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맘마미아>는 참 유쾌하다. 소피는 자신의 결혼식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 우연히 보게 된 어머니의 일기장을 통해서 자신의 아버지가 세 명 중 한 명일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소피는 이들에게 초대장을 보낸다. 이들을 직접 보면 자신의 아버지를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서. 이 세 명의 남자가 도착하고 나서 어머니와 마주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영화의 큰 줄거리다. 그리고 영화는 이 모든 이야기를 <아바>의 노래로 이어간다.

영화의 메시지는 이런 해프닝과는 무관하게 소피가 자아를 찾아 보금자리를 떠나 세상으로 나아간다는데 있다. 그런데 이 메시지 이외에도 관객의 마음을 슬프게 하면서도 흡족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바로 사랑과 소유에 대한 관계다.

<the winner takes it all> 사랑도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한다. 짝사랑에 실패하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사랑을 얻어야지만 비로소 모든 걸 가질 수 있다.

승자가 다 갖는 거에요. 패자는 초라하게 서 있을 뿐이죠. 승리의 옆에서.

승자가 다 가지는 거에요. 패자는 몰락해야 하는 것. 그건 간단하고 명백한 거죠.

게임은 다시 시작됩니다. 연인이든 친구든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승자가 모든 걸 갖게 되어 있는걸요.

정말 사랑은 물론 이 사회도 모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혼식장에서 의외의 일이 일어난다. 세 명의 남자가 모두 1/3의 아빠, 1/3의 사랑이라도 갖겠다고 나선다. (실은 아빠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은 유전자 입장에선 최상은 아니라하더라도 차상은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갖는 승자독식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유아살해인데 자신의 자식일지 모른다는 상황은 이 유아살해를 쉽게 일어나지 못하게 해준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선 이런 상황이 아내의 자발적 도발로 일어난다. 하지만 남자 입장에서 보면 그녀 혼자만이 승자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사랑게임은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 그런데 사랑은 정말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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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8-11-09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정말 좋았지요?
맘 편하고 아주 유쾌하게 봤어요. 전 영화본후 한참을 이 영화속에서 살았다지요..

하루살이 2008-11-10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를 흥얼거리면서요 ^^
귓가에 노랫가락이 한동안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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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기원 - 최첨단 경제학과 과학이론이 밝혀낸 부의 원천과 진화
에릭 바인하커 지음, 안현실.정성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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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과 성장의 동시 추구

경영사상가인 찰스 핸디는 음식을 먹는 것은 살기 위한 제약이지만, 아무도 삶의 목적이 먹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생존하는 것과 성장하는 것의 차이를 설명하였다. 

즉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서라면 인간이 사회라는 집단 속에서 살아야 할 이유도 미약해진다. 물론 자급자족이 안고 있는 위험을 생각한다면 생존에 있어서도 사회가 큰 도움이 되지만 말이다. 인간은 협력을 통해서 생존과 함께 성장도 추구한다.

그래서 친척들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의 협력적인 거래는 인간만의 독특한 활동이다. 그 어떤 종도 이방인들 사이의 거래와 노동 분업의 결합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인간 경제의 특징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바라본 부

부는 차별화, 선택, 증식이라는 진화의 공식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차별화, 선택, 증식이라는 진화의 간단한 처방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한 형태로 새로움과 지식, 그리고 성장을 창조하는 프로그램이다. 진화는 정보 처리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 정신, 인간 문화, 그리고 경제에 이르는 모든 영역에서 질서를 창출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경제란 복제의 반복이며, 진화 또한 복제의 반복으로 이것이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화의 과정에서 어떻게 적응력이 높은 기술이 복제되고 확산되는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람에게 유용한 기술은 모방된다. 성공적 기술은 확산되고 그렇지 못한 기술은 쇠퇴하면서 기술의 시장점유율이 변한다고 볼 수 있다.

스미스는 그의 국부론에서 부라는 것은 고정된 개념이 아님을 보여준다. 가치는 다른 누군가가 특정 시점에 이를 얻기 위해 기꺼이 지불하려고 하는 것에 달렸다는 것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무한한 가치는 공급 측면에 있으며 가치는 생산 요소들로부터 파생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캉티용은 가치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한정된 땅을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믿었으며, 마르크스는 노동력이 가치의 궁극적인 원천이라고 보았다. 리카르도는 노동 못지않게 자본도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했다. 제번스와 한계효용주의자들에 따르면 가치는 수요 측면에서 나오는 것으로 그들은 가치란 한 상품에 대한 사람들의 상대적 효용의 차이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신고전주의 이론은 두 관점을 모두 수용했다. 즉 한정된 생산 요소들이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소비자의 개별적 선호도를 충족시키게 되며, 가치는 간단히 말해 두 사람이 거래를 통해 서로 얻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화론적 관점으로 보는 가치 역시 공급과 수요의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공급 측면에는 낮은 엔트로피를 가진 사물이 경제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당연하게도 낮은 엔트로피를 지닌 사물은 흔치 않으며 이를 창조해 내기 위해서는 에너지, 물질, 정보 등이 요구된다. 반면 수요 측면에서는 우리의 선호도에 따라 경쟁 중인 두 개 이상의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해 상대적 매력도가 결정된다.

그러나 가격은 가치와 다르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시장은 투자자가 다른 투자자의 기대에 근거하여 기대치를 결정하고 그 투자자는 또 다른 투자자의 기대치에 근거하여 기대치를 결정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는 영원한 순환 체계이다. 우리는 평균적인 의견이 평균적인 의견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바를 예측하기 위해 우리의 지능을 활용하고 있다. 

기업이 전형적으로 적응보다는 실행에 더 익숙하다는 사실은 단기 수익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생존과 성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서 경영진은 실행과 적응 사이에 내재되어 있는 갈등 구조를 지혜롭게 해결해야 하며 그 둘 사이에 좀 더 조화로운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쟁적인 진화 환경에서 생존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목적이며 적응하고 실행한다는 것은 방법을 말한다. 생존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진화 시스템 안에 있는 모든 디자인에 가해지는 시간을 초월한 요구이다. 

인간에 대한 관점과 경제

자본주의는 단순히 인간의 이기적 욕망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평성과 상호주의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우리를 불공평하게 대하는 사람들을 벌하려는 욕구를 자극할 뿐 아니라 반대로 우리를 도와주고 뭔가를 해주려는 사람들에게는 보상을 하게 한다.

1000원을 공짜로 주고 나눠갖게 한다. 단 나눠갖는 사람이 모두 동의했을 때만 그 돈을 가질 수 있다. 한사람이 990원을 갖고 당신에게 10원을 준다고 했을 때 당신은 그 거래를 거부하게 된다. 그럼 10원조차도 얻지 못하지만 불공평한 것에 대한 거부가 이익이라는 합리성을 넘어 판단에 작용하게 된다. 

 죄수의 딜레마는 비제로섬 게임이라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비제로섬 게임에서 둘 이상의 사람들은 협력을 통해 모두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비제로섬 게임, 그리고  이기심과 협동 간의 끝없는 긴장을 복잡계 경제학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타적이지도 이기적이지도 않다. 연구자들의 말을 빌리면 인간이란 조건부 협력자이자 이타적인 응징자라고 할 수 있다. 긴티스와 그의 동료들은 이러한 인간의 행태를 강한 상호주의라고 하며 타인과 협력하고자 하는 성향과 협력의 규범을 위반하는 자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응징하려는 성향(개인적인 희생을 치르더라도)이라고 정의하였다.

복잡계 경제학이 강한 상호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결국 좌파도 모든 죄악의 근원은 사회라는 루소의 견해를 벗어나 개인의 책임성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우파 또한 인간의 본성은 사악하다는 가정을 전제로 사회 제도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흄의 견해에서 벗어나 인간 본성의 너그러운 측면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트워크 성장이 상호의존을 가져오고, 이 상호의존으로 인해 제약 조건들이 상충하는 일이 일어난다. 상충적인 제약 조건들로 인해 의사 결정은 느려지고 궁극적으로 관료주의적 정체로 이어진다.

한편 한 나라를 다른 나라보다 더 부유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스털리와 레빈은 천연자원, 정부의 역량, 물리적 기술이 어느 정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가장 의미있는 요소는 법률, 재산권의 확립, 빈틈없는 금융제도, 경제적 투명성, 부정부패 척결 같은 사회적 기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가의 역할은 시장의 진화를 촉진하고, 협력과 경쟁 간 효과적 균형을 이루게 하며, 사회의 요구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경제적 적합도 함수를 설정하는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이다. 국가와 시장은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 문제는 효과적인 진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어떻게 국가와 시장을 결합하느냐이다.

그렇다면 개개인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생존과 성장을 함께 이뤄낼 수 있을까.

돈을 쓰는 방식, 직장의 선택, 투표권의 행사를 통하여, 그리고 목소리를 냄으로써 경제, 정치 그리고 과학 제도가 장기적인 시각에서 글로벌 사회의 수요를 좀 더 폭넓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다루도록 유도하는 적합도 함수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러한 적합도 함수를 만든다면 제도와 경제는 필연적으로 거기에 적응하여 우리의 요구에 부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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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를 진보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아메바에서 인간으로의 생물적 진화든, 석기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경제적 진화든, 진화를 진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 학자들은 진화가 진보를 보장해 줄 수 없음을 강조한다. 진보는 매우 주관적 개념이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조건하에서 진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복잡성을 증대시키며, 경제적인 의미로는 부를 증대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 학자들은 복잡화되는 추세도 확신한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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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이 보는 인간의 과오
1. 구조화 액자 편견-이슈를 어떤 틀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영향. 영국은 유로화를 채택해야 하는가 또는 영국은 파운드화를 포기해야 하는가 라고 했을때의 차이
2. 대표성-작고 치우친 표본에서 큰 결론. 사무실서 우연히 만난 일진이 안좋은 세 친구로부터 그 회사가 산산조각나고 있다고 결론
3. 가용성 편견-진실로 필요한 자료보다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의사 결정. 잃어버린 자동차 키를 잘 보인다는 이유로 가로등 밑에서 찾는 행위
4. 위험 판단의 어려움-철도 사고로 4명이 죽자 30억 달러 투자해 보완. 도로 안전에 쓰일 돈과 비교해보면 새명 한 명당 150배나 많은 돈 지출.
5. 미신에 사로잡힌 추론-순서나 발생 등에서 가장 가까운 원인을 찾는 경향. 행운의 양말을 신었더니 승리하더라
6. 정신적 회계-카드 빚이 있는데도 은퇴 자금 저축하는 꼴.
7. 
플라톤-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사회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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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심리학에서 바라본 소비지출 7가지 범주

주거 32% 교통운송 20% 음식 14% 생명보험과 연금 9% 건강관리 5% 의복 5% 오락 미디어 통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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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카드섞기의 우화. 무늬별로 숫자 순서대로 놓여진 카드에서 마구 섞은 다음 상대방에게 똑같이 해보라고 한다. 상대는 무작위로 섞지만 카드를 제시한 사람의 카드 그대로의 무작위인 것은 아닌 셈이다. 이 무작위를 임의적으로 질서가 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녀를 기르는 방식이 아니라 부모가 보여 주는 행동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주사위 짝수면 150달러를 얻고 홀수면 100달러를 잃는 게임에 대해 인간은 거부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위험에 대한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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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2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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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곳에 안락과 행복이 있는데, 치아키의 상황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텔레비전이란 얼마나 잔혹한 장난감인가. 히다카 치아키가 조금이라도 상상력이 있는 소녀였다면, 구리하시 히로미가 텔레비전을 켜둔 의미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실체가 없는 정보만 던져줌으로써 고독과 허기와 목마름의 고통을 한층 더 부추기는 일종의 고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74쪽

병실이란 한 인간이 자신에 대해서나 타인에 대해서나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를 확인하는 곳이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장소이다. 지금까지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했던 애정과, 쌓아왔다고 확신했던 인간관계가 그저 거짓과 무관심과 착각과 기대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절망에 빠지는 일이 종종 있다. 189쪽

진정한 악이란 이런 거야. 이유 따위는 없어. 그러므로 피해자는 자기가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는지 모르는 거야. 원한, 애증, 돈, 그런 이유가 있다면 피해자도 납득을 할 수 있겠지. 자신을 위로하거나 범인을 미워하거나 사회를 원망할 때는 그 근거가 필요한 거야. 범인이 그 근거를 제시해주면 대처할 방법이라도 있지. 그러나 애당초 근거 같은 건 없었어. 그거야말로 완벽한 악이야. 203쪽

누군가를 향해 손을 내밀고 내가 곁에 있으니 괜찮다고 말을 거는 순간에, 그는 다른 사람이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처음부터 듬직한 인간은 없다. 처음부터 힘있는 인간은 없다. 누구든 상대를 받아들일 결심을 하는 순간에 그런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365쪽

인간이 일으키는 재난의 뿌리에는 오로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 다케가미의 생각이었다. 450쪽

잘 들어. 인간이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야. 절대로 그러지 못해. 물론 사실은 하나뿐이야. 그러나 사실에 대한 해석은 관련된 사람의 수만큼 존재해. 사실에는 정면도 없고 뒷면도 없어. 모두 자신이 보는 쪽이 정면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야. 어차피 인간은 보고 싶은 것밖에 보지 않고, 믿고 싶은 것밖에 믿지 않아. 4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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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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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란 사회가 갈구하는 형태로 일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111쪽

실은 이말처럼 무서운 말도 없다. 모방범은 토막난 시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연쇄살인의 흔적이 발견되고, 범인은 아예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범죄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 그 진짜 범인은 희생자들의 가족과 술래게임을 하는 등 범죄에 대한 무도덕적 감각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범인이 누구인지, 범죄동기는 무엇인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이 소설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예기치 못한 반전이 가져다 주는 분노와 허탈감 등이 더해지면서 빨리 결말을 보고싶은 충동에 빠진다. 그 와중에도 저자가 범죄가 가져다주는 사회적 충격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은 많은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사회가 갈구하는 형태로 일어나는 범죄란 무얼 말하는 걸까. 연쇄살인마의 탄생은 사회적 가학, 피학의 욕구로 탄생하는 걸까.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묻지마 범행이란 말은 언제 어떻게 희생될지 모르는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는 범죄일지 모른다. 나는 희생양이 될 수 있다라는 공포가 이런 범행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데 희생자라는 인식은 범인에게로도 향해 이들 또한 사회적 희생자로 비쳐지기도 한다.

범인 또한 사회의 희생자라는 논리로, 거기에 반론을 펴는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 세상에는 그런 희생자들만 가득하다. 신이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진짜로 싸워야 할 적은 누구인가? 317쪽

어느 쪽이 보다 빨리 효과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알리고 사회의 신뢰를 얻을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선악의 판단 기준이란 그것뿐이다. ... 사람들은 모두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선전이야말로 선악을 결정하고, 옳고 그름을 정하고, 신과 악마를 나누는 것임을. 법이나 도덕규범은 그 바깥에서 하릴없이 어슬렁거리고 있을 따름이다. 343쪽

이것처럼 현대사회를 잘 비쳐주는 말도 없을 것이다. 수많은 대중매체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옳음이 무엇인지를 강요하고 있는 다양한 목소리들. 그래서 누군가는 선전활동을 위해 목소리들을 장악하려 든다. 그 목소리들을 통해 자신이 항상 옳다는 것을 심어주기 위해서. 적은 그렇게 위장한다.

범죄자뿐 아니라 사건을 일으키기 쉬운 종류의 인간을 사건 쪽으로 몰아가는 것은 격정도 아집도 금전욕도 아니다. 영웅이 되고 싶은 욕망이다. 그것은 다케가미가 오랜 세월 형사생활을 하면서 느낀 진실이었다. 361쪽

영웅에 대한 욕망은 결국 영웅을 갈구하는 사회가 일으킨 것일까. 결국 첫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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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엔 가족이 없다. 송혜교도 현빈도 혼자 산다. 그들의 고향이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서울 토박이일듯 한데 가족과 함께 사는 것 같진 않다. 드라마 속에서 그들이 대화하는 상대에서 가족은 빠져 있다.

그들은 그들이 몸담고 있는 회사라는 조직과 그들이 사랑을 주고받는 연인들간의 관계로만 읽혀진다. 물론 이 조직생활과 연애생활은 무척 닮아 있다. 1회와 2회에서 보여진 적과 아군의 경계, 권력다툼은 사회를 살아갈 때도 사랑을 키워갈 때도 부닥쳐야 하는 문제들이다. 모든걸 의연하게 대처할듯한 현빈에게도, 천방지축 뛰어다닐듯한 송혜교에게도 문제는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그들의 대처 또한 시시각각 다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목소리가 아닌 주변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한마디씩 한다. 사는게 그렇게 힘든 거라고. 또는 반대로 이 세상이 그렇게 진중하게 살아갈 만한 것이냐고.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그들이 사는 세상에 가족이 없다는 것은 안타깝다. 하지만 바로 그게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일련지도 모른다. 하나만 낳아져 자란 이들에게도 그렇지만 떨어져 혼자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그렇다. 그들이 날마다 대하는 사람들은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답도 해답도 알지 못하는 인생살이에 나만의 답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답대로 살아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그들이 사는 세상이 그리워진다. 비록 외롭고 고달퍼 눈물을 흘릴지라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세상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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