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빈과 유해진의 케미, 김주혁의 악역이 어우러진 오락영화. 그냥 아무 생각없이 한바탕 웃으며 시간을 보내겠다면 강추.

 

2. 무거운 소재, 가벼운 농담, 진지한 액션이 잘 버무러졌다. 하나하나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세 가지 요소를 잘 섞어놓았다. 김주혁의 사욕으로 아내와 동료를 잃은 현빈의 복수심이 자칫 영화를 무겁게 이끌고 갈 수도 있었지만, 유해진과 임윤아의 코믹함이 적시적소에 터져 지루함을 없애주었다. 여기에 현빈의 액션이 조미료가 되어 주었다. 복수심이 영화 전체를 감싸는 햄버가 빵이라면, 액션은 패티, 코믹은 양상추와 토마토라고나 할까. 이 세 요소가 잘 어우러져 맛있는 햄버거가 됐다. 이 햄버거를 왜 깊은 맛의 발효음식이 아니냐고 따지는 것은 산에 올라가서 고래를 찾는 꼴 아닐까.

 

3. 현빈의 액션은 <용의자>의 공유, <아저씨>의 원빈, <본>시리즈의 멧 데이먼 등등을 연상시킨다. 빠른 속도와 강한 힘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영춘권 류의 무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름 볼만하지만 새로운 시도는 없어보인다. 자동차 추격씬도 그냥 무난하다. <아수라>와 같은 도전의식이 없다는게 아쉽다.

 

 

4. 내용은 .... 따지지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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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집을 지을 땅을 구했다. 거의 1년 가까이 주위 지역을 둘러보았다. 100% 만족할 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만족할 수준의 땅을 구하고 나머지는 만들어가겠다는 생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정도의 수준을 만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땅을 구하는 조건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학교가 가까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자급자족할 수 있을 정도의 농장을 꾸려갈 수준의 크기여야 했다. 세째는 마음이 편안한 곳이어야 했다. 성격상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니 마을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너무 동떨어져 있으면 아이에게 좋지 않을성싶어 적당한 거리를 두는게 좋았다.

 

물론 땅값도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만약에 농사를 생계수단으로 삼겠다고 결심한다면 평당 가격이 너무 높은 것은 절대 반대다. 노지의 경우 평당 1~2만원 수준의 매출, 시설하우스라면 4~5만원 수준이 평균이라 보면 될 터인데(순 이익이 아니라 매출이다) 평당 가격이 수십만원에 달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된다.

 

이러다보니 조건에 맞는 땅을 찾는게 간단치 않은 일이 된 것이다. 주말마다 땅을 둘러보고 두어군데 쯤, 이정도에서 만족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뼈를 묻을지도 모를 곳인데 서두를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그러다 결국 발견한 곳이 가족묘를 쓰기 위해 야산을 정리한 터였다. 묘를 쓰기위한 터라는게 마음에 걸릴지도 모를 일이지만 크게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세가지 조건을 어느 정도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집터에서 바라본 풍경이 마음에 든다.

 

그런데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기위해 계획을 세우면서 느끼는 건데 예상외로 지출되는 돈이 상당하다. 땅을 구입할 때도 중개수수료가 들어가고,

또 취득세도 매매비용의 4.6%나 붙는다. 여기에 등기를 하기 위한 수수료 등 지불할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예산을 잡을 때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또 구입한 땅이 임야인데 보전산지와 준보전산지이냐에 따라 주택을 지을 수 있는 허가여부가 상당히 차이가 난다. 땅을 구입하기 전 미리 군청 등에 주택을 지을 수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고 계약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 더불어 토목설계 전문가를 찾아 상담해 보는 것도 좋다. 이 땅도 준보전산지라 군청에 미리 주택가능 여부를 알아보고 토목설계사와 상담 후 구입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골에 정착하기 위한 첫발을 내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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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시간 동안 잘 생긴 남자들을 보고 싶다면 추천. 정우성과 조인성 쌍성(?)마차. 그런데 연기는 조금 상반된 듯하다. 원래 멋있게 생긴 사람이 겉멋든 연기를 하는게 영 안맞은 옷을 입은듯. 정우성의 연기는 다소 실망스럽다. 조인성의 캐릭터는 굴곡이 심하다 보니 오히려 봐줄만하다.

 

2.  초반 만화같은 설정과 편집. 조금은 무거워 보일만한 내용을 산뜻하게 출발. 공부와 담쌓던 아이가 시끄러운 곳에서 집중력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성적을 올리게 되면서 결국 고시까지 패스한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그런데 재미는 여기까지.

 

3. 혹시 이 영화의 아이디어가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검사와의 대화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권력집단에 대한 못미더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영화다. 하지만 사건을 설계하고 기획하는 정치검사의 모습이 오히려 밋밋해 보이는 것은 현실의 권력집단 꼬락서니가 이보다 더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4. 영화의 고갱이는 권력이 줄타기의 속성을 지녔다는 것이라는데 있는듯하다. 조인성이 권력의 핵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정우성을 택하듯, 정우성 또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오죽했으면 무당에게까지 의지할까. 그런데 줄을 잘못타면? 썩은 동아줄을 잡고 떨어지는 수밖에. 아니 그렇게 확 떨어져야 한다. 그래야 줄타기를 섣불리 하지 않겠지. 그러니 현실 속에서도 줄 잘못탄 사람들 모두 곤두박칠치도록 촛불을 밝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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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대추나무에 가시가 있었네요?

그랬다. 어린 대추나무에는 가시가 있었다. 동물들에게 새순을 먹히지 않으려고 가시를 세웠다. 꿰 단단하고 날카로운게 야무지다. 

그런데 다 큰 대추나무에서는 가시를 못봤다. 어떻게 된 일이지?

대추나무는 가시를 품고 자란다고 한다. 가지가 커지면서 가시도 굵은 가지와 하나가 되어 자라나는 것이다. 다 큰 대추나무는 동물들에게 잡아먹힐 염려가 없는 것이다. 아마도 새들이나 짐승이 열매를 먹고 먼 곳에 퍼뜨리길 바라거나, 아니면 열매가 독성을 지니고 있어 짐승들이 멀리 하거나 일 것이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다 큰 대추나무에겐 가시가 없다.

사람이 성장하는 것도 이러면 싶다. 혹시나 남들한테 피해을 입을까 가시돋힌 말로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도, 이렇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연약하기에 자신을 지키려 가시를 치켜세웠던 사람들도 이렇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의연하게, 당당하게, 그렇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더이상 가시를 품고 있지 않아도 될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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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오늘도 행복을 좇아 열심히 사셨나요. 그래서 행복한 하루를 보내셨나요.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

우리는 흔히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들 한다. 즉 우리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행복이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 말한다. 우리가 행복을 목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이데아적 사고, 철학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행복을 철학이 아닌 과학적 관점, 특히 진화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된다.

바로 생존과 번식을 위한 수단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즉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우리에게 행복감을 준다는 것이다. 이말을 듣고 금방 떠오르는 것은 식욕과 성욕과 같은 육체적 쾌락일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에 있다. 즉 생존과 번식에 있어 인간은 뭉쳐있을 때 그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가 행복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떠올려보아야 할 것은 어떤 사회적 관계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할 것인가이다. 저자가 말하는 행복한 장면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식사를 함께하는 것이다.

아참,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행복감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식욕과 성욕이 한 번으로 만족이 된다면 더이상 먹지 않아도 번식하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몸은 지속적 행복감이 아니라 망각의 행복감을 지녔다. 따라서 아주 큰 한 방의 행복보다는 사소하지만 잦은 행복감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니 행복이라는 이데아에서 벗어나 주위에 내가 만나서 즐거운 사람들로 채우고 맛있는 식사를 함께 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 더 나은 삶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혼술에 혼밥, 혼자놀기에 달인들이 늘어나는 현대인의 행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려나. 무욕과 종교적 삶을 택한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다는 것은 무시해도 될 소수만의 일일까.

그래도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라는 책이 있다)지 않는데는 도움이 될만한 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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