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잘 모르겠네요. 일단 독감검사라도 받아볼래요?"

딸내미가 체한 듯 구토를 하고 난 다음날, 열이 떨어지지않고 계속됐다. 단순히 체한 거라 생각했는데 하루가 지나도 열이 가라앉질 않아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문진 후 열의 원인을 당최 알 수 없다는듯 말했다. 그리고 덧붙인 말이 아무래도 독감이나 뇌수막염일 수도 있다는 것. 정밀 검사를 해야할지도 모르겠단다. 의사는 아니지만 딸내미의 현상은 급체로밖에 보이질 않았는데... 조금 더 지켜보는 건 어떻겠냐는 질문에 의사가 화를 낸다. "열이 38도가 넘었는데 지켜보자니 말이 되냐. 정 그렇다면 그냥 독감 약이라도 지어가라." 아니, 이건 무슨 말인가. 독감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독감 약을 지어가라고? 의사가 다시 권유한다. "방금 전 환자도 비슷한 증상이었는데 독감 조사를 해보니 독감이었다. 독감 검사 받아볼래요?" 아, 이런. 울며 겨자먹기로 독감 검사를 받았다. 독감은 아니었다. 일단 해열제 중심의 약 처방을 내렸다. 일단 약을 조제하고 집으로 데려가 딷듯한 방에 뉘었다. 그리고 추이를 지켜봤다. 약은 먹이지 않았다. 점차 열이 사그라들었다. 다행이다.

#"글쎄, 잘 모르겠네요. 일단 그냥 가세요."

자동차가 말썽이다. 정차하고 있으면 가볍게 덜컹거린다. 가속 중에도 덜컹거림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게 계속적인 게 아니라 나타났다 잠잠했다 그런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점화플러그 한두개가 고장 난듯한 현상으로 보여진다. 시간을 내어 정비소로 갔다. 정비사는 자동진단기로 자동차를 점검하고 나서 아무 이상없다고 말한다. 증상은 있지만 이상은 없다? 점화플러그 이상은 아닌가 물어보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정 불안하다면 다 뜯어보는 수밖에 없다는 말에 일단 후퇴. 증상이 심해지면 다시 오기로 했다.

 

프로라면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전문가라 함은 기술적으로도 일정 수준에 이르러야 하지만 고객을 대하는 자세도 일정 수준에 이르러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연이틀 시간과 돈을 들여 방문한 병원과 정비소는 믿음이 가지 않았다. 고객에게 못미더움을 준 이유는 무엇인가. 프로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 또한 돈을 버는 사람이니 내가 하는 일에 프로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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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과학 - 먹고 움직이고 생각하라 한림 SA: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8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엮음, 김지선 옮김 / 한림출판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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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것 중 하나가 건강에 대한 정보다. TV를 켜면 먹방만큼은 아니지만 건강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쉽게 볼 수 있다. 인터넷은 또 어떤가. 건강과 관련된 검색어를 집어넣으면 페이지가 흘러넘친다. 전문가들의 논문도 하루에 몇개씩 쏟아져 나온다. 

문제는 이 정보들이 서로 상충한다는 것이다. 최근 고지방 다이어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보여주듯, 지방은 건강의 역적이 되었다가 이젠 각광받는 존재가 되었다. 탄수화물은 어떤가. 당뇨를 비롯한 각종 생활습관병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한편 뇌의 에너지원으로 억울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커피, 와인을 비롯한 술, 각종 차, 설탕, MSG 등등 도대체 이것들을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못잡을 정도다. 

<건강과 과학>은 교수, 전문기자, 과학저술가, 연구원 등 약 30명 정도의 저자가 각 분야별로 최근까지의 연구동향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이야기들의 핵심은 건강엔 왕도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될 수 있으면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고, 다양한 사회 활동을 펼치라는 것이다. 하기야 그밖에 무엇이 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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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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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유스케의 작품 <검은 집>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하드보일드한 묘사와 이른바 사회파 추리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주제의식은 단연 백미였다. 자연스럽게 복지정책과 무임승차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 솜씨에 탄복했다. 그래서 기시 유스케의 작품이라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찾아 읽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개인적으론 <검은 집>을 뛰어넘는 작품은 없는듯하다.

<말벌>은 잘만든 오락영화처럼 흥미진진하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사람과 동물간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최근의 영화 <언더워터>-여자 서퍼와 상어간의 사투를 그린 영화-가 연상된다. 벌독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벌들로 가득찬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고, 자신을 이런 궁지에 몰아넣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추리해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소설 속에서 계속 허술하다고 느끼던 부분-왜 그는 집에서 도망치지 않는가-은 소설 말미를 보면 반전을 위한 하나의 장치였음을 알게된다. 바로 이 부분이 소설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소설을 이끌어가는 관점이 주는 흥미로움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은 <검은 집>처럼 소설을 다 앍고나서도 그 주제의식에 파묻혀 고민할 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소설을 읽는 동안에 그 긴장감을 늦출 수 없을만큼 재미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지금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겁을 먹으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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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Every Thing Will Be Fine (에브리띵 윌 비 파인) (한글무자막)(Blu-ray)
Mpi Home Video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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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쯤 친구와 자동차로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날 하마터면 목술을 잃을지도 모를 큰 교통사고가 났다. 그 사고 이후 친구는 인생의 행로를 바꿀 변화를 시도했고 뜻을 이뤘다. 반면 나는 사고 이후에도 변함없는 삶을 살았다. 큰 충격적 사건을 대하는 삶의 태도가 서로 달랐던 것이다.

 

이 영화 속 주인공 토마스는 작가다. 추운 겨울 어느 날 꼬마아이를 죽게 만드는 교통사고를 일으킨다. 정신적 방황을 하다 자살까지 시도한다. 정말 죽고자 할 정도의 치사량의 약물을 먹진 않았다. 토마스의 자기안위적 행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토마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작가로서의 역량이 커진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 켠에는 완전히 씻어내지 못한 죄책감이 남아있다. 그래서 사고 현장을 다시 찾는다. 이곳에서 의도치않게 아이의 엄마를 만나고, 아이의 엄마로부터 일종의 용서를 받는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달려가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이 사건을 잊어간다. 그러던 중 사고를 당했던 아이의 동생이 자라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자신의 성장과정이 평탄치 않았으며 그를 만나 도움을 받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토마스는 더 이상 이 사건의 기억으로부터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저 쪼가리로 남아있는 의무감에 답장을 보내지만 거리를 두고 싶어한다. 사건의 충격 속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부쩍 커버린 아이는 필사적으로 그를 만나고 싶어한다. 토마스는 아이와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된다.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토마스의 성장기처럼 보인다. 더 이상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기억. 그것에 대처하는 자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달라진다. 방황, 안도, 무감각, 망각, 거리두기, 포옹의 순으로 말이다. 즉 벗어나려 하지 말고 끌어안을 것. 의무감이 아닌 자발적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만이 자신이 스스로 가두어버린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끄트머리에서 토마스의 미소로 보여준다. 그랬을 떄 모든 것은 괜찮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까지 성장해 있는 것일까. 토마스의 비겁함에 분노보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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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소설 시리즈
신카이 마코토 지음, 박미정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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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야 할 사람은 결국 만나게 된다. 그럴지 모른다. 우린 그렇게 운명적 사랑을 기다린다.

<너의 이름은>의 소재는 특별하지 않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육체가 뒤바뀐다는 상상은 여러 드라마와 영화로 보아왔다. 시간을 뛰어넘어 서로 연결이 된 남녀의 이야기도 많다. 우리영화 <동감>이나 <시월애> 등등. <너의 이름은>은 이 두가지 소재가 합쳐져 있다. 3년이라는 간격을 뛰어넘어 남녀의 몸이 수시로 뒤바뛴다. 하지만 뒤바뀐 몸을 가지고 지낸 시간은 기억하지 못한다. 여기에 두 남녀의 사랑을 깊게 만들어주는 사건이 일어난다. 혜성의 조각이 떨어져 한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사건. 이젠 시간을 거슬러 가 과거를 바꾸고자 하는 일이 추가된다. 최근의 우리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처럼 말이다.

어찌보면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영화적 소재를 한데 뒤섞여 운명적 사랑에 대해 말을 하는 뻔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대를 찾는 안타까운 마음을 섬세히 담아낸 연출 덕분에 이야기는 흥미를 끈다. 시간과 인연, 운명은 끈처럼 이어져 결국 닿아야 할 곳에 닿는다. 우린 그 끈을 놓지만 않으면 된다. 하지만 살다보니 그 끈이 끊어져버리기도 하고 다른 끈과 뒤엉키기도 한다. 이 영화는 이 끊어짐과 뒤엉킴 이전의 세상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일종의 동화다. 사랑은 운명이라는. 녹슬어버린 마음에 운명이 빛을 발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러니 청춘은 뜨겁게 뛰는 심장을 가져야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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