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바꾸는 아티스트
지승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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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기전 사전조사는 필수다. 그 사람에 대한 질문을 적어도 수백가지는 만들어내고서 이야기도중 그것을 적재적소에 펼쳐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전문 인터뷰어는 전문 인터뷰어이기 때문에 갖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바로 사람에 대한 풍부한 데이터베이스이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연쇄적으로 인터뷰할 수 있을때 그 사람들의 의견들을 참고로 질문은 자동적으로 생성될 수 있다.

이 인터뷰 책 또한 그런 장점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주로 시대적 상황에 대한-미국 장갑차나 대선 등등- 한 사람의 답변을 토대로 사람들의 의견이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는지 서로의 견해를 물어봄으로써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빨간색, 파란색이더라도 그 안에선 또 얼마나 다양한 색깔이 있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최대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우리가 그저 딴따라라고 생각했던 선입관을 떨쳐버리고 이들이 정말 사회적 문제에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하고 있으며 그것들을 작품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애쓰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들은 정말 아티스트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감춰진 마음을 들춰내는 인터뷰어 또한 아티스트임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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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의 미녀
커트 보네거트 지음, 이강훈 옮김 / 금문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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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은 유교적 합리주의가 꿈꾸는 세상은 종교가 없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분명 우리가 버리지 못할 종교의 순기능이 있지만, 지금까지 역사가 보여주듯 그 폐단 또한 만만치 않음을 생각해보면 설득력을 지니는 생각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제국주의와 맞물려온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은 수많은 전쟁의 원인이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구 사회라는 것이 바로 제국주의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 자기 스스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저자 보네거트는 기독교에 메스를 들이대고, 자본주의에 일침을 가한다.

단지 실업을 없애기 위해 우주시대를 제창하며 우주선을 만들어 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이유로 인해 화성으로 끌려가 기억마저 제거된채 그저 안테나로 조정되어진다. 마치 텔레비젼이나 라디오와 같은 대중매체에 의해 자아를 상실한채 그들의 메시지대로 움직이는 현대인과 비슷한 모습이다. (물론 영화 올드보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대중매체를 통해 습득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현실과 꼭 들이맞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위험하다) 엔트로피만을 증가시키는 소비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는 소비가 미덕인 사회에 있어 한번쯤 자신이 무엇을 소비하고 생산하고 있는지를 돌이켜보게 만든다.

또 운명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모두가 핸디캡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설정은 맹목적 평등의 사상의 위험성도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의도는 이런 평등을 바라는 것인지 비꼬는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자신의 몸에 몇킬로그램이나 하는 쇠덩이를 핸디캡이라고 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우스운가?

또 작년 열풍이 불었던 로또라는 복권처럼 어떤 행운이 우리에게 다가왔을때 그 행운을 양심의 가책없이 받아들이는 경우, 선행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에선 행운이라는 것이 선행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행운일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듯하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지면 곳곳에 흐르는 무정부주의적이며 허무한 생각에 사로잡혀 왜 사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하지만 저자는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대신 인생의 목적을 한마디로 이야기한다. 사랑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갑자기 뜬금없는 결말로 치닫는 듯하지만 주인공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결국 인생이란 사랑의 기다림이요 사랑의 창조임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된다.

이렇게 고독한 우주에 외로움을 친구로 삼을 수 없다면, 언젠가는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움을 우리는 바로 옆에서 항상 손을 내밀고 있는 사람의 향기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도 찬찬히 옆의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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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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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특히 '엘리베이터에~'는 계속되는 우연이 어떻게 맞물려 황당함을 가져오는지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피뢰침'의 경우는 죽음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경험에서 살아남음으로써 무엇인가 남다른 삶으로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집단을 통해 일상성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만든다.

우리는 일상을 탈출하는 꿈을 꾼다. 복권과 같은 일확천금의 기회를 기다려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지금과 같이 성실하게 살다보면 언젠가 볕들날이 있을거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즉 양적 변화의 축적이 질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법칙이 삶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리라 마음 한구석에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일들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결코 우리네 일상은 그 일상의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설은 이런 일상의 그물망을 보여준다. 결코 부서지지도 넘어서지도 못하는 견고한 일상의 벽은 그래서 수많은 우연들이 자신들에게 닥치더라도 여전히 그대로다.

혹시나 지금 일어난 이 일이, 또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계획이 삶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야말로 질적 변화는 양적 변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질적 변화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질적 변화에 접근하지 못하고 그저 양적인 축적에만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우리네 삶은 오늘도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음을, 덧없이 계속 쌓아가고 있기만을 반복하고 있음을 소설은 웃음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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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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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서재응은 마이너에서 5년을 고생했다. 박찬호나 김병현은 이미 메이저로 갈 사람들이지만 마치 통과의례처럼 마이너를 거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생각한다.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가는 길은 누구나에게 열려있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수많은 마이너 선수들중 과연 몇명이 메이저로의 진입이 가능했던 것일까? 우리는 메이저의 화려함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은희경의 소설은 4명의 동창생이 숙제를 하지 않았다는 공통점-그것도 한자리에 모여 있는 바람에 다들 숙제를 해오지 않았을 거라는 오해로 안심하다가 봉변을 당한다-으로 어느 순간 묶이더니 평생을 같이하는 죽마고우로서의 삶을 살게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이미 숙제를 하지않았다는 비주류라는 낙인을 가슴에 새겨둔채 평생을 그 낙인을 지우려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들을 얽어매고 있는 마이너라는 계급성은 벗어나지 못한다.

메어저로의 도약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남미국가와의 공연계획은 그야말로 메이저라 할 수 있는 방송국에 의해 무참히 깨져버린다. 메이저가 버티고 서 있는 한 마이너는 도저히 도약을 꿈꿀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방에 메이저로 진입하기 위해 고시에 목매달고 있지 않은가? 또는 땅 투기라도 해서 경제적으로 메이저로 진입을 꿈꾸기도 한다. 계급이 없는 자유국가라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계급에 묶여 있으며 그 진입의 통로 또한 지극히 제한적임을 소설은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다른 질문 하나를 던져야 한다. 왜 사람들은 그토록 메이저를 꿈꾸는지를? 마이너의 고달픔과 메이저의 달콤함이 주는 극도의 차이가 사람들의 탈출 욕망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녁형 인간에 다시 아침형 인간까지 살아서라도, 자신의 몸을 완전히 소진해서라도 탈출해야만 하는 그 곳. 그곳이 바로 우리가 땅을 딛고 있는 바로 이곳임을 생각하니 서글픔이 든다. 메이저도 마이너도 살기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계급이 존재하더라도 차이는 있데 차별이 없는 그런 세상을 꿈꾸어 본다. 그저 헛된 몽상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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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풍경 - 빛샘 한국 대표 문학 30
박태원 지음 / 빛샘(Vitsaem)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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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간에선 10억 재테크가 인기다. 1억 종잣돈을 모아 10억을 벌어보겠다며 갖가지 묘책을 찾는라 분주하다. 그런데 한 여론조사에서 평생을 살아가며 필요한 돈이 어느정도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20억 정도라고 했단다. 그렇다면 10억을 만들어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의 절반밖에는 못 모으는 꼴이 되는데...

어찌됐든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고민은 바로 돈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 돈이라는 문제가 결코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었던가 보다. 천변풍경이라는 이 소설속의 배경은 1930년대의 청계천 주변 민중들의 삶인데, 이들의 고민이 현재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30년대는 일제치하였음에도 소설은 지극히 개인적인 삶에 초점을 맞추고 다큐멘터리 카메라를 들이밀듯이 지켜보고 있다. 시시콜콜한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다 보니 우리가 언뜻 선입관을 가질법한 국가의 독립과 같은 문제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 꼭 개인 자체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돈의 문제 등을 드러냄으로써 당시에도 이미 자본주의적 폐단을 경험하고 있었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들이 돈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능동적이지 못하고 휘둘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결론이 결코 해피엔딩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충고를 넌지시 던져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80년 가까이 지난 현재에도 사람들은 무던히도 돈을 모으려 애쓴다. 정작 그 돈을 무엇을 위해 모으려 하는지 잊어먹은채 말이다. 청계천이 복개되고 이젠 그것이 뜯겨져 원래의 모습을 찾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경제적 이익을 볼 것인가에만 매몰되어 있는 개인들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민중들에게도 웰빙의 삶은 가능한가?라는 난데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역사가 진행되가면서도 먹고사는 것이라는 근본적 문제는 어찌 이다지도 커다란 벽으로 남아 있는가? 청계천이 이런 문제를 쓸어가버렸으면 좋겠다. 진정 그런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질때 우리의 이웃들은 웰빙을 생각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진정 역사는 진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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