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블랑카 님이 알려주신 링크의 영상을 보았다.
2편까지 있길래 다 보았는데, 그러고보면 진짜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거야.. 유튜브 안보는 내가 이걸 찾아서 보고 있다니, 세상에. 이런거 있다는 거 처음 알고 유해진이라서 봤네. 아니, 그것도 그렇지, 내가 유해진에 관심 생겨서 그의 영상을 볼 줄 누가 어떻게 짐작이나 했겠는가.. 하여간 달리기 생활을 시작한 후에 내 인생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로 인해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e 는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며 나에게 달리기를 알게 해주어 고맙다고 선물도 보내줬더랬다. 그리고 요즘 e와 나는 함께 하는 시간동안에는 90프로 이상 달리기 얘기를 한다. 그리고 달리기 관련 영상을 본 얘기를 하고. 아,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다른건데,
영상속에서 유해진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유해진이 나랑 참 비슷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신조라고 해야 하나 인생에 대한 생각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나랑 비슷한 것 같은 거다. 나중에 병들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지니 지금 하라고, 지금 시작하라고 하면서 just do it 이 정말 좋은 말이라고 그는 말하는데, 아침에 달리고 등산도 하고 여행도 좋아하고 그는 자신의 몸으로 경험하는 걸 즐기는 것 같은거다. 여행가서도 여기저기 뭔가 관광하러 다니는게 아니라 한 도시 안에 머물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루틴을 반복하는 걸 그는 즐겨한다고 했다. 작품이 끝나면 훌쩍 스위스로 가서 그곳에서 달리고 스키를 타고 수영을 하고 술을 마시고 그렇게 얼마간 지내다 온다고. 그런 한편, 그러나 자신이 살고 싶은 곳은 한국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나고 자라 여기의 생활이 몸에 다 익었는데 다른데에서 어떻게 사냐, 다른 데에 다녀오는 삶을 살고싶다고 하는거다. 완전 나랑 똑같음.. 아, 그런데 내가 정말 똑같다고 느끼는 건, 그는 자신이 언제나 한템포 늦은 사람이라고 말하는데에 있었다.
그는 딱히 비혼주의도 아니고 결혼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결혼을 하기 싫어 안한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보통의 사람들 사이클보다 한템포씩 늦어지고 있고 그러다보니 놓치게 됐다는 거다. 데뷔를 하는 것도 좀 먹고살만해진 것도 다 남들보다 한템포 늦었다는 거, 뭐든 느렸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됐다고. 그렇다고 지금의 삶을 싫어하는게 아니라 그는 충분히 지금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몇 번이나 글에서 언급했지만, 나는 남들보다 느렸다. 나는 그걸 늦되다고 포현했더랬다. 나는 첫 연애도 보통 또래보다 늦었고 그래서 첫 이별도 늦었다. 첫 이별 후에 너무 아파서 '와 다른 사람들은 이걸 다 어떻게 견뎌낸거지?' 생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니, 그런데 고등학교때도 공일오비의 <떠나간 후에> 노래 들으면서 그 처절함에 공감했는데, 이별도 안해보고 그거 어케 공감했지???????????????? 첫 여행도 늦었고 첫 요가도 늦었고 첫 달리기도 늦었고.. 그래서 깨닫는 것도 늦었다. 페미니즘의 필요성도 늦게 알았고 그래서 공부도 늦었다. 나는 나보다 어린데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로부터도 많이 배웠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 걸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빨리 깨달을까 하는 생각을 수차례 했다. 나이가 많다고 더 똑똑한 건 정말 아니다. 나이가 많다고 더 지혜로운 것도 분명 아니고. 나는 많은 것들을 나보다 젊은 친구들로부터 알고 배우고 깨닫곤 했다. 나같은 늦된 사람은 그래서 계속 읽고 보고 해야되는 것 같다. 하여간 참 늦된 사람이다, 내가.
나는 이런 나의 삶의 방식을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똑같이 요구하게 되기도 한다.
일전에 남동생네 집에 가면서 이탈리아 갔을 때 사온 피스타치오 크림을 가져갔더랬다. 남동생도 맛보고 맛있다고 했는데, 내가 그걸 치아바타에 발라 네살 조카에게 주자 네살 조카는 '난 이거 싫어해' 라고 하는거다.
"조카야, 조카 이거 안먹어봤잖아. 그치?"
"응. 안먹어."
"그러면 일단 한 번만 먹어보자. 먹어보고 맛이 없으면, 그러면 먹지말자. 어때?"
"응"
조카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리고는 조심스레 내가 피스타치오크림 발라준 빵을 한 입 베어물었다. 그러더니 나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괜찮아.먹을게."
하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귀요미(뜬금 조카자랑)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래서 뿌듯하게 나는 부엌으로 갔는데, 잠시후에 조카가 큰 소리로 이러는거다.
"고모! 또 발라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네 살 조카는 확실히 나랑 다른 성격의 사람인 것 같기는 하다. 아직 어린데도 '그건 위험하니까 하면 안돼'라고 하면 정말 안한다! 그래서 아, 이 아이는 굳이 경험하지 않고도 피해갈 거 피해갈 수 있겠구나,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이겠구나 싶은거다. 나와는 달리.....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골드문트는 세상 돌아다니고 사람 여럿 만나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면서 인생이란 것이 무엇인가 깨닫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자신이 어릴 때 떠나왔던 수도원에 다시 방문했을 때, 거기에는 어디에도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던 나르치스가 역시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때 그 책을 읽고 내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나르치스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생각했었는데, 지금 곰곰 되짚어보면 나는 골드문트 쪽이었던 것 같다. 어느게 더 좋다고 할 순 없겠지만, 굳이 경험으로 깨닫는 나는, 늦되다. 경험으로 깨닫는 사람이 반드시 늦된 것은 아닐 것이다. 더 빠른 경험과 더 빠른 깨달음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경우엔, 늦었고 느렸다. 그래서 유해진의 '한 템포씩 늦었다'는 말은, 내게로 와 닿았다. 그래, 나도 늦었지.
언젠가부터 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면 내 자신에게 수차레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는가' 를 묻고 그래서 후회하지 않을 거야, 라는 답을 얻고 행동에 옮기려고 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때 그런 결정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 때 이런 선택을 해야하지 않았을까, 여전히 어떤 지점들에 대해 후회가 남는다.
아쉬움도 남는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그리고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
이를테면 나는 뉴욕이 너무 좋아서 세 번이나 갔었고, 당연히 그때마다 센트럴 파크를 갔었다. 그런데 한 번도 센트럴 파크에서 달려본 적이 없어. 달리기를 시작한지 6개월차인 지금, 아아, 센트럴파크를 세 번 이나 갔는데 한 번도 달려보지 않았다니, 아아 너무나 아쉽다.. 하게된 것. 그러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다시 가자. 다시 가면 되잖아. 뛰러 가자. 이번에 가면 센트럴파크를 뛰자!
어휴 갈 데도 많아가지고 돈도 계속 벌어야 되고 건강해야 돼...
나보다 빨리 먼저 알고 먼저 깨닫는 사람들에 대해 언제나 부럽고 존경의 마음이 든다. 그럴때면 왜이리 나는 늦된가..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뭐, 어쩌겠나. 이게 나인걸. 하여간 열심히 돈벌고 건강하게 살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