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염원이 지극하다 해서
생명을 지키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간밤에 고양이 새끼들이 잘 지냈는지 궁금했다.
아침에 보자마자 손아귀에 쥐고서 우유를 먹였다.
체온이 떨어져 조금 차가운 것이 불안했다.
그래도 우유를 받아먹는 모양새가 나쁘진 않았다.
아무래도 체온이 걱정되어 햇볕을 쬐게 했다.
조금 있으니 따듯해진다.
야옹~ 야옹~ 우는 소리도 괜찮아 보인다.
꿈틀꿈틀 움직이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가슴 벅찬 마음을 안고 일을 보다 잠깐씩 둘러보았다.
그리고 일 삼매경.
한 호흡 가다듬다 고양이가 생각나 나가본다.
조용하다. 움직이질 않는다.
부드럽던 몸뚱아리가 굳어있다.
이놈들을 꺼내어 다시 땅에 묻으려니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손아귀에 느껴지던 부드러움 대신 딱딱함이 가슴을 쳐댄다.
생명을 지켜낸다는 것에도 앎이 필요했을까.

 

어린이집을 끝마친 딸내미가 고양이에게 가자고 한다.
"아빠, 고양이 우유 먹여줄래."
"고양이가 죽었단다."
"왜?"
"잘 모르겠어. 에미가 따듯하게 품어주고 젖도 먹여주고 그랬으면 살았을텐데..."
"어떻게 죽었어?"
"어제, 기어가는 거 봤지. 그 모양으로 죽었어."
"아빠가 고양이 키우는 것 많이 연습했어야지!"
"미안해, 딸내미. 고양이를 죽게 해서."
"나, 고양이 보고 싶단 말이야."
"우리 나중에 아빠가 집을 지으면, 그때 고양이랑 강아지랑 많이 기르자. 미안"
"그럼 그땐 강아지랑 고양이 새끼랑 많이 기를거야. 그리고 강아지 엄마,아빠도. 고양이 엄마, 아빠도 다 같이 키울거야. 어른도 두마리씩 있어야 돼. 그래야 새끼들도 잘 큰단 말이야."
"그래, 알았어. 꼭 엄마 아빠랑 같이 키우도록 하자."

딸내미 말처럼 사랑을, 생명을 키워내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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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손 잡아"
"그냥 걷자, 딸내미."
"얼른 잡아줘. 얼른"
손을 내밀었다. 딸내미 손을 잡더니.
"아빠, 나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나 잃어버리면 아빠가 너무 슬퍼지잖아."
이런... 너,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을 배운거니?
울컥. 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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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모성이나 본능이라는게 허깨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오늘같이 버려진 새끼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벽틈 사이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합판을 뜯어내 보니 꾸물꾸물 움직이는 작은 것들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세 마리는 죽어 있었다. 흙으로 고이 고이 잘 돌아가라 묻었다.
두 마리는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큰 탈은 없단다.
우유와 요구르트를 타서 먹이면 괜찮단다.
작은 주사기로 조금씩 조금씩 먹여보지만 영 시원찮다.
그래도 우는 소리가 조금 우렁차게 들린다.
그런데... 이 녀석들 어떻게 해야하나.
키울만한 데를 알아보지만 쉽지가 않다.
고양이를 기겁해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이를 어쩐다나...

 

오늘밤 젖을 먹이려 고양이 에미가 찾아오면 좋으련만.
아마도 에미는 이맘때쯤 시골길 아스팔트 위에서 심심찮게 마주치는
로드킬된 시체 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래도 그런 편이 모성과 본능이 허깨비가 아니라는 위안을 줄테니까.

 

그런데 새끼 고양이 우유를 먹이고 트럼을 시키는게
꼭 사람 새끼 키우는 것 하고 똑같다.
딸내미 갓난아이 시절이 어렴풋 떠오른다.

 

막 태어나 태반이 벗겨지지 않았던 강아지를 보며 겁을 내던 딸내미가
주사기로 우유를 먹는 고양이 새끼들에겐 귀엽다며 안아보려고 한다.
딸내미, 아빠가 너 키울때 어땠을지 너도 고양이 키우며 겪어볼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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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오신 정부 대표와 관계자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저를 초청해 주신 브라질 국민들과 지우마 호제프 대통령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저보다 먼저 여기에 서서 연설한 훌륭한 연사들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몇 가지 의문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오후 내내 우리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빈곤을 없애는 문제에 대해 논의해왔습니다.

과연 우리의 본심은 무엇입니까? 현재 잘살고 있는 여러 나라의 발전과 소비 모델을 흉내 내자는 게 아닙니까?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독일 가정에서 보유한 자동차와 같은 수의 차를 인도인이 소유한다면 이 지구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산소가 어느 정도 남을까요?

더 명확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서양의 부유한 사회가 하는 그런 소비 행태를 세계의 70~80억 사람이 할 수 있을 정도의 자원이 지구에 있을까요? 그게 가능합니까? 아니면 언젠가 우리가 다른 논의를 해야만 할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문명은 우리가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문명은 시장 경제와 경쟁이 낳았습니다. 그리고 무한의 소비와 발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시장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시장 경제가 자원을 찾아 세계 곳곳을 다니는 세계화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세계화를 통제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계화가 우리를 통제하고 있습니까?
이런 무자비한 경쟁에 바탕을 둔 경제시스템 아래서 우리가 연대나 더불어 살아가자는 논의를 할 수 있나요?
어디까지가 동료이고 어디까지가 경쟁 관계인가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번 행사의 중요성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큰 위기는 환경의 위기가 아닙니다. 그 위기는 정치적인 위기입니다.

현대에 이르러 우리는 인류가 만든 이 거대한 세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이 같은 소비사회에 통제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발전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지구에 온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바로 눈앞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량소비가 세계를 파괴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고가의 상품을 소비하는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소비가 사회의 모터인 세계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많이 그리고 빨리 소비를 해야만 합니다. 소비가 멈추면 경제가 마비되고 경제가 마비되면 불황이라는 괴물이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대량소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수명을 단축하게 하고 가능한 한 많이 팔도록 해야 합니다.
즉, 10만 시간을 사용하는 전구를 만들 수 있어도 1000시간만 쓸 수 있는 전구만을 팔아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긴 시간 사용할 수 있는 전구는 이런 사회에서는 좋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더 일하고 더 많이 팔 수 있게 하려고 ‘일회용 사회’를 지속해야 합니다.

우리가 악순환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이것은 분명히 정치 문제이고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써서 세계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동굴에서 살던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시장을 통제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제 부족한 식견으로 보면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는 정치적인 것입니다.

먼 옛날의 현자들, 에피쿠로스, 세네카, 아이마라 민족까지 이렇게 말합니다.

“빈곤한 사람은 조금만 가진 사람이 아니고 욕망이 끝이 없으며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것은 문화적인 문제입니다.
저는 국가의 대표자로서 리우 회의에 그러한 마음으로 참가하고 있습니다.

제 연설 중에는 귀에 거슬리는 단어가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수자원 위기와 환경 위기가 문제의 근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만든 사회 모델인 것 입니다. 그리고 반성해야 할 우리들의 생활방식인 것입니다.

저는 환경자원이 풍부한 작은 나라의 대표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300만 명 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1300만 마리의 소가 있습니다. 염소도 800만에서 1000만 마리 정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식량, 유제품, 고기를 수출하는 나라입니다. 아주 작은 나라임에도 토지의 90%가 비옥합니다.

제 동지들인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6시간 노동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6시간 노동을 하게 된 사람들은 다른 일도 하고 있어 결국 이전보다 더 오랜 시간 일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오토바이나 자동차 등의 구매에 들어간 할부금을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 돈을 다 갚고 나면 자신이 저처럼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는 노인이 되어 있고, 자신의 인생이 이미 끝나간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운명이 아닌가 라고요?

제가 말하려는 것은 너무도 간단합니다.

개발이 행복을 가로 막아서는 안됩니다. 개발은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어야만 합니다. 개발은 행복, 지구에 대한 사랑, 인간관계, 아이 돌봄, 친구 사귀기 등 우리가 가진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은 바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싸울 때 우리는 환경 문제의 가장 핵심 가치가 바로 인류의 행복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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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의 청옥산 정상 부근엔 600마지기라 불리우는 곳이 있다.
해발 1250미터 부근에 비닐하우스가 지어져 있다.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아 고랭지 채소들을 키우는 밭도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하지만 배추나 무를 키우던 밭들은 놀고 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다.
게다가 이곳에 풍력발전기가 들어선다고 해 그 예정지엔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이래저래 농사는 찬밥 신세다.
도대체 사람들은 무얼 먹고 살련지....

600마지기에 서 있자니 바람이 거세다.
풍력발전 할 만하긴 하다.
그런데 밭 자리에 들어서서 얻게 될 전기는 어디에 쓰일까.
바람맞은 마음이 심란하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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