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 상태인 어머니에 대한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낸 가족들이 12일 존엄사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 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함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면서 이제는 깊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만한 영화가 한편 있다.



씨 인사이드

 

2007년 개봉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영화 <씨 인사이드>는 안락사에 대해 다루었다.

26년 전,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다 전신마비자가 된 라몬 삼페드로, 가족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속에 침대에 누워서 오로지 입으로 펜을 잡고 글을 써왔던 그의 소망은 단 하나, 안락사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라몬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두 명의 여자가 찾아온다.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 수다스럽지만 순수한 여인 로사. 그녀는 라몬을 사랑하게 되고, 급기야 자신을 위해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설득한다. 또한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변호사 줄리아. 라몬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안락사 소송을 도와주는 동안 그녀는 그에게 점점 사랑을 느끼지만, 그 감정조차도 그들에겐 너무나 버겁다.

그리고 또한명 주목해야 할 사람은 생명의 존엄성을 설파하는 추기경(?), 자신도 장애를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생명을 영위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락사를 요구하는 것은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따듯하게 대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것은 라몬에게도 그의 가족들에게도 깊은 상처만을 남긴다.

변호사 줄리아와의 사랑이 점차 깊어져갈 때 이 사랑이 라몬의 죽음에 대한 열망을 막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랑마저도 안락사에 대한 그의 열망을 식혀주지는 못한다.

이 영화를 보면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어쩃든 살아야 한다는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과연 정말로 어쨋든 살아가는 것이 인간답게 죽는 것과 어떻게 다를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것에 대한 결정은 스스로에게 주어져야 할 문제일까. 아니면 사회적 약속으로 이루어져야 할 문제일까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한다.

엉엉 눈물을 흘리는 영화가 아니라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깨닫게 만드는 영화다. 이 영화가 현재 노령화 사회로 치닫는 우리에게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게된 우리에게도 잔잔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너울을 일으킬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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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산에서 마주친 야생화


동화책에서 읽었던가?

한 생명체가 죽으면 별이 되고 그것은 또다른 생명체가 탄생할 때 그 영혼에 깃든다고...

뿌리가 파헤쳐져 말라 비틀어지고 있다. 땅 속에 묻혀 있어야 할 뿌리는 밖으로 드러나면 죽음에 이른다. 그 죽음의 그림자 가운데 꽃이 피었다. 샛노랗게 생명의 찬가를 부른다.

채우기 위해선 비워야 한다고도 한다. 잡기 위해선 일단 손을 펼쳐야 한다.

 

지금 무엇인가 꼭 쥐고 놓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은 없을까. 그것이 이미 말라비틀어진 뿌리임에도 불구하고. 손안에 꼭 쥔 것은 너무 꼭 쥐고 있는 바람에 무엇이 들어있는지조차 잊어버린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의식도 못한채...

꽃은 바람이 가져다 준 선물. 바람이 불도록 빈 공간을 만들어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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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5-12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핏 봐선 양지꽃 같은데요.

하루살이 2008-05-13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양지꽃.
ㅋㅋ
언뜻 봐도 아시는군요 ^^
 



얼레지



철쭉

꽃이 주목을 받을 때는 활짝 자신의 모습을 다 보여주었을 때이다. 간혹 동백꽃처럼 목아지가 뚝뚝 떨어진다는 이미지와 벚꽃처럼 비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지는 꽃도 주목을 받기도 한다.

인생에 있어서도 왕성한 활동을 통해 전성기를 누리는 때와 어떻게 은퇴하는냐는 큰 관심사다. 그러나 꽃이 피기 직전은 주목받지 못한다. 오히려 될 성 부른 떡잎처럼 새순은 주목받을지언정...

막 피어나기 직전의 꽃봉오리.

어떤 모습으로 피어날지, 또는 과연 제대로 피어나서 아름다움을 한껏 뽐낼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꽉 닫혀진 꽃잎에선 기어코 자신의 운명을 지켜내리라는 의지마저 엿보인다.

우리는 지금 그렇게 피어나기 직전의 꽃봉오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바람이 너무 세다고, 비가 내린다고, 기온이 갑자기 떨어졌다고 꽃피우기를 주저해서는 안될 것이다.

팍팍한 현실에 묻혀, 쳇바퀴 돌듯 지리한 일상에 묻혀 가끔 고목처럼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서 내 진짜 모습은 꽃봉오리임을 잊어버린다. 그러니 자기최면을 걸자. 난 진짜로 이제 곧 피어날 꽃봉오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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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쇠고기 수입과 맞물려 광우병을 둘러싸고 온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냐에 있을 것이다. 30개월 이상 된 소와 함께 7개 위험부위에 대한 안정성 여부에 따라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달려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안전하다는 쪽도 불안하다는 쪽도 정확한 과학적 근거를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광우병에 대한 정확한 원인과 그것이 인간에게 어떻게 전이되어 병을 일으키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잠복기가 워낙 길어 정확한 인과관계 규명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젠 대놓고 정부에서도 먹기 싫으면 안먹으면 된다는 식의 발상까지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그건 그렇다치고 아무튼 이런 핵심적 논란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차피 이 논란은 안정성 여부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검역에 대한 믿음으로 해결하면 차선책일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검역에 대해서도 현재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또 드러나게 된다.

아 또 하고싶은 말에서 벗어났다.
광우병의 발병은 동물사료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런데 왜 축산업체는 동물사료를 소에게 먹이기 시작했을까. 값싸게 소를 피둥피둥 살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의 원인은 고기에 대한 엄청난 소비로부터 시작된다. 싼값에 고기를 누구나 접할 수 있게되면서 고기 소비는 급증했다. 이 소비에 맞춘 공급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축사가 들어서 소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 소를 먹이기 위해 나무가 베어지고 곡물을 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곡물생산은 고기소비 증가를 따라잡기가 힘들다. 이때 나타난 동물사료는 손쉽게 넘어갈 수 있는 유혹이다. 소를 키우며 오염되는 물과 소 한마리를 키우는데 필요한 곡물과 토지를 위해 베어진 나무로 인한 온난화는 논외로 하자. 
귀족들이나 소수의 부자들만이 누리던 호사스러운 고기라는 음식이 일반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니 그것마저 무시하지는 말자. 하지만 매일 고기를 먹는 습관으로 인해 성인병이 일반화되고 그로 인한 의료비도 엄청나다. (이 보험료만 아낀다 하더라도 농촌을 살릴 수 있는 보조금은 충분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고기이기도 하지만 절제를 하는건 어떨까. 하루에 한번씩 먹었다면 사나흘에 한번씩, 사나흘에 한번씩 먹었다면 일주일에 한번씩, 일주일에 한번씩 먹었다면 한달에 한번씩...
특정한 기념일이나 공휴일등을 고기 먹는 날로 정해 특별한 음식으로 맛보는 것은 어떨까. 고기 소비의 감소가 우리 속에 사료먹는 소들을 방목으로 키울 수 있는 건강한 소로 만들어주진 않을까.

또하나.
일본처럼 1억이 넘는 소를 키우라기 보다는, 또 축산업자들에게 지급되는 일시처방인 보조금보다는 차라리 그 지원과 보조금으로 급식업체들의 원료를 한우로 하는 건 어떨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곳에 보내지는 음식들에 있어서만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누이좋고 매부좋은 방법은 아닐까. 물론 이건 현재 FTA로 인해 어려운 방법이 되버렸지만 말이다.
소말고도 유기농을 통한 토지의 생명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각 지방자치별로 인근에서 나는 유기농 채소와 소, 돼지 등을 학교나 군부대에서 납품받는다면 일정한 보급으로 인한 안정적 공급으로 농촌도 살고 국민건강도 지켜질 순 없는 것일까.

너무 답답해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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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바로 감자싹입니다.

감자싹은 독이 있어서 요리를 할 때 도려내야 합니다. 그 싹을 가만히 놔 둬보니 이렇게 자라는 군요.

색깔이 강렬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풍깁니다. 관상용 선인장의 느낌도 줍니다.

버섯도 독이 있는 것이 오히려 더 화려하다고 하죠.

아름다움은 독약과 같은 것일까요.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를 마비시킨다는 점에서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그것을 소유하려 하면 역시 해를 입게 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눈길이 가는건 무엇 때문일까요?

살아가면서 거리를 두어야 할 것을 알면서도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듯 그것에 집착하는 자신의 모습을 뒤늦게 알아챕니다. 때론 그 치명적 아름다움을 한발짝  뒤로 물러서봤을 때 진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잠깐 발걸음을 멈춘다는 것. 그게 살다보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잠깐 크게 심호흡 한번 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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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4-30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자싹, 이렇게 눈을 대고 보니 아름답군요.
저것도 목숨 있는 것이라서 그럴까요. 독이 있어 그럴까요.

하루살이 2008-05-13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은 치명적이기도 하다?

ㅇㅇ 2014-07-24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자싹은 70도 이상 가열하면 문제가 없고 항암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