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이 영화 보려고 드디어 아마존 프라임 가입했네. 해야지 해볼까 하면서 계속 미루다가 로맨스 영화 한 편이 나를 행동으로 이끈다. 아무튼 어제 이 영화 다 봤다. 오랜만에 연애세포 다 깨어나게 만드는 영화였다.
'솔렌(앤 해서웨이)'는 젊은 시절 연애하고 아이를 낳아 십대의 딸을 둔 싱글맘이다. 아이의 아빠가 아이를 위해 코첼라 공연 콘서트를 예매해뒀고 아이를 데려간다 해놓고서는 일이 갑자기 생겼다며 네가 데려가, 하는 바람에 갑자기 솔렌은 딸과 딸의 친구들을 데리고 코첼라로 가 젊은 밴드들의 공연과 팬싸인회에 참여하게 된다. 딸을 기다리며 잠깐 화장실을 가려던 그녀는 브이아이피 화장실은 저쪽에 있다고 해서 나갔다가, '응 여기가 화장실인가보구나' 하고 많고 많은 트레일러들 중 한 곳에 들어가는데 화장실을 이미 누가 사용중이고 기다리고 있노라니 그곳에서 젊고 잘생긴 남자가 나온다. 솔렌은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오다가 여전히 화장실 밖에 있는 그 남자를 보게 되고 '남들 오줌싸는 소리 듣는 취미 있어요?' 라며 그를 비난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여기는 그가 사용하는 그 개인의 트레일러였던 것. 하아-
일단 여기서부터 설정이 넘나 엉망진창이다. 트레일러 식의 공중화장실이 있는거야 뭐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딱 들어가면 화장실 공간이 아닌데, 아마도 브이아이피 용이라 소파도 있고 집처럼 꾸며좠다고 생각한걸까. 여하튼 넘나 엉망진창인데, 하여간 그런데 그 남자가 알고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이밴드 '오거스트 문'의 보컬 '헤이스(니콜라스 갈리친)' 였던거다. 솔렌은 이 남자의 이름을 듣고나서야 '앗 오거스트 문이니?' 할정도로 멤버에게 딱히 관심은 없었는데 딸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됐던 것. 솔렌도 그랬지만 헤이스는 이 첫 만남에서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된다. 자신이 유명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은 채 자신을 마주하는 사람을 처음 본 것. 나를 이렇게 대하는 여자는 니가 처음이야..
여차저차 그녀의 이름과 그녀가 하는 일을 알게된 헤이스는 그녀가 관장으로 일하는 회랑을 찾아가서는 '나 기억하죠?' 하고는 런던에 큰 집이 있는데 거기에 예술 작품으로 채우고 싶다며 그 회랑에 있는 도자기며 그림이며 하는 것들을 전부 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 진짜 내가 보면서도 웬만한 사람들이면 참지 못하고 껐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설정 유치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어. 애초에 트레일러 화장실에서 만난 것도 그렇지만, 세상에 누가 내 개인 트레일러에 아무리 실수로 들어왔어도 그렇게 화도 내지 않고 심지어 '나랑 좀 더 있다가요' 라고 하냐. 너무 첫눈에 반하면 그럴 수도 있나? 아무튼 그렇단말야? 그래서 그들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솔렌은 40살에 헤이스가 24살인 만큼 솔렌은 이 관계에 부담을 느껴서 '우린 나이차이가 너무나', '나는 네 엄마뻘이야' 라고 피하려고 초큼 시도를 해보지만, 그의 거침없는 손길 눈빛 .. 피할 수 음슴. 그는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해버린다.
마침 십대의 딸이 여름캠프 갔겠다 혼자가 된 솔렌은 헤이스가 뉴욕 호텔로 오라니까 뉴욕 호텔로 가가지고 뜨거운 밤을 보내고 '나 내일부터 유럽 투어인데 같이가요' 이래가지고 이 보이밴드의 전용기를 타고 함께 유럽을 다니면서 투어에 참여한다. 그가 공연할 때는 공연하는 그를 보고 그가 공연하지 않을 때는 그랑 섹스하고 또 섹스하고 계속 섹스하고 그러는데, 너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이런 문화 몰라서 그러는데, 그러니까 보이밴드 공연 다니고 그럴 때 같이 놀 여자들은 언제나 대동하는가봐요? 전용기 탔는데 이미 젊은 여자들 몇 명이 다른 멤버들이랑 즐거이 놀고 있었고, 그 여자들 대부분이 솔렌의 딸보다 겨우 두세살 많다는 걸 알게된 솔렌은 점점 의기소침해진다. 게다가 수영장에서 젊은 여자들은 다 비키니 입는데 솔렌은 비키니 입고 나설 자신도 없다. 도대체 왜 솔렌같은(앤 헤서웨이) 여자가 자신감 없는지, 좀 어리둥절할 뿐이고. 여하튼 거기서 솔렌의 나이가 너무 많아서 보이밴드와 그들의 친구들로부터 좀 무시를 당하고 솔렌은 아, 현실 깨닫고 세이 굳바이 하고 헤어지는데, 아니 그전에 함께 물고 빨고 하던게 사진에 찍혀가지고 세계가 난리가 난거에요. 하아-
아무튼 너무 뻥같은 설정인데, 나는 시계 얘기를 좀 하고 싶어서 이 긴 글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초반에 헤이스가 검색해서 솔렌의 회랑에 찾아가고 작품을 다 사고 더 많은 작품을 보기 위해 어느 창고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당연히 파파라치들이 따라붙고 그를 알아보는 팬들 때문에 이동이 불편해 솔렌의 차를 타고 간단 말야? 배가 고파서 밥을 먹어야 되는데 그가 너무 얼굴 알려진 사람이라 식당에 가는 것보다 솔렌의 집에서 샌드위치나 먹는게 좋겠다고 비어 있는 솔렌의 집을 간다. 거기서 그들은 첫키스를 하게 되는데, 솔렌의 한줄기 이성은 '안돼 안돼' 이래가지고 그를 보내고 헤이스는 당신을 또 만난고 싶어요, 이러지만 솔렌은 안돼 안돼.. 하면서 여튼 그에게 가라고 하는데, 그녀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그는 자신의 시계를 벗어 그녀의 집 안에 둔다.
그를 보낸 후에 솔렌은 그 시계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 뉴욕에 가서 시계를 돌려주려는데 '당신에게 더 잘어울려요' 하고는 헤이스가 받지 않는다. 유럽 투어 후에 그녀가 이별을 고하고서는 그 시계를 빼서 그의 방 안에 두고 간다.
나는 그 장면에서 되게 안타까웠다.
그 시계는 그냥 가져가지, 하고. 그건 시계가 고가의 아이템이라서가 아니다. 그것이 그의 물건이며 그것이 그를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인 것이다. 그 시계 가져가지. 그녀가 가져도 되는 물건인데, 애초에 그가 준건데, 지금 헤어져도 가끔 그 시계 들여다보며 간직해도 좋잖아, 하는 생각이 든거다. 이 시계는 그 뒤로도 자주 나오는데 그들이 재회하고 또다시 헤어질 때도 그 시계는 솔렌의 집에 놓인다.
문 앞에서 그가 양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습니다. 가기 전에 당신 것을 하나 놓고 가주면 좋겠어요."
그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싫어요."
"왜 싫습니까?"
그 손아귀에서 내 손을 잡아 뺐다.
"싫어요."
"작은 거 하나만."
그가 내게로 바짝 몸을 기울이자 풀린 셔츠 섶 사이로 쫙 갈라진 쇄골이 보였다. 희미한 콜롱 향이 풍겼다.
가방을 열고 책·봉투·열쇠들을 마구 헤치고 뒤져서 시커멓게 흑연 때가 묻은 오래된 녹색 지우개를 하나 찾아 그 손에다 휙 던지며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p.54-55)
'시리 허스트베트'의 책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에서는 '당신의 물건을 놓고 가주면 좋겠다'고 말하는 남자가 나온다.
위 인용에서의 상황은 사실 낭만적인 건 아니었고, 물건에 대해 말해달라는 요상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던 여자가 그를 피해 도망가려고 하자 뭔가 달라고 하는 그런 장면이다. 여자는 옛다 받아랏~ 하는 식으로 지우개를 던지고 나오는데, 이 상황은 다소 변태적이긴 했지만, 그런데 '네 물건을 하나 놓고 가주면 좋겠어'라는 마음 같은 거는 특별하거나 소중한 사람들을 향해 가끔 생겨나는 거 아닌가.
나는 헤이스의 시계가 솔렌에게 그런 것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였다면, 내가 솔렌이었다면, 나는 시계를 돌려주지 않았을 것 같다. 대신 이렇게는 말했을 것 같다.
"시계는 내가 가질게."
내가 자본주의에 찌들어 있어서, 돈을 너무 좋아해서, '후훗 이거 팔아야지 득템~' 하려는 걸로 보이겠지만, 진짜 아니다. 순수하게 나는 그 시계를 내내 간직할 것이었다. 내가 솔렌이라면, 내가 솔렌이었다면. 나는 그 시계를 솔렌의 나이 지금 마흔. 마흔 다섯, 쉰 여섯, 일흔넷이 되어도 그 시계를 간직했을 거라는 거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일흔둘에 새로운 남자를 만나 결혼했는데, 설사 일흔둘에 새로운 남자를 만나도 나는 나의 마흔에 정말 좋아했던, 그러나 기어코 헤어져야만 했던 남자를 기억하기 위한 시계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나랑 사랑에 빠지는 정도의 남자였다면, '시계는 내가 가질게'라는 나의 말에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솔렌이 아니고, 솔렌이 아니었으며, 솔렌이 아닐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앤 헤서웨이가 아니라는 거다.
이 영화에서 몰입이 가장 힘든 부분은, 인기 가수와 사랑에 빠지는 마흔의 싱글맘 여자가 앤 해서웨이라는 사실이다. 앤 헤서웨이가 누군가, 전 세계인이 다 알 정도의 아름다운 배우가 아닌가. 이건 좀 반칙 아니냐.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좀 더 평범한 여자여야 하는데,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여자 아니냔 말이지. 만약 내가 똑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헤이스의 트레일러에 실수로 들어가서 헤이스를 마주치고 '뭐야 당신 남의 오줌 소리 듣는 취미 있어요?' 이러고 소리 지르면 아마도 헤이스는 '당신 뭐야, 왜 남의 공간 들어와서 행패야!' 하고 경찰을 부르지 않았을까. 혹여 내가 일하는 회랑에 우연히라도 방문해서 그림을 보고 싶었고, 상황이 그렇게 되어 헤이스랑 단둘이 작품 있는 창고에 가게 됐다? 우린 지극히 업무적인 얘기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만약에 말야, 아주아주 만약에, 헤이스가 나랑 사랑에 빠졌다? 그러면 나도 아마 내적 갈등 심하게 일으키며 '우리는 안돼' 했겠지만, 그런데 안된다는 나한테 연락해서 '나 며칠 뒤 뉴욕에서 어느 호텔에 머물거야' 라고 했다면, 아, 그런데 나는 거기는 갔을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뉴욕 호텔 개꿀 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시계는 내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흔의 솔렌, 젊고 잘생기고 부유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좋은 호텔에 묵고 전용기 타고 막 여기 저기로 놀러 다니고.. ㅋ ㅑ ~ 인생의 어느 시점에 어떤 사람들은 꿀빠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것 같다. 누구나의 인생에 이런 시간쯤은 있어도 좋지 않겠습니까.
이 영화 볼 사람 알라딘에 나랑 단발머리 님밖에 없는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니까 스포일러 좀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단발머리 님은 봤으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하튼 그런데 이들은 헤어짐이 너무 힘들어서 다시 사귀기로 하고 공개 연애 했다가 세상의 몰매를 혹독하게 맞고 솔렌의 딸 역시도 힘든 시간을 보낸다. 딸에게 너무 미안한 솔렌은 다시 이별을 말한다. 그때 헤이스는 솔렌을 정말 사랑하면서 그녀의 말을 듣고 '그러면 5년 후에 만나자'고 한다. 그때면 솔렌의 딸도 독립해서 다른 곳에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 그 때는 시작해봐도 좋지 않겠냐는 것. 그러자 솔렌은 '5년은 길어, 그 사이에 네가 행복할 길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 나도 그럴게' 라고 말한다. ㅋ ㅑ ~ 소주 한 잔 마셔야 되는 대사 아니냐. ㅋ ㅑ ~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여보세요 왜 말 못하니~~~ (지금 거신 번호는 결번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제이미 벨' 주연의 영화 <할람 포>에서도 어린 남자가 나이 든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 때 그 여자도 그에게 이별을 말하면서 네가 더 크면 오라고 말한다. '5년 후에, 그 때 와' 라고. 그때 할람 포는 그녀에게 이렇게 묻는다. "5년후에도 여전히 예쁠건가요?" 라고.
5년이란 무엇인가.
5년이란 어떤 시간인가.
소년은 청년이 되는 시간이고 청년은 어른이 되는 시간이다.
그런데 중년은.... 5년 넘나 소중하다.......
그렇지만, 기다리려고 마음 먹으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지. 나는 기다립니다. 충실하게 내 시간을 보내다보면, 기다려집니다, 잘.
<the idea of you> 는 원작 소설이 팬픽이라고 한다. 아 몰랐네? 아무튼 샀다. 나에게로 오고 있다. 내가 읽을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의 스토리는 지극히 전형적인데, 그러니까 '나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 네가 처음이야!' 도 그렇고 '여기 있는 작품 몽땅 살게요!' 도 그렇고.. 좀.. 그래? ㅋㅋㅋ 그리고 이 보이밴드 노래 부르는 거 보니까 음, 왜 전세계적으로 BTS 가 인기 있는지 알겠고 뭐 그렇다. ㅋㅋ
이 보이밴드 왜 인기있는지 나는 잘 모르게써.. 그리고 주인공 헤이스 넘나 잘생긴 남자로 나오는데, 흠, 나는 잘생김에 동의가 잘 안된다. 살짝 킹콩 같아서.. 그렇지만 엄청 재미있게 봤고 무엇보다 나는 이야기의 마지막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즐거웠다. 모름지기 로맨스 영화는 역시 전체관람가보다는 살짝 미성년자 관람불가가 더 재미있다는 확실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16세이상 관람가라고 아마존에 떴더라.
무엇보다 나는 세상이 뭐라든 자기 사랑 밀어붙이는 적극적 대시남 헤이스가 참 마음에 들었다. 적극적으로 구애하다가도 사랑하는 여자가 우린 이쯤에서 그만둬야 할 것 같아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서는 남자, 응 그런데 5년후엔 괜찮지 않을까, 하며 충실하게 자기 일 하고 그 5년을 살아내는 남자, 그리고 5년이 지난 후에 다시 그 앞에 나타나주는 남자라니. 증맬루 오랜만에 온 몸의 연애감각을 깨우는 영화였다. (그래도 나에게 일순위는 조슈아)
행복해라 헤이스, 그리고 솔렌.
각자 일 충실히 하면서 사랑하고 살아.
앗. 잭 리처 드라마가 아마존 아니었나?????
어쨌든 시계는 내가 갖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