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남산에 들렀다.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이 아직도 누워 있다. 아름드리 나무도 제 몸 하나 지탱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를 놀래킨 것은 쓰러진 나무들의 숫자가 아니였다. 그 큰 몸통에 비해 뿌리가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땅 속 깊이 뿌리를 박지 못하고 옆으로만 뿌리를 키우다 덜컥 이런 봉변을 당했다. 사람들이 뿌리 깊은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왔지만, 실제로 이렇게 뿌리 뽑힌 나무를 보고서야 그 말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들에게 있어 뿌리는 무엇일까. 태풍보다 더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인생살이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굳건히 버텨나갈 수 있는 깊은 뿌리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해봤다. 이번 청문회에서 추풍낙엽처럼 스러져 간 사람들도 떠오르고, 정적들의 칼날 속에서도 살아남아 명성을 드높이는 사람들도 떠올랐다. 과연 뿌리를 깊이 내리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이란 말인가. 

그 뿌리의 생김새나 뻗는 양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건강함을 뿌리뻗기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육체적 건강 뿐만 아니라 생각의 건강까지 모두 포함하는 전일적 건강함이다. 실은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 나무들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표이기에 뿌리깊음과 건강은 똑같은 뜻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다. 어쨋든 건강한 사람은 비바람 속에서도 굳건하게 생을 헤쳐나갈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건강함이란 무엇인가. 나는 공생이 건강함이라고 본다. 세포 하나하나가 경쟁 관계에 놓여 있지 않고 공생할 때만이 내 몸이 제대로 돌아간다. 마찬가지로 개인과 개인 사이, 개인과 자연 사이, 개인과 국가 사이 등등 관계 맺어짐은 공생이 전제로 되었을 때 건강함을 갖을 것이다. (생존 경쟁이나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속에서 어떻게 공생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럴 땐 동학의 한울님 이라는 뜻을 가져오면 좋겠다. 더 큰 생명을 위한 희생의 정신과 경쟁은 그 시선 자체가 판이하게 다르다) 나무가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는 것도 나뭇잎이 썩고 그 썩은 나뭇잎을 먹고 미생물이 자라고, 지렁이가 꿈틀대고, 두더지가 땅을 파는 등등 생명체의 활동이 보장 된 살아있는 땅에서 가능한 것이 아닌가. 

비바람을 겁내지 않고 인생에 당당해지기 위해서 과연 나는 얼마나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한번쯤 고개 숙여 쳐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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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10-09-07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100일이 넘었어요. 태어날때부터 지금까지 사진을 죽 훑어보니 이제야 사람 꼴을 갖췄더군요. ^^ 그 생각에 빠지다 보니 저도 사람꼴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했구요. 또한 아기가 진짜 사람꼴을 갖출 수 있도록 잘 키울지 걱정도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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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폴란의 행복한 밥상 - 잡식동물의 권리찾기
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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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구식 식사가 가져온 병폐로 인해 지금의 세상은 건강도 잃고 음식문화도 잃고 맛의 즐거움도 잃었다고 진단한다. 

이 책은 일곱 개의 어절과 세 가지 규칙으로 시작된다. 음식을 먹되, 과식하지 말고, 주로 채식을 하라. 181쪽  

 병폐를 고칠 수 있는 해결책은 정말 간단명료하다. 하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듯 보이는 세 가지 규칙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음식을 먹으라는 첫번째 규칙은 영양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요즘 흔히 접하는 비타민 첨가, DHA 첨가와 같은 영양소를 넣은 제품(음식이 아니다)들이 건강한 듯 보이며 소비자를 유혹하지만 오히려 이것들이 소비자들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자연적 음식이 아닌 인위적인 화학적 요소를 집어넣은 것들은 일종의 산업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건강에 좋은 영양소라는 것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게 됐을까.  

1977년 1월, 맥거번의 위원회는 꽤 직설적인 일련의 식사 지침을 발표하여, 미국인들에게 붉은 고기와 유제품의 소비를 줄이라고 권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육류와 유제품 업계에서 쏟아진 격렬한 비난의 폭풍이 위원회를 집어삼켰다. 위원회는 권장사항을 급히 수정했다. 원래는 미국인들에게 고기의 소비를 줄이라고 충고했었던 위원회는 실제 음식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대신 교묘한 말재주로 타협을 구했다. 포화지방 섭취량을 줄여줄 고기, 가금류, 생선을 선택하라고 말을 바꾼 것이다. ... 이제 범인은 불분명하고 보이지 않으며 아무런 맛도 없는, 그리고 정치적 관련이 없는 물질이 되었다. 음식에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이 물질은 포화지방이라고 불렸다....33쪽 .. 맥거번의 실패가 보여 준 교훈은 식사에 관해 말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재빨리 흡수되었다. 몇 년 뒤 과학한림원은 식사와 암의 문제를 조사하면서 영향력 있는 특정한 이익 세력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권장 사항에서 음식 대신에 영양소에 대해 말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34쪽 
  

영양주의는 우리에게 세 가지 해로운 신화를 믿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음식아 아니라 영양이라는 것, 영양은 과학자들 말고는 누구도 볼 수도 알 수도 없기에 무엇을 먹을 지 결정하는 데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식사는 육체적 건강이라는 협소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세가지 생각이 그것이다. ㅡㅡㅡ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생물학적 필요성 이외에도 다른 많은 이유로 식사를 해 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음식은 또한 즐거움에 관한 것이고, 공동체에 관한 것이고, 가족과 영성에 관한 것이고, 우리와 자연 세계의 관계에 관한 것이고, 우리의 정체성 표현에 관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한 뒤 부터 식사는 생물학 못지않게 문화와 관련된 행위가 되었다. 식사를 할 대 가장 먼저 육체적 건강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했는데, 이는 매우 파괴적인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식사의 즐거움을 파괴할 뿐 아니라 역설적으로 우리의 건강까지 파괴한다. .. 정말로 우리는 모두 건강음식강박증환자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16쪽 

현대 영양주의의 역사는 다량 영양소 간에 일어난 전쟁의 역사였다. 단백질이 탄수화물을 공격하고, 탄수화물이 단백질을 공격했다. 그 다음에는 지방이 등장해 탄수화물을 공격했다. .. 영양주의는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이원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언제든 추종자들이 저주를 퍼부을 악한 영양소와 반대로 신성시 여길 구원의 영양소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 현재는 트랜스지방이 악한 영양소 역할울 훌륭하게 하고 있고, 오메가 3 지방산이 구원의 영양소 역할을 하고 있다. 41쪽 

영양소별로 접근하는 영양학의 문제는 영양소에서 전체 음식의 맥락을 제거하고, 음식에서 전체 식사의 맥락을 제거하고, 식사에서 전체 생활을 제거한다는 점이다. ... 왜 영양학자들은 그런 일을 하는가. 왜냐하면 영양학을 비롯한 과학이 그런 식으로연구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분리할 수 있는 변수들을 연구한다. 변수를 분리하지 못하면, 그 변수의 존재나 부재가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말할 수 없다. ... 사물을 각 구성요소로 쪼개어 그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조사해야 한다. 미묘한 상호작용이나 전체적 관계를 무시해야 하고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거나 그와 다를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무시해야 한다. 이것이 환원주의 과학의 모습이다. 79쪽 
 

 자, 그렇다면 두번째 규칙 과식을 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보통 수력에 의존했던 거대한 돌 바퀴 분쇄법은 강이 흐르는 곳이나 적기에만 가동할 수 있었던 반면, 새로운 롤러는 증기기관 덕분에 언제 어디서든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서양인이 주식으로 먹던 곡물 하나가 시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영양적 가치가 아닌 이미지에 근거하여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런 점에서 흰 밀가루는 현대의 산업식품이며, 최초의 산업식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35쪽 

토양에서 식탁까지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일어난 음식사슬의 산업화는 화학적 생물학적 단순화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우선 토양의 생화학을 형편없이 단순화시킨 화학비료가 있다. 리비히가 식물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세가지 다량 영양소- 질소 인산 칼룸을 발견하고, 프리츠 하버가 화석연료에서 질소비료를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한 이래, 농경지의 토양은 갑자기 다량 투입된 이 세가지 성분 외에 다른 성분을 거의 공급받지 못했다. ... 식물들은 매일 이 화학적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살 수 있지만, 병충해에 취약해지고 영양학적 질도 떨어지게 되었다. 142쪽 

질이 낮은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결핍된 영양소를 찾아 더 많이 먹게 된다. 그 노력은 헛될 테지만, 어쨋든 식품업계에는 많은 이윤을 가져다 준다. 153쪽 

음식사슬의 토대가 녹색 식물에서 씨로 옮겨간 것은 서구식 식사라는 이름 아래 우리의 음식 시스템에 일어난 모든 변화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로 보인다. ...잎에서 씨로 옮겨간 변화가 우리 몸 안에 있는 오메가 3와 오메가 6의 수치보다 훨씬 큰 양향을 미쳤다. 이 사실은 현대 식사에 정제탄수화물이 범람하게된 이유와 많은 미량 영양소가 부족하게 된 사연 그리고 총칼로리가 크게 증가한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잎에서 씨로. 이것이 완전하지는않다고 해도 거의 만물 이론에 가깝다고 하겠다. 164쪽 

자연이 주는 음식이 아닌 화학성분으로 가득찬 영양소만을 먹기에 항상 허기진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두번째 규칙은 다시 첫번째 규칙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세번째 규칙 채식을 하라는 것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말이다. 특히 풀이 아닌 곡물과 사료를 먹고 자란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다시한번 영양주의의 함정에 빠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 그럼 이 세가지 규칙을 가지고 식사를 해볼까. 첫번째 규칙 음식을 먹기 위해선 우린 요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요리는 지역 농부로부터 음식을 사면서 생기는 건강을 위한 중요한 결과 가운데 하나다. 198쪽 

요리는 순수하게 문화적으로 기능하여, 사회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다른 사회와의 차이를 강조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런 문화적 목적은 왜 요리에서 변화에 저항하는 경향이 나타나는지 설명해준다. 이민자의 가정에서 동화의 마지막 증거를 찾을 수 잇는 곳이 찬장이라는 말도 있다. 음식 심리학자 폴 로진이 지적했듯이, 변하지 않는 향신료들 지중해의 레몬과 올리브기름, 아시아의 간장과 생강, 심지어 미국의 케첩까지도 이질적인 맛으로 인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지 모를 타문화의 새로운 음식으 흡수하기 쉽게 만들어준다. 다만 식사는 다른 많은 문화적 관행들보다 자연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한쪽에는 인간의 생리 기능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자연 세계가 있는 것이다. 요리에서 음식을 조합하는 특정한 방식과 음식을 준비하는 특정한 방식은 식사와 건강과 장소에 관한 축적된 지혜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전통적 요리법은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인데, 그 독창성은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야 현대 과학에 의해 종종 밝혀지고 있다. 217쪽 

식사법은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고 보존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다. 따라서 미국화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각기 다른 식사법이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음식 선택을 과학적인 방식에 맡긴다는 것은 음식에 민족적 색채와 역사적 내용을 없앤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 이런 점에서 보자면, 과학적 식사법은 미국인들의 집 앞에 깔려 있는 잔디 같은 것이다. 알다시피, 미국의 단조로운 집 앞 잔디밭은 차이를 덮고 풍경을 미국화 하기에 이의 없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두 경우 모두 미적 다양성과 감각적 쾌락의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는데, 사실 그런 것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74쪽 

장황한 설명인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한번 요약하면 음식을 먹자는 것 단 한가지인 셈이다. 자, 그럼 우린 이제부터 행복한 밥상을 차릴 준비를 해보자. 우리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나아가 지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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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디아스 매듭 -  제우스 신의 도움으로 프리지아의 왕이 된 고르디아스가 이를 기념하여 자신의 이륜마차를 견고한 매듭으로 제우스 신전에 묶어 두었는데, 이것을 푸는 사람은 온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신탁이 있어, 많은 왕들이 매듭을 풀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몇 백 년 후, 그 이야기를 들은 젊은 왕은 신전으로 가서 자신의 칼로 단번에 매듭을 내려쳐 끊어 버렸다. 그렇게 몇 백 년간 아무도 풀지 못했던 매듭이 풀리게 되었다. 그가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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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10-09-03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제 4킬로그램 막 넘어서려 해요 ^^ 엄마, 아빠 잠을 못자게 칭얼대는 것만 빼면 참~ 귀엽겠는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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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워크가 그 세를 확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변화를 예고한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이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그런데 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그만큼 외로운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라고.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논쟁을 하거나 다투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또는 자신의 의견에 동조할 수 있는 사람들로 끈이 이어져 있다. 나의 말 한마디에 고개를 젓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안아주듯, 머리를 쓰다듬어주듯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들 말이다. 바로 외로운 사람들이다. (물론 이 속에서 사업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마당발 개성을 더욱 잘 발휘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건 어쩔 수 없다. 이 현상을 이렇게 바라보는 나의 기질상의 문제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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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려 연 수입이 3억 7000만원에 달하는 청년에 대한 기사가 회자되고 있다. 동영상을 클릭한 숫자에 따라 유튜브와 5 대 5의 수익배분을 나눠갖음으로써 큰 수입을 얻게 됐다. 또 최근엔 유료 앱 콘텐츠를 개발해 단번에 8000만원의 수입을 올린 사람이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앱 하나 잘 만들거나 동영상 하나 잘 만들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빠진다. 마치 10여년 전 로또 하나 잘 맞으면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처럼. 물론 로또야 순 운이지만-누군가는 복권을 20년 30년 꾸준히 샀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성실함이 행운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근면, 성실의 이데올로기가 확률의 게임에까지 개입된다- 앱이나 동영상은 창조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개개인의 노력이 밑바탕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모두 다 큰 것 한방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한 방에 목말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이 한방의 기회가 점차 많아지고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단순히 천운에 기대는 것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인생역전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산다. 그러나 유튜브 동영상이나 앱 콘텐츠나 주식이나 부동산이나 한 방은 결코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다. 그 기회가 넓어지고 있는 건 분명 사실이고, 어찌보면 자본주의의 발달은 이런 기회의 넓어짐으로 설명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역시 모두에게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행복하다면 한 방에 대한 목마름이 그토록 크진 않을 것이다. 생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도 한 방의 유혹은 그 힘을 많이 잃을 것이다. 사는게 힘들고 일이 자아의 완성이 아니라 입에 풀칠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수단일 때 한 방은 크게 다가온다. 한 방이 보다 더 크고 보다 더 쉽다고 느껴질 수록 우리는 진리나 행복이라는 단어를 잊은 채 오직 한 방을 그리워한다. 그 한 방에 목메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를 가끔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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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찾아서
박정석 지음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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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떠나고 싶다. 라고 하루에도 수십번 되뇌인다. 떠나고 싶은 이런 강한 욕망에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밥벌이라는 핑계를 대고 숨는다. 안주한다. 소심하게도. 대신 여행책이나 읽으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제길, 나도 이렇게 떠나야 하는데... 이 책 쓴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여행을 시작했을까. 밥 먹고 살 걱정은 없는걸까. 엉뚱하게도 저자에게 화풀이 한다.  

누군가는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기에 참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휴가야 말로 최고의 여행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일상을 포기하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길고 긴 여행을 다녀온 후 그의 일상은 새로이 만들어져야만 한다. 사람들은 후자를 꿈꾸어도 용기를 내지 못한다. 휴가라는 짧은 여행에 만족할 뿐이다. 그래서 휴가는 항상 계획이 동반된다. 그 계획마저 귀찮은 사람은 패키지를 떠난다.  

이 책의 저자는 인도네시아 남동쪽 현지인들이 오라라고 부르는 코모도 드래곤을 찾아 여행을 시작했다. 일종의 도마뱀 종류로 인도네시아인들조차 일부러 찾는 곳은 아니다. 패키지와는 완전히 상반된 자유 여행이다. 그 와중에 패키지 여행자들을 마주치지만 그는 이들을 결코 얕보지 않는다. 여행가로서의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머나먼 과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 이분법적인 사고가 횡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편견이라는 기제가 인간의 작고 가엾은 뇌에 가능한 무리를 적게 주는, 주어진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동시에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두뇌의 구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즐겨 편견을 갖는 것은 그것이 자동 엘리베이터만큼이나 편리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단추를 누르는 대신 가파른 계단을 걷고 걸어 목적지인 결론에 닿으려고 하는 사람은 다리 근육 유지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소수뿐이다. 여행과 관광을, 배낭족과 트렁크족을 굳이 구분하려고 하는 시도 또한 워낙에 분류 - 주어진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데 필수적인 전제이다 - 를 좋아하는 인간 본성에 이분법의 편리함이 중첩된 결과이리라. 한 인간이 지적인 훈련을 쌓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미덕이라면 선명한 검은새과 흰색의 양극단 사이에 다양한 층층의 회색빛을 띤 스펙트럼의 영역을 일구어 내는 것이다. 뇌의 구조를 본래와는 다르게, 자체 내의 효율이 아니라 타자의 눈을 닮은 합리성을 추구하도록 바꾸어가는 것. 우리 몸에 각인처럼 새겨진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 마침내 중력을 이겨내는 것. 193쪽  

코모도 섬으로 가기 위해선 자바, 발리, 롬복, 숨바와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저자는 발리, 롬복, 우붓, 메단에서 머물다 목적지인 코모도에 가지 못한다(않는다?). 하지만 후회하는 모습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코모도 섬으로 떠날 수 있는 바닷가 민박집 앞에서 만난 프랑스 할머니의 말이 그의 심정을 헤아리게 만든다.  


서두를 필요는 전혀 없어. 그건 과업도 아니고 뭣도 아니니까. 여행은 의무나 목적이 아니고 오로지 즐거움이야. 집에서는 미처 모르던 것을 길에서 찾는 일이지. 너무 조급해하지만 않는다면, 시간만 넉넉히 둔다면, 너는 어디든지 갈 수 있을거야. 원한다면 세상 끝까지라도. 280쪽
 

호숫가 생활이 평화로운 이유는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바다에서와는 달리 서핑도, 다이빙도 할 수가 없었다.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는 것 이외에는 산책과 낮잠, 독서와 수영이 전부였다. 흙냄새가 풍기는 민물고기 요리와 꿀처럼 달콤한 망고를 까먹기에 지친 나는 이만 호수 마을을 떠나 북쪽의 메단으로 가기로 했다.  220쪽  

맞다. 여행은 즐거움이다. 저자가 걱정하고 있지만 사고의 편의를 위해 나도 조금 분류를 해봐야 겠다. 여행의 종류는 크게 역사, 자연, 문화를 맛보는 세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개성이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것이 다를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시장풍경이나 생활상을 엿보는데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은 문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산과 바다, 강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자연, 나와 다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문명을 발전시켰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들은 역사를 중시할 것이다. (휴양은 자연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이 세가지를 단 한방에 해결해버린다. 오랜 여행의 공력이다.  

낯선 시간과 공간을 오가며 현기증을 느끼는  몇 초의 순간이야말로 내가 알고 있는 극도의 쾌락과 사치의 정점이었다. 252쪽 
 

 역사, 자연, 문화 모두 그 낯섬의 대상일 뿐이다. 때론 여행을 하는 순간 여행자 자신이 바로 낯선 모습이 될 수도 있다.

환경은 인간을 바꾼다. 모범생인 G는 표정마저 이전과는 달라진 것 같았다. 따분한 내가 아닌 다른 어떤 인간, 실제보다 훨씬 더 멋지고 자유로운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이 발동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실재란 개인과 환경 간의 지속적인 관계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한 것일까. 내가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을 때 G는 들릴락말락 아주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행복에 겨운 사람처럼. 115쪽 

그래서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며, 그 탈출을 통해 즐거움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일상이 즐거움 그 자체라면 어떨까. 일상이 여행같다면 어쩔까. 헛된 꿈일까. 하나의 망상일 뿐일까. 

사람들은 용을 일컬어 이 세상에 없는 상상 속의 동물이라고 말한다. 용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은 모두들 단 한 번도 그 동물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는 것이라고, 세상 어느 구석진 곳을 찾아가면 혹시 있을지도 모르지만 흔히들 없다고 믿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중국인 루쉰의 말대로 희망과도 같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땅 위의 길과 같아서, 사실 땅 위에는 애초 길이 없으나 걸어가는 사람들이 생기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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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도 좋은 여행이 있단다.

개발도상국을 여행함으로써 인류의 행복과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여행을 통해서 현지에 도움을 주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로 현지에서 달러를 씀으로써 곤궁한 현지인들의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운영하는 숙소나 교통수단의 이용을 가급적 피하고, 거대한 공룡과도 같은 다국적 기업이 운영하는 곳 또한 가능한 한 이용하지 않는 편이 바람직하겠다. 즉 현지인들이 소규모로 운영하는 곳에 돈을 쓰자는 말이다. 여행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두 번째 방법은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덜 알려진, 혹은 왜곡되게 알려진 지역을 여행하고 이해함으로써 그간의 몰이해와 편견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며, 현지인과 대화를 해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아무리 수줍은 여행자라고 해도, 가장 보수적인 여행지라고 해도, 낯선 이와 대화할 기회는 종종 찾아오기 마련이다. 일부러 피하지만 않는다면.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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