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의 그 한결같은 마음을 멋들어지게 노래하고 있는 국민가요 <님과 함께>의 한대목이다. 생각해 보자,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사랑하는 님과 함께 소박하게 농사짓고 사는 일이라니! 가던 길 멈추고 상상해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런데 노래야 모두가 즐겁지만, 그런 마음의 울림에 깊이 공명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귀농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실제 농사를 지으러 농촌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지경이다. 왜 그럴까?
귀농은 간단히 말해, 농(農)촌으로 돌아가는(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수많은 오해와 숨겨진 진실, 막막한 두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져 나오는 그리움, 주변의 반대와 또 한편의 격려, 현실적 생존의 문제와 실존적 가치관의 문제 등등. 하나하나 확실히 짚어서 역으로 튼튼한 징검다리로 만들어야 할 문제들이 너무도 많다.

도시에서 귀농을 준비하는 단계를 포함해서, 실제 귀농을 해서도 필요한 덕목들을 정리해 보았다. 이 글은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짧고 부족한, 게다가 다소 과격한 길잡이일 뿐이다. 귀농이라는 아름다운 꿈이자 냉정한 현실을 내 것으로 만드는 길고 긴 과정에 대한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다. 어쨌든 수년간의 경험이 녹아든 결과물이고,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향한 애정을 담은 글이기도 하다.
 
 
귀농하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텃밭농사 - 주말농사를 시작하라.
귀농을 해서 백평 농사를 하건 만평 농사를 하건, 무언가를 심고 거두게 될 것이다.
도시생활 내내 흙과 멀어진 채로 살다가, 귀농을 하면 그때 가서 거창하게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이라면 문제가 있다.
재를 묻혀서 심는 씨감자의 경험, 알이 맺히지 않는 배추농사의 경험은 부지런하면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이다.
여건을 탓하지 말고 좀 멀어도 좋으니, 아이들과 주말마다 교외로 나가보자. 옥상이 있다면 화분에 고추나 배추를 심어보자.
지하철에서 스포츠신문을 볼 때가 아니다. 영농서적을 외우듯이 읽어보자. 5평 농사의 풍성함을 만끽해 보자.
귀농의 필수조건이다.
 
준비 기간 동안 귀농교육을 받고, 내가 원하는 정보를 모으라.
도시에서 귀농 준비를 하는 순간 귀농은 이미 시작되었다.
(사)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운영하는 생태귀농학교에 참여하면 많은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를 얻게 된다. 간혹 귀농교육을 쉽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물론 강의나 다른 이들의 사는 이야기보다는 내가 직접 부딪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농사만큼은 혼자서 되는 일이 없다. 농사는 원래 하늘이 짓는 것이고, 이웃에게 도움을 받지 않으면 시작할 수도 없다. 하늘이든 이웃이든,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는 농사건 귀농이건 불가능하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귀농은 고달프기만 하다.
귀농과 관련된 정보나 영농정보도 넘쳐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인터넷 덕분에 정보의 홍수라, 오히려 옥석을 가리는 일이 더 힘들 지경이다. 그 중에 내가 원하는 정보만 집중해서 찾고 스크랩해 보자.
정작 귀농해서는 자료나 정보를 폭넓게 모으는 일이 쉽지 않다. 철을 좇아 사는 일로만 하루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준비하는 두툼한 자료뭉치는 분명히 큰 자산이 된다.
 
철학적 고민, 시대와 호흡하는 정신적인 무장이 중요하다.
철학적 고민이라니, 좀 생뚱맞을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말하지만, 귀농은 삶의 전면적인 전환이다. 단순히 샐러리맨에서 농부로 직업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나와 내 가족의 생활양식이 농촌생활에 어울리게 변해가는 과정 속에서, 무수한 철학적 고민이 뒤따른다.
예를 들어, 도시 친구들에게 감자 한 박스를 팔아보자.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그 친구는 나의 수고와 땀을 모른다. 감자가 알이 작다느니 남아서 썩었다느니, 속 썩는 이야기 듣기 십상이다. 어쩌다 생산을 많이 해서 시장에 내다 팔아볼라치면, 시장에 비집고 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농민들이 왜 수확 철에 더 속이 터지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게다가 수해나 태풍이라도 얻어맞으면? 그래도 나는 귀농을 행복하다 할 것인가? 그 때, 나의 준비된 철학, 단단한 가치관이 필요하다.
이 글 처음에 적은 노래가사에 나오는 저 푸른 초원도, 그림 같은 집이 서 있을 곳도, 다름 아닌 바로 오늘의 농촌일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농촌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다. 노래에 나오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의 농업 순환은, 다름 아닌 WTO 체제 아래의 한국농업 위의 순환이다. 귀농이라는 그림을 그리는 도화지는 시공을 초월한 순백의 종이가 아니다. 바로 오늘의 힘겨운 농촌과 무너져 가는 농업, 그 위에다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민을 가서 농사짓고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부터 달리 생각하고 공부해야 한다. 우리의 농업?농촌의 역사와 현실과 미래를 고민하되, 애정을 가지고 해야한다.
 
귀농을 경제적인 관점으로 접근하지 말라.
결론적으로, 귀농을 해서 도시생활과 같은 경제적 수준을 유지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자연이 주는 수많은 기쁨과 혜택이 또 다른 수입이다. 이걸 누릴 수 있으려면 앞서 말한 철학적 고민이 받쳐주어야 한다. 도시에서는 식의주와 건강문제, 교육문제에 들어가는 돈은 밑도 끝도 없다. 모두 돈과 맞바꾸어야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다르게 접근할 수 있고 풀 수 있다.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엄청나게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 하는 이야기들은 귀농본부에서 펴내는 계간지 <귀농통문>에 가득하다.
대체 자금이 얼마정도 있어야 귀농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물론 답은 없다. 그렇지만 굳이 답을 해야 할 때는, 몸 누일 집과 50평 텃밭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 이상은 옵션이다. 황토집을 짓든 시설농사를 하든 소를 키우든 그건 모두 옵션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다들 웃는다. 전혀 웃을 일이 아닌데 말이다.
도시생활을 고스란히 이동한 귀농을 생각하면 자금은 수억이 들 것이다. 도시에서 바쁘게 일하던 것처럼 농촌에서도 일하려고 한다면, 우선 좀 멈추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귀농설계는 그곳에서 다시 해야한다. 물론, 도시에서의 설계도 필요하지만, 농촌에서는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특히 땅 사는 일, 집 짓는 일은 되도록 천천히 신중하게. 귀농은 치킨집 신규창업과는 전혀 다르다. 속도와 경쟁이 아니라 느리게 천천히 사는 일이다. 자금을 많이 들이면, 그만큼 바빠지고 고달프다.
 
농사로 돈 벌 수 있다는 생각은 접어라.
간혹, 농업을 통한 성공사례가 소개된다. 부디 현혹되지 마시기를. 농사꾼 1~2%의 특출난 사례가 우리의 것이 되기는 어렵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꿈도 꾸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다. 그런 분들의 경우,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한다. 아니면, 정말 시기적절한 아이템이 있어야 한다. 귀농을 하려는 이들은 그 줄의 맨 끝에 서 있다.
농사는 투기가 아니다. 한탕으로 되는 농사는 없다. 사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귀농을 하지 않아야한다. 수십 년 유기농업을 하시는 선생님들 가라사대, 돈 버는 작물은 없다. 땀 흘린 만큼만 거두고 먹는다는 진리에만 충실하면 된다. 귀농을 해서는, 돈을 번다는 개념이 달라야한다. 자급자족만 할 수 있어도, 좀 거칠게 말하면 ‘시골에서 붙어 있을 수만 있어도’ 성공적인 귀농이라고, 귀농자들은 말한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다면, 이를테면 소를 규모 있게 키우거나 시설작물 같은 것을 해보고 싶으시다면, 좀 천천히 바닥부터 일을 익힌 후에 투자를 하시라고 곡 말씀드리고 싶다. 프로 농사꾼들이 자기 노동을 최대한 들여서 농사지어도 될까말까 한 일이다. 농업은 계산 잘 해서 투자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며, 거기 내 땀이 깃들여야 한다.
농업소득에 관해서 유념할 일은 유통에 관한 문제이다.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제때 제값에 팔지 못하면 그만큼 허탈한 일이 없다. 귀농자들은 어떤 면에서는 유리한 면도 있다. 도시 연고를 잘 활용하면 되지만, 그게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 유통망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농민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작목반에 가입하거나, 유기농 생산자로 인정을 받아 생협이나 한살림 생산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을 채우려면 게으를 수가 없다.
농사로 돈 버는 방법! 그 어떤 작목이든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능력이 있으면 가공을 해서 부가가치를 높이고, 친지든 조직이든 든든한 유통망에 기대라는 말 외에 더 보탤 말은 없다.
 
농촌에는 농사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농촌에서 직업을 이어가라.
귀농을 하게 되면 꼭 농사를 지어야 할까? 꼭 농사꾼이 되어야만 할까?
아니다. 농촌에는 농사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귀농도 농사를 지어야만 귀농은 아니다. 시골에서는 그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더라도, 10평 채마밭 가꾸는 일은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예를 들면 더 좋을 것 같다. 우선 교사들은 그런 면에서는 유리하다. 부부 중의 한사람이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일을 하면 여러모로 수월한 법이다. 아내는 읍내에서 약사로 근무하고 남편은 농사꾼으로 땀 흘리는 부부들도 있다.
남자들은 지역 내의 농업관련 활동을 전업으로 할 수도 있다. 영농조합법인이나 생산자공동체 사무 일을 보거나, 트럭을 몰고 배송을 하러 다니는 귀농자들도 있다. 수입도 수입이지만, 지역 정보를 두루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여자들은 여성농업인센터 등에서 방과 후 아이들을 지도하거나, 면사무소에서 농민들 컴퓨터교육을 계약직으로 하기도 한다. 여하튼 이런 일들은 도시에서 일을 해 온 귀농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농촌에는 젊은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농번기에 품을 팔거나 산불감시원 등을 할 수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마을 일원으로서 충분히 인정을 받아야 가능하고, 생활의 보조 수단이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일들도 얼마든지 기쁜 마음으로 매이지 않고 자원봉사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몇 평 농사이든 평수는 상관없이, 역시 귀농은 역시 내 농사가 제 맛이다.
 
지역 관공서나 기관 및 조직을 적극 활용하라.
귀농을 지원하는 안정적인 지원시스템은 없다. 스스로 돌파해 나가야 한다.
시골 면사무소는 도시의 동사무소와 같은 레벨이지만, 농촌생활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면사무소 직원과 통하면, 상당한 지역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농업기술센터의 역할도 무시 못 한다. 도시에서야 가급적 관공서 안 가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농촌은 관공서와 친해질수록 좋다. 실질적인 귀농자 지원 방안은 각 면 단위에서 쥐고 있다. 속된 말로 자꾸 찔러야 한다.
농촌의 특징은 무수한 민간조직이 있다는 것인데, 웬만한 촌부들은 이장이나 무슨무슨 모임 회장을 안 해본 분이 없다. 생활과 직결되는 작목반부터, 대체 무슨 일들을 하는지 알길 없는 동호회와 오래된 농촌조직들이 있다. 이를 활용할 수 있다면 정착에 도움이 된다. 후견인들을 얻는 것이다.
귀농자들은 붙박이 농민들과는 달라서, 좋은 교육이 있다면 전국 어디든 달려간다. 또 도시에서의 경험 때문에 무슨 박람회니 교육이니 하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대충 알아본다. 근래에는 모든 군에서 친환경농업 육성을 과제로 삼고 있어서, 상당한 교육과 투자를 하기도 한다. 여기 잘 참여하고 활용하기만 해도 의외의 수확을 얻을 수 있다.
 
귀농지 선정은 연고지와 인맥을 적극 활용하고 인내하라.
귀농지 선정만큼 막막한 일이 있을까 싶다. 심지어 지도를 펴고 눈감고 찍은 곳부터 돌아보았다는 분도 있다. 어디를 어떤 방식으로 다녀야 내 귀농지를 찾을 수 있을까.
고향으로 귀농을 할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고향을 피하는 이유야 알지만, 고향은 또 다른 면으로 품어주는 곳이다. 이제는 농촌 어르신들의 귀농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아는 귀농자가 있는 지역이면 좋다. 귀농자의 마음은 귀농자가 아는 법이다. 서로 의지할 수 있다. 그런데 꼭 주의할 점들이 있다. 우선, 귀농자라고 해서 나를 도와줄 의무는 없다. 그런데도 용케 인연을 얻어 귀농자와 함께 마을을 돌아보고 술 한잔 나누게 된다면 정말 감사할 일이건만, 당장 내 목표가 급하다고, 그런 소중한 인연을 허술하게 생각하고 마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한번 만난 귀농자와는 자주 안부도 묻고, 농산물도 앞장서서 팔아 주면서 더 깊이 만나기를 바란다. 행여 사귀기도 힘들고 할 이야기가 없을까 걱정 마시라. 농사 이야기만큼 사시사철 무궁무진한 주제가 어디 있으랴.
그 외 몇 가지 요령은 있다. 우선 대상 지역을 최대한 좁히는 것이 좋다. 하나의 군만 집중 공략하라. 지역 부동산정보지 같은 것도 활용하고, 면사무소 직원을 잘 만나면 같이 다니기도 한다. 마을 이장을 찾아갈 때는 빈손 말고 음료수 한 박스는 사들고 가기 바라고, 그 지역 토박이 농사꾼을 알면 제일 좋다. 귀농지를 찾는다고 차 몰고 다니는 마음이야 절절하지만, 시골 사람들 눈에는 부동산 투기하려는 사람과 구별이 가지 않는다. 그러니, 제발 땅값부터 묻는다든지 할 일이 아니다. 뭐 좀 있는 행세는 제발 하지 말기를.
우선 땅은 빌려서 농사를 짓기를 권하고 싶다. 마을 어른들은 한해 농사 하는 것 보고서야, 이 사람이 농사를 짓겠다는 것인지 아닌지를 믿는다. 그러니 첫해 농사는 정말 열심히 해야한다.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하면 된다. 그 다음부터는 농지를 빌려주겠다는 사람, 내 땅을 싸게 사라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일년이면, 옆 마을이나 산너머 마을 정보도 얻게 된다. 사실 일개 면 범위의 정보면 충분하건만, 우리는 천여평 농지를 얻기 위해 전국을 헤매는 것이다.
땅을 사는 일과 집을 짓는 일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촌생활 속에서 얻는 정보는 살아있는 정보이다. 또, 살면서 내가 어떤 형태의 귀농을 할 것인가가 좀더 구체화되면, 농지와 집에 대한 시각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실제로 많은 귀농자들이 거처를 옮긴다. 밀려나는 경우도 있지만, 더 좋은 선택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귀농지를 찾는 일은 배필을 찾는 일과 같다. 아주 극적인 인연이다. 노력하는 필연과 하늘이 내리시는 우연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내 맘에 꼭 맞는 귀농지는 없다. 직업상 수백 동네를 다녀 보았지만, 집과 농지와 산과 물이 어우러진 정말 기막힌 곳이라 생각한 집은 서너군데에 불과하다. 고향은 어디인가? 정들면 고향이다. 나의 귀농지는 어디인가? 정들면 그곳이 최고다.
 
 
귀농을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마을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성공적인 귀농의 최후 비결도 여기에 있다.
귀농과 전원생활의 차이도 여기에 있고, 귀농의 최종 목표도 여기에 있다.
그 마을 사람이 되는 것. 귀농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마을 사람이 되기 위해 중요한 점은, 마을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욱 몸과 마음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열쇠는 애정과 믿음에 있다. 농촌이라는 이름 안에 있는 수많은 요소들에 대한 애정과 그 중에서도 농민에 대한 믿음. 결국 사람을 믿지 않으면, 귀농이고 뭐고 풀릴 일도 없다.

흙이야 늘 정직하다. 땀 흘린 만큼 돌아온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내가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들이 내게 기대는 아름다운 관계를 위한 노력은 꼭 뿌린 대로 돌아오지는 않지만, 힘들지만, 즐거운 숙제이다. 그 과정이 귀농이다.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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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이가 전하는 태평농 이야기
이영문 지음 / 연화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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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적의 사과'는 농약 한번 치지 않고 키워낸 사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풀들을 함께 '놔 둠'으로써 흙을 살려서 사과를 살리는 이 이야기는 많은 것을 반성하게 한다. 기적의 사과가 더욱 놀라운 것은 수확된 사과가 쉽게 썩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적의 사과같은 이야기들이 우리 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한 농부가 키워낸 오이는 썩지않고 그대로 마른다. 농약 한번 거름 한번 주지 않았다. 오이가 자라난 곳의 흙을 검사해봤다. 연구원은 흙의 성분을 보고 도저히 작물이 자랄 수 없는 곳이라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오이는 먹음직하게 자랐고, 게다가 썩지도 않는다.  

흔히 농약을 친 작물들은 잘 썩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반대다. 방부제에 목욕을 시키지 않는 한 농약의 도움을 받고 자란 작물들은 쉽게 썩고, 유기작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자연 속에 '방치'된 채로 자란 작물들은 한참동안 제 모습을 지켜낸다.  

태평이가 전하는 태평농 이야기는 한마디로 자연에 맡기는 농사법이다.  

작물은 자연이라 인위적인 간섭함이 없을 때 본래의 모습대로 존속할 수 있건만, 대부분의 농민들은 그들의 자생력을 쉬 믿으려 하지 않는다. 

겨울에 볏짚을 깔아주는 정도가 인위적인 일이다. 애써 해충을 잡으려 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의 자연농엔 해충이란 이름도 없다. 익충과 해충이란 인간적 관점에서 바라본 분류일 뿐 자연에서 결코 해충도 익충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물은 익충과 해충을 가르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도움'으로 더욱 씩씩하게 자란다. 벼와 함께 피도 자라고 그 위엔 온통 거미줄 투성이인지라 남들이 보기엔 게으른 농부의 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자란 벼는 강한 생명력으로 넘쳐난다.

농사 역시 화학농법으로 농사짓던 땅에서 태평농법으로 전환하려면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화학성분이 물씬 배인 흙을 되살리려면 지켜보고 기다릴 수 있는 흙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언제부터 우리는 자연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것일까. 땅에 거름을 주고 비료를 주고 보살펴주어야지만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우리 머리속을 지배한 것일까. 

잘 썩지않는 과채가 신기하다거나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자연스러운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세상. 그 생각의 근원부터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태평농이라는 이름으로 작물을 재배해 온 저자는 우리 종자와 우리 흙에 대한 생명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 생명력에 대한 믿음을 과연 지켜내고 키워낼 수 있을까. 그의 성공적인 작물 재배법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농약과 거름이 판을 치는 세상이 하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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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이가 전하는 태평농 이야기
이영문 지음 / 연화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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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농업인은 제 농산물을 가능한 한 비싼 값에 남이 사가도록 떼를 쓰는 속된 장사꾼이 되어 있다. 하락한 쌀값을 올릴 욕심으로 농자재나 포장장법을 달리해서 상표 또는 품질인증서로 자기만 팔아먹겠다고 안달들이고, 농약의 공포 때문인지 정말 안전한 농산물인가 의심하면서도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그대로 믿고 구매하는 것이 현실이다... 농사짓기의 모든 것은 자연에 담겨 있다. 그 자연 안에 흙이 있고 밥이 있고 온갖 목숨 가진 것들의 어울림이 있다. 선진문명이란 이름으로 오직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흙을 뒤집고 온갖 비료와 농약으로 자연에 칼질을 해대는 지금, 결국 그 칼날은 우리 목숨을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20쪽 

작물은 자연이라 인위적인 간섭함이 없을 때 본래의 모습대로 존속할 수 있건만, 대부분의 농민들은 그들의 자생력을 쉬 믿으려 하지 않는다. 흙과 씨앗이 만났을 때 그 안에 담긴 생명력은 감지하지 못하고 그저 남 따라 장에나 가고 본다. 모든 작물에는 무조건 비료를 주고 농약을 쳐야 한다고 주입시켜 온 교육의 힘이 그렇게도 무서운 것이다. 화학 약품을 투입하면 작물보다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자생초가 성행하고, 작물은 뿌리 힘이 약하고 웃자란 탓에 미미한 외부 자극에도 견딜 수가 없어 한번 쓰러지면 일어서기 힘들다. 내가 먹지 않는 풀은 무조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적당히 자생초가 있어야 작물도 잘 자랄 수 있다. 69쪽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보면 두 손으로 받아들어야 할 만큼 컸던 꽃송이가 인위적인 교배로 크기도 작고 맛도 떨어지는 개량종으로 둔갑된다. 억지로 가꾸고 노력하지 않아도 불필요한 간섭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스스로 존속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이 할 일은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다. 185쪽 

한국적 유기농법이 과학농법보다는 그래도 자연을 덜 괴롭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덜 괴롭히는 것뿐이다. 또 다른 쪽으로 보면 유기물을 흙 속에 넣었을 때 발생되는 가스는 오존층을 파괴한다고도 볼 수 있다. 식물의 생장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간섭함으로써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그리 내세울 만한 농법이 못되는 것이다. 그나마 외국에서 수입한 유기물이 우리 땅에 얼마나 이로울까. 식물은 무기물을 먹고 자란다. 미생물의 분비물이나 시체가 바로 무기물이다. 그렇다면 산불이 난 곳에는 무기물이 풍부할 수 밖에 없다. 적어도 식물의 먹이만큼은 널려 있다. 그런데 산에 자생하는 나무나 식물은 초기 생육과정이 느려 처음에는 더디게 자라지만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인공조림으로는 그다지 빠른 효과를 기대하가 힘들다. 대신 우리 농산물은 초기 생육이 매우 빠른 식물이다. 게다가 먹이인 무기물이 많은 곳이라면 그 성장 속도는 더 빨라질 게 틀림없다. 농사 역시 화학농법으로 농사짓던 땅에서 태평농법으로 전환하려면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화학성분이 물씬 배인 흑을 되살리려면 지켜보고 기다릴 수 있는 흙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보여주고 설명해 주어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여전히 농약을 손에 든 이들에게는 자연생태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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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쉰다" 

이제 열세살이 된 초등학생이 수족관의 금붕어를 보며 내뱉은 말이다. 무슨 뜻일까. 때론 동음이의어로 의미전달이 혼동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 전후맥락을 살펴보는게 마땅한 일일 터이다. 

이 아이는 지난 임진강 수해때 아버지를 잃은 아이다. 6명이 죽었던 참사의 희생자 가족이자 그 참사의 현장에서 살아난 아이다. 갑자기 불어난 물로 인해 아버지의 희생을 담보로 겨우 살아났던 것이다.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아이는 마음 속에서 곪아가고 있는 흉터를 터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의 유일한 취미는 금붕어 키우기다. 그리고 자신이 키우고 있던 금붕어를 바라보며 한탄식처럼 내뱉은 말이 바로 "잘~ 쉰다" 였다. 

맨처음 이 내용을 들었을 때는 휴식의 의미인 줄 알았다. 너는 물 속에서 참 잘도 쉬는구나. 아버지도 이 험난한 세상을 떠나 그렇게 잘 쉬었으면 좋으련만... 이런 뜻으로 내뱉은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는 숨을 쉰다는 뜻으로 한 말이였다. 금붕어처럼 자신도 물 속에서 숨을 잘 쉴 수 있었다면 아버지도 구하고 아무일 없었을 텐데 하는 죄책감이 녹아든 말이었던 것이다. 

'쉬고 싶다'라는 강렬한 욕망을 항상 품고 살아왔던 것이, 그리고 아이의 시선 보다는 부모의 시선에 보다 접근해 가고 있다는 것이, 아이가 내뱉은 그 짧은 말을 오역하도록 만든 것 같다. 문득 살아가면서 이런 오역과 같은 오해도 많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오역임을 알게 된 것은 끝까지 아이의 말을 들었던 덕분이다. 오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끝까지 듣는 것. 내 멋대로 생각하지 않는것. 그것이 오해라는 그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다. 

아이는 어떻게 됐냐고. 다행히 어머니와 사고를 이야기하며 묻어두었던 슬픈 감정을 폭발시킴으로써 비로소 곪았던 것을 터뜨렸다. 비록 흉터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테지만 상처로 인해 삶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리라 확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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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이 "정치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다. 공자는 "백성이 먹을 양식을 충분하게 하고, 국방력을 갖추며,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자공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뺀다면 무엇을 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군대'라고 답했다. 나머지 둘 중 하나를 뺀다면 '양식'이라고 답했다. 즉 정치의 근본은 왕과 백성간의 신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선덕여왕이 끝났다. 미실의 죽음 이후 미실에 대적할만한 카리스마가 없어 드라마의 힘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마지막은 장렬했다. 이연걸이 진시황을 죽이기 위해 동료들의 희생으로 10보 앞까지 전진한다는 영화 '영웅'을 연상시키는 비담의 최후가 멋드러졌다. 덕만을 연모하면서도 덕만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오해를 한 비담. 그 오해는 전적으로 비담의 잘못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담의 잘못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그만큼 갖기 어려운 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에서 덕만은 백성들의 믿음을 얻기 위해 애를 쓴다. 당시 국가의 힘이란 결국 백성의 수와 직결된 것인만큼(군사력 또한 백성이 있어야 가능하고 군사미 또는 식량문제.세금 등을 비롯한 모든 문제가 백성이 있어야 해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백성이 국경선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던 시대였다는 점에서) 믿음이 있어야지만 그들을 붙잡아 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공자도 믿음을 강조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 믿음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도 아니요, 100년 1000년 지속되기도 힘든 것이 아니던가. 백성뿐만 아니라 유신과 비담과의 믿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무 하나 옮기면 1000냥을 준다는 믿기 어려운 왕명이 떨어지고 이것을 지킨 백성에게 실제로 1000냥이 주어지면서 임금과 백성간에 신뢰가 생겼다는 고사를 비롯해 많은 옛날 이야기들이 이런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믿음은 항상 설마와 싸운다. 설마는 간혹 사람을 잡는다. 믿음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은 순간 믿음은 설마에게 칼을 겨눌 수 없다. 설마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설마가 문득 머릿속을 차지하는 순간 우리는 믿음이라는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해 설마를 쫓아내야만 한다. 그런데 이 쫓아내는 힘이 또한 굳건한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과 설마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설마는 간혹 가짜를 물리칠 힘이 되지만 진짜를 멀리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만든다. 반면 믿음은 때론 가짜에게 속아 넘어가고 진짜를 돈독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믿음이 설마를 완전히 내칠 수 없는 것이리라. 믿음과 설마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사람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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