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TV 에서는 인간탐구 대기획 5부작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1부는 남과 여, 2부는 도덕성, 3부는 자아존중감, 4부는 다중지능, 5부는 나는 누구인가로 이루어진 다큐는 아이의 사생활을 넘어 인간의 뇌와 심리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를 많이 소개했다.

이중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1부 남과 여의 차이가 생체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것.

여성은 공감형 뇌를, 남성은 체계화형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렸을 적 남아와 여아간 행동에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망막의 두께 차이로 인해 여성은 색의 변화에, 남성은 동작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는 것도 새롭다. 이러한 차이는 성호르몬과 손가락 길이의 관계를 밝힌 존 매닝 교수의 연구가 더해지면서 흥미를 더욱 끌게 된다. 남성적 뇌를 가진 사람은 네번째 손가락이 두번째 손가락보다 훨씬 길고, 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통계를 통해 보여준다. 다만 이 비율상 애매모호한 17%가 있는데, 이들은 남성이면서도 여성적인 뇌, 여성이면서도 남성적인 뇌를 지니고 있다. 이런 소수가 존재하는 이유는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갑작스러운 변화로 동시에 모두가 소멸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본다.

이런 연구들은 남아와 여아를 키우는데 있어서 서로 다른 접근법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는 것과, 소수자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겠다. 이런 차이를 인정하면 차별은 사라질 것이다.

이런 차이에 대한 이야기는 4부 다중지능에서도 드러난다.

기존의 아이큐라는 단편적인 인간 뇌의 측정이 아니라, 8가지로 나뉜 다양한 영역에서의 지능, 즉 다중지능을 통해 개인이 가지는 적성과 능력, 그리고 그것에 맞춘 직업을 갖게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8가지 영역은 공간, 언어, 음악, 논리, 신체, 자기이해, 대인관계, 자연 친화로 나뉜다. 이 8가지 중 가장 뛰어난 세가지 영역이 자신의 소질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음악과 대인관계, 자기 이해 능력이 좋다면 음악가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분류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자기 이해 능력이다. 반대로 현재 직장인들 중 직장을 그만두거나 다른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점은 자신의 상위 3개 능력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경우라는 것이 놀랍다.

이런 결과들은 게놈 프로젝트에서 말한 게놈이라는 것이 마치 주역 등을 통한 운명과 많이 닮아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유전자이든 운명이든 자신의 능력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 능력에 맞추어 발전시킨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든다.

이런 점에서 3부의 자아존중감은 또다른 의미에서 중요하다. 나를 존중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존중하고, 또 인생을 즐기며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자아존중감이 높고 낮은 원인에는 선천적인 기질도 있지만 부모의 태도가 특히 중요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부모가 자식을 설득하려하거나 가르치려고만 들지 않고, 먼저 공감하는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부모와 어린 자식간의 관계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닐듯 싶다.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가 마땅히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이 5부작 중 가장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은 2부 도덕성과 성공확률이다. 도덕성은 단순히 착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도덕성에는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한 심성의 문제가 아니라 지적 능력도 중요하다. 도덕성의 3대 요소로 민감성, 판단력, 용기를 꼽는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성공의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서 살펴보아야만 할 것이 있다. 도덕성이 체제 순응적 인간을 양성하는 것인가에 대한 접근이다. 성공이란 의미도 체제 순응적 성공만을 말하는 것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체제에서라면 과연 도덕성은 어떻게 작용해야 할까. 그리고 그 체제에서는 어떤 사람이 성공한 것일까.

도덕성이 가치 판단을 필요로 하듯 도덕성과 성공의 관계 또한 가치에 대한 접근이 필요할 터이다.

아무튼 이 다큐멘터리는 은연 중 소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남성과 여성의 뚜렷한 구분에서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는 17%의 소수와 제대로 된 도덕성을 갖춘 소수자들(?), 아이들에 억압적이지 않고 행복을 대물림할 수 있는 소수(?)의 부모들 등등. 타인과 같은 또는 비슷한 행동을 통해 또는 소속감을 통해 안심하고 안주하던 때로는 불평하던 것에서 탈출해 보다 행복해질 수 있도록 자신의 길을 또는 아이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힌트를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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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3-05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훠나!
제 네번째 손가락이 (양 손 모두) 두번째 손가락보다 길어욧!
내 뇌의 정체성이...*.*

하루살이 2008-03-06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럼 17%에... 오히려 이런 분들이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그래서 희망의 부피도 크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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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없는 세상
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의 DMZ는 자연의 보고로 알려졌다. 6.25이후 휴전협정이 이루어지면서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 그래서 뭇생명들이 그 조그만 곳으로 몰려들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뢰밭 위에 자연의 향연이 펼쳐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의 손길, 발길이 닿지 않음으로써 회복된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은 의외로 많다. 폴란드의 비알로비에자 숲은 수령 500년이 넘는 참나무들로 빽빽하다. 하지만 이곳은 과거 철의 장벽이 여전히 남아있어 철조망 사이로 넘나들 수 없는 몸집 큰 동물들은 이동이 제한됨으로써 점차 그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의 모습은 또 어떤가. 강제적으로 추방(? 이주?)된 사람들 덕분에 인간을 제외한 생명체가 다시 돌아옴으로써 활기를 되찾는다. 물론 이들의 유전자가 어떤 변형을 일으켜 후손들의 변이가 일어날지는 아직 모른다. 또한 동물뿐만 아니라 정부의 눈을 피해 사람들도 조금씩 돌아왔다.

이러한 예들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지구에 가하는 폭력과 살생의 참혹함일 것이다. 인간이 없어진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우니까.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외계인들이 현재의 지구인들을 바라보면 자살하려는 줄 오해하기 십상이라고.

저자는 상상을 해봤다. 정말로 지구에서 인간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지구의 멸망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만 송두리째 없어진다면 말이다. 그런 상상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해 저자는 한국의 DMZ를 비롯해 자연이 숨쉬는 곳은 물론, 도시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도 살펴보았다. 인간이 사라진다면 도시 또한 사라질테니 말이다.

도시가 사라진 후의 극명한 모습은 뉴욕을 통해 알 수 있다. 물론 뉴욕뿐만은 아니다. 지구위에 존재하는 모든 도시가 이와 비숫한 상황이다. 도시는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한 전기에 의해서 움직인다. 그래서 인간이 사라지면 화석연료의 사용도 없어지고, 전기도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뉴욕 지하철의 경우 지하철을 흐르는 지하수를 끌어올려 하수구로 뱉어내는 것이 멈추게 됨으로써 반나절이면 물로 넘쳐나게 된다. 아스팔트와 도로 위에 고개를 내밀던 식물들도 득세를 하게 된다. 물은 제 갈길을 찾고 동물들은 빌딩을 은거지로 모여든다. 몇년만 흐르면 빌딩 숲은 생명의 숲으로 변하게 된다. 지붕에 뚫린 주먹만한 구멍 하나만으로도 수십년 후엔 건물이 쓰러진다.

눈길을 과거로 돌려보자. 아프리카엔 하마나 기린, 코끼리 등 거대한 동물이 살고 있다. 하지만 북아메리카에는 덩치 큰 생명은 사라졌다. 물론 예전엔 있었다. 화석이 그 존재를 입증한다. 그런데 왜 사라진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인간의 갑작스런 출연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인류와 함께 거대한 동물이 같이 진화해갔지만 북아메리카에선 갑작스레 인간이 나타나면서 몸집 큰 동물들이 사냥감으로만 여겨져 이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렇게 동물을 죽이는 것은 직접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북아메리카에서만 1년이면 조류가 2억마리가 죽어나간다. 물론 사냥에 의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 전깃줄이나 송신탑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의도하지 않은 살상이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예전에 인류는 자연과 공존해왔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이토록 변해버린 것일까. 저자는 그것을 인간이 포획물 또는 상품이 되면서부터라고 말한다. 즉 노예로 여겨지거나, 근대화 이후 노동력으로 여겨지면서 크나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잉여의 인간들로 잉여의 가치를 얻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착취가 일어난 것이다. 인간에 대한 착취는 자연에 대한 착취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게 된다.

인간이 세계 곳곳에 도착하면서 지옥이 되어버린다는 마틴의 전격전 이론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인구감소를 그 방법으로 내세우고 있다. 누군가는 2억 정도의 인구가 지구와 공존할 수 있는 최대 숫자라고 하지만, 저자는 그정도까지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부부가 1명의 자녀만을 갖도록 하는 출산억제를 통해 차근차근 인구를 줄여나가자고 한다.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인구는 이미 노동력이자 상품의 힘이고, 또한 경쟁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출산감소로 애타하는 각국의 정부들을 보라. 그런 정부들에 출산억제를 이야기하면 과연 통할 수 있을까. 저자의 해결책이 현실에서 발을 떼고 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물론 세계정부가 꾸며져 그 정도의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면 지금의 인구로도 화석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억제력 또한 가질 수 있는 것 아닐까.

아무튼 자연은 인간을 위한 자연이 아님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자연을 통해 위안을 얻고 힘을 얻는다는 것도 깨닫는다.

사족

1. 지구에 대한 보호에서도 엇갈린 제안이 있다. 종의 다양성을 확보할 것인가, 생태계 유지라는 기능성 위주의 생명체를 키울 것인가.

2.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건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실제로 바다는 이미 오염되어 있음을 책은 말하고 있다. 바다는 물론 모래사장에 눈으로 보이지 않는 엄청난 플라스틱 가루들로 꽉 차 있다고 한다. 그 플라스틱을 버린 곳은 문명국들이지만 실제 피해를 입는 곳은 어떤 곳도 가리지 않는다. 우리가 황사 피해를 입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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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격자의 인기가 거세다. 잔인한 화면이 눈에 거슬릴수도 있겠으나 영화 관람 내내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럴만하다고 생각된다.

추격자라는 제목이 풍기는 이미지에 걸맞게 도망치고 쫓아가는 장면들이 심장을 죄어온다. 하지만 정작 영화의 재미는 범인이 누구인가를 찾아 범인에게 근접해가는 것이 아니라, 범행이 이루어진 장소를 찾기 위한 과정에 있다 하겠다.

생과 사의 갈림길은 범행의 장소를 찾는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장소라는 것은 외딴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옆집이다. 바로 이 부분이 영화의 섬뜩함을 극대화시킨다고 본다.

시골도 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집과 집 사이가 담이라기 보다는 울타리라고 여겨진다. 고개를 살짝 들어 서로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곳. 물론 이런 삶은 꼰대가 있어 괴로운 부분도 있다. 소위 말하는 사생활이라는 것의 영역이 축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의 담이 갖는 소통의 부재가 주는 고통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에 집을 찾은 손님은 단 1쌍의 부부였을 뿐이다. 옆집에 사는 사람들은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는다. 그래서 범행은 태연하게 계속될 수 있었다.

영화의 또다른 재미는 살인 동기에 있다. 경찰이 기소를 하려해도 그 동기때문에 힘들어한다. 마땅한 동기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 동기를 성적 불능으로 암시한다. 하지만 범인은 그것을 승화(?)시킨다. 범행 전 죽음을 당하는 피살자에게 물어보는 한 마디.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봐!"

과연 범인을 납득시킬만한 생존의 이유를 댈 수 있는 피살자들이 있었을까? 지금 당장 나 자신에게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보자. 과연 나는 무었때문에 생명을 계속 유지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 당위성이란 얼마나 비합리적인 것인가를 느낄 것이다. 논리로서 누군가를 설득할 수 없는 존재의 이유.

삶은 살아있음으로 인해 살 이유가 되는 것이다. 오직 그뿐이다. 그것을 이해 못하고 목숨을 앗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범죄가 되는 것이다. 

영화 속 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삶을 충만하게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자. 그것이 밤하늘에 빛나는 빨간 십자가가 구원이 되지 못하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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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아의 동굴
호세 카를로스 소모사 지음, 김상유 옮김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와 당신이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같은 유토피아일까? 서로 다르다면 유토피아는 60억가지의 유토피아가 존재하는 셈일까? 누구나 똑같이 생각할 수 있는 유토피아란 불가능한가? 아마 그런 유토피아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유토피아에 대한 이데아일 것이다. 그런 이데아는 존재하는 것이며, 도달 가능한 것일까.

소설은 이데아에 대한 이런 의문점을 내비친다. 플라톤과 필로텍스토스와의 대결. 지식의 5가지 요소인 이름, 정의, 심상, 토론, 이데아를 둘러싼 이들의 대결이 전체 맥락이다.

이 와중에 이성과 감정의 대립 또한 드러난다. [동굴]이라는 원본이라 여겨지는 액자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건이 그렇다. 플라톤이 이끄는 아카데메이아의 학생이 죽으면서 발생하는 연쇄살인사건. 그리고 그 와중에 보여지는 디오니소스를 숭상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뛰어넘어 광기로까지 이어지는 종교집단이 등장한다. 소설의 재미는 이 사건의 범인과 범죄동기에 대한 궁금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와 함께 [동굴]이라는 원본을 번역하는 번역자가 역주를 달면서 점점 텍스트 속으로 빨려들어 현실과 텍스트가 교묘하게 뒤얽히는 모습에 있다.

그런데 아테네 시절의 철학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이 수많은 텍스트들로 꽉 차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는 지금 맨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네가 똑같은 텍스트를 읽고 나서 반대의 주장을 하는 것 말이야. 책들 속의 단어들이 형성하는 심상이나 이데아들이 그렇게 깨지기 쉽다는 사실이 끔찍하다는 거지... 우리 주장과는 별개의 최종적인 이데아가 존재해야 해.-번역자

라고 우리도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누구나 똑같은 이데아가 과연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아테네인들은 말장난이나 궤변, 텍스트나 대화에 대한 당신들의 열정 말이오! 듣고 읽고 단어를 풀이하고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논쟁과 반론을 만들어내며,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 채로 배우는 당신들의 방식 말이요! 아테네인들은 사유하며 음악을 듣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이며 또한 글을 읽지도 쓰지도조차 못한 채 즐기며 고통받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더욱더 무수하지만 한 우두머리에 의해 지배받는 또 다른 나라요.(105쪽)

바로 우리의 모습도 그와 똑같지 않을까.

당신이 여기서 나가 첫번째 발견하게 될 것은 단 하나의 진리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오.(107쪽)-크란토르

이 사람은 번역자요. 다른 언어로 쓰인 텍스트의 신비를 풀고자 하는 남자인데, 단지 단어는 새로운 단어로, 그리고 생각은 새로운 생각으로 유도되지만, 진리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오.(189쪽)

나는 단지 내가 볼 수 있는 것만 믿는다네. 추론은 사물을 보는 또다른 방법이지.(132쪽)-헤라클레스

이데아에 대한 맹목적 믿음, 하나의 진리란 없다고 말하는 상대주의적 태도, 과학적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소설 속 세 가지 태도에서 우린 쉽게 마지막 태도를 긍정하게 된다. 물론 액자소설의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태도이기도 하려니와 현대인의 태도와도 가장 어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란토르의 경고를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

언제나 설명들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그것들을 꾸며내는 위험의 소지가 있지.(134쪽) 스핑크스는 자신의 질문에 정확하게 답변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잡아먹었지. 그렇지만 헤라클레스, 가장 공포스러운 게 무엇인지 아나? 가장 공포스러운 건, 스핑크스가 날개를 지녔기에 어느 날 날아올라 사라졌다는 거야. 그때부터 사람들은 스핑크스에게 잡아먹히는 것보다 엄청나게 더 나쁜 걸 겪고 있다네. 우리의 답변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다는 것일세(138쪽)

기하하적인 형태를 도안하고 엄격하게 규범에 따른 윤곽을 그리고 있소! 우리는 즉흥성과 힘과 아름다움을 잃어버렸소!(183쪽)과거에 철학은 힘이자 충동이었소! 지금은 무엇이오? 순전히 지성이오! 무엇이 우리의 관심사였소? 만물의 물자체요. 그런데 지금은? 이데아의 세계에 대해서요!(185쪽)-조각가 메네크로스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디에 있을까,  

인간은 본능이 아니라 이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네.(348쪽)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이제 창조성을 중요하게 여기듯이 즉흥성과 힘과 아름다움으로 또다시 변모하고 있는 것일까.

숨겨진 이데아나 최종적인 열쇠나 궁극적인 의미 찾기를 중단하시오! 읽기를 멈추고 삶을 사시오! 텍스트에서 빠져나오시오! 당신들은 무엇을 보고 있소?단지 암흑만을? 더 이상 찾지 마시오!(366쪽)

액자소설 속에서 그리고 현실 속 번역자와 또 다른 번역자 간에 되풀이되는 논쟁. 결국 사건을 해결된다. 그리고 대결은 끝난다.

범인은 누구이고, 어떤 이유로 사건이 벌어진 것인지에 대한 추리소설적 재미가 소설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큰 요소이다. 그리고 또하나, 이데아와 열정이라는 이름의 본성간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흥미를 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계속 굴러가는 텍스트에서 벗어나 현실에 정착하라는 것일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생겨난 가상현실은 또다른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책을 덮고나서도 의문은 끝이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어쩌지? 이상도 열기도 사라진 차디찬 현실에 발을 내디뎌라? 그런데 그 현실이 이미 텍스트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당신의 본능에 충실해야 할 것인가?

이상과 본능이 뒤얽힌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도대체 유토피아는 도래할 것인가? 쾌락은 충만할 것인가? 우리는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어디로 향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것을 타인도 똑같이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일단 깨닫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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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갑자기 홍콩 느와르가 그리워진다. 이쑤시개를 입에 문 주윤발의 모습과, 코피를 흘리는 유덕화, 총에 맞고 쓰러지는 장국영 등. 고등학교 시절 푸른 빛이 감도는 홍콩영화에 반해 프라모델 소총까지 샀던 기억이 있다. 동생과 함께 BB탄을 날리며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착각에 빠졌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홍콩 느와르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세월이 하 수상키 때문일련지도 모르겠다. 홍콩 느와르라는 것이 중국으로의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불안한 감정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눈앞에 닥친 현실이 자꾸 우울하기 떄문에 당시의 기분으로 되돌아가고싶어하기 때문이지 않는냐는 것이다.

1980년대말, 1990년대 초 홍콩영화의 소재이자 테마는 의리였다. 주인공들이 비록 조직폭력배이거나 범죄자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동경했던 것은 목숨을 내주고서라도 의리를 지키는 모습 때문이었다. 물론 이 의리를 지킨다는 것이 악용이 되다보면 처참한 복수의 연쇄로 이어지겠지만, 당시 피끓는 나이엔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목숨도 바칠만큼 끈끈한 그 무엇을 나도 갖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들의 의리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영웅본색에서 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는 주윤발의 모습의 영향이 가장 클 듯 보인다. 돈이면 다 될 것 같은 세상, 돈으로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세상을 대하다보니, 너무 우울하다. 그런데 그 돈을 불쏘시개 정도로 생각하며 친구를 위해, 가족을 위해 피를 바치는 모습은 지금 돌이켜보아도 감동적이다.

그렇게 불쏘시개마냥 돈을 대할 순 없을까? 그렇게 목숨을 바칠만큼 애정을 가지고 사람을 대할 순 없을까? 점차 시대에 묻혀가는 내 자신을 돌아보며 홍콩의 푸른 빛 밤거리를 떠올려본다. 영화 포스터처럼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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