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숲 - 신원섭 교수의 숲의 건강학
신원섭 지음 / 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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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좋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왜 좋은가? 라고 물어본다면, 그리고 무엇에 좋은지 답해 보라면? 아마도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일치된 견해를 내비칠것 같다. 산을 오르는 성취감, 숲이 주는 평온함, 숲 속의 나무와 꽃과 동물들이 주는 친근감, 푸른 하늘과 빛이 주는 따스함 등등. 즉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성을 되찾게 해주는 곳이 바로 숲일 것이다. 책은 바로 이런 내용들을 다룬다. 이론적 근거로서 바이오필리아(수렵, 채취 시절부터 자연과 함께 생존해 온 인간이 유전자에 그 친근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견해)나 직장인들에 대한 설문 등 조사자료 등을 객관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책은 일관된 저작이라기 보다는 이곳 저곳에 쓰여진 글을 모아놓은 듯 중언부언하는 곳이 많고, 풍부한 자료의 제시보다는 몇가지 자료만으로 계속 근거를 제시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고 에세이로서 읽혀지기에는 그다지 사적이라거나 감성적 풍부함을 지니고 있다기에도 어딘가 모르게 석연치않다. 다만 저자가 캐나다에서 공부한 기간 동안 찍은 것이라고 보여지는 사진 자료들이, 우리의 산하와 다른 신선함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사진집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다. 저자가 주장하듯, 숲이 주변에 없고, 창 밖으로 숲을 바라볼 수 없다면, 실내에 나무화분 등을 기르거나, 숲과 관련된 사진들을 걸어놓으라는 지적처럼 독자들에게 숲사진을 보여줌으로써 심리적 행복감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괜찮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숲이나 나무, 장소를 골라 그곳에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자는 제안은 하루하루 세상사에 쫓겨 나를 바라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현대인에겐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각자가 자신의 숲, 또는 나무 하나를 가지고, 힘이 들때면, 또는 휴식이 필요할 때면 그곳을 찾아 힘을 얻어갔으면 좋겠다. 정 그것이 힘들다면 집에 화분을 들여놓고, 그것도 힘들다면 숲이나 나무 사진 한장 걸어놓고 잠시 그것을 바라보며 나를 들여다보도록 하자.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힘은 발휘될 것이라 믿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숲을 통한 치유의 방법을 체계화시켜, 실질적으로 당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약이나 주사, 침과 같은 외부적 도움을 받기 이전에 스스로의 힘으로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그리고 그런 힘을 줄 수 있는 숲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이 개발되어지기를 바래본다.

책은 너무 평범하고, 정보 또한 빈약하다고 느껴지지만, 책 속의 사진이라도 한 장 찢어서 벽에 붙여놓으면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역할을 다했다고 할수 있을련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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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넷인 미혼모. 영화는 도쿄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을 소재로 만들어진 픽션이다. 네명의 아이가 주인공이지만 <엄마는 행복해지면 안돼>하면서 떠나버리는 미혼모에게도 왠지 모를 동정이 간다. 물론 12살 아키라에게 모든걸 맡기고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자식을 내팽개친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렇게 마음 한편에선 그녀를 이해하는 것은 또 무언가? 가끔 모성애라는 것도 본능이라기 보다는 사회가 주입시킨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의심해보기도 한다. 발칙하게도 말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으면서도.

어쨋든 아키라, 교코, 시게라, 유키. 이렇게 네 명의 아이는 부모없이 남겨진다. 새로 이사온 집은 이웃들에게 아키라 혼자 있는 걸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나머지 아이들은 밖으로 나다닐수도 없다. 이사올 땐 트렁크와 가방 속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왔었다. 아, 그런데 그 때 비쳐지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라니... 그 상황에서 어떻게 웃을수 있을까?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한듯이 말이다. 카메라 밖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웃을 수 없을것 같았지만 어느새 내 입가에도 미소가 떠오른다.

여기에 영화 속 내용을 구구절절히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너무나 안타까우면서도, 순수한 그들의 모습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낸 이 영화는 정말 모든 순간순간들이 다 보석이다. 기억 저 깊숙히 간직한 그 장면장면들을 모두 다 기록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아키라의 눈물, 시게라의 웃음, 교코의 시무룩함, 유키의 어리광...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몇가지만을 적어본다.

아빠없는 아이들이라 학교에 가봤자 왕따당할 것이라며 학교마저 가지 못하고, 이웃들에게 쫓겨날까봐 없는듯 살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외출은 최대의 즐거움이다. 이웃들의 눈치를 살피며 밖으로 나가는 장면에서, 그들이 드나든건 거대한 벽이었다. 임대아파트 사람들과 함께 살기 싫다며 담을 만들어버린 우리네 현실이 얼핏 스쳐지나간다. 학교를 가기 위해 그 담을 넘어야 했던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됐을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 담이 왜 생겼났는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잠시 만화책을 보는 사이 아이들이 비닐속에 훔친 물건을 집어넣는다. 아키라는 편의점을 나오다 점장에게 잡혀 도둑으로 몰린다. 다행히 알바생이 아이들의 장난(?)을 목격하고 점장에게 이야기해준 덕에 무사히 나올수 있었다. 점장은 이것을 무마하기 위해 호빵을 몇개 얹어준다. 아~ 이 분노. 도둑으로 몰아놓고 그저 호빵 몇개로 빠져나가려는 어른들의 상술. 라면이나 술병 속에 이물질이 들어간 것을 인터넷어 올려놓으니, 해당 회사가 몇박스나 되는 물품을 보내더라는 뉴스가 생각난다. 상술에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다쳤는지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자신들의 이미지가 나빠져 장사에 방해될까봐만 염려하는 어른들.

물세도 전기세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공원에서 물을 떠다가 먹고 빨래하고 씻으며 생활한다. 먹을 것은 편의점 알바생들의 도움으로 인스턴트 몇가지를 얻어 먹는다. 아이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이들이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알게 모르게 그렇게 도와주는 손길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하고 있기에 그나마 이 땅 위에 온기가 살아 숨쉬고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도 못가는 아키라. 밖에서 방황하다 오락실에서 또래 아이들을 만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에게 도둑질을 시키고, 아키라는 친구를 잃을 것인지, 양심을 잃을 것인지 고민한다. 이런 도둑질의 갈등은 나중에 또 한번 나타난다. 그리고 또 한번 사귀게 되는 친구. 여중생인 이 친구는 아키라의 집세를 마련하기 위해 원조교제를 한다. 노래방에서 같이 노래 불러준 것 밖에 없다며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아키라에게 변명해보지만, 아키라는 매몰차게 돈을 건네는 손을 걷어찬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쳐오면서 그 돈을 다시 원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모습.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었던 야구를 하고 있는 동안, 막내 유키는 그만 의자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는다. 아키라는 아연실색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상황. 나는 속으로 계속 외친다. 제발, 제발 병원으로 데려가, 아키라. 제발 데려가 달라고. 부탁이야 아키라. 유키를 살려야지. 제발, 제발...

그러나 아키라는 유키가 싸늘해질 때까지 그저 지켜볼 뿐이다. 유키와 약속했던 비행기를 보여주기 위해 모노레일을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아키라. 유키는 이사 온 동안 커져서 맨 처음 안에 들어갔던 가방보다 더 큰 트렁크 속에 들어가 있다. 공항 빈터. 땅을 파고 유키를 묻는다. 아키라의 손은 심하게 떨린다. 유키를 병원에 데려가면 자신의 처지가 알려지고, 그러면 복지기간으로 불려가 뿔뿔히 흩어질 것을 염려한 아키라. 그가 진정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영화 종반부 집으로 향하는 그들의 뒷모습이 밝다. 사실 이렇게 적어본 글만 읽어본다면 영화는 어두운 암흑이거나 우울한 블루톤으로 뒤덮혀있을 것 같지만 태양의 환한 빛과 나무 꽃의 밝은 원색들이 가득한 밝은 영화다. 아키라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를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꾸준히 생각해본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끝내 지키고자 했던 것, 아키라가 그렇게 소중하게 지키고자 했던 그 무엇을 나는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여겨왔던가? 이리저리 핑계대며, 나이 먹어가면 당연한 것이라며, 내팽겨치진 않았는지, 글썽이는 눈물사이로 부끄러움이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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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서울, 기상관측이래 100년만에 4월 최고 더위인 29.8도를 기록.

아침 9시 20분 상봉터미널에서 용문사로 가는 직행버스를 탔다. 오늘도 산에 오르기전 치러야하는 의례, 화장실엔 물론 들렀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타진 않는다. 점점 더 사람들이 자가용으로 움직이다보니, 상봉터미널서 움직이는 시외버스의 횟수가 줄어들거나 노선이 사라지고 있다. 뚜벅이의 마음은 안타까울뿐이다. 더군다나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을 생각하면 왠지 분노마저 치솟는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가 과연 어디서 그 끝을 보일련지 모르겠다. 물론 편안함에 대한 욕구가 인간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중 하나일 것임에는 틀림없겠지만, 과연 그 댓가로 무엇을 지불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11시가 조금 못되어 용문사 도착, 안내책자들과 등산지도를 챙겨들고 오르기 시작한다. 입장료가 1800원. 국립공원은 아니지만 관광단지라 그런지 조금 비싼 편이다. 요즘 산불이 많이 났기 때문일까? 등산로 입구서 라이터와 같은 화기류 임시 보관소가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본다. 대부분 그냥 형식상으로 박스만 놔둘뿐인데 말이다. 쓸데없는 형식을 버리고, 실제로 필요한 것들만이라도 제대로 운영된다면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을텐데...

용문사로 올라가는 길에는 법경의 구절들을 적어놓은 푯말들이 중간중간 세워져 있다. 계곡에는 물이 졸졸 흐르는데 최근 비가 오지않았는데도 이 정도로 흐르는  걸 보니 상당히 물이 많은 산인 것 같다. 용문사 앞. 1100년 먹은 은행나무가 서 있다. 천연기념물 30호. 높이 63m라고 하나 눈짐작으로 보아 그 정도는 안될 것 같다. 40~50m정도 쯤. 둘레는 11m,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이지 않을까? 거대함이 주는 압도감과 함께 신성함마저 풍긴다. 오래 묵어서 좋은 것들도 참 많다. 장이 그렇고, 친구가 그렇고, 이렇게 살아있는 나무도 그렇다. 사람들은 이 나무에 얼마나 많은 전설과 신화를 만들어내고 세대를 지나 이야기되어질 것인지...

마당바위쪽을 향해서 오른다. 햇볕은 생각보다 따갑다. 하지만 옆에 계속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시원하니 좋다. 마당바위를 지나 정상으로 향하는 길. 돌무더기로 된 길이 가파르다. 한 호흡 한 호흡 점점 거칠어지는 숨을 잡고 발을 내딛는다. 이제 정상까지 1km남짓. 바위들이 절경이다. 기암괴석이라고 까지 할 수 있을련지 모르겠으나, 흔히 그렇게들 부르니 기암괴석이라고 부르자. 로프가 매달린 바위들이 몇개 오른다. 이쯤 정상이라 생각하고 발길을 멈추는데 저기 저 높이 암벽이 또 다시 보인다. 산정상 군부대의 철조망 아래로 삐죽 나온 암벽. 아~ 생각보다 힘들다. 하지만 여기까지 이렇게 왔으니, 올라보자.

결국 정상, 전망이 좋다. 1100m가 넘어서는 높이. 그렇게나 높았나 깜짝 놀랬다. 경기도에선 화악산, 명지산 다음으로 높은 산. 저 멀리 안개가 쌓인 듯 뿌옇지만 그래도 오른 보람이 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백운봉의 삐죽한 모습과 정확히 어떤 산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둔산 정도로 보이는 독특한 산의 실루엣도 보기 좋다. 산새는 먹이를 구하려는듯 사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바위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시원한 정상의 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 아랫배 깊숙히 보낸다. 세상이 막힘없이 확 트이기를 바라며...

내려오는 길. 보통 등산객들은 같은 길로 내려가다 상원사쪽으로 빠지겠으나, 난 장군봉으로 해서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장군봉까지 가는 길. 마주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게다가 장군봉서 내려오는 길, 중간에 길이 사라져버렸다. 아니 사라졌다는 것은 나의 핑계일터다. 분명 길은 놓여져 있었을테지만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다보니 뚜렷한 흔적을 보이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맨다. 이번이 등산하면서 2번째로 겪는 혼돈이다. 물도 이미 떨어졌고, 비상식량도 없는 상태에서 뙤약볕까지. 힘들다. 길이 아닌 곳은 무릎까지 쌓인 낙엽과 잡목들로 헤쳐나가는데 무척 힘이 든다. 그래도 계곡 저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어떻게든 계곡쪽으로 내려가 밑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될듯 싶다. 원래의 목적지보다 한참 오른쪽으로 비껴간 것 같다. 선택은 목적지는 다르지만 일단 내려가는 것과 능선을 타고 넘어가 목적지쪽으로 향하는 2가지. 하지만 물이 없다는 것이 약점이니 빨리 내려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세상은 참 희한하다. 물과 비상식량을 염려해 대부분 돌아갈 땐 남을 정도의 분량을 싸 가기 마련인데, 이번 용문산은 관광단지였다는 생각에 조금 만만하게 본 것이었을까? 높이에 놀라고, 길을 잃고, 게다가 식량과 물 부족. 또 날씨는... 항상 어려움은 예상하지 않았을때 닥치는 법일까?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맞이하는 어려움은 마음이 그것을 맞이하고자 하는 전투상태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보다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일까? 예상치못한 어려움은 그 크기마저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두렵다는 것은 모험이 주는 매력이기도 하다. 뜻하지 않은 길 잃음이었지만, 다리는 천근만근이었지만, 마을 입구에 다다랐을 때는 모험을 끝마쳤다는 이상한 안도감에 기분이 괜찮다. 개울가에 앉아 족탁. 으, 발이 얼것 처럼 물이 시원하다. 아, 이 맛에 산에 오른다.

마을 입구, 무지하게 큰 전원주택을 지나 펜션을 겸하고 있는 산골밥상에서 더덕주와 함께 식사. 아~ 배 터질것 같다. 아주머니가 그 귀한 두릅까지 주시니, 신선이 따로 없다. 서울로 올라가는 차 시간이 맞지 않았지만 뭐 대순가? 일단 살아있음을 배로 먼저 느끼니, 만사가 평온하다. 원래 돌아가야 할 4시 반 차를 탈 수 있는 용문사쪽도 아니고 다른 곳이니, 용문까지 가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조금 아깝지만 시간에 쫓기기 보다는 느긋하게 즐기기 위해 발을 뻗고 술을 거푸 들이킨다. 더덕주 한동이를 친구와 비우고, 콜택시를 부른 후 슬슬 자리에서 일어난다. 10000원이 좀 아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신선놀음에 비하면야...

돌아오는 길, 용문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청량리로. 오랜만에 타보는 완행열차. 앞 좌석에 대학생이 MT 사전답사를 다녀온 모양이다. 그들의 들떠 있는 모습이 좋다. 창밖으로 보이는 강물도, 그리고 빨간 빛으로 변해가는 태양도. 오늘도 잊지못할 또 하나의 산행을 기억과 마음 한쪽에 새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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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3일 토요일 하늘이 무척 파랗다.

쉬는 날이면 두번씩 잔다. 한번 일어났다가 잠시 창문을 열어놓고 다시 눕는다. 오늘은...  글쎄 오늘은 왠지 꼼지락거리고 싶지 않았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마냥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전날 산에 오르리라 마음먹은 것도 있고.

7시 30분쯤 집을 나섰다. 청량리에서 1330번을 타고 가평 현리터미널로 가기 위해 조금 서두른다.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마다 출발시간이 달라 조금 초조하다. 게다가 청량리에서 지하철을 내렸을 때 화장실이 급해진다. 이상하게도 최근엔 산에 오르기전 꼭 화장실에 가는 버릇이 생겼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교훈 중에 꼭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화장실을 가라는 부분이 생각난다. 낭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 들여야 할 습관중에 하나. 다행히 낭패를 당하지는 않았다. 현대코아 앞에 세워진 1330번은 좌석에 앉자마자 출발했다. 왠지 뭔가 잘 들어맞는 기분이다. 그런데 차가 무지무지하게 막힌다.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가? 구리를 지나면서부터는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문다. 현리에서 운악산 가는 버스는 10시 20분 출발이다. 놓치면 한시간을 공치게 된다. 10시쯤 되자 나 말고도 초조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할머니 두분이 운전기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차 놓치면 안되는데... 기사 아저씨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궁하면 통하는 법인가? 그런데 이것도 궁한 것인가? 도시의 부산스러움에서 벗어나 느긋함을 즐기기 위한 여행에서 차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태운다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아무튼 기사 아저씨의 도움으로 10시 17분 터미널 도착, 운악산 현등사로 가는 버스를 용케 탔다. 그리고 35분 운악산 앞에 도착, 슬슬 산을 오를 준비를 한다.

운악산은 경기 5악(개성 송악산, 파주 감악산, 관악산, 가평 화악산) 중의 하나라고 한다. 935.5m의

 산으로 가히 악이라는 이름을 붙일만한 산이었다. 매표소에서 눈썹바위로해서 만경대 정상까지 2시간 남짓 걸렸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산에 오르는 기분이 최고다.  산의 연한 초록색 잎들에

마음마저 가벼워진다. 마음에 걸린 것은 산아래 놓인 골프장. 이 좁은 땅덩어리에 농약을 듬뿍 묻혀 키워내야할 잔디들을 거느린 저 골프장이 정말 필요한 걸까? 물론 여가와 놀이라는 측면에서 무엇인들 안괜찮겠는가마는 결코 얻는것보다는 잃는게 많은 것이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으~ 잊어버리고 오르자. 입에 고구마를 문채 거친 숨을 몰아쉰다. 병풍바위의 아찔한 낭떠러지에 현기증이 인다. 꼬마 녀석 하나가 잘도 쫓아온다. 그래도 아직까지 산에 오르면서 나를 추월한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장하다. 정상에 오르는 길, 바위들마다 철심이 박혀있다. 사람들이 쉽게 오르도록 만들어놓은 철심을 볼때마다 난 왜 일본이 일제시대때 맥을 끊어놓는다면서 설치해놓은 쇠말뚝이 생각나는 것일까?  산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해놓은 계단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철심이 왠지 눈에 거스른다. 하지만 덕분에 쉽게 산을 오를 수 있긴하다. 철심이 없었다면 엄청 고생했을것을 생각하면 필요악같기도 하고...

정상서 한숨 돌리고 절고개를 지나 현등사로 내려온다. 현등사 입구에 세워진 화두는 '나는 누구인가?'다. 이런, 요즘 무진장 고민하고 있는 나의 화두도 저 글자인데... 절에 들어가보면 화두를 세겨놓은 돌조각을 볼 수 있는데 기억에 남는 것중에 하나는 '이 뭐꼬'다. 현등사에 들어가보니 절이 주는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산에 오를때마다 느끼지만 산속 명당 자리는 군부대와 절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현등사의 관음전엔 주련이 한글로 되어있다. 오호라, 한글 주련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데...

그래서 여기 그 주련을 옮겨 적는다.

부처님 몸이 누리에 두루하다

모든 중생 앞앞에 나타나시니

인연따라 어디에나 두루하건만

본래의 보리좌를 여의지 않으시니

누군가가 이도리에 의심 없으면

만나는 일 모두가 살바야이리라.

 

살바야는 일체지를 말하며, 모든 것을 아는 사람, 즉 부처님을 이르는 것이기도 하다.

만나는 일 모두가 살바야이니, 지금 이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 속에서도 부처가 가득하시겠군... 부처의 자비로 넘쳐나길, 나무아미타불.

다시 매표소로 내려오니 1시 45분 할머니 집에 들어가 순두부를 시켜 먹는다. 아~ 이 순두부라는 것이 순하게 생긴 것이 아니라 듬성듬성 손으로 마구 뜯은 것 같이 거칠다. 하지만 맛이 순하니 좋다. 할머니들의 여유로움과 정이 넘쳐보인다. 좋게 보려면 좋게 보이기 마련. 산 속에서 땀을 흘리고 나서인지 모르지만 맛있게 한기를 때우고, 자 이제부터가 고민이다. 터미널까지 가는 차는 2시간 정도 비어 있는데, 에라 모르겠다. 한 7km정도 거리지만 걸어보자. 이런 날씨도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닌데, 시골길을 걷기로 한다. 조금 다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걸어보자.

한 2,3km정도 갔을까? 자꾸만 힐끗힐끗 뒤를 쳐다본다. 히치하이킹을 위해서. 아, 이 나이에 시커멓게 생긴 도둑놈 마냥한 사람에게 누가 차를 세워줄 것인가? 그럼에도 계속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힐끔힐끔. 아 좋은 풍경 다 놓치게 생겼다. 도대체 난 지금 왜 걷고 있는거야? 마을의 개들은 짖어대고, 소똥 냄새 진동하고...

히치하이킹을 포기하니 그제서 풍경은 다시 내 마음으로 돌아왔다. 몸이 고생해도 마음은 편안타. 엔돌핀이 솟으면 몸도 가뿐해질텐데, 그것은 몽상일뿐이고... 그래도 터벅터벅 걷는 길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길가에 아저씨, 여중생 모르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며 한참을 걸어 터미널 도착, 마음을 놓고 서울로 돌아온다.

눈속에 푸른 하늘을 담고서. 마음의 요동침을 절실히 느끼며, 무엇에 쫓겼는지 허겁지겁한 모습에 스스로 웃으며 말이다. 길을 떠날 땐 차라리 시계마저 벗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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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소녀 - 소설로 읽는 사랑철학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이정순 옮김 / 현암사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15세된 게오르그라는 소년이 11년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마치 대화하듯 써내려간 글이다. 아버지의 편지는 액자소설 형식으로 들어가 있고, 그것에 대한 감정, 느낌 등을 아들인 게오르그가 덧붙여 써내려가는 글은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다. 사는게 우울하다거나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사람들일지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삶과 사랑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볼 것 같다. 눈물을 펑펑 흘리는 감동보다는 눈시울이 잠깐 젖는 잔잔함, 폭소보다는 입가에 얇은 미소를 띠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

아버지의 편지는 당신이 20대 초반이었을적, 운명이라 여기게된 오렌지 소녀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전차 안에서 마주친 오렌지를 가득 담은 종이봉투를 들고 있는 소녀. 눈과 눈이 마주쳤을 때 이미 아버지는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한채 헤어진 그. 다시 그 소녀를 만나기 위해 갖은 추측과 상상을 해대기 시작한다. 오렌지를 그렇게 가득히 산 것은 극지방을 여행하기 위한 비상식량일것이라거나, 대가족에게 쥬스를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라거나 등등. 그리고 다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전차를 연신 타보기도 하고, 오렌지를 그렇게 살만한 곳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이 자주 가는 카페에서 마주친 그녀. 이번에도 그 만남은 짧은 한마디만을 나눈채 끝난다. 아, 그리고 또 얼마나 수많은 상상 속에서 행복하면서도 괴로운 재회를 기다리던가!

오렌지 소녀에 대한 정체를 여기서 밝힐 필요는 없을듯하다. 다만 운명이라고 생각되었던 만남들이 사실은 서로가 서로를 애타게 찾아헤맸기 때문에 가능했다라는 것에 어떤 거룩함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자식에게 남겨주고자 했던 것들을 통해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삶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갖게 만든다.

자연이 기적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거라. 세계가 동화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란 말이다. 그걸 꿰뚫어보지 못하는 사람은 동화가 끝날 무렵에 가서야 겨우 알게 될지도 모르지.(161쪽)

우리는 누구도 알지못하는 어떤 커다란 동화속에 함께 살고 있는 거라고. 우리는 기원을 알 수 없는 어떤 세계에서 춤추고 놀이하며 수다떨고 웃으며 살아간다고, 이 춤과 이 놀이는 삶의 음악이라고 너에게 얘기해주었단다. 인간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그 음악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172쪽)

허블 망원경을 통해 우주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알게되는 과학적 지식들이 신화적 세상을 망가뜨릴 수는 없다.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지식으로 세상을 분리하고 뜯어본다고 해서 자연의 그 신비함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과학자의 눈 보다는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풍부한 감성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아들에게 바랬다. 비록, 이별이라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얼마나 신비로우며 살만한 곳인가를 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서 차분히 전한다. 아버지는 이별도 고통도 없이 그저 영원한 존재로 남을 것인지, 이별을 기약해야 하지만 사랑을 할 수 있는 한정된 삶을 살 것인지의 선택에서 후자를 선택한 것이 행복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아들에게도 선택해보라고 한다.

게오르그는 아버지의 편지를 읽고나서 한츰 성숙해진다. 새아버지에 대해 더욱 애정을 갖고, 어머니를 보다 온전히 이해하고, 짝사랑했던 바이올린 소녀에게 고백할 것임을...

청소년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메마른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는, 아름다운 사랑과 삶의 철학이 담긴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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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2005-04-26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서 하루살이님이 퍼올리신 글들이 마음에 많이 와닿습니다. 물론 하루살이님의 글도.. 그래서 추천 한방 했답니다. 흐흐~

하루살이 2005-04-2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은 못되더라도 시인의 눈은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icaru 2005-04-2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별도 고통도 없이 그저 영원한 존재로 남을 것인지, 이별을 기약해야 하지만 사랑을 할 수 있는 한정된 삶을 살 것인지의 선택에서 후자를 선택한 것이 행복했음을 고백한다. ...

눈물을 펑펑 흘리는 감동보다는 눈시울이 잠깐 젖는 잔잔함, 폭소보다는 입가에 얇은 미소를 띠게 만드는 그런 책이, 더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이거 아닙니까... ! 별 다섯이라... 유심히 읽다가 갑니다 ^^

하루살이 2005-04-28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뜻하지 않게 발견하는 보물가운데 하나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