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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그를 뽑은 사람들
스코트 새비지 엮음, 김연수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었다면 지금 여기에 글을 쓰고 있을 수는 없다. 컴퓨터를 비롯한 모든 전기에너지로부터 탈출을 시도하고 자급자족을 꿈꾸는 사람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 행동을 하나하나 돌아보는 것일뿐이다.
나는 정말로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며 또한 그 중요한 일을 위해 무슨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인지 자각하고 있기나 한 것인지 반성부터 하고 볼 일이다.
결혼한 사람들은 아이들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녕 그렇게 아이을 위한 돈벌이를 위해 아이 얼굴을 하루에 한번 제대로 보지도 못한다. 사람들은 또 멋있는 휴가를 위해 일을 한다고 한다. 1년에 열흘도 안되는 날을 위해 매일 야근에 술이다. 이미 일 자체에 사람들이 보람을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난 노동의 가치를 위해 일한다고는 말하지 말자. 솔직히 왠만하면 최대한 일을 적게하고 싶은게 사실이지 않은가?
그럼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미 대답을 적어 놓았따. 아이나 가족, 또는 멋진 여가, 노동의 참 맛 등등. 그러려면? 이 책은 바로 그것들을 위해 당장 모든 플러그를 뽑아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플러그를 뽑음으로써 비로소 사람과의 참다운 관계를 형성한다. 즉 소비자로서 노동자로서의 삶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적게 먹고 적게 말하고 적게 생각하라는 초기 불경의 말씀과도 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로의 전환은 결코 쉽지 않다. 소비가 주는 유혹과 쾌락은 쉽게 잊을 수 없다. 우리가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현대적 도구들에 대한 소유욕 또한 쉽게 저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런 전환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익명성의 유혹이다. 대중소비사회로 진행되어 오면서 우리가 얻는 것중의 하나는 바로 익명성이다. 나를 세상속에 감추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따라가는 것의 편안함을 벗어던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노동의 참맛을 알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참되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 먼저 능동적으로 변해야 하며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요구한다. 즉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며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욕심내지 않는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이름을 감추고 남 뒤에 숨어 있을때는 그저 나 자신만 생각하고 나 자신만 편하면 만사가 좋았다. 그러니 플러그를 뽑는다는 것은 그다지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잠깐만 나를 뒤돌아보자. 정말로 난 내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
익명성에 몸을 감추고 편리를 추구하는 삶 속에선 실은 내가 없다. 난 그저 매트릭스의 세계를 움직이는 하나의 기계일 뿐이다. 플러그를 뽑는 것은 알약을 먹는 것이요, 그랬을때 비로소 진정한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 난 분명 당장 이 삶의 전환을 이룰 수 없을것임을 안다. 그러나 마침내 이런 삶으로의 전환을 위해 지금은 최대한 전기세를 아끼는, 그리고 소비를 줄이는, 그리고 많이 움직이는, 또한 돈에 굶주리지 않는 즉 파란만장한 미스터 이 10억 만들 필요가 없는 소박한 삶을 꾸려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