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루체른 

 



스위스 융프라우 



스위스 루체른 



 

백조와 젖소. 풍경을 완성하는 마침표였다.  

선입견일수도 편견일수도 있겠지만, 동물들의 표정에도 그 나라의 국력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캄보디아에서 봤던 고양이나 강아지는 빼빼 마르고 기운이 없어보였지만, 스위스에서 마주친 백조와 젖소에게선 여유가 느껴진다. 그 나라의 풍요로움이 동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동물들의 표정 속에 드러나는 평온함이 풍경과 어우러져 마침내 사진을 완성시켜준 듯한 착각마저 든다. 
 

경제력과 행복지수가 비례관계인 것은 아니지만, 일정수준의 즉 굶지 않고살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지닐 때까지는 행복의 크기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커진 행복은 개인을 넘어 사회로, 인간 사회를 넘어 환경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그렇기에 환경에 대한 깨우침도 먹고 살만했을 때 찾아오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행복도 전염이 된다면 신종플루보다 더 강력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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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10-13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사진을 좀 더 오래 두고 보고 싶어서 제가 제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지정해놓았는데 괜찮겠지요? 미리 감사합니다 ^^

하루살이 2009-10-14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스위스 루체른에서 인터라켄 가는 기차 안에서 무지개를 봤다. 7년여전 일본 센다이에서 우연찮게 쌍무지개를 본 이후 이국땅에서 무지개를 본 건 두번째이지만 이번 무지개가 훨씬 각별하게 다가왔다. 루체른의 풍경을 비속에서 바라보면서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먹구름에 가려진 태양 탓에 옥색 물과 새파란 하늘을 마음껏 감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날씨를 원망하고 있었던 차였다. 

그런데 잠깐 내비친 햇빛 사이로 무지개가 떴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무지개는 비가 온 뒤에 뜨는 것임을 새삼 느꼈다.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듯이 비가 온 뒤에 무지개도 뜨는 것이다. 



무지개를 구경한 후 1시간 뒤 인터라켄을 앞에 두고 옥색 호수를 만났다. 비가 그치고 태양은 아직 찬란한 빛을 뽐내진 않았지만 호수는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았다. 물이 이런 색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장인이 연장을 탓하지 않듯 아름다운 자연도 날씨를 탓하지 않은 것인가. 아름다움은 애써 꾸미려 하지 않아도 언제나 아름다울 뿐이다. 그 옥빛이 벌써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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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09-10-13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정말 그림이죠.
뽀샵 할 실력도 안돼 그냥 올린 사진들인데도 이정도이니...
그냥 푹 한달 정도만 살다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
 

요즘 건망증이 심해 머리도 굴려볼겸 오랜만에 숨은그림찾기를 해봤다. 그런데, 어라! 왜 이리 어려운거야. 숨은그림 1개 찾는데 한참이 걸린다. 오랜만이라 그런 걸거야 생각에 다른 그림을 또 시도했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았다. 예전엔 분명 쉽게 찾았는데... 

곰곰히 생각해봤다.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하기에는 말도 안되는 변명같고, 그렇다면... 

숨은그림찾는 방법을 바꿔봤다. 처음엔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낱말을 먼저 보고 그림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엔 숨은그림 갯수만 확인하고 그림을 먼저 찾았다. 그랬더니 훨씬 쉽게 찾아졌다. 

아하, 그거였구나.  

낱말을 먼저 본 후에 그림을 찾는 게 어려웠던 것은 낱말이 주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망치라고 했을때 내가 생각하는 망치라는 이미지가 먼저 그려진다. 그런데 숨은그림 속의 망치가 그 이미지와 전혀 다르다면 망치를 찾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숨은그림 속의 이미지가 낱말이 주는 이미지와 전혀 다를 정도로 차이가 나는 건 많지 않겠지만 말이다.  

선입견이었다. 숨은그림 속에서도 선입견은 문제였다. 때론 숨은 그림을 찾는게 훨씬 빨라지도록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일상 속에서의 선입견도 그렇다.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즉각적 판단을 내려 행동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상을 온전히 이해하는데는 걸림돌이 된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문제는 때론 그렇게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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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 - An Inconvenient Truth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세상에 절대선은 없을지도 모른다. 선과 악이란 것도 절대적이라기 보다는 상대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환경보호는 이 시대의 명백한 선으로 보인다. 만약 누군가가 "환경보호는 선진자본국가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술수다"라고 말한다면 필시 욕을 얻어먹기 십상이다. 또한 그렇기에 지구를 살리자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쉽게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  

뒤늦게 본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2006)은 미국의 전 부통령 앨 고어의 탄소줄이기 강연을 쫓아가며 그의 어릴적 풍요롭던 지구 모습과 환경재앙에 신음하는 지구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앨 고어는 이 환경운동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다. 그가 핵심으로 내세우는 지구온난화의 근거는 이산화탄소의 증가와 기온상승의 상관관계다.

지구의 온도변화는 주기적으로 변해왔다. 가장 최근의 온난화는 중세시대로 불과 몇백년 전에 불과하다. 이러한 주기적 변화를 일으키는 근본적 원인으로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든다. 하지만 그 증가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산업화로 인한 환경오염은 그 한계치를 뛰어넘도록 만들었다. 그렇기에 현재 직면하고 있는 지구온난화는 단순한 주기적 변화의 과정이 아니라 재앙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지구온난화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논문, 책들이 나오면서 당연시 여겨졌던 잿빛 미래와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서의 환경운동이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됐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모으기도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쿨잇> <기후커넥션> 등등의 책들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들은 지구온난화가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순환의 한 과정으로 보고 있다. 또는 인간이 끼치는 영향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키느지의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유보적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앨 고어가 내세운 이산화탄소와 기온상승과의 관계도 명백한 상관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는 주장과 함께 다양한 변수들을 내세운다. 

이러한 주장은 마치 석유사업체나 기업체들의 로비로 이루어진 연구들로 오해(?)받기도 한다. 또는 <사다리 걷어차기>와 같은 선진국들의 탄소배출권, 녹색산업을 통한 이득의 선점을 위한 논거로 비쳐지기도 한다. 

지구가 조금씩 더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똑같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서로 다르다. 이 사실을 접하고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방식도 차이를 보일 것이다. 과연 어느 것이 불편한 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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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개인적으론 진실의 여부를 떠나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기는 현대 문명이 단지 지구온난화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건강.농촌의 생존 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소위 녹색혁명을 보더라도 이것은 기아를 물리치는데 다소 도움이 되긴 하지만, 농민의 수익보다도 종자와 비료, 농약을 파는 다국적 곡물 기업의 배를 살찌우는데 더 기여한다. 이것은 단지 이들의 수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먹는 사람들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비료사업은 화학 사업으로 온난화의 주 원인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즉 온난화의 진실도 중요하지만 온난화와 상관없이도 화학연료를 쓰는 현대문명의 폐해는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은 곳곳에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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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맥박은 평상시 1분에 69~70번 뛴다. 어떤 마라토너는 1분에 40번대만 뛴다고 한다. 갓난아이는 130번대를 육박한다.  

내 발걸음은 무척 빠르다. 시속 6km 정도는 가뿐하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어떤 이는 15분 정도 걸려서야 도달한다. 물론 나보다 더 빨리 걷는 사람도 간혹 보인다. 

어떤 사람의 말을 듣다보면 답답할 때가 있다. 어서 빨리 다음 말을 건넸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다른 이는 너무 말이 빨라 절반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템포를 갖고 있다. 등산을 할 땐 이 템포가 매우 중요하다. 힘들고 지칠 때 자신의 템포마저 잃어버리면 더이상 걷는 것은 힘들어진다. 자신의 템포를 지키는 것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여행은 많은 교훈을 준다. 견문을 넓혀주고 생각의 폭도 커진다. 특히 혼자서 하는 여행은 많은 어려움을 혼자서 극복해야 하기에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그렇다면 둘이서 하는 여행은... 

둘이서 하는 여행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키워준다. 그 배려심은 바로 템포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산을 오를때 자신의 템포를 놓치지 않아야 하듯 수없이 걸어야 하는 여행길도 템포를 놓치면 힘들어진다. 그래서 자연스레 자신의 템포로 길을 걷게 되는데 동반자의 템포와 차이가 크다면 낭패다. 걷는 것만이 아니다. 무엇을 보아야 하고, 언제 쉬어야 하며 언제 먹어야 하는지 등등 모든 것이 템포의 차이다. 내가 빠르다면 조금 늦춰야 하고, 느리다면 조금 서둘러야 한다. 내 몸에 여유가 있다면, 즉 힘이 남아 있다면 그 조절이 자유자재이겠지만, 지치고 힘들때면 나의 템포를 고집하고 싶어진다. 바로 그때, 자신의 템포를 조금 양보하는 것. 그것이 배려다. 여행은 이 배려심을 가르친다.  

아내와 떠난 2주간의 유럽여행은 템포를 발견하게 해줬다. 아니, 템포의 차이를 발견하게 해줬다. 그것은 다른 문명과 삶.자연이 주는 충격보다도 더 큰 가르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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