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개정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연을 쫓는 아이는 성장소설이다. 성장의 기간은 아프가니스탄의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다. 시대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아이의 성장이야기는 아니지만 영화 <박하사탕>과 얼개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소설은 아프간의 평화롭던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아미르와 하산이라는 두 아이가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부터다. 그런데 주인공 아미르는 하인인 하산에게 애정을 더 쏟는 아버지 바바 때문에 질투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아프간의 전통놀이인 연싸움이 있던 날. 아미르는 우승을 한다. 하산은 끈 떨어진 연을 차지하기 위해 뛰어가고 아미르는 시간이 조금 지나 뒤쫓아간다. 하지만 아미르를 위해 헌신하던 하산은 연을 줍다 성폭행을 당한다. 그런데 아미르는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면서 아무런 도움의 손길을 건네지 못한다. 하산은 예전에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켜주려 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아미르는 이 사건 이후 도저히 하산을 지켜볼 용기가 없어 거짓 도난 사건을 만들어 하산과 그의 아버지를 내쫓고야 만다.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감정은 바로 이 사건에서 비롯된 비겁함이다. 소설은 주인공이 성장해 가면서 아버지의 용기와 그 뒤에 감추어진 비겁함을 보여주고, 하산의 우정과 용기를 지켜보며, 주인공 아미르가 어떻게 속죄에 이르게 되는지를 묵묵히 전달하고 있다. 이 성장의 과정에선 아주 큰 반전이 숨겨져 있고, 반전 이후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충격적 사건도 이어진다. (소설 읽는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기 위해 여기서 밝히진 않겠다.) 또한 아프간의 현실을 배경 속에 펼쳐보인다. 수니파 이슬람교 파쉬툰인과 시아파 이슬람교 하자라인 사이의 차별과 소련 침공. 탈레반 집권 등의 역사적 진행이 아프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알게 해준다. 
  

아무튼 이 소설이 감동을 전하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은 비겁함과 거짓말, 용기와 속죄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또다른 말로 어른이란 무 엇인가를 깊게 생각하도록 해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책장을 덮는 순간 아직도 우리는 성장 중에 있음을 고백하도록 종용한다. 아니다. 오히려 성장을 멈추고 있음을 고백하도록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무슨 말이냐고? 이렇다. 조직에 살아남기 위해 해야만 하는 말을 못하는 경우는 없었던가. 그저 갈등을 피하기 위해(해소나 해결이 아니라) 거짓말을 서슴없이 내뱉은 적은 없었던가. 외부적 압력, 폭력으로 인해 소신을 저버린 적은 없었는가.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이런 저런 핑계로 넘겨버리고 현실에 안주한 적은 없었는가. 왜냐하면

 

그렇지만 명심하렴. 결국에는 세상이 항상 이기고 만다. 그게 세상 이치. 152쪽  

라면서 말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라. 얼굴이 화끈거리고 고개를 숙이고 싶은 경험들이 있었을 것이다. 혼자 해결하지 못해 끙끙댄 경험도 있을 것이다.

   

너는 어쩌란 말이냐고 물었니? 지난 세월 내내 너한테 가르쳐주려고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질문을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법 말이다. 238쪽 

 

그래도 우리는 아직 성장할 여지가 있다.  

 

양심이나 선이 없는 사람은 고통스러워하지도 않는다. 449쪽 
 

아미르가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서 비겁하고 부끄러웠던 과거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것은 그것을 짊어지고 살아야만 하는 고통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끄러움을 아는 양심과, 비겁함과 옮은 것을 아는 선을 놓쳐서는 안된다. 즉 "비겁하다 욕하지 말라"고 외치기 보단 비겁함에 부끄러워 할 줄 알았을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직도 성장을 멈추고 있는 우리에게 이 소설은 뜨거운 눈물과 함께 따끔한 회초리도 숨기고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용서란 요란한 깨달음의 팡파르와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소지품들을 모아서 짐울 꾸린 다음 한밤중에 예고 없이 조용히 빠져나갈 때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닐까 538쪽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우리는 용기를 통해 용서를 받음으로써 한 뼘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린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을련지, 비겁한 행동을 변명하지 않을련지....... 사뭇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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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째. 마지막날, 주차다. 

마치 예전 T자, S자, L자 면허시험 보던 것처럼 나름 공식이 있었다. 하지만 실전은 꼭 공식처럼 되진 않는다. 필요한 공간이 달라지고 거리는 어림짐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건 반복연습을 통한 감이다. 물론 공식은 이때 큰 도움을 준다.  

단 한번에 주차를 하겠다는 욕심을 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다른 차가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서두르다간 오히려 더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여유로운 마음자세는 운전할 때 꼭 필요한 자세다. 또한 주차는 주차선에 꼭 맞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차는 차를 세우는데 그 목표가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주차 연습을 하기 전엔 전면주차가 훨씬 쉬워보였다. 그냥 앞으로 주차하면 되는 것 아니야? 라고 단순히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전면주차가 오히려 더 어려웠다. 한번 잘못 들어갔다가는 베테랑을 데려와도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특히 초보자에게 전면주차가 어려운 것은 한번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그 착각은 무리한 시도를 불러오고 결국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선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 한단계 한단계 차분히 접근해야 한다는 것. 주차는 말없이 이런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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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 U턴이다.

공덕동 오거리에서 신촌으로 가는 길에서 U턴 연습. 오거리 쪽은 차선이 넓은데다 신호등도 복잡하지 않아 크게 어렵지 않다. 심리적으로 상당히 여유로워 큰 어려움 없이 해냈다. 하지만 서강대 쪽으로 향하다 신호등을 받고 U턴 하는 곳은 우회전 차량은 물론 오른쪽에서 느닷없이 신호를 무시하고 튀어나오는 오토바이 등으로 인해 진땀을 뺐다. 특히 신호를 무시하고 좌회전해 나타나는 오토바이는 사이드미러에도 잘 보이지 않아 자칫 사고가 날 뻔할 정도로 아찔했다. 그냥 앞으로 달리는 것보다 수십배 더 신경을 써야만 했다. 

그래, 맞다. 돌아가는 길은 단순히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살펴보아야 할 것이 산더미다. 어디서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들을 대비해야지만 같은 자리를 맴돌지 않을 수 있다. 때론 돌아서야만 하는 길, 절대 한눈 팔아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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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날 

어느 정도 운전에 익숙해졌다. 그렇다고 자신감이 붙은 것은 아니다. 조심조심 운전하고 있자니 옆에서 한마디 날라온다.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마세요" 

차선을 꼬박꼬박 지키려 하고, 앞뒤 거리 유지하려 하는 모습이 영 마땅치 않은 모양이다. 실제로도 차선 자체보다는 옆차들과의 거리가 더 중요할 것이다. 

"긁혀도 좋다고 생각하고 운전하세요. 그래야 운전을 배웁니다." 

맞다. 실패를 두려워하며 안전만을 생각하다가는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를 놓치기 쉽상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던가. 또한 1000번의 실패 끝에 한번의 성공이 아니라, 1000번의 도전 또는 1000번의 행위 이후 또다른 도전 또다른 행위가 성공일 뿐이다. 

모험은 실패를 거름삼아 커가고 행복은 그 거름을 바탕으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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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첫날 배운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좌우를 둘러보라는 것. 멀리 보고 흐름을 읽으라는 것을 명심하다 보니 다른 함정에 빠졌다. 차선을 바꾸기 위해 사이드 미러를 쳐다보다 앞을 보는 것을 간혹 잊어버린 것이다. 옆 차선으로 안전하게 가기 위해 쳐다본다는 것이 오히려 지금 가고 있는 차선의 앞 차와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되 그것은 참고사항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항상 시선은 앞을 주시해야 하는 것이다. 가고자 하는 길을 잊어버리고 눈앞의 목적만을 향해 달리다간 꽈당 충돌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브레이크는 제동 즉 멈춘다는  뜻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연수강사는 브레이크는 정지가 아니라 속도조절임을 강조했다. 액셀도 마찬가지다. 액셀도 속도조절이고 브레이크도 속도조절인 것이다. 다만 더 빠르게이냐 느리게이냐의 차이일뿐. 운전은 속도조절의 능력을 갖추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렸다고 말한다. 절망에 빠져 한치 앞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 상황. 좌절하고 움츠려들며 한없는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멈춰 선 것이 아니다. 다만 속도를 늦췄을 뿐이다. 인생의 흐름에 과속을 막아준 일이기도 하다. 잠시 천천히 간다 해도 다시 액셀을 밟으면 된다. 늦게 도착한다 해도 좌절하지 않고 끝내 도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브레이크도 액셀도 모두 속도조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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