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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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꽤나 안주했던 모양이다.

도시(서울)에서의 삶을 접고 시골로 내려온 지 7년째.

맨 첫해는 물론 그 다음해까지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도 많았다. 도시적 삶에서 벗어나 자연적 삶(이게 어떤 삶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을 살아보겠다는 의지는 경제적 해결점을 찾지 못해 이도저도 아닌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입안에 풀칠 정도가 아니라 아이를 키워야 하는 입장에서 돈은 항상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어중간한 타협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살다보니 자연적 삶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고,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다 다시 생계의 문제가 눈앞에 다가왔다. 너무 안주했는가 보다. 시골로 내려오면서 했던 고민을 해결하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중간한 타협점에서 그럭저럭 버티고 살아왔던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도 설렘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하지만 이제 다시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불안하지 않아야 성공한 삶이다. 잠 푹 자고 많이 웃는 삶이 진짜 성공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말이 폐부를 찌른다. 또다시 생계를 위한 선택의 순간이 왔다. 그냥 살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풀과 함께하는 농사를 짓고 있지만, 이것이 생계에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돈벌이와 노동이 따로 논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생계를 지탱해주던 줄이 끊어질 위기에 처하자 불안이 치솟는 것이다.   

 

 

인간행위의 심리학적 설명에서 의미와 재미는 가장 중요한 차원이다. 그 어떤 정서적 경험도 부재하면 삶의 의미는 부여되지 않는다.

 

아마 또 돈벌이를 위한, 생계를 꾸려가기 위한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전혀 재미없는. 그래서 삶의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아마도 시골에 내려온 시간동안 안주해버린 삶이 가져온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막연한 그리움이 현실속에서 실현가능한 것으로 변할때 생기는 심리적 반응은 설렘이다.

 

당분간 또다시 어정쩡한 삶을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아니, 어정쩡하게라도 불안없이 살 수 있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골로 내려와 살고싶었던 자연적 삶이라는 막연한 그리움이 현실 속에서 실현가능할 수 있도록 힘쓰는 삶을 고민할 시점이기도 하다. 안주가 주는 안도 속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 설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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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 블루베리 밭의 풍경이다.

도대체 어디가 풀이고 어떤 것이 블루베리인지 구별이 안갈 정도이다. 

다리 염증으로 다시 농작업을 하지 못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물론 풀과 함께 기르는 생태농법을 하겠다는 의도도 다분히 포함되어 있지만, 현재 상태는 그 정도를 살짝 넘어간듯 판단된다.

과연 풀을 어느 정도까지 자라도록 놔두어야 할까.

그리고 한계선을 그은 풀을 제거할 때는 베어야 할까, 눕혀버려야 할까.

지난해에도 올해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블루베리 주위의 풀은 블루베리를 가리기 전에 베어주었다. 골과 골 사이는 충분히 자라게 놔두고(허리춤까지 자랐다) 발로 밟아 눕혀주었다. 그 덕분에 올해 봄에 풀들이 자라는 시기가 한참 늦게 시작되면서 작업량을 줄여주었다. 또 퇴비를 뿌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블루베리가 어느 정도 열려주었다. 

그래도 자세히 살펴보면, 비료를 주면서 생장에 집중한 블루베리에 비해 새가지가 나온 것이 적고, 키도 별로 크지 못했다. 수확은 어느 정도 챙겼지만 나무의 성장은 너무 더딘 것이다. 

지금 상황은 풀이 블루베리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 같다고 판단된다. 얼른 블루베리 옆의 풀을 제거하는 게 좋을성 싶다. 몸이 낫는대로 낫으로 벨 계획이다. 얼른 몸을 추스리면 좋겠다.

골 사이에 풀은 지난해처럼 충분히 자라도록 둔 후 발로 눕힐 생각이다.

이처럼 풀을 놔두는 이유는 풀이 자란만큼 뿌리도 땅 속 깊숙히 풍부하게 자라면서 땅의 물리성, 그러니까 물과 공기가 잘 통하는 길을 만들어주고, 또 미생물의 먹이가 되는 유기물도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풀을 매개로 하는 곤충들이 블루베리의 성장에 방해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아무튼 성장이 조금 더딘 것을 빼면 올해까지는 예상대로 커가주고 있다. 풀과의 싸움 덕인지는 모르지만 겨울에 동해 피해도 많지 않을만큼 건강하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그렇다하더라도 지금은 나무 주위에 풀을 베어주어야 할 때.

농사도 체력(건강)이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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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텃밭에서 수확한 것들이다.

비료는 당연히 주지않았고, 농약도 쓰지 않았다.

심지어 퇴비나 거름조차 거의 주지 않은 땅이었다.

외부에서의 투입이 거의 없이 주어진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키워보고자 했다.

생태 본연의 힘으로 자라도록 한다는 점에서 생태농법이라 이름지어도 될성 싶다.

아무튼 이렇게 지은 농작물의 수확은..... 한마디로 처참하다.ㅜㅜ

수박은 10주를 심어서 3개 정도를 따 먹었다. 장마 전에 1개를 따먹고 장마 이후 다 녹아버린 수박 속에서 겨우 2개 정도를 건졌다. 수박과 풀과의 싸움에서 덩쿨로 자라는 수박이 이길 것이라 예상했지만 빗나갔다. 풀 속에서 비가 쏟아지니 수박잎은 다 녹아들고 열매만 동그라니 남았다. 물이 든 통에 먹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양분이 없어 수박이 크지 못하고 핸드볼공 정도에서 멈춰버렸다.

그나마 참외는 풀과의 경쟁에서 이겨냈다. 하지만 장마 이후인지라 단맛이 덜하다. 그래도 10주 심어서 20개 가까이는 따 먹었으니 나름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다.^^;

옥수수는 키가 어깨까지 자란 것이 3개 정도. 나머지는 무릎에서 허리 수준까지 밖에 자라지 못했다. 그통에 따먹을 만한 옥수수도 별로 나오질 못했다.

수확물이 이처럼 적은 이유는 땅심이 약한데도 불구하고 외부 투입을 하지 않은 탓이리라. 하지만 올해 풀이 자랄만큼 자랐으니 땅 속에서 뿌리도 많이 뻗어 있어 유기물은 풍부해졌을 것이다. 자란 풀들은 베어 땅 위에 뿌려뒀으니 이것들이 썩어 양분도 제공할 것이다.

내년엔 좀 더 나은 땅심으로 농사를 지어볼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본다. 하지만 풀베기는 여전히 고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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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서야 영화 <기생충>을 봤다. 다행히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않아서 극의 전개가 주는 재미는 충분히 느꼈다. 하지만 누군가의 '냄새에 대한 이야기'라는 평이 영화를 보는 시선에 방점을 찍어대는 통에 나만의 관점을 갖는데 다소 어려움을 느꼈다. 게다가 감독이 빈부격차에 대한 이야기라고 힌트를 주는 인터뷰를 들었던지라 자연스레 관점이 한정되는 부작용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봉테일'다운 디테일과 나름의 반전으로 충분히 재미있었다. 특히 공간을 통해 드러나는 계층간의 격차는 '선을 넘지 말라'는 박동익 사장의 충고가 주는 공간적 상징과도 잘 들어맞는다.

 

전원백수 기택의 가족이 사는 곳은 반지하이다. 건물 중 반지하라는 공간은 방공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1960~70년대 서울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싸게 거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게 됐고, 세월이 흘러 이제 반지하라는 공간은 법적으로 신규건물에 지어질 수 없게 되면서 고시원이라는 공간이 그 자리를 점차 대신하고 있다.-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는 이 고시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이야기 속에서도 기생충의 이미지가 차고 넘친다.

 

기택의 가족이 박 사장의 집에 기생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공간 또한 지하이다. 이 지하의 공간도 방공의 개념이나 은신처의 개념이다. 이 공간들은 상주의 공간이 아니라 임시거처의 공간이다. 그럼에도 임시가 아닌 상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없는 빈민들이다. 반지하나 지하의 공간은 햇빛을 마음대로 쐴 수 없다. 기택의 가족이 들어가기 전 이 지하에서 기생하고 있던 가정부 문광의 부부는 주인이 없을 때면 지하의 공간에서 나와 햇빛을 즐긴다.

 

지하의 삶은 그 공간이 주는 냄새가 있다. 영화에서 말하는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의 냄새마냥 말이다. 그런데 이 냄새라는 것은 공간의 한계를 넘어 퍼져나간다. 결국 공간성이 무너지면서 영화의 종반 극적 사건이 터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일회성에 그치는 우발적 사고에 그치고, 지하에 기생하는 기생충의 지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즉 공간의 역전이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이 지하의 공간에서 기생충끼리의 슬픈 대결만이 커다란 상처로 남아 잔존한다.

 

과연 지하의 공간은 지상의 공간과 벽과 문 없이 열린 공간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보다 견고해지는 지상과 지하를 가누는 벽은 우리 일상의 공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젠 지상에서조차 철조망을 치며 경계를 나눈다. 임대주택과의 경계는 박 사장 집의 지하실 문과 꼭 닮아 있다. 그런데 그 경계를 허무는 방법을 찾기위한 기생충의 연대 보다는 경계안에서 안주하기 위한 기생충간의 경쟁이 더 우선되기에 경계는 그 경계성을 더욱 공고히 한다.   

 

사족 :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소장이 말하는 슈필라움(놀이+공간)은 지하에서도 가능한 일일까. 갇혀있는 지하에선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지상과 지하가 자유롭게 뚫려 소통가능하다면 지하에서의 슈필라움도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만의 공간은 동굴이 될 수도 있지만, 언제든 자신이 마음내킬 때 밖으로 나올 수 있을 때만이 진정 슈필라움이 되는게 아닐까. 공간에서 빛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 이것이 기생이 아닌 공생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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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기다려지는 드라마가 하나 있다. 바로 <60일, 지정생존자>다. 미국드라마 <지정생존자>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드를 보지 않은 시청자 입장에서, 원작의 흔적을 찾는게 쉽지않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무너지고,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수반이 모두 죽는 테러가 발생한다. 환경부 장관인 박무진만이 살아남아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는 것으로 드라마는 시작한다.

 

테러를 바라보는 진보와 보수의 시선, 북한과의 관계, 세계정세 속에서의 한국의 위치, 직업적 정치인의 이미지 등 모든 것이 현실과 잘 맞아떨어지면서 몰입도가 최고이다. 도대체 미드에선 이런 정치적 상황이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할 정도다. 리메이크가 워낙 잘 만들어지다 보니 오히려 원작이 어땠을까를 거꾸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얽히고 설키는 상황들이 점차 걷혀지면서, 도대체 테러는 누가 저질렀고, 어떤 목적인가로 이야기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음모론의 색깔이 짙어지고 있다. 사극에서 흔히 나오는 비밀세력들이 현대로 옮겨온 모양새다. 드라마 <선덕여왕>과 <육룡이 나르샤>의 무명이나, <뿌리깊은 나무>의 밀본 처럼 실제 권력 뒤에 숨겨진 숨은 권력자 또는 그 세력들이 세상을 주무르고 있다는 설정이 못내 아쉽다.

 

음모론적 세계관은 현실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지 않을 때 등장한다. 도대체 이해가지 않는 사건들이 등장하게 되면 우린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음모론을 가져온다. 그런데 우린 현실에서 비선 실세라는 만화같은 장면을 목격했다. 음모론이 힘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보다 세련된 이야기라면 음모론의 재미보다는 권력의 역학관계를 잘 파헤치는 스릴러로 승부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60일, 지정생존자>가 음모론에 치중하기 보다는 현실적 역학관계를 보다 잘 벗겨내기를 기대해본다. "착한 사람이 이기는 세상을 보고싶다"는 차영진 비서실장의 말 속에서 이 드라마의 힘이 커져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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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8-07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주목해서 보는 드라맙니다.
저도 하루살이님과 같은 생각이구요.
미드를 볼까 말까 갈등하게 만들더군요.
우리 드라마는 시작은 좋은데 중반쯤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그게 불안불안하더라구요.
여전히 그 밥에 그 나물 할 건가?
미드가 기대가 되긴 하는데 거긴 또 정치상황이 우리와
다를 것 같아 골머리 써 가며 봐야할 것도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