위 영적으로 풍만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외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일수도 있겠지만, 내적 성숙을 원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그런데 영적으로 풍성한 삶이란 무엇일까. <영혼의 자리>를 쓴 게리 주커브의 말이 영적인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듯싶다.

우리 스스로 삶을 관리하지 않거나, 우리의 삶에 기획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그저 매일 아침 일어나 출근하고 시키는 일만 하며 월급을 받아 살게 되고, 그건 좀비처럼 사는 것과 다름없다.

즉 영적인 삶이란 좀비와 반대편에 있는 것이다.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삶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영적 삶을 향한 방법들을 몇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날마다 감사 일기 쓰기, 모든 일에 열정을 기울이기, 당신의 희열을 좇기

 

그리고 정말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대니얼 핑크의 말처럼

나를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이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리고 나는 오늘 어제보다 더 잘했나 라고 물어보세요.

혹시 오늘도 좀비처럼 살고 있진 않았나? 가슴에 불을 지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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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2019.09.25. 개봉 119분 한국 15세 관람가

감독 이성태

 

1. 영화 제목 짓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준 영화. 통쾌한 범죄액션물의 제목이 뜬금없이 양자물리학이라니? 제목을 보고 관객은 어떤 상상을 해야 할까? 영화는 내가 생각한대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제목의 민망함을 이겨내고 영화는 꽤나 잘 짜여져 있다.

 

2. 박해수라는 배우의 연기에 놀라다. 주연 뿐만 아니라 조연들 모두 연기가 영화 속에 잘 녹아들어가 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한 장면도 거슬리는 곳이 없다.

 

3. 연예인 마약 사건과 이를 둘러싼 비호세력의 이야기는 현실 속에서 현재진행형. 영화가 현실과 전혀 동떨어져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정경유착이라는 적폐와 이 유착의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검찰의 등장. 단순히 음모이론일까?  

 

4. 영화 속에 비쳐지는 검찰은 그야말로 권력과 권위주의에 푹 젖은 모습이다. 피의자를 대하는 고압적 자세와 협박이 몸에 배어있는듯 보여 분노를 끓어오르게 만들 정도다.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잘 녹아져 있다.

 

5. 양자물리학이 영화의 제목으로 쓰인 것은 주인공 박해수가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 '상황은 항상 변한다'와 같은 양자물리학적 신념을 입에 달며 살기 때문.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현실에서 양자물리학의 법칙을 실감하는 일은 없다. 원자 이하의 작은 세상의 일일뿐. 현실은 뉴턴의 역학과 마주친다. 원인엔 결과가 따르는 법. 때론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지만 이것은 우리가 그 사건의 조건과 상황을 모두 알지 못하기 때문일터. 아니면 진정 불확정성의 법칙을 따르는 양자물리학이 우리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6. 양자물리학에서 생각이 현실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은 바로 행동이다. 행동하지 않으면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 집단에게 책임을 지우기 위해 우리가 행동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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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인 더 게임 Skin in the Game - 선택과 책임의 불균형이 가져올 위험한 미래에 대한 경고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김원호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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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국 장관을 둘러싼 싸움이 한반도 정국을 어디로 흐르게 할지 결정하는 주요 사항이 되고 있다. <진영>이라는 단어가 이 싸움의 새로운 키가 됐다.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의 <스킨 인 더 게임>은 이런 일련의 사건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를 알려주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경제적 관점을 넘어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나심 탈레브는 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양보하지 않는 소수>라고 이야기한다.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소수와 유연하게 사고하면서 양보하는 다수가 부딪히면 전자가 승리하게 마련이다. 양측의 관계가 심각하게 불균형을 이루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이 같은 비정상적인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이 양보하지 않는 소수들의 영향력이 점차 그 세를 확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양보하지 않는 소수가 절대악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 양보하지 않는 소수가 선할 수도 있다.

 

한 사회의 가치관은 대다수의 의견인 여론이 진화한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한 사회의 가치관은 완고하면서도 비타협적인 소수가 만들어 내는 경우가 더 많다. 시민권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앞에 드러난  비타협적 소수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까, 아니면 뒤로 물러서게 할까. 아무튼 이 소수가 확장되면서 소위 말하는 진영이 형성된 모양새다. 양보하지 않는 소수집단이 하나가 아닌 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수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한 사회의 진화는 투표, 위원회, 시민 참여, 학술 회의 등을 통한 합의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뛰어나가는 소수의 사람이 불균형을 만들어내고, 그러한 불균형으로 무게 추가 쏠리면서 진화가 진행된다. 다시 말해 한 사회의 진화 역시 소수에 의한 장악의 결과다. 사회가 진화하는데 필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소수다. 사실 우리 사회의 모든 면에는 어느 정도 불균형이 존재한다. 전체의 약 3퍼센트 정도의 활동가만 있으면 메리 크리스마스를 해피 홀리데이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런데 소수 집단의 숫자가 커지면 오히려 소수에 의한 장악이 어려워진다. 혼합주의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영을 형성했을 뿐 아직 혼합주의에 이르진 않았다. 아마 이 세력 중 어느 쪽이 우세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진화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세력 다툼 이전에 양 진영 모두 원하는 것은 <검찰 개혁>이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성 싶다. 검찰 개혁을 이루는 방법은 진영간의 차이가 크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것 하나만은 명심하면 좋지 않을까.

 

행동과 책임의 균형은 정의 , 명예, 희생 등 인간 존재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즉, 어떤 주장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검찰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데 있어 그 실패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고 있지 않다.

 

판단과 책임이 동시에 작동하는 방식이 시스템의 부패를 막는다.

상위 1퍼센트의 부자들이 자신이 내린 판단의 결과로 현재 위치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는 리스크가 존재하는 사회가 더 평등한 사회다.

언제든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체계(검찰의 경우 자신이 기소한 사건이 무죄로 판결될 경우 등)를 만들어야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이유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오보든 억지 주장이든, 편가르기든 오도든 말과 글의 자유엔 그만큼의 책임이 따라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의 권력이란 부패와 불평등을 만들뿐이다.

 

나심 탈레브의 <스킨 인 더 게임>은 도전하는 사업가가 되라는 충고의 말을 건네고 있지만, 이 경제적 관점이 우리 사회의 지금 모습에도 잘 적용되는듯 싶다. 책임지는 말과 행동, 그리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우리를 앞으로 이끌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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