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어둠이 걷힌 자리

빛이 나타난다

안개를 헤치고 나오는 빛은 아름다운 색을 내뿜는다.

갇혔던 자리에서 나오는 해방의 기쁨을 오롯이 색으로 나타낸다.

속리산 입구에서 새벽녘에 바라본 하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속리산 문장대

신선대 쪽에서 바라본 문장대 모습

세번 오르면 극락에 간다고 한다. 이번이 세번째니 난 극락행 예약해 논 셈인가?

그런데 극락에 가는 것이 꼭 좋은 일일까? 걱정 근심이란 마음에서 생기는 법, 극락이라고 해서 마음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터이니 말이다.

속세를 떠난 속리산에서 속세를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가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4년 9월 19일 날씨 너무너무 좋음

비온후 갠 하늘. 정말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산에 오른 기억중 이번처럼 맑은 날은 정말 손으로 꼽을 정도다. 전날 많은 비가 쏟아져 사실 산에 올라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히려 이 비가 너무나도 맑은 하늘을 선물해 줬다.

지금 당장 힘이 들더라도 그 기간이 끝나면 분명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듯 말이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산에 안개가 덜 걷혔다. 법주사를 둘러보는데 그 광경이 사뭇 범상치 않다. 부처는 세상을 향해 서 있음을, 비록 속세를 떠난다는 뜻의 속리산이지만, 불상은 그렇게 세상을 향해 있는것 같다. 시름을 잊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때 금불처럼 빛나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만든다.

서서히 문장대를 향해 오른다. 문장대 오르기 20분전은 정말 힘들다. 어느 산에서나 만나는 깔딱고개. 그러나 숨을 깔딱거리며 오르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선다. 그리고 분명 산은 그 흘린 땀만큼의 아름다운 전경을 선사한다. 특히 이처럼 맑은 날씨엔 모든 고통이 사그라든다. 그저 맑은 하늘만으로도 세상의 시름은 모두 사라지거늘 왜 난 그토록 시름시름하며 살아갔던 것일까?

다시 길을 나서야 함에도 다리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대로 그냥 몇시간이고 있었으면 좋겠다. 자연은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훔쳐간다. 그렇다고 영원히 훔쳐가지는 않는다. 또 다시 훔쳐갈 마음을 쥐어서 내려보낸다.

능선을 따라 신선대, 그리고 경업대로 내려선다. 경업대는 속리산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이라 10분 정도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다. 발아래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심산계곡. 임경업 장군이 7년간 도를 닦을 만한 곳임을 온 몸으로 실감한다. 고개를 들면 천황봉과 신선대가 모두 보인다. 그리고 발 아래 까마득히 펼쳐져 있는 나무들. 하늘과 땅의 기운이 모두 섞여 들어 나의 몸으로 가득차온다. 여기서도 좀처럼 발을 떼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올라섰으면 내려서는 법. 다시 길을 나선다.

이번엔 관음암. 바위 사이로 난 틈을 따라 길을 쫓아가면 관음암이 나온다. 아주 조그만 암자. 그야말로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중은 산 속으로 들어갔으나 그 뜻은 분명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자연과 내가 서로 하나이듯이 세상과 나 또한 하나임을 다시 깨우친다.

바위 사이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어제 온 비로 온 산이 물을 머금고 있다. 그 물 밑에 얼굴을 댄다. 차가운 물은 땀을 식히고 발아래까지 흘러간다. 잠시 그 촉감을 느끼며 서 있는다. 그리고 또 한걸음 아래로. 10년전 머물렀던 비로산장을 지나 세심정, 그리고 다시 법주사까지, 산은 쉽게 나를 내보낸다. 자 이제 힘을 얻었으니 어서 속세로 돌아가라는 듯이...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소리샘 2004-09-21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5:17분 지금 막 올라온 따근따근한 글이네요..^^ 간만에 들어 왔다 운좋게 막 올라온 산행기보고 갑니다.. 아침안개 낀 법주사의 경내도, 금동미륵불도, 팔상전의 처마도 함께 보여주셔서 좋네요..
산위의 바위와 운무가 병풍처럼 펼쳐지는군요..장관입니다..
10분정도 앉아서 이풍경을 보셨다면...득도하셨겠는걸요?..^^

좋은 기운...이곳까지 보내주시길바랍니다.
떠날수 있음이, 이런 광경을 찍을수 있음이 많이 많이 부럽네요...

하루살이 2004-09-21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보다 시간이 많이 나지 않나요? 아니지, 시간은 물리적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내는 것이니... 떠나보세요. 한발만 떼면 됩니다. 단 한발 ^^

icaru 2004-09-2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리산이 그런 뜻이었답니까? 음~
님을 따라 속리산에 올랐던 것 마냥...비온 뒤 맑개진 산에서 받은 청명함이 잡혀옵니다.~

하루살이 2004-09-22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런 풍경을 접했을땐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집니다. 단지 맑은 날씨만으로도 사람이 행복해질수 있다니...
 
바람의 파이터 -상
방학기 지음 / 열림원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영화 <바람의 파이터>를 보고나서 최배달이란 사람이 궁금했다. 도대체 그는 왜 각 무술의 강자들과 목숨건 싸움을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을까? 영화 속에선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순간 답은 얻었지만 또 하나 의문이 생긴다. 그는 정말 사람인가?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술인들과 사투를 벌인걸 운명처럼 여긴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 가끔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때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있지 않은가 싶은 그런 생각들 말이다. 갱, 마피아 들의 총구 앞에서 살아남기도 하고, 미국 FBI 교관이 되기도 하고, 러시아, 프랑스, 태국 등 새로운 무술을 접하기 위해서 그가 가보지 않은 곳은 없다. 세상에 상도는 무수히 많다는 깨달음. 그리고 싸움에 있어서 다음 기회란 절대 없다는 것. 목숨을 건 싸움에서 진다는 건 죽음을 의미하며 그렇기에 그의 싸움은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절박함은 항상 승리로 나타난다.

흔히 내노라하는 무사들은 필사적이니 죽을 각오가 돼 있다느니 하는 말을 입버릇처럼 뇌까린다. 그러나 칼싸움에 임박해서 필사적이 되는 건 동물적 본능일 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서는 누군들 죽을 각오를 안하랴. 문제는 기필코 이긴다는 신념을 갖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중권 37쪽)

승리를 꿈꾼다고 누구나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둘 다 목숨을 걸고 승리한다는 신념으로 싸운다고 해서 모두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배달은 결코 패한 적이 없다. 무엇이 그를 백전불패의 사나이로 만들었을까? 소설 속에선 수많은 일화들이 등장한다. 마치 장자 책을 읽듯 나타나는 우화들 속엔 인생의 교훈들이 숨겨져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운명이라고 생각한 것에 대해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하는 정신. 외부의 어떤 조건하에서도 변하지 않는 신념. 그것이 그를 승리의 사나이로 만들었지 않은가 싶다.

소설 속에선 역도산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사업가로서는 뛰어나지만 무술인으로서는 그다지 훌륭하게 그려져 있지는 않다. 그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최근의 실존인물에 대한 영화들이 많이 그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속에 비쳐진 인물들을 곧이 곧대로 그냥 받아들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갇게 만든다.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단련. 천일간의 단과 만일간의 련을 통한 성장. 또 하나의 삶의 자세를 배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쇄살인범 유영철에 대한 경악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가운데 미국의 연쇄살인범에 대한 영화를 봤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조금 아이러니컬하다. 죄의식조차 가지지 않고 자신이 마치 정의의 사도인냥 생명을 앗아간 유영철과 몬스터에 나타나는 미국 최초 여성 연쇄살인범 린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만든다. 과연 둘다 사회가 키워낸 몬스터인지, 아니면 애시당초 타고날 때부터 그런 소양을 지니고 있었던 것인지, 몬스터라면 둘 다 똑같은 색깔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수 없었다.

사회가 이런 몬스터를 키워냈는냐의 여부는 그야말로 정답이 없을듯 싶다. 그들과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왜 유독 그들만 그러느냐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이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 즉 타고날때부터 그들은 몬스터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그런 처지가 아니라 좀더 부유하거나 또는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자랐다거나 하는 등 다른 환경속에서 자랐더라도 그랬을 것이냐는 질문에 또한 답하지 못한다면 분명 사회가 키워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유영철과 린의 다른 점은 그것이 사회가 키워냈는지 여부보다는 우리가 그들의 결말에 대해 동정을 할 수 있는냐는 것에 있다 하겠다. 즉 사회가 키워냈기에 그들은 희생자일 뿐이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처지에 동정할 수 있기에 그들이 몬스터가 된 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어질 수 있을 가능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린은 13살(14살인지도 모르겠다) 때부터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을 팔기 시작한다. 그 나이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꼭 그것밖에 없었냐는 질문을 던져서는 안된다. 몸을 판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모르는 나이일뿐더러 그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만큼 절박한 처지를 우리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감히 변명하고 싶다. 아무튼 문제는 이게 아니다. 이런 사실로 인해 그녀가 받는 무지막지한 테러에 있다. 학교 친구들로부터 왕따 당하고 결국 신데렐라를 꿈꾸던 그녀는 항상 창녀로서만으로 존재하게 된다. 즉 한번 창녀는 영원한 창녀가 되고ㅡ 물론 이것 또한 그리 큰 문제가 안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ㅡ 그것은 그녀의 인생에 영원한 굴레가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니다, 자신이 아니라 사회가 가지고 있는 차별의 경계선을 각자 지니고 있어 타인에게 그 잣대를 그어대곤 한다. 그리고 그것의 벽은 너무나도 두껍고 높아 하나의 개인이 그것을 깨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그 차별의 벽이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지를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그 벽에 갇혀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벽 속의 사람들을 멸시하고 억압할 뿐이다. 린은 바로 그 희생자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처음으로 이해해주고 사랑해준 동성의 셀비를 위해 방아쇠를 당긴다. 방아쇠를 당길때마다 항상 정당했던 것은 아니다. 오직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멸시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에게 눈물을 머금고 쏜 적도 있다. '제발 쏘지마' 하는 간절한 나의 바람을 무너뜨리고... 그만큼 난 그녀가 좀더 자유롭길 바랬었는데. 벽을 향해 총질을 해대도 정신만은 자유롭기를.

재판장에서 그녀는 외친다. 자신의 정당성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의 모습이 몬스터로 비치는 것은 오직 사회라는 거울이 일그러져 있기 때문임을. 우리는 언제쯤 몬스터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굴곡된 거울을 깨뜨리고서 말이다. 린은 결국 사형을 언도받고 몇년후 집행된다. 린에게 애도를 표한다.  미국이라는 사회보다 더한 몬스터를 키우는 한국이라는 사회속에 살고 있기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04-09-11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1000

제가 들어 옴으로 인해서 이렇게 됐군요. 선물 없어요? 흐흐. 농담. 잘 보고 가요.^^

 


하루살이 2004-09-13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1000번째 손님으로 입장하신것 축하드립니다??? 실은 제가 축하받을 일인가요? 암튼 고맙습니다. 한 사흘 집을 비운 사이 즐거운 일이 생겼군요. 숫자에 연연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숫자가 주는 어떤 힘 앞에 무력한 저를 바라보게 됩니다. 음음. 지붕 고친것 축하드리구요, 계속해서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