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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부익부 빈익빈의 극단 상황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굶어죽는 사람과 먹을 것을 함부로 버리는 사람으로 표현되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 영화에선가 나왔던 맛을 음미하기 위해 나온 음식 중 한 입만을 먹고 물린다는 사람은 부의 표상일 것이며, 쓰레기 더미를 뒤져서 먹을 것을 찾아 입에 넣었다 식중독 등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는 사람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요지경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은 음식이 굶고 있는 사람에게 전해진다면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터이지만 실제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절망하게 된다. 도대체 왜 그럴까.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 경제 질서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뭄과 홍수같은 자연재해, 빈민국의 후진적 정치형태, 턱없이 부족한 구호단체의 지원, 전쟁이나 테러 등의 직접적인 이유도 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실제 지구가 생산하고 있는 식량의 절대량은 모든 지구인을 살리고도 남을 수준이라는 점에서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하지만 이 부차적인 문제가 부차적인 문제에서 끝나지 않은 것은 시장 제일주의와 함께 그 시장을 통해 이윤을 챙기려는 다국적 기업과, 독재 지도자 등의 부패한 부유층 등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책은 이런 이야기들을 굉장히 쉽게 풀어쓰고 있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듯 써내려간 글 덕분이다. 그럼에도 설명이 부족한 것은 다국적 기업이 빈민국의 지도층으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으며 1차적 식량에 대한 권한을 갖는지, 그리고 그 혜택이 어떻게 주어져 작동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례와 분석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문제의 근원을 세계 경제 질서로 밝히는 근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비약된 느낌이다. 이런 부족한 부분은 '굶주리는 세계'라는 책을 참고하면 좋을듯하다.
아무튼 책이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이렇다.
어떤 나라가 자급자족을 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어도 사회정의가 이룩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144쪽)
그렇다면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
그런데 이 사회정의는 한 국가내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국적성과 독점성에 대한 충동은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 존재했다. (중략) 금융자본이 산업, 무역, 서비스 등의 자본들을 제치고 주된 자본으로 부상한 것이다. (159쪽) 금융자본은 결코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오늘날 부, 즉 경제력은 다혈질적인 투기꾼들이 벌이는 카지노 게임의 산물이다.(161쪽)
그렇다면 과연 누가 정의를 논할 것인가? 이제 아무도 그럴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손, 세계시장밖에는...(163쪽)
그래서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손을 놓고 시장에게 놀림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라고 썼다. (169쪽)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171쪽)
그렇기에 우리의 희망은 새롭게 탄생할 전지구적인 민간단체에 있다고 책은 말한다. 사회운동, 비정부조직, 노조들의 세계적인 연대만이 워싱턴 합의와 인권 사이의 대립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 찾아오는 이 무력감은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