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도비치는 병이 있는 사람들부터 의치, 안경, 지팡이를 사용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재생산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집단적으로 이런 형질이 없는 배우자를 선택하여 더 이상 해당 형질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인간의 가치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P104

아주 오래전 영화 <스피시즈>에는 외계인과 인간의 혼혈인 '씰(나타샤 헨스트리지)' 이 나온다. 그녀는 급속한 성장 속도를 가지고 있고, 그녀의 존재에 위협을 느낀 관련 인간들이 그녀를 제거하려고 하지만 그녀는 이미 너무 힘이 세져버려서 연구실을 탈출한다. 급속하게 성인 여성이 된 씰은 임신을 하고 싶어하는데 뛰어난 미모와 몸매를 가지고 있던 터라 그녀와 섹스를 하고 싶은 남자들은 줄을 서있었고 그녀는 노력 없이도 남자를 유혹해 섹스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남자들과 섹스를 하려다가도 섹스 직전 거부하는데, 그건 상대 남자들에게서 무언가 '문제'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질병이라든가 유전적으로 좋지 않은 것들. 그녀는 그런 남자들과의 섹스를 거부하고 문제 없는 유전자를 가진 남자를 찾아 임신을 하려고 한다.



하도 오래전에 봐서 그녀가 남자들로부터 문제로 인식했던 것들이 뭐였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아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데 어떤 OTT 에서도 하지를 않네. 너무 궁금한데 말이다. 왜 그 남자들을 거부하고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나는 그 당시에 씰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게 부러웠다. 그러니까 상대의 건강이나 유전적 문제를 미리 알 수 있다는 것, 혹은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그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더 나은 유전자를 가진 남자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저런 능력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나도 문제없는 파트너를 만나 문제없는 우수한 아이를 낳을 수 있지 않겠는가.
'클레어 혼'의 『재생산 유토피아』는 인공자궁과 체외수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공자궁에 대한 임상시험이 지금 승인된다면, 이 자궁 안에 들어갈 환자는 아기를 기다리다 조산을 겪고 연구에 참여하기로 동의한 부모들의 아기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임신중지를 원하던 사람에게서 적출한 태아를 몰래 기르는 연구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만약 굿린의 연구가 성공했다면, 살아남은 실험대상은 과연 누가 책임지게 되었을지 생각해 보자. 자기가 만든 실험 환경에서 태아를 길러낸 과학자가 직접 아기의 양부모가 되었을까? - P53
임신 중 알코올과 마약 사용을 인공자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현대사회의 평론가들이, 임신한 이 여성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인간이 아니라 본질부터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것도 똑같다. 결국 이들은 임신한 사람에게 충분한 지원 및 자원을 제공하지 않는 사회보다는, 임신한 사람의 몸이 문제라는 엉뚱한 결론에 이른다. 체외발생이 사람의 자궁보다 ‘더 안전할지 모른다는 발상에는 또 다른 의문이 숨어 있다. 무엇이 임신 중 ‘위험한‘ 행동인지 정확히 누가 결정하게 되는가? - P117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스피시즈>영화와 그 영화를 보았던 그 때의 나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그녀가 가진 능력-문제있는 남자를 가려내는-, 그리고 그걸 부러워하던 나를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언급된 숱한 우생학 관련 이야기들에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내가 하려는게 그게 아니었나 싶었던거다. 열등한 것은 걸러내려는 것. 그런데 그 열등하다는 것을 누가 결정하는가. 결국 약하다는 것을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는게 인간 아닌가.

'엘윈 브룩스 화이트'는 자신의 1952년 책 『Charlotte's Web』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이렇게 묻는다.
"You mean kill it? Just because it's smaller than the others?" -Charlotte's Web, White, EB, p.1
'펀'은 자신의 아버지가 작은 새끼돼지를 죽이려고 하자 '단지 다른 것들보다 작다는 이유로 죽이겠다는 거에요?" 라고 묻고, 이에 편의 아버지는 새끼돼지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살려준다. 1920년대초 우생학을 기초로 한 과학이 전 세계에 퍼졌다고 하니, 아마도 엘윈 브룩스 화이트는 그로부터 위협을 느꼈던게 아닐까. '단지 다른것들보다 작다는 이유로 죽이겠다는거야?'
다른것들보다 작다는 이유로 죽이겠다고 결정은 '누가'한것일까.

'잉그리드 폰 울하펜', '팀 테이트'의 책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에는 평생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외롭게 살다가 사실 자신이 레벤스브론 프로젝트의 아이었다는 걸 알게된 후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서는 한 여성의 삶이 그려져있다.
레벤스보른은 나치의 순수 아리아인 혈통 만들기 프로젝트였다. 순수 아리안인이 우수한 혈통이고 좋은 피이기 때문에 세상에 그런 아이들을 더 많이 만들어서 세상을 지배하려고 했던 것. 나치 친위대 백인 남성들에게 혼외 정사를 가지라고 권유하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을 정부가 힘껏 지원하겠다는 거다. 그러나 태어난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거나 우수함이 보이지 않을 경우 살해도 마다하지 않았다. 독일은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의 아이들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아, 주변국들로부터 아이들을 납치한다. 순수 아이라인으로 보이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급을 나누고 그중에서 가장 우수한 혈통으로 보이는 아이는 나치 친위대 부부에게 위탁하는 거다. 자, 키워라. 그러니 나중에 그 프로젝트를 알게된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레벤스보른의 아이였다는 걸 알게된 이 사람들은 그제야 자신이 누구인지 혹은 자신의 뿌리는 누구인지 찾으려해도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은 거다.
피의 순수성을 이유로, 한 종족이 다른 종족보다 우월하다는 위험한 생각은 19세기 말 수십 년 사이에 등장했다. 1920년대 초에는 이런 생각을 기초로 한 ‘과학‘이 서구 세계로 퍼졌다. 이른바 우생학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우량한 특질을 지닌 부류가 있으므로, 우수 인종이나 계급은 더 많이 번식하도록 장려하고, 열등한 부류의 번식은 통제함으로써 전반적인 인간의 유전형질을 개선하는 것이 당연히 옳다고 주장했다. 지금으로서는 충격적인 주장이지만 당시에는 허버트 조지 웰스"를 비롯한 저명한 영국 작가들과 현대 피임의 창시자 마리 스톱스, 미국 대통령 우드로윌슨과 시어도어 루스벨트까지이런 주장을 지지했다.
우생학 관련 협회들이 속속 생겨났는데 종종 부유한 미국 재단의 재정 지원을 받았다. 이들은 (1911년 카네기 재단의 후원을 받은 연구 논문의 표현에 따르자면) ‘결함 있는 생식질을 인류로부터 차단할 가장 실용적인 수단‘으로 불임수술과 안락사를 널리 장려했다. -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잉그리드 폰 울하벤&팀 테이트, P108
한 종족이 다른 종족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과연 '누가' 판단하는가. 그건 누구의 생각인가.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의 책 『에코페미니즘』에서도 우생학을 언급한다. 한 종족이 다른 종족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그 그리고 그에 따른 판단은, 확실한 건 학살당한 사람들이 결정한 건 아니다. 다른 것들보다 작기 때문에 죽어야한다는 것을 새끼돼지 '윌버'가 결정한게 아닌것처럼.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1883년 '우생학'(eugenics)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우생학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골턴은 다윈과 맬서스의 사상을 결합하여 인종의 질적 저하를 막기 위해 '선택적 육종'을 하자고 주장했다. '적자'는 더 많이 낳아야 하고 '부적자'는 덜 낳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합과 부적합은 영국 중산층의 가치기준으로 판정되었다. 골턴의 관심은 사람들의 유전적 자질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사회연구에서 통계를 장려했으며 유전적 자질을 측정하는 등급체계도 도입했다. 우생학에 통계적 방법을 적용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이론에 '과학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수학적 과정과 통계야말로 과학적 객관성의 증거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골턴은 흑인들에게 지적인 면에서 백인들보다 두 단계 낮은 등급을 매겼다.
(중략)
우생학자들의 목표는 사람들의 인종적 자질을 일람표로 만들어서 우수한 인종의 번식을 늘리고 열등한 인종의 번식은 줄이자는 것이었다. -『에코페미니즘』, 마리아 미즈&반다나 시바, P.309-310
문제는 이것이 '나에게 닥친 일'일때 일어나는 것 같다.
우생학은 옳지 못하다, 고 생각하고 있다가도 그런데 만약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이게 현실이 되고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그때의 나는?
클레어 혼도 체외수정과 인공자궁에 접근하는 것의 시선들과 그에 따른 문제점들을 이야기하지만, 그런데 만약 태어날 내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닥친 일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라고 고민한다. 내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행동을 내가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것. 우생학이 1800년대 후반에 나타나고 1920년대에 과학으로도 발전하여 확장된 것은 아마도 인간들 내면에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면 사라져야하는것이 마땅한데 그러지 않은 것은, 막상 '나의 사정'이 되면 나 역시 휩쓸려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살면서 '내가 진짜 그런 사람 아닌데' 라고 말하면서 저지른 일들을 저마다 갖고 있지 않나.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어' 라면서 저지른 일들이 있지 않나.
덧붙이자면,
그런데 인공자궁이라는 주제에 대해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임신한 사람들의 건강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해를 끼치는 역행적 사용을 제안하는 보수적인 생명윤리학자와 미디어 비평가들인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일부 변호사와 법학자들은 이 기술이 개발되면 필연적으로 재생산권을 퇴보시킬 것이라고 수십 년간 주장해왔다.
1970년대 후반 미국의 한 변호사는 인공자궁이 등장하면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에게서 태아를 추출하여 체외발생 방식으로 계속해서 키우도록 법으로 강제하면 될 것이라고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인공자궁이 등장하면, 임신중지를 하려는 사람에게서 강제로 태아를 적출하고 기계를 통해 세상에 나오도록 하면 된다는 생각인데, 그야말로 잔인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반페미니즘적 발상이다. - P25
위 인용문에서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에게서 태아를 추출'하는 내용이 담긴 책을 내가 알고 있다. 읽어보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

클레어 혼이 던진 질문들을 마주하면서 읽고 있다.
좋은 책이다.
부분 인공자궁과 체외발생은 현실 세계에 함의를 지니는 사회적·윤리적 질문을 제기한다. 이런 기술을 개발하려면 초극소 미숙아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부모들에게 부분 인공자궁 치료에 동의를 구할 때 필요한 윤리적 고려사항은 무엇일까? 대단히 불공평하게도 미숙아 출산율, 그리고 산모 질병률과 사망률 수치로 볼 때 예방 가능한 영아 및 산모 사망의 90퍼센트 이상은 남반구의 저개발국에서 발생한다. 현재 개발 중인 부분 인공자궁은 죽음을 앞둔 수많은 미숙아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에 신생아 치료의 판도를 바꿀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기술은 매우 고가인 데다 상당한 기반시설을 갖추어야만 안전하게 사용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이 치료에는 어떤 아기들이 접근할 수 있을까? 이 기술이 누군가에게는 더 좋은 치료를 받게 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못해 기존의 건강 불평등을 악화시킬 위험은 없을까? - P23
미국의 재생산권 전경을 오랫동안 지켜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수십 년 동안 임신중지에 대한 권리와 접근성이 모두 침해당한 끝에 뒤따른 결과였다. 대법원의 최근 판결은 방심하거나 진보의 방향이 언제나 앞으로 향할 것이라고 가정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냉혹하게 일깨워준다. 퇴행적인 정치인들은 신기술을 이용하여 인권을 침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누구도 재생산에 관련된 자기 삶을 통제하려 한다는 이유로 범죄자가 되지 않는 세상 대신, 임신중지가 보편적으로 금지되고 사람들이 자기 의지에 반해 유전적 자녀를 임신하도록 강요받는 세상이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얼마나 암울할까? - P27
아주 극단적인 사례지만, 1900년대 초 의료계의 다른 사람들도 일찍 태어나거나 힘들게 태어난 아기들은 본래부터 튼튼하게 태어난 아이들만큼 가치 있는 생명이 아니라는 견해를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다. 아기를 인큐베이터에 넣어 전시하는 일이 부수적인 여흥거리가 됐다며 몇몇 언론에서도 비판기사를 냈다. 하지만 이 아기들을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교대근무를 하며 그들의 수 많은 동료와 다른 행보를 걷고 있었다. - P42
인공자궁에 대한 임상시험이 지금 승인된다면, 이 자궁 안에들어갈 환자는 아기를 기다리다 조산을 겪고 연구에 참여하기로동의한 부모들의 아기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임신중지를 원하던 사람에게서 적출한 태아를 몰래 기르는 연구와는 전혀 다른이야기가 된다. 만약 굿린의 연구가 성공했다면, 살아남은 실험대상은 과연 누가 책임지게 되었을지 생각해 보자. 자기가 만든 실험 환경에서 태아를 길러낸 과학자가 직접 아기의 양부모가 되었을까? - P53
코로나19 대유행에 대한 영국의 대응을 보면 정부 최고위층에서 어떻게 일부 생명에, 다른 생명과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중증으로 진행하여 사망에 이르는 사람들은 ‘노인‘과 ‘기저 질환이 있는 사람들뿐이므로 더 이상 규제가 필요하지 않다고 되풀이하는 주장은 현대문화에 스며든 우생학적 발상의 한 예이다. 우생학은 국가, 국가행위자들 또는 제도적으로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이 열등하다고 간주되는 사람들을 죽이려 하거나 죽음을 용인하고, 재생산을 제한하려는 모든 관행을 통칭한다. 동일한 주체들이 체계적으로 우월하다고 분류된 사람들의 재생산을 권장 또는 장려하는 관행도 여기에 포함된다 - P86
말 그대로 ‘좋은 창조‘를 의미하는 ‘우생학‘의 흔적은 인종차별, 능력주의, 노인 차별, 말살 정책이 대표적이다. 우생학이 지금도 국가와 시대를 초월하여 특정 집단을 겨냥해서 잔혹성을 드러내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이다. 홀로코스트, 흑인과 원주민에게 자행된 미국과 캐나다의 조직적인 강제불임 수술, 세계 곳곳에 만연했던 장애인 불임 수술 및 국가 승인 하의 살인,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기로 결정한 국가에서 발생한 수많은 불필요한 죽음의 동력도 바로 이 우생학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인공자궁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체외임신을 구현하는 기술은 임신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 수단이될 수 있다. 6장에서 다루겠지만 바람직한 환경에서라면, 이 기술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공동체적 접근을 더 촉진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다. 하지만 인공자궁 기술은 사람들의 재생산 자격을 통제하는 위험한 도구가 될 가능성도 있다. - P87
영국은 2020년과 2021년에 ‘기저 질환 상태‘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감수성‘에 관련된 특성들을 참고하여 장애인, 노인, 면역 저하자, 그리고 사회경제적 취약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 남아시아인, 흑인들과 가장 밀접하게 접촉한 노동자들이 사망하게 놔두는 우생학적 프로젝트를 단행했는데, 이 경우가 대표적이다. 영국 정부는 이런 집단들이 모든 면에서 질병과 사망에 생물학적으로 취약(‘부적합‘)하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보다 많은 국민들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할 책임을 스스로 저버리고 경제적으로 아주 부유한 사람들을 우선순위로 지키려 했다. 19세기 우생학자들이 이용한 동일한 논리의 확장판이었던 셈이다. 안젤라 사이니Angela Saini가 자신의 책 <우월성superior》에 썼듯이, 식민주의와 노예제도는 기꺼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힘을 가지려는 국가의 의지로 추진된 일이었음에도, 이런 만행을 정당화할 생물학적 근거를 1880년대 과학자들이 찾아 다녔다. - P93
우생학자들은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피부색, 사는 지역, 사회계층에 따라 더 인간답거나 덜 인간다운 집단으로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대영 제국의 야만성을 해명하려 했다. - P93
루도비치는 병이 있는 사람들부터 의치, 안경, 지팡이를 사용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재생산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집단적으로 이런 형질이 없는 배우자를 선택하여 더 이상 해당 형질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인간의 가치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우생학 입법이 불필요해지고 사람들의 취향이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다. 반면 몸을 함부로 다루는 관행이 건재한다면 우생학 입법은 항상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훗날 도라 러셀이 비판했듯이 루도비치는 차이를 폭력적으로 근절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사회가 유토피아를 이루고, 페미니즘과 모두를 위한 육아를 지지하는 사회는 싸움과 공포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불쾌감을 주고 혐오스러운 의견을 고수했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이고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 P104
보수적인 생명윤리학자 크리스토퍼 카초르Christopher Kaczor는 "인공자궁은 자동차에 부딪히지도, 미끄러져 넘어지지도, 폭행당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부분 체외발생이 정상 임신보다 덜 위험해질 것"이라고 다소 냉정한 글을 남겼다." 폭력으로부터 임신한 사람을 보호해줄 자원을 제공하는 것보다, 그저 이들의 몸에서 태아를 적출하여 ‘더 안전한‘ 장소에서 자라는 편이 더 낫다는 발상은 지극히 충격적이다. 이런 주장은 태어난 어린이와 동등한 권리를 태아에게 부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임신한 사람이 임신에 최적화되어야 할 ‘환경‘이자 인큐베이터에 불과하다고 암시하면서 이들의 권리를 침해한다. 그리고 이런 각각의 주장들은 인공자궁을 우생학의 실현 도구로 활용하려는 과거의 잔재를 이어간다. - P115
임신 중 알코올과 마약 사용을 인공자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현대사회의 평론가들이, 임신한 이 여성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인간이 아니라 본질부터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것도 똑같다. 결국 이들은 임신한 사람에게 충분한 지원 및 자원을 제공하지 않는 사회보다는, 임신한 사람의 몸이 문제라는 엉뚱한 결론에 이른다. 체외발생이 사람의 자궁보다 ‘더 안전할지 모른다는 발상에는 또 다른 의문이 숨어 있다. 무엇이 임신 중 ‘위험한‘행동인지 정확히 누가 결정하게 되는가?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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