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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죽거리 잔혹사>를 <친구>와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그 소재의 비슷함과 사랑과 우정의 갈림길, 그리고 폭력...  추억을 팔아먹는다는 점에서 둘은 정말 닮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영화를 같은 부류로 취급하는 것은 반대다. 소설가 조정래씨가 말했듯이 소재의 반복에 딴지를 걸 필요는 없을법하다. 그것이 어떤 색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에 호 불호 또는 닮았다 다르다의 판단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말죽거리가 이전과는 다른 파격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사회와 조직이 주는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대항의 의미로서의 폭력이 이렇게 상쾌해본적은 없었던 것 같다.

권상우가 옥상에서 선도부와 그 무리들을 쌍절곤으로 후려칠 때 몇십년간 쌓여왔던 가슴속 체증이 싹 가시는듯했다. 교련 선생 앞에서 유리창을 깨뜨리며 내지르는 그 말 한마디는 정말 통쾌했다. 유리창을 깬다는 행위는 개인적으로 단순한 폭력의 상태 그 이상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싶다. 학교라는 감옥에서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자유를 느끼려면 우리는 유리창을 열어제껴야 한다. 더욱 과격한 방법은 유리창을 없애버리는 것 아니겠는가? 난 얼마나 학창시절 이 유리창을 깨뜨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말죽거리의 최대 장점은 바로 이부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폭력앞에서 우리가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폭력적일수밖에 없음을 영화는 감성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비폭력을 외칠수 있겠지만 우리 마음속 솔직한 심정은 이소룡같은 힘을 길러 싸그리 박살내버리고 싶어했던 것이 아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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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시간의 귀성길, 엉덩이가 아프다.

무등산을 오르면 나아지려나?

눈꽃을 찾아 그리도 돌아다녔건만 고향에 내려오니 매일 눈발이 거세다.

하루 잠깐 해가 반짝이는 날 무등산에 올랐다. (아, 그 겨울해는 왜 이다지도 밝아 나의 얼굴을 빨갛게 만들었는가?)

10년 여만에 종주를 다시 해본다.

그런데 이 산이 내가 그때 오르던 산이었던가?

안 보이던 산들의 모습이 보인다.

지나쳐갔던 규봉암. 꼬막재서 산장으로 가는 침엽수림의 울창함. 꼬막재서 바라보는 광주호와 얼핏 예상되는 담양의 소쇄원. 그리고 입석대와 서석대의 장대함. 세인봉의 아찔한 절벽. 토기봉 근처의 갈대밭......

인생을 더 살아가다 보면 산의 감추어진 모습을 보듯 삶의 감추어진 모습을 볼 수 있으려나?

하기야 산의 감추어진 모습을 보기 위해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산들을 올랐는가! 그러니 인생의 감추어진 모습을 보기 위해선 무단히 인생의 길을 걸어야 하겠지...


입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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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영화제목 외우기가 이다지도 힘든가?

아타나주아-빠른 사나이란 뜻의 이 사나이는 빙판을 벌거벗고 뛴다.

카메라는 이 사나이를 줄기차게 쫓아가고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의 검열을 통과해 모자이크도 컷팅도 없이

온전하게 우리의 시선에 와 박힌다.

그것은 결코 야하다는 성적 상상력을 주기보단

원시적 생명력을 느끼게 만든다.

원수, 사랑, 질투, 복수, 용서 등등

신화나 전설 민담 등에서 익히 들어온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그것이 새하얀 설원에서 펼쳐진다는 점에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국적인 느낌의 북극.

그곳에서도 생명의 박동은 힘차게 뛰고 있음을.

인자하지 못한 자연(도덕경의 한 구절)이 있기에

생명은 그다지도 위대해 보이는지도 모른다.

역경은 결코 우리를 제압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자연의 품 속에 살기 위해 인자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았을때 자연은 생명마저도 용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용서란 바로 이 인자함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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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평 스키장이 있는 발왕산.

원시림과 주목, 눈꽃이 아름다운 산.

겨울연가 속 풍경을 오롯이 담은 산.

자 오르자. 그 아름다움을 눈속에 담아오자.

그러나 길은 끊겨 있었다.

이런 사잇골로 가는 길은 끊겨 있었다.

끊긴 곳에 슬로프의 인공눈이 덮혀 있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아 곧은골을 찾았어야 했는데.

할 수 없다. 슬로프를 거슬러 오르는 수밖에

혼란스럽다.

스키의 재미를 위해 그렇게도 아름다운 나무를 베어내야만 했을까

문명의 편리와 쾌락은 그렇게 자연에 스며들고 있었다.

누군가 찾지 않았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속도로.

내 몸은 자연인가 문명인가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문명은 그렇게 나를 둘러싸고 있을터.

그것은 축복인가 재앙인가

끝없이 눈떠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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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같은 사람

항상 그자리에 서 있으며 질투하지 않는다.

넉넉히 품어주고 변하지 않는 것.

그렇기에 산은 산이고 사람은 사람일뿐.

산같은 사람을 찾지 마라.

그냥 그렇게 서 있는 산을 찾으라.

 

하지만 사람은 항상 그 이상을 원한다.

그리고 사랑은 그 이상을 이상하게도 이루어주는듯하다.

신기루마냥...

산을 좋아하는 남자, 그남자를 사랑하기에 산을 오르는 여자. 그리고 그 여자를 사랑하기에 산을 찾는 또 다른 남자.

그들의 인연은 산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결국 그곳에 묻어두고 떠나야만 할 것이 있다. 산은 그렇게 서 있지만 결코 인자하지는 않다.

 

알래스카의 아시아크

이승에서 못보는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는 옆모습이 아름다운 산.

결국  주인공들은 죽음을 통해 사랑을 이루는가

아니면 산의 마력이 이들을 영혼으로 만나게 한 것인가

 

산보다 큰 사랑을 만나 그곳을 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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