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맥박은 평상시 1분에 69~70번 뛴다. 어떤 마라토너는 1분에 40번대만 뛴다고 한다. 갓난아이는 130번대를 육박한다.  

내 발걸음은 무척 빠르다. 시속 6km 정도는 가뿐하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어떤 이는 15분 정도 걸려서야 도달한다. 물론 나보다 더 빨리 걷는 사람도 간혹 보인다. 

어떤 사람의 말을 듣다보면 답답할 때가 있다. 어서 빨리 다음 말을 건넸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다른 이는 너무 말이 빨라 절반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템포를 갖고 있다. 등산을 할 땐 이 템포가 매우 중요하다. 힘들고 지칠 때 자신의 템포마저 잃어버리면 더이상 걷는 것은 힘들어진다. 자신의 템포를 지키는 것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여행은 많은 교훈을 준다. 견문을 넓혀주고 생각의 폭도 커진다. 특히 혼자서 하는 여행은 많은 어려움을 혼자서 극복해야 하기에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그렇다면 둘이서 하는 여행은... 

둘이서 하는 여행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키워준다. 그 배려심은 바로 템포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산을 오를때 자신의 템포를 놓치지 않아야 하듯 수없이 걸어야 하는 여행길도 템포를 놓치면 힘들어진다. 그래서 자연스레 자신의 템포로 길을 걷게 되는데 동반자의 템포와 차이가 크다면 낭패다. 걷는 것만이 아니다. 무엇을 보아야 하고, 언제 쉬어야 하며 언제 먹어야 하는지 등등 모든 것이 템포의 차이다. 내가 빠르다면 조금 늦춰야 하고, 느리다면 조금 서둘러야 한다. 내 몸에 여유가 있다면, 즉 힘이 남아 있다면 그 조절이 자유자재이겠지만, 지치고 힘들때면 나의 템포를 고집하고 싶어진다. 바로 그때, 자신의 템포를 조금 양보하는 것. 그것이 배려다. 여행은 이 배려심을 가르친다.  

아내와 떠난 2주간의 유럽여행은 템포를 발견하게 해줬다. 아니, 템포의 차이를 발견하게 해줬다. 그것은 다른 문명과 삶.자연이 주는 충격보다도 더 큰 가르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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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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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과는 단순히 일본의 한 농부가 농약과 비료 없이 사과를 재배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상식이라고 불리는 고정관념을 깬 한 인간의 의지가 담겨 있고, 현대 농업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지적됐으며, 농업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자연주의 생명철학이 녹아 있다. 특히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건 사과가 사과를 낳는 기계가 아니라 사과를 선물해주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장면이다. 농약과 비료가 있어야지만 가능한 현대농업은 화학적 공업과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만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게 만든다.  

1. 겪어보면 알겠지만, 바보가 되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거든. 하지만 죽을 마음을 먹을 정도라면 그전에 한번 바보가 되어 보는 것도 좋아. 똑같은 생각을 품어 본 선배로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 한 가지에 미치면 언젠가는 반드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거지.  31쪽 

계속되는 유기농 사과재배의 실패로 기무라씨는 파산 직전에 몰리고 자살까지 생각한다. 파고 파고 또 팠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절망의 순간에도 그는 문제를 놓지 않았다. 역자가 말한 (자신의 한계는 자신이 포기한 순간에 찾아온다 246쪽) 바대로 그는 한계 바로 앞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이 끈질김이 결국 유기농 사과 재배의 성공을 가져왔다. 그것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험과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지식을 쌓아 나갈 필요가 있다. 때문에 세상에서는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람이 진정으로 새로운 뭔가에 도전할 때 , 가장 큰 장벽이 되는 것 역시 그 경험과 지식이다. 144쪽 
 

2. 병이나 벌레 때문에 사과나무가 약해졌다고만 생각했다. 그것만 없애면 사과나무가 건강을 되찾을 거라고...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벌레나 병은 오히려 결과였다. 사과나무가 약해졌기 때문에 벌레와 병이 생긴 것이었다. 159쪽 
 

그는 사과나무가 죽어가는 건 순전히 병이나 벌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병과 벌레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그러나 이것은 또다른 이름의 농약일 뿐이라는 것을 깨우친다. 그런데 이 깨우침의 과정은 내가 아토피를 앓으면서 얻게 된 깨우침과 다소 비슷한 측면이 있다.  

흔히 아토피를 음식 알러지나 진드기 알러지, 또는 면역체계 이상반응으로 본다. 그래서 알러지를 생기게 하는 음식이나 진드기를 피하는 것이 주된 처방법이 된다. 이것은 병이나 벌레 때문에 사과나무가 약해졌다는 생각과 닮았다. 내 몸이 건강하다면 실은 아토피도 없을 것이다. 애시당초 태어날 때부터 어떤 특정하고도 불균형한 장기를 가지고 있기에(한의학에선 모든 사람들의 장기가 불균형하다고 보는 것 같다. 사상체질이란 이런 불균형이 만들어낸 차이일 것이다. 이런 불균형을 균형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완벽한 체질이 될 것이다) 발생한 병이라면 그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근본적인 치유가 될 것이다. 사과나무가 강해지기 위해선 건강한 흙이 필요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로 건강한 흙이 필요하다.
 

3. 덫을 치우고, 수확할 때마다 이 빠진 옥수수를 모아 놓기로 했지. 그 후로 너구리 피해는 거의 사라졌어. 그걸 보니까 인간이 몽땅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피해를 입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 따지고 보면 원래는 너구리 서식지였던 곳을 밭으로 만들어 버린 거잖아. 먹이를 주면 너구리가 더 많이 모여들어 밭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어. 정말 신기했지. 자연의 불가사의함에 눈을 떴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자연은 인간의 계획대로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군.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그 무렵이 효율만 따지던 농업에서 벗어난 시기였는지도 모르겠어. 57쪽 

자연은 그 자체로 완결된 시스템이다. 사람의 도움 같은 게 없어도 초목은 무성하게 잎을 맺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 시스템에 손을 댐으로써 인간에게 편하고 좋은 결과를 얻으려 하는 행위가 곧 농업이라고 후쿠오카는 말한다. 비료를 주면 보다 큰 열매를 맺는다. 해충을 죽이면 보다 많은 작물을 수확할 수 있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비료를 주고 해충을 없애는 방법을 발달시켜 왔다. 그것이 거듭된 결과, 농작물은 자연의 산물이라기보다 일종의 석유 화학제품이 되어 버렸다. 68쪽 

4. 자연을 도와주고 그 은혜를 나눠 받는 거지. 그게 진정한 농업이야. 232쪽 
 

그렇다면 진정한 농업이 이 땅에 가득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현재 우리나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역생명체 운동이 결실을 맺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히 이런 공동체들이 학교, 병원, 군대 등 단체의 급식을 책임질 수 있도록 판매망을 확보한다면 흙이 살아날 수 있는 지름길이라 생각했다.  

기무라씨는 보다 간단한 듯 하면서도 어려워보이는 방법을 제시한다.  

현재 상황에서는 어려울지 몰라도 언젠가는 자기들이 하는 방법으로 만든 작물을 농약이나 비료를 준 농작물과 경쟁할 수 있는 싼 가격에 출하시킨다. 그것이 기무라 씨의 꿈이다. 가격에 큰 차이가 없다면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무농약 무비료 농작물을 택할 게 틀림없다.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일반 농가들도 진지하게 무농약 무비료로 농작물을 재배할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236쪽 
 

5. 농약이나 비료를 안 주면 사과가 열매 맺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차원에서 현대인은 농약이나 비료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는데도 그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234쪽 
  

화학연료 없이는 살아가는 게 불가능한 세상. 그런데 그 화학연료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화학연료를 대체할, 말 그대로 대체에너지를 개발할 것이라는... 그러나 그 대체에너지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에너지는 아무런 부작용 없이 무한하게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야만 한다. 기무라씨의 자연 농법이 거든 수확이 농약과 비료를 쓴 사과의 수확과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약해빠진 사과나무는 농약과 비료를 필요로 하고, 농약과 비료를 쓴 농부는 중독의 위험에 빠지고, 그것을 먹은 소비자 또한 오염의 위험에 처한다. 이 과정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농약과 비료를 만드는 사업체며, 병원이며, 종자회사이며 대형유통회사일 뿐이다.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가 우리에게 말해주듯 이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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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는 해충도 익충도 없다. 기무라 씨는 너무나 당연한 그 진리에눈을 뜬 것이다. 인간이 해충이라 부르는 벌레가 있기 떄문에 익충도 살아갈 수 있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가 있기 떄문에 자연의 균형은 유지된다. 거기에 선악은 없다. 병이나 벌레의 극심한 창궐만 하더라도 균형을 회복하려는 자연의 활동이 아니던가. 187쪽 

테루아를 보면 비옥한 밭보다 오히려 척박한 토지에서 자라난 포도가 최상의 와인이 되는 일이 적지 않다. 포도나무가 부족한 영양분을 찾아 지하 깊숙이 뿌리를 뻗음으로써 포도는 토양 속의 다양한 미량의 원소를 섭취해 향이나 맛이 훨씬 복잡하고 깊은 맛을 내게 된다.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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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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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가 주는 감동은 그 어떤 소설보다도 크다. 그래서 영화는 감동실화를 스크린에 옮기고 싶어한다. 이번 국가대표 영화는 한국의 스키점프 대표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룬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영화의 관심사는 이들이 이룩한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 속의 험난함이다. 그 속에서 불굴의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감동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종 진중한 표정이라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심각함 속에서도 튀어나오는 코믹한 상황이 웃음을 줌으로써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분명 영화는 재미있다. 감동적이다. 그런데 그 감동이 부담스럽다. 특히 100m만 더 날아가면 메달을 딸 수 있는 나가노 올림픽의 극적인 상황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아니, 지금까지 그렇게 100m만 더 날면 된다고 강요했던 나를 돌아보게 만들어 부끄럽다. 100m를 더 날기 위해 스키 점프대에 서지 말아야 할 아이가 선다. 사람들은 박수를 보낸다. 응원을 한다. 무섭다고 도망치는 그를 국가대표라는 이름으로 몰아세운다. 그는 목숨을 건 그 점프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우린 그 아이의 성장과 상관없이 오직 메달을 바랄 뿐이었다. 이것은 마치 오직 올림픽 유치를 위해 스키점프 국가대표를 임시방편으로 만든 조직위원회의 뻔뻔한 처사와 다를 바 없다. 그것은 태극기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일 수 있다.  

그래서 박태환이 떠올랐다. 무턱대고 1등을 하라고 응원 아닌 강요하던 대한민국을 떠올렸다. 다행히 그는 목숨 건 도전을 한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이번 실패를 계기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스키점프의 국가대표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그가 떠오른 것은 너무나 당연시했던 응원이라는 것의 두가지 표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격려와 폭력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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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달의 333원칙 

 
첫째 어떤 기술에 대해 3백번 연습하면 흉내를 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그 기술을 보여줄 수 있다,  

둘째 3천 번 연습하면 실전에 쓸 수 있는 정도가 되고 평범한 무술인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3만 번 연습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기술로 상대방을 제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 아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상을 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숨을 거는 거다. 네가 하려는 일에 목숨을 바쳐라.”  

---------- 

세상이 힘들다고 징징 짜고 싶을 때는 이 333 법칙을 떠올려야 하겠다. 나는 3만번은 못되더라도 3천번은 못되더라도 3백번 연습하고 깨져도 깨져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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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 - Daytime Drinking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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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은 우연과 우연이 겹치면서 발생하는 황당한 사건들로 이루어졌다. 겹쳐지는 우연성이 작위적인 냄새가 나지만 그래도 그 황당함에 웃음이 폭발하는 유쾌한 영화다.  

낮술은 단순한 반주를 넘어섰을 때 붙여주는 이름이다. 일상으로부터의 이탈, 즉 일탈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밤에 먹는 술은 일과가 끝나면서 시작되지만 낮술은 일과 중에 발생한다는 점에서 언제고 일탈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탈은 일상에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 가끔 로망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끝은 언제나 속이 쓰라릴 뿐이다.  

가을 햇살이 눈부신 교외. 황금 들판에서 벼베기를 하는 모습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낫으로 벼를 베는 농부들의 허리는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낭만적으로 보이는 풍경이라는 것도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낭만은 사라지기 십상이다. 영화 낮술도 그렇다. 한겨울 모래사장에서 컵라면과 함께 먹는 소주라거나, 펜션에서 만나게 되는 여인, 여행 중 옆자리에 같이 앉게 된 이성 등등 낭만적으로 보이는 풍경이 악몽의 단초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낮술의 주인공 상훈은 실연의 아픔을 잊어야 한다며 정선 여행을 제안하는 친구들의 말을 거절하지 못하고 정선에 온다. 하지만 친구들은 모두 술에 취해 서울에 머물러 있게 되면서 혼자서 여행을 시작한다. 그 여행은 친구의 제안으로 시작됐고,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의 또다른 제안으로 계속된다. 하지만 그 제안은 곤경스러운 상황만을 만들어낸다. 

제안에 솔깃해 달콤한 꿈을 꾸지만, 제안이 현실이 됐을땐 악몽인 상황이 계속 재현되는 데도 불구하고 집이라는 일상의 공간으로 쉽게 돌아가지 못하는 상훈을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하다.  

영화 속에서는 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제안의 달콤함과 악몽을 모두 표현해낸다. 쓰라린 속을 부여잡은 상훈은 술을 거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권하는 술잔을 계속 입에 댄다. 술을 잘한다는 칭찬에, 여자에게 잘 보이겠다는 음흉한 생각에, 감기에 좋다는 말에... 이렇게 거절하지 못하는 상훈을 통해 권위나 힘, 유혹에 약한 성격이 드러난다. 또한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노하지 못하는 모습도 비쳐진다. 그리고 그 분노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인해 계속 낭패를 당한다.  

이는 단순히 상훈이라는 개인의 성격 때문만은 아니다. 상훈은 분노해야 할 상황에서도 분노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으로 비쳐진다. 당장의 눈앞의 유혹에 빠져 허우적대는 통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아채지 못하고,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그들을 향해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는 나약한 모습. 그것은 영락없는 우리네 모습이다. 우리는 이제 밖으로 소리쳐 내지르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하며 분노스러운 상황도 속으로 삭이거나 헛헛한 웃음으로 비켜간다. 그리고 현실에 안주해 무엇인가를 쫓는데 너무나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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