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인간
심포 유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 / 들녘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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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서로가 그립고 반가워야 친구라고 할 수 있다. 철없고, 상처 입기 쉽고, 자기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몰라 괴로워했던 과거의 모습을 서로 확인할 수 있어야 지금과 이어진다. 필요한 것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감각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에만 사는 인간은 없다. 갓 태어난 아기는 우는 것밖에 모른다. 경험을 쌓아가면서 사람이 된다. 내게는 과거가 없다. 아직 어린애나 다름없다. 함께 과거를 그리워할 친구가 없다.  325쪽 
 

소설의 주인공 나쓰미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목숨마저 위태로울 정도로 큰 사고였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식물인간이 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머리속에선 과거의 그가 없다. 기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나쓰미는 나쓰미라는 이름을 가진 예전의 그일까.(이런 소재는 소설이나 SF영화의 단골로 등장한다) 과거의 기억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 또한 예전의 그가 아닐 수도 있다.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이국의 땅에 건너갔을 때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는 게 쉬울 수 있는 것도 바로 그와 같은 이유때문이지 않을까.    

소설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음을 나쓰미의 치료과정을 통해 보여준다. 나쓰미는 마치 아이가 말을 배우고 인생을 알아가듯 천천히 자신의 정체성을 쌓아간다. 하지만 서른을 갓 넘긴 그가 열살짜리 아이일 수는 없다. 8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나쓰미는 현재에 안주하지 못하고 과거의 자신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마주치는 사건의 전말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애인이었던 여자가 왜 자신을 피하려 하는지, 과거의 친구들이 머뭇거리며 왜 자신의 애인에 대해 질문하지 않은지, 그리고 조금은 몰상식해 보이는 친구들을 왜 사귀었는지 의심가는 과거의 자신... 그리고 어머니와 의사는 왜 그토록 자신이 과거를 잊고 현재로부터 새로 출발하도록 하려 애썼는지 등이 소설이 결말을 향해 가면서 숨가쁘게 드러난다.  

그리고 마지막에 벌어지는 대형사고는 과거를 알게 된 그가 과거의 자신에게로 돌아갈 것인지, 현재의 나라는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할 것인지를 시험하게 만든다. 자아라는 정체성이 갖는 끈적끈적한 한계. 즉 자아를 규정하는 순간 생겨버리는 경계선은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자아를 잃어버린다는 두려움을 일으킨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 경계선 안에 머물고 싶어한다. 그러나 때론 불굴의 의지로 경계선을 넘어서는 순간도 발생한다. 바로 그 순간이 기적의 인간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경계선을 넘어서는 순간이 바로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안도의 순간일 수도 있다.  

즉 '나라는 인간' 이라고 규정해버린 '나'의 틀을 깰 수 있는 그 순간이 바로 기적의 순간이 되며, 그것이 새로움을 향한 변화의 기폭제가 되는 것이다. 소설에서 말하는 기적의 인간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생명의 기적이라기 보다는 나라는 틀을 깨는 바로 그 순간의 기적을 말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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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의 러시아워는 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 옆 사람과 몸을 꼭 붙이고 말없이 서 있는 사람들의 행렬이 온 일본을 혈관처럼 달리고 있다. 마침내 오염돼 쓸모가 없어진 혈액은 신장에서 걸러 몸 밖으로 버린다고 들었다. 사람도 그렇게 되는 걸까. 러시아워에 시달리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02쪽 

아는 사람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면 누구든 한번 찾아가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 그 사람이 주위에 없다는 사실에 길들어져 병원으로 가는 횟수가 줄어든다. 환자도 아무도 찾아주지 앟는 것에 끝내는 길든다. 길들 뿐이다. 쓸쓸한 마음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 쓸쓸함에도 결국은 길든다. 병과 상처에 고통받는 일에도 길든다. 길들어, 그에 맞설 기력을 잃어간다. 110쪽 

사람에게는 각기 삶의 방식이라는 게 있지. 어떻게 죽느냐가 아니라, 그건 하나의 삶의 방식이야. 아픔을 참고 무리를 하는 삶은, 남들에게는 몸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 어리석은 삶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지. 하지만 말이야, 그때의 생활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그럴수록 사람은 그 생활을 소중히 여기고 무리를 거듭하게 되는 법이야. 176쪽 

자기가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입원해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사람에게 죄를 묻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인심을 베풀어 자유의 몸으로 풀어줄 수도 없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으니 입원이라도 시켜두자. 주위 사람들이 자기 만족을 위해 취한 조치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 사람에게 죄를 인식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자유를 강탈한 의미가 없지 않은가.  3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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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09-02-16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발자국 남겨주세요. 가끔은 흔적이 그립답니다. *^^*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자세는 삶의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다  - 오프라 윈프리 

 모험이란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세다. 보험은 위험을 대비하는 자세다. 모험은 보험을 통해서만 감행하는 것은 아니다. 보험은 모험 때문에 발생한 것도 아니다. 위험은 항상 주위에 산재해 있기에, 그것을 정면돌파하거나 피해갈 뿐이다. 피해가려 해도 피하지 못했을 때 보험이 필요한 것이고, 새로운 것을 얻고자 할 때 모험이 필요하다.  

안락함은 신체는 물론 정신까지도 제자리 걸음에 멈추게 할 뿐만 아니라 뒤처지게 만든다. 안락함은 그래서 위험의 또다른 이름이다. 위험이란 안락함을 위협하는 것이지만, 안락함이 위험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모험이 없는 길은 위험한 길이다. 물론 지나친 모험은 그 자체로도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모험이 없는 위험은 필연적으로 마주쳐야 하는 위험이 되고, 모험으로 닥친 위험은 설사 실패의 쓴맛을 얻어도 실패라는 이름 대신 또다른 도전과 성공이라는 다른 이름을 얻는다. 보험은 그 다른 이름, 즉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보험을 보험받은 모험은 모험이 아닌 듯하면서도 모험을 더욱 모험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기에 위험을 피하고 싶다면 보험에 드는 것보다 먼저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을 저질러야 하는 것이다. 모험은 인생을 기름지게 만드는 거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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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를 풍자로 보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서야...

풍자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좀더 여유로워졌으면 한다.

 

-한눈으로 보는 명박도

 



 

 그림 출처 : 그자식 (gujas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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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속삭임 - 합본개정판
기시 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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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원숭이 연구를 하던 사람들이 일본으로 돌아와 갑자기 자살을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평소 그토록 무서워하던 것들을 스스로 죽음의 방식으로 선택하고 있어 기묘하다. 게다가 일반인들 중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사건은 더욱 커진다.  

<천사의 속삭임>은 무엇인가에 의해 개인적 두려움이 쾌락으로 변해가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두려움과 쾌락이라는 것의 작동원리는 뇌과학으로 풀어지며, 그 심리적 기제는 그리스 신화 속의 복수의 여신과 천사를 통해 드러낸다.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를 토대로 한 유전학과 생물학 등 곳곳에서 마주치는 과학적 지식 등은 소설의 재미를 더할 뿐만 아니라 사건을 풀어가는 열쇠로도 작용한다. 신화에서 뇌과학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이론과 지식들이 사건 속에 잘 버무려져 있다.   

이 소설을 끌어가는 핵심단어로는 불안과 공포를 꼽을 수 있다.

불안과 공포는 정글 속에서는 필요한 기능이었습니다만, 문명 사회에서는 반대로 큰 부담이 됩니다. 현대인은 가혹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 패닉 장애 등에 짓눌려 살고 있지요. 여기에 강한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인간의 신경세포는 물리적인 손상을 입습니다. 우리들의 시냅스는 거의 닳아 없어지기 직전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우아카리 선충은 우리를 과도한 스트레스로부터 지켜주는 수호천사이며, 천사의 속삭임은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던 복음입니다. 485쪽 
 

인간에게 있어서 두려움은 반드시 없어져야만 할 감정인 것만은 아니다. 불에 덴 경험을 한 이후 불을 두려워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감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두려움이 없다면 자신의 몸이 탈 위험을 예방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신에게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오히려 쾌락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과연 그것은 당신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으로 내모는 것일까.  

니나가와 교수의 문명사관은 간단히 말하면 생존과 행복이라는 두 가지 욕구의 상극에 의해 인류문명애 발달해왔다는 것입니다. 뇌는 항상 지나칠 정도로 쾌감과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고 싶어하는데, 너무 그쪽으로 치우쳐버리면 생존을 위해서는 부적합한 행동을 취하게 될지도 모르고, 또 도태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인류는 이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양쪽 다 같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생존을 추구하기 위해 외적과 재해, 기아, 전염병 등에 대비하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 문화를 만들어내면서 말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듯이 가장 손쉬운 전략은 먼저 생존을 위해 필요 충분한 자원을 확보해두고, 행복 쪽은 가능한 한 돈과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처리하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뇌는 그 정도로는 좀처럼 만족하질 않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문명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요가나 명상 같은 손쉬운 방법으로 내적 세계의 탐구를 추구했습니다. 또한 그 일조로서 약품을 사용하는, 이른바 드러그 컬처라는 것도 수없이 존재했습니다. 29쪽 

두려움에서 벗어나 쾌락만이 가득한 곳은 과연 천국일까. 쾌락의 향연은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고통마저 감수하기도 한다.  

모든 것은 뭔가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나약함에서 기인한 것이다. 598쪽
   

이점이 바로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원동력이 되며 사건이 퍼져가는 힘이 된다. 두려움으로 인해 무엇인가에 기대게 만들고, 그 기댐은 대부분 인간을 더욱 나약하게 만들곤 한다. 단 사람과 사람사이의 기댐만은 제외다.  

오늘도 불안과 공포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도시인의 삶 속에서 망각의 힘을 가져다주는 쾌락이 과연 우리의 미래를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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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인간의 네트워크라는 것은 말이야, 정보망 같은 게 아니라 트램펄린(금속 사각형 틀에 그물처럼 짜인 스프링으로 캔버스 천을 연결하여 만든 기구) 네트야.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 무너질 테니까. 그럴 때는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씩 충격을 분담시켜서 네트 전체가 흡수하게 만들면 되는 거야. 59쪽 

생각해보면 다카나시에게는 죽음 공포증에 빠질 조건이 너무 충분할 정도로 갖춰져 있었다. 먼저 경제적으로 넉넉하여 날마다 생계를 위해 버둥거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죽음 공포증은 옛날부터 왕후귀족들의 마음의 병으로 알려져 왔다. 매일 생활을 위해 수많은 문제와 격투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불확실하고 먼 장래에 일어날 죽음에의 공포따위를 느깔 여유가 없다. 원하는 것을 모두 손에 넣고 난 인간의 허탈감, 마음의 공허야말로 위험한 것이다. 다음에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 응시하는 것이다. 작가나 철학자 같은 사람들도 역시 죽음 공포증과 관계가 깊다. 그들은 무슨 일에나 응시를 한다는 가장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우주 삼라만상에 의미 따위가 존재할 리도 없고, 바로 정면에서 응시하면 어떤 것이라도 의미를 잃은 것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세번째는 과학에 대해 너무 순진할 정도로 신뢰한다는 것이다. 원래 세계를 정확히 기술하는 것과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무관하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그 차이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생명이 유전자의 운반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생각은, 비록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를 혹한의 우주에 발가벗긴 채 내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인간이 가진 공포의 양이라는 것은 늘 일정할지도 모른다. 81쪽 

현실세계에서는 아무리 싫어도 타인과 교섭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깊이 상처받지 않도록 방어 자세를 취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으면 긴장되어 있던 마음의 방어막이 마치 따뜻한 물 속에 몸을 담근 것처럼 녹녹해지는 것이다. 162쪽 

그리스 신화 에우메니데스. 복수의 여신. 그리스어로 친절한 자라는 뜻의 역설적 표현. 206쪽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퓨리즈라고 할까, 복수의 여신들, 에리뉘에스의 다른 이름이야. 왜 친절한 신이라 불리는 거지. 반 빈정거림, 반 두려움에서 그러는 거야. 퓨리즈(악마)라고 불러 화를 돋우고 싶지 않은 거지. 선량한 그리스 사람도 그렇지만 특히 죄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 여신을 아주 무서워했던 것 같아.  

천사는 완벽하게 착한 심성의 체현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인간의 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천사는 신의 명령에 따라 몇번이나 인류에 가혹하기 그지없는 징벌을 주었습니다. 이를테면 신의 뜻을 거슬렀다고 해서 아시리아 병사 18만 5천명이 하룻밤에 천사에게 살해당했다는 기술이 있습니다. 또 인간과 가축을 불문하고 이집트 전 지역의 부자들이 천사에 의해 말살되었다는 예 등도... 

메데이아-자신을 배신한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왕녀- 콤플렉스

정보는 반복되고 과장되고 윤색되고 왜곡되면서, 보도되는 동안 점점 형태를 바꾸어간다. 그 속도는 에이즈 바이러스 이상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바이러스와 똑같이 살아남기 쉬운 형질을 갖춘 것이다. 요컨대 좀더 사람들의 의식에 새겨지기 쉬운, 선정적이고 공포라는 근원적인 감정에 직결하기 쉬운 이야기이다. 319쪽 

그런 성격의 유형은 사나에도 몇 가지 알고 있었다. 긴장을 잘해서 이내 중심을 잃고 앞뒤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 버린다. 지나친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패배를 선택해버린다. 불필요하게 비관적이 되어 나쁜 예상만 머릿속에 떠올리다 마이너스의 자기암시를 걸어버린다. 자신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를 범하기만 해도 짜증을 낸다. 이런 성격을 특히 일본인에게 많은데, 한편으로는 우울증과 거식증이 되기 쉬운 특징이 있다. 4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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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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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느냐 안 팔리느냐 그것이 문제일 뿐,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한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그런 상황들을 반복해 겪으면서, 누군가를 향해 역사에는 팔 수 없는 가치, 팔아서는 안 되는 가치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당신들이 원하는대로 가공할 수 있는 역사는 없다고. 11쪽 ,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바로 이때문일 것이다. 이런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이라는 공간은 그래서 더욱 값어치 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과거의 아픈 장면도 엿볼 수 있다.

명동성당이 경복궁을 겨눈 쇠뇌였다. 명동성당 십자가가 달린 뾰족탑이 경복궁 정문, 광화문을 향해 세워져 있다.  

높은 언덕 위에 높이 솟은 건물은 한편으로 동양의 세속 전제 권력에 대해 서양의 신성 권력이 승리했음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서구적 공간관이 복수의 하나님을 매개로 한국적 공간관을 패퇴시키고 서울을 점령한 셈이다. 약현성당과 명동성당 건축의 종교적 후예들만이 아니라 세속의 후예들 역시 산자락을 파고들었다. 하늘이 만들어낸 자연의 선을 인간이 만든 건축물의 선이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오랜 금기는 여지없이 깨져나갔다. 물론 사람들이 서울 안의 야산들을 거리낌 없이 택지로 취급하기까지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이는 어쨌든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 거대한 주거용 건물군이 산자락을 장악함에 따라 그래도 경관만은 함께 누릴 수 있었던 서울 사람들의 시각적 유대도 붕괴되었다.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은 경관의 소비에도 관철되어, 소비할 수 있는 자와 소비할 수 없는 자를 나누었다. 이제 초고층 건물 초고층에 살지 않는 한,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조망할 수 있는 능선은 없다. 159쪽 

서울은 과거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진행형인 서울은 곳곳에서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권력에 의한 횡포, 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도 그 모습을 변모시키고 있다.  

오늘날 권력이라는 단어는 여러 함의를 가진 말로 쓰이고 있지만, 도시 공간과 관련해서는 공간을 개조할 수 있는 힘 정도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 당장 최근의 일만 보더라도 시장은 복개했던 개천의 복원을 결정할 수 있고, 대통령쯤 되면 아예 도시 하나를 새로 만들거나 나라의 산수 체계를 바꾸려 할 수도 있다. 공간의 지배력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권력의 크기와 기하급수적 비례관계를 맺는다. 190쪽   

건축물에 쓰이는 장식이나 소품이라는 것도 실은 시대적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즐겁고 경괘하게 학교종을 부르고 학교종 소리에 맞춰 등교하면서, 자연스럽게 평생동안 시간의 지배를 받을 몸과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 나갔다. 근대를 변화가 일상화한 시대로 볼 때, 사람들의 시간관념과 시간을 분할하여 의식하는 정도는 근대적 변화의 속도와 대략 일치해왔다. 조선시대 아이들은 동서남북을 구분하는 것이 먼저였지만 요즘 아이들은 시간을 알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는 법을 먼저 체득한다.  223쪽 

13세기말 서유럽에서 기계식 시계가 발명된 이후 시계는 점차 그 정확도를 높여갔고, 그에 비례하여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지배력을 키워나갔다. 루이스 멈퍼드는 증기엔진이 아니라 시계가 바로 현대 산업사회의 핵심 기계라고 했던바, 유럽 도시에서는 산업혁명에 앞서 시간혁명이 일어났다. 기계식 시계에 의존하여 철저히 시간을 지키는 우편마차는 증기기관차보다 먼저 등장했다. 229쪽 
 

세부적 이미지든 중심적 이미지든, 도시의 분위기와 이미지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강렬하게 인식하는 공간요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케빈 린치는 이를 길. 중심. 구역. 접경. 랜드마크의 다섯 요소로 정의함으로써 현대 도시계획학의 대가가 되었거니와 이야말로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도시의 가로와 광장이 동선과 행위, 집합을 통제하는 것이라면, 도시내 건조물은 시선과 상징에 대한 느낌을 통제한다. 특정공간에 길을 새로 내거나 어떤 구조물을 새로 짓거나 하는 일은 결국 그 안에 살고 그 안에서 왕래하는 사람들의 사고와 태도를 지배하는 효과를 낳는다. 193쪽  

그렇다면 지금 서울에서 논의되고 있는 초고층건물의 랜드마크는 과연 우리의 사고와 태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불황에 만들어져 호황기에 빛을 발한다는 경제적 논리 이외에 우리의 정신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사고도 함께 해볼 문제다. 서울은 서울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보다 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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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외계 충격은 학제간학회의 1997년 연차대회 주제였다. 이 대회에서는 청동기시대에 운석 강하, 공중 폭발 등 장기간의 외계 충격이 계속되어 인간이 하늘을 공포의 대상으로 인지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하늘에 신이 있다는 보편적 관념이 등장했다는 이론이 제출되었다. ... 어느 때부터 하늘은 신의 공간이요 하늘나라로서 지표와 구분되는 또 하나의 세상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제 신이 인간을 징벌하는 도구는 번개. 비. 태풍 등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들로 구성되었으며, 그 이전까지 신성을 담지했떤 맹수의 이빨, 풀의 독과 같은 것은 잡귀나 마귀의 수단으로 격하되었다. 209쪽 

천체 운행의 법칙성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 멀리 떨어진 여러 장소에서 축적된 경험과 지식들을 한 곳으로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고대 국가들의 거대한 수도는 물리적 구조물일 뿐 아니라 천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지적 구조물이기도 했다. 더불어 집중할 수 있는 힘이 곧 권력이 되었으니 고대의 이집트.메소포타미아.중국 등지에서 천문학과 함께 신격화한 초월적 권력이 출현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천체의 운행에 관한 비밀의 열쇠를 손에 넣은 권력은 그것으로써 하늘과 자신 사이의 혈연적 관계를 입증하고자 했으며, 그런 시도는 예외 없이 성공을 거두었다. 225쪽 

보통은 7일 1휴제가 유대교와 기독교의 산물인 것으로 알고들 있으나, 사실은 바빌로니아 태음력의 소산이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달의 변화하는 모습을 기준으로 구획한 7일 주기를 중요시했고, 각 주기의 마지막 날은 악의 날로 정하여 특별한 터부를 부과했었다. 유대인이 바빌로니아 유랑을 겪으면서 이 주기를 받아들였고, 그것이 7일에 한번씩의 안식일로 바뀐 것이다. 231쪽 

병 걸린 자와 벌 받는 자를 같은 범주로 묶어 보는 관행은 의학 지식이 지배하는 오늘날까지도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다.... 고대에는 속죄의식과 치료 의식이 같았다. 심지어 현대에도 치유의 기적을 과시하는 신의 사도들이 적지 않은데 그들이 사용하는 기적의 치유법은 종종 처벌이나 고문과 구별되지 않는다. 의식이 같은 데 그 장소와 주재자가 다를 이유는 없었다.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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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장수들이 수도회사 피고용자가 될 수는 없었고, 물장수 조합은 관행에 따라 물장수로부터 과중한 조합비를 징수하고는 그중 일부를 수도회사에 일괄 납부했다. 명색은 조합이나 실제로는 수돗물 판매기업이었던 셈인데, 요즈음 기업 경영의 합리화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는 아웃소싱은 이런 면에서는 첨단 경영기법 쪽보다는 중세의 잔재 쪽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듯하다.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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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의 방탕한 유흥을 위해 대궐로 불러들인 미모의 젊은 여성을 흥청이라 불렀다. 흥청망청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됐다.  

조선 후기에는 사람을 셀 때에도 등급에 따라 다른 표현을 썼다. 관리는 員, 양반은 人, 평민은 名, 노비는 가축과 합쳐 口로 셌다. 인구란 인과 구를 합친 개념이다.  

존비법은 다섯 단계, 확장하면 일곱단계였다. 친구간 평어는 하오, 같은 등급의 손윗사람에게 상대어는 하시오, 아랫사람에게 하대어는 하게. 윗급 사람에게 존대어는 하십시오, 아랫급 사람에게 비대어는 해라였다. 왕과 왕비, 대비 등에게만 사용하는 극존대 하시옵소서. 아이들 유예기간 동안 쓰는 반말은 어미를 생략하고 어간만 쓴다. .... 합쇼가 서울 특유의 방언으로 등장, 얼버무림형 존대로. 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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