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 > [펌] 다시 듣지 못할 [정은임의 영화음악]

 

 

다시 듣지 못할 「정은임의 영화음악」
월간 『말』 1월호, "올드 걸 올드보이를 만나다"

 

이오성 기자 dodash@digitalmal.com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입원 중이던 정은임 MBC 아나운서가 4일 저녁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고인이 진행했던「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은 이념이 사라진 시대, 문화적 열정과 감수성을 배출할 길 없던 청년들에게 소중한 안식처였습니다. 고인은 MBC 노동조합 여성부장과 업무혁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방송 현실 개선에도 앞장서 왔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월간 『말』 1월호 문화인물탐험에 실렸던 아래 기사는 고인이 살아 생전에 했던 마지막 인터뷰입니다.

올드 걸, 올드 보이를 만나다

글 이오성 기자

사진 허태주 기자

지난 12월 5일 저녁,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2003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의 사회를 보기 위해 무대에 오르는 한 여성을 보고 누군가 중얼거렸다.

"정은임 누나다!"

삼십대 중반은 돼보이는 영화인의 입에서 터진 '누나' 소리가 어색하지 않은 것은 그 대상이 정은임 아나운서였기 때문이다.

정은임(35). 1992년 11월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이란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로 매일 새벽 1시면 대중들 앞에 목소리를 드러낸 이래 그와 그의 방송은 하나의 '물결'이었다. 할리우드 상업영화 위주의 영화 소개로 일관하던 당시의 영화음악 방송 풍토에서 FM 영화음악은 날카로운 사회비판, 새로운 영화읽기로 1990년대 문화빅뱅의 시대를 진보적으로 지킨 상징이었다.

영화 「파업전야」가 특집으로 편성되는가 하면, 「인터내셔널」가 공중파를 타고 흘러나와 듣는 이의 귀를 의심하게끔 만들기도 했다. 고정 패널로 출연했던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와 정은임씨의 대화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진보적 영화읽기'의 텍스트가 되어 회자되곤 했다. '정영음'이란 고유명사로 불리우기도 했던 이 방송은 이념이 사라진 시대, 문화적 열정과 감수성을 배출할 길 없던 청년들에게 소중한 안식처였고 정은임은 그 안식처를 지키는 누이요, 연인이었다.

그가 마지막 방송을 진행하던 날 어느 중학생은 수학여행길에까지 커다란 라디오를 들고 가 여관방에서 들으며 눈물지었다. 그날 방송에서 정은임은 "꽃 지는 날 만났다가 꽃 피는 날 헤어진다"며 이별의 회한을 달랬다. 1995년 4월 1일의 일이었다.

달갑지만은 않았던 방송복귀

그리고 8년 6개월이 지난 2003년 10월 20일. 다시 「정은임의 영화음악」(MBC FM)이 돌아왔다. 매일 새벽 3시부터 4시, 그의 말처럼 '청취율의 사각지대'인 탓에 신경 쓸 것 없어 더욱 편한 심야에 그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겨울비 내리는 금요일 저녁, 동숭아트센터에서 만난 그에게 던진 첫 마디는 "꽃 피는 날 떠났다가 꽃 지는 날 돌아온 소감을 말해달라"는 말이었다. 감개무량의 감회를 기다렸던 기자의 기대와 달리 그는 "영화음악을 별로 맡고 싶지 않았다"고 답했다. 의외였다.

   
"걱정되는 일이 많아서 실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면 영화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을 MBC에서 없애려고 했거든요. 지금 영화음악이라는 게 독자적인 무엇이 있는 게 아니고, 이런저런 음악을 삽입하는 수준이잖아요. 전세계적으로도 영화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이 남아 있는 곳이 몇 곳 안 돼요. 그걸 몇몇 피디가 몸으로 막아내서 그나마 버텨왔죠."

걱정되는 일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8년 전 그가 영화음악 진행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애청자들이 '정은임 복귀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나선 것이다. 최초의 대중매체 소비자운동인 셈이었다. 이들은 정영음의 사회비판적 내용과 진행자의 적극적인 노조활동 때문에 방송사 윗선에서 압력이 들어와 중도하차하게 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해 왔지만, 당시 입사 4년차의 방송 노동자에 불과했던 자신에게 쏟아졌던 유형무형의 '파장'은 감당키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유증'이 쉽게 가시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저와 영화음악을 연관지으며 회사 밖의 사람들과 달리 회사 안에서는 뭐랄까, 당시 그 사건을 해사행위 비슷하게 여기는 분위기였어요. 마치 제가 바깥의 사람들을 움직여서 어떻게 한 것처럼 사시를 뜨고 쳐다보는. 제가 결벽증 같은 게 있는 데 그런 오해가 부담스럽고 싫어서 '나는 정당하다, 차라리 방송진행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죠. 한번은 영화 관련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하는데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적이 있어요. 내가 하는 어떤 사소한 일조차도 소영웅주의로 바라보는 식이었죠.

사실 2년 전에도 영화음악을 하기로 했다가 회사 내에서 잡음이 일어나 그만둔 적이 있어요. 손석희 부장님이 와서 '네가 영화 일을 안 하는 건 인력낭비다'라며 진행을 제안해서 하기로 했는데 또 주위에서 무슨 끈을 잡았다는 둥 하는 이야기가 돌았어요. 그때 제가 발끈해서 '나 그렇게 사는 사람 아니다 안 하겠다'고 했고, 그것 때문에 손석희 부장님과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아졌어요. 이미 보도자료까지 낸 상황이었으니까요."

다시 관 밖으로 나오다

예기치 않은 파장과 그로 인한 부담 속에 영화음악으로의 복귀를 주저할 무렵, 그에게 용기를 준 것은 또한 정영음을 사랑했던 이들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관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니까 더 이상 관 뚜껑을 열지 말아달라고 말하곤 했어요. 하지만 그것은 제가 스스로 시체가 됨으로써 정영음을 사랑하던 많은 이들을 결국 '네크로필리아'로 만드는 일이 되고 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가운데 지난해 정영음과 관련한 다큐를 찍게 됐어요. 거기에 함께 참여하면서 옛날 그 청취자들이 '지금은 어디서 뭘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이 달라졌지요. 게다가 이제 일 핑계대고 영화는 실컷 볼 수 있겠구나 싶어서 미끼를 덥썩 물었죠."

그렇게 영화음악실로 복귀한 지 2개월여. 11년 전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할 터. 그에겐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니 어쩌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디오가 굉장히 어려졌어요. 가끔씩 무슨 이야기만 하면 '너무 이념적이지 않아요? 요즘 애들은 듣기 싫어해요' 이런 이야기들이 나와요. 무조건 청취자들 입맛에 맞추려고 하는 것 같은데 라디오는 솔직하잖아요. 요즘 다른 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이 얼마나 사적인 이야기나 농담 따먹기 같은 멘트를 많이 하나요? 그런데 왜 제 생각을 드러내는 건 안돼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제 일상 중의 하나거든요. 세상이 얼마나 모순적인데, 방송에선 여전히 예쁜 말만 골라서 해요. 그리고 우리가 그런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굉장히 즐기지요."

정은임은 가령 창사특집방송이나 불우이웃돕기 같은 코너에 아나운서들이 차출되어 나눔의 정을 호소하고 돈을 모으는 일을 동료들끼리는 '앵벌이 뛴다'라고 표현한다며 종국에는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방송의 현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과거의 정영음이 그랬듯 방송과 사회의 모순이 첨예할수록 그의 목소리도 함께 떨리곤 한다. 복귀한 뒤 두 번째 방송을 하던 날의 오프닝 멘트를 듣고 기자는 가슴이 떨렸다.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백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올 가을에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고공 크레인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김주익씨의 이야기를 전하며 그는 스스로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겨우 매달린 기분으로' 청취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최신유행의 피곤한 수다로 점철되는 FM 방송에서는 물론, 여느 개혁적이라는 매체에서도 이처럼 애틋한 멘트는 듣기 힘들다. 단순히 싸구려 감수성으로 포장할 수 있는 깊이가 아닌 탓이다. 적지 않은 양의 방송 멘트를 써내려가는 일도 때때로 그의 몫이다. 그런 만큼 그에 따른 부담도 함께 돌아온다.

노동자, 그리고 8학군 기자들

"오늘은 이 이야기 안 하면 목구멍에 가시가 돋힐 것 같다는 날은 꼭 직접 써요. 영화도 시선이 다르면 달리 보이듯이 어차피 방송을 진행하는 제 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굉장히 비난 많이 받았어요. 나더러 노동자에 대해 뭘 아느냐. 육체노동자로서의 노동자계급에 대해 뭘 아느냐고 이야기하더군요. 거기에 방송이나 언론의 허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이 세상은 마이크나 펜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계급적 기반에 따라 모든 것이 이뤄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거야말로 정말 무시무시한 SF 영화 같은 세상 아닌가요. 모든 것이 나의 물적 좌표에 따라 바둑판처럼 이미 짜여진 세상. 너는 중산층이고, 한 달에 얼마 버니까 얼마 버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하라는 거죠. 그들을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게 아니라 주위에 손배가압류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보면 괴롭고, 고민되고 그런 걸 이야기하고 다른 세상을 꿈 꿀 수 있는 거잖아요.

난 비록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한번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할 수 없나요? 왜 '8학군 기자들' 이야기가 나오겠어요. 방송국에도 정말 8학군 출신 기자들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점점 뉴스에서도 시선이 한쪽으로만 흐르게 돼요. 노동자, 농민 이야기는 그들의 생리나 환경과 맞지 않아서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 눈도 돌리지 않고. 말은 심각하지만, 그게 일상으로 돌아가면 전혀 심각한 게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우리 옆에서 투명인간화되어 버리는 청소하시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뿐인데."

   

MBC 입사와 관련해 정은임씨에게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그가 입사했던 1992년은 MBC가 방송민주화를 내걸고 한창 파업 중이던 시기였다. 수습사원들에게 예의 노조불가입 각서가 강요됐고, 그는 입사동기 중 유일하게 방송사 간부의 요구를 거절하고 파업에 참여한 '강성'노동자였다.

그리고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네 살배기 아이의 엄마이자 노조의 간부(여성부장)로 재임 중인 그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직장 탁아소를 설립하는 일.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다가 그가 관련 법률까지 직접 챙기며 일을 벌이자 주변에서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MBC 쯤 되는 거대 방송사조차 그와 같은 악바리가 나서지 않는 한 여느 직장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MBC에서 그를 만난 날도 저녁에 노조회의가 잡혀 있다며 굵은 서류뭉치를 들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행복한 영화 읽기

1998년에 그는 방송활동을 잠시 접고, 미국으로 영화공부를 떠났다. 그가 미국에서 발표한 논문제목은 '한국의 영화마니아'. 1990년대 초반 정영음을 통해 일군의 영화마니아를 배출했던 당사자이기도 한 그에게 한국 영화와 영화마니아들의 모습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일단 영화판이 엄청나게 커졌죠. 영화라는 것의 속성이 어차피 상업적이에요. 어떻게 보면 상업성 일변도로 가고 있긴 하지만. 대중들은 예전과 크게 차이 나는 건 없다고 봐요. 예전에도 영화를 진지하게 보는 계층이 20%밖에 되지 않았죠. 문제는 커다란 강이 있으면 거기에 맑은 물을 공급하는 지류가 있어야 문화적 자생력과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 것일 테죠. 그런 지류들의 움직임이 아직은 제 기를 못 펴지만 점점 나아지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독립영화 같은 데서 그런 움직임을 발견해요. 우리 프로그램에서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소수일지라도 이런 게 있다는 걸 알려야죠. 그게 미디어의 기능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게 엄청난 사명감이 아니라 그런 느낌을 자연스레 말하고 전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행복하게 느껴져서 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게 중요해요. 가령 박찬욱 감독 같은 경우 평론가 시절에 만났을 땐 말 잘 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이긴 했지만, 참 빌빌거렸거든요(웃음). 그런데 지금 보면 저렇게 훌륭한 감독님이 돼 있잖아요. 그런 성장의 모습을 확인하는 게 즐겁고, 행복하죠."

아닌 게 아니라 정은임씨는 최근 본 영화 중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수작으로 꼽는다.

"「올드보이」를 보면서 송두율 교수를 떠올렸어요. 괴물이란 존재는 어떤 사회나 집단에서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걸 뜻해요. 외적인 측면이 아니라 생각이나 사상 모든 것들이. 영화 마지막을 보면 결국 최민식에게 근친상간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것으로 나오거든요. 말하자면 괴물로서의 그 삶의 기억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다면 최면을 거는 사람이 어쩌면 감독의 다른 모습은 아닐까. 감독은 최민식이 괴물인지, 혹은 그를 괴물이라고 규정하는 우리 사회가 괴물 같은 것인지 말이죠. 수잔 손택은 해석에 반대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해석의 시대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한 영화가 아주 다양하게 해석되는 건 당연하고요, 심지어 어떤 관객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마저도 좋게 느껴지더군요."

올드 보이와 올드 걸의 연대

이 쯤에서 '올드 보이와 관련해'(?) 정영음과 『말』독자들에게 한 가지 '뉴스'를 알려야겠다. 그건 올 1월부터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도 정영음에 '복귀'한다는 사실이다. 정영음의 방송재개 이후에도 꾸준히 "정성일씨를 출연시켜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정영음의 극성팬들에겐 더없는 희소식일 터. 그런데 정성일씨가 복귀하게 된 과정엔 정은임씨의 노력이 숨어있었다. 이를테면, '소녀, 소년을 꼬시다' 정도가 될까.

"복귀하면서 정성일씨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같이 해보자는 이야기였죠. 그런데 돌아온 답장이 '나는 이제 올드 보이다'라며 고사하는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무슨 소리냐, 나는 관 속에서 기어나온 사람이다. 나야말로 '올드 걸' 아니냐고요(웃음). 그렇게 곡절 끝에 일단 한 달 동안만 함께 하기로 했어요."

누군가 한때 "한국에서 영화광의 여러 단계 중 그 첫 번째 단계는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듣는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한때 영화광의 1단계에 진입했던 '올드 보이'들은 영화광의 나머지 단계의 진입에 성공했을까. 그리고 한국영화판을 바꾸기 위한 '올드들의 연대'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까. 거기까진 알 수 없지만, 이제 삼십대 중반을 넘겨 '올드 걸'의 반열에 오른 정은임씨의 경우 '열린 영화광'의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것은 또 신성한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했다.

"예전엔 바보였어요. 절대적인 진리를 믿었죠. 내가 생각하는 시스템이나 생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남들을 용납하지 않았아요. 누군가는 그걸 매력이라고 했지만요. 그게 아이를 기르면서 달라졌어요. 과거에 나는 너무 나만의 언어로만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이의 언어를 하나둘씩 이해해 가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세계가 있고, 그런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려 하는 게 소중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정말요."

   

 

2004년 08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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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04-08-3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들은 웃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주말의 명화나 명화 극장을 통해서였고, <영웅본색>을 보고나서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죠. 이 때 잠못드는 밤일 때면 제 귓가를 적셔주던 음악들. 그리고 생각할 거리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혹시나 또는 아마도 영화에 대한 편식을 하지 않게된 풍부한 자양분을 제공했던 프로였지 않았을까 싶네요.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카트린 M의 성생활
카트린 밀레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드는 느낌은 정말일까? 라는 것이다. 미술잡지의 편집장인 카트린 밀레라는 실존인물의 실제 성생활에 대한 사적인 보고서 형식의 이 수필(?)은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이다. 학창시절 몰래 읽던 성에 대한 금서들보다도 더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묘사들, 그런데 묘하게도 성적인 흥분을 계속해서 자아내는 것은 아니었다. 담담한 필체로 써 내려가는 것이 그냥 일상생활을 묘사하는 수준이어서 이 저자가 도대체 자신이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알고서 글을 쓴것일까 라는 의문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또 신기한 것은 마냥 쉽게 읽혀들것 같던 책이 생각보단 그렇게 술술 읽히지 않을 뿐더러 계속되는 성적묘사 탓인지는 몰라도 읽는 내 자신도 점차 이런 묘사들에 담담해져 간다는 것이다.

아무튼 파르투즈라는, 스와핑을 넘어서 많은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진 난교파티를 젊은 나이부터 행해온 저자의 성적 모험기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그런데 이런 모험기가 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냐 생각해보면 그녀에게선 성행위에 대한 어떤 이미지의 왜곡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것은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행위들 속에 감추어진 여러가지 굴레들에 대한 고찰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에 있는 것같다.

나는 어떤 고정관념에 매여 있지 않았고,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도달해야 할 이상을 설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어떤 금기도 없는 사람, 유별나게 억제를 모르는 사람으로 규정하였고, 나로서는 그런 규정을 마다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41쪽)

즉 성행위란 그저 즐거움을 위한 것이지 그것에 어떤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순결에 대한, 정조에 대한 금기가 있을 수 없으며, 성행위에 도달하기 위한 어떤 과정들, 즉 사랑해야 한다는, 따라서 연애라는 과정을 필요로 하지도 않은 것이다. 즉 섹스는 섹스일뿐이다. 그것이 어떤 과장된 이미지나 의미를 갖는 것을 거부하고 그것 자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쾌락만을 쫓을 뿐이다.

세상에는 아주 강력한 금기들을 깨뜨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어떤 금기를 깨뜨리려 하기보다는 내 파트너를 선별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했다. 다시 말해서, 상대의 수가 몇명이든, 상대의 성별이 무엇이든, 상대의 육체적, 정신적 특성이 어떠하든, 나는 어떤 선택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221쪽)

그 쾌락을 쫓는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어떤 차별도 두지 않는 정신. 실은 저자에 대해서 제일 감탄해 마지않는 부분이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도 없는 쾌락에 대한 추구, 그리고 그것의 실현과정에서 나타나는 일관된 자유분방한 의지.

나는 남이 하고 싶은대로 하게 내버려 두면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한다.(287쪽)

그 거침없는 삶의 행방은 무엇으로 끝을 맺을 것인가? 내가 살아가면서 제약받는 수많은 것들.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되지라고 주어진 그 수많은 무언의 약속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저 충실히 지켜만 왔을뿐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타당한지 한번쯤 돌이켜 보았을때 우리가 맞이해야 하는 벌거벗은 순간들, 아마 나는 그 나체의 순간을 이겨내지 못해 그저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갈지 모르겠다. 온 몸에 두껍고 거추장한 몇겹의 옷을 걸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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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8-31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모처럼...즐겨찾기 해 놓은 님들의 서재를 돌다가... 스텔라 님 서재에서 시인 김정환에 대한 글을 보았답니다.

스텔라 님이 문학학교에서 그 분한테 습작 강의를 들었던 추억에 대해 써놓은 글이었어요..그땐 한창 찌는 듯한 여름이었는데, 런닝 셔츠 바람에 수업을 하셨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모든 것에 스스럼이 없고, 도무지 창피란 걸 모르는 양반 같았다고요..

나중에 강의 중에 당신의 차림새에 관해서 잠시 언급을 이렇게 하셨대요.. "여러분 보시기에 내 차림이 꽤 이상할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도 예전엔 부끄러움이 꽤 먾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격을 수 있는 가장 밑바닥의 모멸감을 겪게 되면 더 이상의 부끄러움은 없어집니다."라고요...

허걱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말을 하다가 이리됐네요....너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것도...정신적인 이상징후이기도 합니다만...

아...근데..책 표지가 바뀌었네요....제가 이 책을 읽을 당시는 말그대로 카뜨린 엠의 성생활이라는 글씨 자체를 가지고 디자인을 한터라.... 지하철 안에서 들고 있기...되게 뻘쭘한 책이었더랬는데..


하루살이 2004-09-01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책도 아마 복순이 언니 책과 같았나 봅니다. 표지를 들키지 않기 위해 손으로 가리고 읽는라 고생좀 했죠.
그런데 가장 밑바닥의 모멸감이란 무엇일까요?
밑바닥까진 아니더라도 한치의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지키려다 당한 폭력에 치를 떨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가장 밑바닥의 모멸감. 제 인생에 단 한번이라도 그 근처의 경험마저 허락하고 싶지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인생에서는 같이 건줄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이 그리 많지 않다.

ㅡ 스티븐 비진체이<연상의 여인에 대한 찬양>(275쪽)

 

내 뒤를 한 번 돌아봤을때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던가? 그리고 그것보다 아니 그정도만큼 행복한 순간을 또 맞이했던 적은 있었을까? 조금 더 양보해서 그것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라고 할 수 있는 순간들은 또 얼마나 되는가? 날마다의 삶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항상 행복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느낄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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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8-25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읽었던 레이몬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서 <코끼리>라는 단편이 생각나는 페이퍼네요...


하루살이 2004-08-26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버의 책은 소문만 들었지 아직 읽어보진 못했는데. 댕기는군요...

2004-09-13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9-13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9-13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상의 여인에 대한 찬양
스티븐 비진체이 지음, 윤희기 옮김 / 해냄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글쎄... 학창시절 소위 빨간책이라 불렸던 음란서적들. 밤잠을 설치게 만들고 흥분에 들떠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하게 했던 그 끈적끈적한 글들.

<연상의 여인에 대한 찬양>은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 그걸 읽은 나는 빨간 소설이 떠올랐다. 두 책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우스갯소리만큼이나 이 잘 쓰여진 책과 음란 서적간의 차이는 어느 정도인 것인가?

작가는 전쟁으로 인해 어렸을적 평탄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전쟁 전엔 수사들에 의해 경건한 삶을 살았다면 전쟁 와중엔 미군 캠프에 기생하면서 헝가리 여인과 미군과의 뚜쟁이 역할을 했던 어린아이.

종교적 배경하에서 성장하면서 내 가슴에 박힌 것은 성에 관한 죄의식이었다.(중략) 그렇게 많은 시체를 보았으니 살아 있는 몸뚱어리에 대한 자기 욕망의 억제나 금지를 그냥 쉽게 상실해 버린 것이다. (33쪽)

극과 극의 경험을 한 아이는 성을 통해 성장해 나간다. 하지만 자기 욕망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는 또 하나의 자아, 즉 죄의식으로 가득찬 자아와 자꾸만 만나게 된다.

우리는 어른들의 종교적 도덕성을 거부했다.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우리 자신의 본능에 반하게 만들기 때문이며, 실제로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취한 행동인데도 그것 때문에 죄의식에 눌려 살게 만들기 때문이다. (240쪽)

그래서 그가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보다 연상의 여인들이다. 나이 어린 여자아이들의 첫 경험에 대한 두려움이나 서툰 연애로 인한 갈등이 없이 편안하게 육체적 정신적 탐닉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경험많은 여자들이었던 것이다. 남편이 있는 여자들이라 하더라도 그에게선 종교적 도덕성의 금기로부터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의 여자에 대한 탐닉은 돈주앙과는 꼭 닮아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모든 여자를 갖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면 또 실제로도 그렇게 능력있는(?) 남자도 아니었으니까. 그에게 있어 사랑은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육체적인 것임과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하나가 되는 그런것. 편안함을 주는 그 무엇. 그러니 나이가 무슨 상관이었겠는가? 또 한 대상만에 집착할 필요가 있겠는가?

또한 우리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우리 성격과도 상관없이, 우리는 사랑이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중략) 궁극적인 공허함이 늘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고, 우리는 늘 불안 속에 흔들린다. 우리는 우리 삶에도 솔직하지 못하다. (241쪽)

그러니 우린 마음속에 움트고 있는 불안과 공허함을 벗어던지고 영원성에 대한 강박관념과 죄의식을 떨쳐내고서 우리의 감정에 솔직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 감정의 물결이란 작가의 말처럼 연상의 경험많은 사람들이 잘 헤아려줄 수도 있겠지만 결국 금기라는 가상의 선에 갇혀 살지 말것이며 그 선을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내버려야 함을 의미한다.

영원이 주는 죄의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랑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 세상은 이미 영원하지 않으니, 나의 삶 또한 영원하지 않으니, 나의 감정에 충실하게 즐길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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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자아를 구성하는 것은 또는 구분짓는 것은 무엇일까? 합리성과 감성의 차이, 그리고 그것이 기억과 마음, 의지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령이나 귀신은 존재하는 것일까?

위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면 그런 책은 철학책이거나 종교관련 서적일게다.

불확적성의 원리, 양자역학, 카오스 이론, 뇌의 역할 등등이 일상생활에선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위의 질문들을 해설해준다면 그 책은 과학서적일테다.

그런데 이 모든 질문들과 답변이 한 책에 뭉뚱그려져 있다면, 아니 뭉뚱그려졌다고 표현해서는 안될 것 같다. 나름대로의 일관적 논리성을 바탕으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면 이 책의 성격 또는 장르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추리소설이다.

전혀 연관되어져 있지 않을 것 같은 사유들이 전체적으로 얽히고 설켜서 살인과 실종이라는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로 작용하게 된다. 더군다나 귀신이나 영, 도깨비에 대한 해설이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 내가 지금 당장 한밤중 귀신을 만난다면 그것이 나의 가상현실임을 그러나 또한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했던 무의식의 그 무엇이 눈 앞에 나타나 진짜 현실로 된 것임을 알게 될듯 싶다. 그래서 공포감에 사로잡혀 졸도하거나 귀신을 물리치겠다며 악다구니를 쓰지는 않을게다.

꿈 속에서 눌려본 가위, 그 끔찍한 기억 또한 이젠 먼 과거의 일일뿐 앞으로는 아마도 그런 가위에 눌린 삶을 살지는 않을거라 조금은 자신해본다.

암튼 밀실에서 사라진 건장한 남자, 그리고 그것을 풀어가는 소설가와 음양사, 탐정의 뚜렷한 캐릭터가 소설의 흡인력을 높여준다. 맨 처음 소개했던 여러가지 이론에 대한 설명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사건을 해결하는 단초들을 그 이론들이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냥 책속의 검은 잉크로서 존해했던 그 이론들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다만 사건의 해결이 어떻게 보면 황당한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한듯한 조금은 모순적인 결말로 치달은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이런 아쉬움은 지극히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중간 중간 계속해서 단서를 제공해준 작가의 배려 덕택에 설마 이런 결말은 아니겠지 하는 은근한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밀하게 풀어낸 소설의 구조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특히 탐정으로 나온 캐릭터의 신비한 능력은 실은 신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사 우리의 삶을 신중하게 살아가도록 만든다. 타인의 과거, 모든 타인의 과거와 자신의 과거가 서로 혼재해 있는 현실이라는 공간속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모든 것을 주고받는다는 것, 다만 그것을 보고 느끼지 못할 뿐, 자신의 모든 것을 열어놓았을땐 나는 알몸이 되고 상대방 또한 알몸이 될지도 모른다는 섬뜩함과 반대로 감정의 풍부함을 갖을 수 있다는 희망이 공존하는 것. 누가 나도 모르는 과거를 안다는 것은 축복인가? 재앙인가? (영화 속에서도 이런 캐릭터들은 많이 등장한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속의 인디언들이 이런 능력을 많이 지니고 있다)

아무튼 수학마냥 실제 생활과 아무 상관이 없는 학문이라 여겨졌던 많은 이론들이 이 소설 속에선 현실 속에서 힘을 갖는다. 그 재미 하나만으로도 굉장한데 추리를 쫓아가는 재미 또한 만만치 않기에 읽는 내내 즐거웠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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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8-23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하루살이 2004-08-25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