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가의 술 12 - 완결
오제 아키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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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남자 주인공 유지태가 여자 주인공 이영애에게 하는 말이다. 어떤 논리나 설명도 없는채 느닷없이 튀어나온 말 '사랑이~'는 한동안 영화를 좋아한 사람들 입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 남자에게 그것은 어떤 설명도 필요없는 진리이다. 그러나 사랑은 변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지 않던가?

<명가의 술>을 읽다보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가 떠오른다. 물론 이런 말은 만화 어디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말 그 자체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사랑대신 사람이란 말을 대입해야지만 정확한 나의 느낌일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그렇다. 이 만화는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준다. 농약으로 죽어가는 땅, 알코올을 섞어놓은 보통주와 삼증주 따위의 싸구려 술. 그것은 대중적이라는 의미에서 경제적이라는 의미에서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주인공인 나츠코는 사람들을 계속 설득해 나가야만 한다. 왜 땅이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고다와 함께 왜 일본 제일의 음양주를 그렇게 만들고 싶어하는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츠코의 뜻을 이해하는 동창생은 시련이 닥칠때마다 회의에 빠진다. 무기력하고 무능하고 무관심한 이 농촌사람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츠코 또한 몇번이나 실의에 빠지고 포기하려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끝내 일어선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사람들을 변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동조하는 과정은 정말 감격이다. 슬퍼서가 아니라 감격에 겨워 눈물이 글썽인다. 변해가는 사람들. 이것이 바로 희망이다. 그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터이니 말이다. 아, 난 이 만화속에서 세상의 희망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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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자 the Closer 1
유시진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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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 봅시다. 넓디넓은 들판에 나홀로 서 있는 장면을. 세상엔 나 말고 아무것도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악을 써도 메아리조차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천상천하 유아독존.나는 살아있는 것인 걸까요? 자, 이번엔 조금 더 나은 상황으로 나가봅시다. 제 옆에 사람들이 있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말을 건네봅니다. 하지만 묵묵부답.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마치 바위에게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소통이 단절된 삶. 아~, 나는 살아있는 것인 걸까요?

가끔씩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몇일 살다왔으면 하는 꿈을 꿉니다. 휴대폰도 꺼두고 텔레비젼이나 라디오도 없는 곳. 오직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살랑살랑 머릿결을 흔드는 바람과 피부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햇살만이 존재하는 곳. 소통 자체가 전무한 이곳. 타인과의 소통은 때론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삶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꿈꾸는 그곳.

키퍼는 괴로워합니다. 쿤이라는 자아와 키퍼라는 직위사이에서 갈팡질팡. 그 둘은 둘일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로서만의 삶이 있을뿐입니다. 그는 쿤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행하는 그의 능력은 키퍼로서의 행위입니다. 결국 둘은 떨어질 수 없는 동일인물인게죠.

사랑의 감정은 소통의 극치입니다. 나와 타인의 구분조차를 불가능하게 만들죠. 하지만 이런 사랑이 떠나가면 그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요. 오직 죽음만이 소원이겠죠. 그래서 그는 세상을 닫아버립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을 닫아버리는 것이겠죠. 사랑은 이렇게도 지극히 위험한 것인가 봅니다. 그래서 중독이라는 말을 쓰겠죠. 시기와 질투를 그림자로 둔 사랑.

소통은 항상 괴로움을 동반합니다. 때론 떠나보세요. 소통이 없는 삶으로. 그러면 그 괴로움마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소중한 요소임을 깨우치게 될 겁니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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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 X 1
CLAMP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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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이야기는 고대 신화에서부터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다. 야누스의 두 얼굴이 그렇고 프랑켄슈타인이나 최근의 TV시리즈 두얼굴의 사나이, 그리고 투명인간 등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뚜렷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이중적 경향은 서로 엇비슷한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라 극과 극의 상반된 성격을 가짐으로써 비극성을 갖게 된다. 만화 <X>또한 주인공이 천룡을 택하는 순간 가장 절친했던 그의 친구가 지룡이 됨으로써 비극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천룡과 지룡의 싸움은 얼핏보면 선과 악의 싸움으로 비쳐지며 당연히 선이 이기길 바라는 권선징악적 결말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만화가 진행되면서 이것은 정말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우치게 된다. 천룡과 지룡은 결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과정은 아니다. 물론 이 선택에선 인류문명의 발달이 환경오염을 과속화시켜 지구멸망을 가져올 것이라는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지만 말이다.

즉 인류의 생존을 택할 것이냐 지구의 생존을 택할 것이냐의 선택에서 당신은 무엇을 택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내세우는 작가는 그 질문을 받고 독자가 당황해하는 것을 즐기는 듯싶다. 그러나 작가는 착하게도 왜 주인공이 천룡을 택할 수밖에 없는 지를 가르쳐준다.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인류는 살아남을 가치가 있다. 그 지키고 싶은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생명체 모두로 확장이 된다면 결코 이 싸움은 일어날 수 없는 상황으로 반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무엇인가를 소중히 지키고 싶은 감정,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 인간이란 바로 이런 존재이지 않는냐고 작가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 의해 아직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듯이. 우울했던 마음 한편이 따스해져옴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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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테~♡ 2010-01-15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 오래전부터 후기를 쓰셨네요. 제가 소장한 만화책만 보면 반갑습니다.
 
화두 1
최인훈 지음 / 문이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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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 아니면 공동체의 규범, 또 좀 내려오면 역사의 법칙 그런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이 우주와 역사와 인생의 길흉화복과 조화를 한손에 쥐고 있는 존재거나, 법칙이거나, 어떤 소식이 발하는 목소리,그것이 뒤돌아보지 말라의 세계다. 그런데 그런 존재나 법칙이나 소식이 모두 희미해졌거나 이미 간곳 없어 보이는 시간을 사는 시대 인간은 어쩌면 좋은가 -p530

<과거는 묻지 마세요>라는 유행가 가사가 오히려 얼마나 인간이 과거에 집착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즉 과거에의 <기억>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존재는 비단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결코 망상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기억에 대해 뒤돌아봄으로써 만이 다시 과거로의 퇴행을 막을 수 있을뿐더러 보다 나은 앞으로의 세상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런 의미에서의 작가 자신의 뒤돌아보기이며 20세기의 뒤돌아보기의 시도라고 여겨진다. 일제시대부터 80년대 후반까지 역사의 회오리속에서 살아간 자신의 운명이 해방후 개인적 상반된 두 경험에 의해 전 생애가 지배당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이것은 단순히 자신만의 일이 아니라 인류공동체의 삶 자체의 두 흐름이 아닐까 회상하는, 그의 개인사는 지금도 우리 모두의 개인사에 그대로 투영되어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공동체적 감정>과 <공동체적 이성>사이에서 자신의 정체를 확립함으로써만이 사회적 공동체로서의 자기동일성을 지닌다는 생각(p357)은 그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역사적이다. 그러나 이 감정과 이성사이의 통합이 무너짐으로써 정체성의 혼돈을 느끼고 있는 현실의 나로서는 과거로의 퇴행을 막기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아야만 한다.

도대체 내가 어디에 서 있고 이 길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나는 그 길 위에서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를 검토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동물이 먹이를 사냥하고 새끼를 낳고 죽음에 이르는 것과 아무것도 다른 게 없음을 몸서리치도록 자각하게 만든다, 이 책은. 정녕 나에게 주어진 이 화두를 짊어지고 나 또한 내 자신의 삶과 이 세상을 한번쯤 뒤돌아본 후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절대 조급해하지 말고 조그마한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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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과 금 1
후쿠모토 노부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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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작품은 자본주의의 속성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돈에 대한 탐욕이 잘 드러나 있다. 인간이 얼마나 욕망의 유혹에 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부나방처럼 그 욕망을 향해 자신의 몸을 태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른 사람을 밟아뭉개고 올라서야만 하는 경쟁의 구조와 패배앞에서 또 얼마나 비굴한지를 섬뜩한 대결을 통해 드러나게 만든다.

그러나 그의 이 어두운 인간에 대한 관점은 주인공의 순수함마저 빼앗아가지 못해 일말의 희망을 남겨두곤 한다. 세상은 온통 먹구름이지만 간혹 햇살이 그 틈사이로 비추듯 그리고 그것은 먹구름 위의 세상은 햇빛 찬란한 세상임을 암시한다. 만화를 읽어나가면서 진저리치고 세상에 대해 비관적 눈길을 보내가다도 문득 주인공을 생각하며 힘을 얻는다.

하지만 이번 만화의 결말은 주인공이 경쟁의 세계를 떠나버림으로써 진정 우리가 맞대고 있는 세상을 회피해버린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런 노부유키의 만화는 인간에 대한 내면을 여러가지 대결구도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 외에 꼭 놓쳐서는 안될 부분이 바로 벌칙의 내용이다. 특히 이번 <은과 금>에서 나오는 벌칙 중의 하나인 감금과 온 세계와의 단절은 인간이란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끔 만든다.

24시간 내내 빛속에서 누구와도 접촉을 금한 채 살아야 하는 사람들. 그들은 점차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동물적 생존능력마저 잃게 될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 깨우침을 뜻하는 말이긴 하지만 문자 그대로의 뜻을 새겨 오직 나 혼자만의 세계를 구상하고 있다면 이는 필경 죽음의 세계로의 초대일 것이다. 인간은 항상 접촉을 필요로 하고 그것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끊어졌을 때 자신의 존재마저 상실되어진다. 해와 달의 변화, 사람들과의 대화 등등 시간과 함께 변해가는 모습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접촉의 인간관계속에서 우리는 경쟁을 최우선으로 하는 세상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추악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이 공간에서도 끝내 순박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 되보자는 게 아마도 지은이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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