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이 남긴 글은 무척 많다. 마음 속 깊이 주옥같이 남을 명언들도 부지기수다. 그중에서도 혼란스럽던 내 영혼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는 한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조계산 산방에서 수행을 하던 시절. 한 스위스의 철학자가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그 철학자가 "스님이 혼자서 이런 산중에 사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법정 스님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내가 산중에서 사는 일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아직까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어떤 틀에도 갇힘이 없이 그저 내 식대로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가 사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는 걸 보면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있기에 오히려 먼지투성이 사회의 본모습을 자각하게 만든다.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움. 법정스님이 우리에게 준 또다른 가르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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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똥은 향긋하다. 구린내가 나지 않는다. 향기의 비밀은 똥을 구성하는 인돌이라는 구성 성분에 있다. 인돌의 성분이 적을 때 자스민과 같은 향을 내뿜는다. 하지만 인돌의 성분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 많아지면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코끼리 똥은 적은 인돌 덕분에 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향은 사자들의 성 호르몬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코끼리 똥을 본 사자들은 몸에 비비기도 하고 심지어 핥기도 한다.  

지난 11일 법정스님이 입적했다. 무소유라는 책을 통해 알려진 법정스님은 가시는 길마저 향기를 뿜는다. 법정스님이 말한 무소유는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기꺼이 나눠 쓰는 것이 무소유다. 마치 코끼리 똥의 인돌같이 필요한 것만 가질 때는 그 사람에게서 향이 날 것이요, 필요한 것 이상을 소유할 땐 고약한 냄새가 날 터이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사용가치와 교환가치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본다) 법정스님의 다비식이 치러진 비가 오는 일요일. 곰곰히 생각해본다. 향기로운 사람으로 남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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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본즈 - The Lovely Bones
영화
평점 :
현재상영


부산 여중생 살해 사건으로 항간이 떠들썩하다. 청소년 성폭력에 살인까지 벌어진지 보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피의자가 잡혔다. 하지만 피의자가 범죄를 전면 부인함에 따라 진짜 범인인지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성범죄의 90% 이상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딸 낳아 기르기 겁난다는 부모들의 한탄이 허투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영화 '러블리 본즈'는 성범죄의 희생자인 한 소녀가 죽은 뒤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을 담았다. 현실과 천국 사이에 놓인 경계선에서 천국으로 가기를 주저하는 소녀의 안타까운 마음이 그를 둘러싼 주위 배경으로 표현됐다.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환상적인 모습은 때론 아름답고 때론 어두우며 또 가끔은 숨막히도록 겁난다. 범인이 잡히기를 바라는 증오심과 가족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애달픔이 교차한다. 또한 막 사랑을 불태우고자 했던 남자친구와의 첫키스를 완성하고 싶은 들뜬 마음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영화는 죽은 소녀의 심리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마음들이 오히려 영화를 어둡게 만든다. 소녀가 자신의 사체가 숨겨진 곳에서 나와 천국으로 향한다는 해피엔딩 아닌 해피엔딩도 영화의 우울함을 지울 순 없다.  

영화는 청소년 성범죄의 가해자는 항상 이웃에 있다는 걸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범죄자는 단 한번의 범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또한 피해자의 가족들이 얼마나 큰 슬픔에 처하는지도 보여준다. 딸의 죽음을 함께 극복하지 못하고 잠시 떠나 있어야만 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 속에서 그 슬픔의 크기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죽은 소녀가 처한 사후세계에 있다. 사후 세계라는 것을 결코 볼 수 없는 현실의 인간들은 항상 상상 속에서 그 세계를 만들고 싶어한다. 영화는 그 사후 세계를 만드는데 온힘을 쏟았다. 따라서 죽은 뒤의 모습은 관심사가 아니라는 공자의 말씀처럼 사후 세계를 알고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그다지 흥미없는 영화가 될 듯 싶다. 다만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희생된 소녀의 천국으로 가기까지의 심리가 마음에 여운을 남길 것이라 여긴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도 범죄자들은 결국 영화처럼 파국으로 치닫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진정 그들의 마음 속에 그 어떤 뉘우침도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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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럿거스대 엘리자베스 트라이코미 박사팀이 불평등을 못참는 뇌 보상회로의 활동을 기능성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로 촬영한 논문을 영국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지금까지 심리학 실험으로만 증명돼 왔던 인간 심리의 기제가 뇌의 영역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심리학 실험 '최후통첩 게임'은 1999년 인도네시아에서 실제로 행해진 것으로 불평등에 대한 반응이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진짜 화폐로 20만 루피아(약 250만원) 를 실험자 한 명에게 건네고, 이 실험자는 다른 실험자에게 배분을 한다. 만약 다른 실험자가 그 배분을 인정하면 둘은 그 배분대로 돈을 갖게 되고, 인정하지 않으면 둘 다 돈을 못받게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두번째 실험자는 어떻게 배분되더라도 공짜로 얻는 돈이기 때문에 승낙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실제론 99대 1이나 98대 2의 불평등한 배분에 대해선 불가를 외치는 사람이 많았다. 자신의 이득을 포기하더라도 불평등을 참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과 비슷한 실험 과정에서 사람의 뇌가 활발히 작용하는 부분을 발견한 것이 이번 미국 럿거스대 박사팀의 논문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백만장자들의 수입이라거나 유명 스포츠 스타나 영화배우 들의 년간 수입에 입을 쩍 벌리면서도 한탄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도대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는냐고 생각하는 기저엔 차이는 인정하지만 그 정도까지의 차이는 인정할 수 없다는, 그것은 불공평하다는 감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과연 어느 정도 수준까지의 불공평함에 대해서 인정하거나 또는 분개하는 것일까. 최후통첩 게임의 경우 몇 대 몇 정도로 나누었을때 최대한 용납 가능한 수준이었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용납 수준이란 것이 본능적인 것이지, 사회적, 교육적인 환경에 영향을 받아 변화 가능한 것인지도 따져보아야 할 문제이지 않을까. 자본주의라는 체제에서 살던 사람과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 던 사람의 기준도 똑같은지 실험해 본다면 유익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자극하는 욕망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불공평을 수긍하는 태도도 유연(?)해지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도시와 농촌, 세대간의 차이는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싶다.  

반면 우리는 때론 복불복(1박 2일에서 보여지는 것처럼)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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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 카인드 - The Fourth Kin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I want to believe" 

마니아층을 만들었던 미국 드라마 X파일의 남자 주인공 멀더, 그의 사무실 벽엔 포스터가 붙여져 있고, 그 위엔 나는 믿기를 원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진실과 거짓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서, 다시 믿음과 불신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에의 욕구를 드러내는 이 글귀는 X파일이라는 드라마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X파일은 여동생이 사라진 걸 목격하고, 그와 비슷한 사례들을 통해 외계인이 벌이는 납치행각을 증명해 보고자 했던 멀더와 논리적 사고를 통해 설명하고자 했던 스컬리의 대립구도로 흥미를 끌었다. 영화 <포스카인드>는 마치 X파일의 프롤로그처럼 느껴진다. 포스카인드는 외계인에 의한 지구인의 납치를 말하는 것으로 외계인을 만나는 퍼스트 카인드로 시작해 점차 그 강도가 세진다. 

영화 속에서는 40년 동안 알래스카에서 일어난 실제 실종 사건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FBI의 조사를 통해서도 밝혀지지 않았던 실종사건들을 타일러 박사가 자신의 환자들의 최면치료를 통해 밝혀보고자 했던 것을 보여준다. 실제 환자들의 녹화장면처럼 보이는 화면과 배우들이 연기한 화면을 분할 편집해 보여줌으로써 그 사실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포스카인드의 장점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외계인 납치는 믿음의 영역임을 암시했던 X파일과 달리 진실과 거짓의 영역일 수도 있음을 편집구도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타일러 박사가 찍은 환자들의 녹화테이프에선 새벽이면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하얀 부엉이를 목격하게 됐다는 공통점과 환자들이 갑자기 공중으로 떠오르거나 방에서 억지로 끌려나가는 장면이 스크래치 되어 보여진다. 심지어 우주선인듯한 모습의 발광체도 집 밖에서 비쳐진다. 이런 화면들을 계속 보게 된다면 사람들은 외계 생명체에 대한 증거로 충분히 인정할 듯하다. 그런데 이 화면들은 정말 진짜인가. 페이크 다큐와 다큐의 경계선, 다큐와 픽션의 경계선 사이에서 영화는 관객들을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을 본다. 그래서 멀더는 그토록 믿기를 원했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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