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푸드 - 느리고 맛잇는 음식 이야기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김종덕.이경남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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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슬로 푸드는 채식에 관한 책이 아니다. 또한 <육식의 종말>과 같은 가축사육의 폐해를 밝히는 책도 아니다. 그래서 책을 전반부 읽다보면 혼돈스럽다. 각국의 거리 음식을 소개하기도 하고 패스트푸드와 비슷한 음식이 나오기도 하는데 도대체 이 책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일까?

단풍도 땅을 찾아가는 늦가을이긴 하지만 이 가을동안 사과를 적어도 한번쯤은 먹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사과를 사든 모두 비슷한 종류라는 것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을까? 사과는 무려 그 종류가 700종을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만도 10종이 넘는 사과를 심어왔었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는 이렇게 다양한 사과의 맛을 기억이나 하고 있는가? 아마도 우리가 먹었던 사과는 후지나 쓰가루 중 하나였을 것이다. 재래종이던 능금마저도 그 맛이 어땠는지 아련하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운송수단이 발달하고 저장방법이 첨단화 되면서 음식은 세계를 종횡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경제적 효율성의 논리에 의해 음식이 결정되어져 버린다. 지역성과 계절이 사라짐으로써 다양한 토착음식들은 입에 들어오기 힘들어지고 오직 몇가지 대량생산된 식품들만이 식탁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경제적으로 효율적으로 보이는 이런 단일 품종은 그러나 맛의 빈곤과 함께 병해나 해충에 취약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슬로푸드 운동이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각 지역의 토착적인 음식들을 살려내 맛의 다양화를 가져오자는 것이다. 속도에 휩쓸려 단순히 에너지를 얻는 차원이 아니라 전지구적인 생명 종을 보존하고 삶 또한 다양성을 지켜가자는 것이다.

눈앞의 이익에 빠져 우리의 종을 멸종시키는 우둔한 걸음을 멈춰서야 할 것이다. 우리네 강을 블루길이나 배스가 지배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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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는 천둥
더글라스 보이드 지음, 류시화 옮김 / 김영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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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의 황량한 사막. 마차는 달리고 그 뒤를 인디언들이 쫓는다. 이때 카우보이 모자를 쓴 보안관이 나타나 총을 쏘아댄다. 인디언들은 하나둘씩 쓰러지고 우리는 박수를 보낸다. 인디언들은 괜히 사람을 죽이는 야만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인디언들이 점차 원주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말 그대로원래 땅의 주인. 서구인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보호 울타리에 갇혀 사는 처량한 신세. 이제 인디언들은 동정의 대상이다.

가엷게 쳐다보던 인디언들이 또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들은 항상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를 내리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신비한 대상으로...

이 책은 자칫 이런 신비주의를 부추길 수도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이 진실일망정 그것을 읽는 사람들은 진실이 아닌 단순한 사실로 받아들여 신비화에 빠져들 수 있는 요소가 여기저기 있는 것이다. 죽음 앞에 이른 사람을 살리고, 원하는 시간에 비를 내리는 것을 읽고나서 누가 이것으 신비하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머릿속에서는 이런 사건들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계속 추론을 해 나간다. 아마도 이들은 비가 오는 징후를 주위의 동물들이나 공기의 변화로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거나, 병자의 치유에 있어 심리적 요인을 잘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옛부터 전해받아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신비주의의 위험을 무릎쓰고 필자가 인디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들이 삶을 얼마나 신성시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눈치채야 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병과 고통 또한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며 왜 그 일이 일어났는가를 깊이 이해하는 일을 중요시 하는 것(P162)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것은 인과의 법칙을 따르는 바 고통과 병 또한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며 또한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기에 나타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그들에게 있어 삶의 모든 것이 성스로운 의식인 것이다.(P362)' 라는 생각으로 표현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경건함으로 가득차 건조한 삶을 살아간 것은 아니다. 삶의 여행을 즐기라는 인디언의 십계명이 말해주듯이 삶은 즐거운 또한 성스러운 여행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현재 우리들의 삶처럼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잊고 속도에 미쳐서 살아가지 않는다. 무엇인가 결정할 사안이 있으면 적어도 3일동안을 생각한후 결정한다는 그들의 방식은 그래서 충격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얼마나 조급하게 살고 있는가? 그것이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의 종착역을 알지도 못하면서 빨리빨리를 위치며 살고 있지 않나?

구르는 천둥과 함께 지내면서 늦어지는 것이란 있을 수 없고,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P160)

그리고 그 때에 이르렀을 때는 행동해야 한다. 어떤 일에 관심을 갖고 그것에 개입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이해의 핵심이며, 이런 행동이 카르마를 해결한다.

다시 말해 세상이 우리를 즐기도록 하지말고 우리 스스로가 세상을 즐겨야 한다는 것(P137)이다.

세상에 종속되지 않고 삶을 신성시하며 인과의 법칙을 저버리지 않는 행동을 취했을 때 우리는 신비롭게만 여겨지던 인디언의 삶을 이해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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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틱낫한 지음, 류시화 옮김 / 김영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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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란다.

나는 불교의 교리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화엄의 사상과 카오스 이론의 유사성에 감탄하기도 하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화두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머리속으로 알고 있을뿐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모두가 하나로 얽혀있다고 머리 속으로 생각하지만 나의 마음이나 행동은 결코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붓다임을 머리속으로만 생각하다보니 결코 자비심은 생겨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은 머리속에서만의 자각이 마음으로 진행되도록 도와주는 좋은 만남의 인연이었음을 고백한다.

모두가 붓다임을 어찌 아는가? 그것은 깨어있을때만이 알 수 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 내가 바로 이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자각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내가 지금 걷고 있음을 내가 지금 먹고 있음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걷고 먹는 것을 말한다. 나의 감정이 왜 이렇게 분노하고 있는지, 또는 들떠 있는지 또한 깨어있는 상태로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그런 감정의 출렁임이 나 이외의 다른 것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었음을 알게된다. 이 때 비로소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왜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자비심을 가지게 되고 그와의 거리를 좁히게 된다. 이 거리는 마음뿐만이 아니라 신체적인 거리까지도 포함한다. 이렇게 가까워진 거리만큼 사랑은 싹트게 된다.

도대체 삶은 무엇을 이루고자 그리도 빨리 달려가는가? 돈, 명예, 권력, 사랑을 위해서 살아온 것인가? 행복의 정체는 무엇인가? 무심하게 바라보라.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평화의 상태며 붓다의 미소가 아니었는가?

나의 호흡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지금 이순간 나의 호흡을 찬찬히 지켜보라. 모든게 경이롭지 않은가? 땅위에서 이렇게 햇빛을 바라보는 세상의 모든 것이 경이롭지 않은가? 기적은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바로 땅위를 걷는 것임을 뒤늦게 알게된다.

모든 불상의 미소가 우리 인간의 모든 얼굴에 묻어나는 그 순간까지 나는 내 호흡을 지금 이 순간 경이롭게 지켜보리라. 마음에는 평화가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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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여, 안녕
김종광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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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드라마중 인기 있는 것으로 '보디가드'가 있다. 한때 시청률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이 드라마가 매력적인 이유는 차승원의 캐릭터가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백수로 지내면서도 직장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불의에 절대 눈감지 않으며 때로는 지루한 도덕선생마냥 설교를 늘어놓는 모습이 결코 현실속의 인물같지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속으로 바라는 인물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어 애정을 갖지 않을수가 없다.

반면 김종광의 소설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현실 그대로의 모습들이 녹아 있다. '검문'에서 용돈을 벌기위한 생색내기 범법자 찾기를 해야하는 현실에 부닥쳐 싸우는 성순경과 이수경의 모습은 영낙없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들을 바라보며 양상경이 '쇼 끝났군' 이라고 생가하지만 그 쇼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특히 '분필 교향곡'에서 보여지는 학생들의 모습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는 또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교사의 권위에 대항하는 듯이 보여지는 학생들과 그런 현실을 그저 남의 일인마냥 쳐다보며 자신의 즐거움만을 쫓는 다른 학생들의 모습은 침묵하는 대중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종하는 사람들'의 근로자들이 어떻게 하면 일을 편하게 할까 요령을 피우는 모습들은 우리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전설 기우'에선 검찰조사를 받은 후 소설을 불태우는 궁상떠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의 나약한 모습을 엿볼수 있다. 소설 속에선 이렇듯 현실 속 비겁한 모습의 우리들을 만나게되지만 절대 욕을 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 군상들. 우리는 오히려 그들에게 한없는 애정을 느낀다. 비록 드라마로는 차승원을 꿈꾸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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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이응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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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맨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내 손가락 끝에선 외로움이 뚝뚝 묻어난다. 도대체 이 소설가의 나이는 몇이나 됐을까? 책의 맨 첫장을 펴고 약력을 살핀다. 70년생이라~, 아 그런데 이 책의 단편들이 94년부터 나왔으니 20대 중반에 쓰여진 것이군. 그래 나의 20대도 이렇게 외로웠던가?

태양, 태음, 소양, 소음처럼 체질을 나누듯 누군가는 고독체질이라는 것을 갖고 태어날지도 모른다. 정말 그 근거를 알 수 없는 지독한 외로움. 하지만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생을 포기하거나 그것을 잊으려 거짓 인생을 살지 않는 자들이 지녀야 할 고독과의 친분. 소설은 외로움에 맞서 싸우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외로움의 원인을 찾으려 애쓰지도 않는다. 비가 쏟아지고 나서 하늘이 유독 푸르듯 외로움이 자연스레 휩쓸고 지나가면 무엇인가 빛이 보이리라. 외로움은 그렇게 비처럼 자연스런 무엇일터이다.

책 속에 나오는 단편들의 맨 끝 구절들만 모아본다.

별빛같은 아픔이.
평생 고래 꼬리만 바라보고 살아가던 한 외로웠던 사나이에게, 난 결코 그가 실망할 수 없는 고래의 몸통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숙취로 머리가 잠시 아팠을 뿐이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책을 쓰는 사람은 외로운 인간이라 생각하며 서울로 돌아오고 있었다.
봄이 되어도 집은 옮기지 않기로 맘먹고 있었다.
사랑과 평화가 존재하지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이젠 적어도 꿈꿀 순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

세상을 허무하게 바라보면서도 끝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아직 작가가 젊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 외로움의 희망은 도대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소설 속에선 그 답을 찾을 수 없지만 아마 포옹이지 않을까 싶다. 외로운 자들끼리 손을 내밀어 가슴을 끌어안는 것, 달의 뒤편엔 그런 따스함이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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