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는 딱히 머리를 쓰고 싶지도 않고 머리가 써지지도 않아서 주로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 보려고 하는데(그래봤자 겁나 생각하면서 보는듯 -.-), 사실 인기있고 재미있는 드라마라고 소문이 나도 나는 잘 보게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글로리 라든가 오징어게임이라든가 하는 드라마들 나는 안봤어. 게다가 내가 이걸 한 번 볼까, 하고 재미있게 시작하는 드라마라도 완결까지를 못본다. 이건 도대체 왜그런지 모르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에서 몇 번 사이다 씬을 보고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를 보게 됐다. 첫설정부터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보다보니 이게 왜 인기가 많은지 알겠더라. 보통 극이 진행되는 내내 주인공은 고통을 당하고 빡치다가 마지막에 짠- 하고 해결되는 식인데, 이 드라마는 수시로 사이다를 날려주는거다. 응 우리의 주인공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지! 하고 수시로 복수하고 응징하는 장면이 나와서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거겠구나 싶었다. 실제로 나도 그래서 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극의 중반이 되기 전인지 중반이 된건지, 여주인공과 그를 무조건 도와주는 착한 남자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키스를 한 그 순간부터, 나는 이 드라마에 대한 흥미와 재미가 확 떨어져버렸다. 하아- 갑자기, 순식간에, 느닷없이,
아 재미없어
이렇게 된거다. 뒷이야기가 궁금하지도 않아.. 왜죠? 나는 뭐가 문제죠? 하여간 그래서 이 드라마도 완결을 못한 채로 버려버렸는데, 이 드라마를 완결까지 본 e 가 내게 '그 뒤로도 복수하고 응징하는 에피소드들 나온다'고 하는데도 전혀 흥미가 없는거다. 저는 뭐가 문제죠? 왜 재미가 없죠?
나는 유튜브도 구독하는게 없고 영상도 잘 보질 않는데, 퇴근길에 드라마도 안보고 영화도 보기 싫고 유튜브나 볼까 해서 인기 많은 무슨 유튜브를 재생시켜 보는데 와
재미없어
또 이렇게 되는거다. 그래서 꺼버리고서는 아 재미없다, 나는 왜 이런거 다 재미없지, 하면서 문득,
책이 최고다! 책이 제일 재미었어! 책은 중간에 포기하는게 아니라 읽을수록 탄력이 붙는다. 책이 최고다, 책이 제일 재미있어! 그 어떤 영상도 책을 이길 순 없다!! 막 이렇게 됏단 말이다. 역시 세상에 책만큼 재미있는 건 없는 것 같아..
그리고 존 쿳시의 [폴란드인]을 읽었던 거다.
역시 책이 최고다.. 사람들아, 책이 정말 재미있다. 최고다!!
내가 그동안 드라마를 왜 잘 못봤는지, 보더라도 왜 끝까지 못봤는지 이제 나는 그 이유를 안다.
그건 재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책보다 재미가 없어!! 나는 이미 영상보다 더 재미있는게 있다는 걸 아는 몸인 것이다!!
하여간 그렇게 중단한 드라마 얘기 하다가 중단한 영화 얘기를 해보자면, 넷플릭스의 <라이프 리스트> 이다.

주인공 '알렉스(소피아 카슨)'은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자신앞으로 남긴 유산이 없어 당황한다. 오빠들은 '엄마가 너를 제일 좋아해'라고 말하고 알렉스 역시 엄마랑 다정했는데 왜 오빠들한테는 회사도 남기고 그림도 남기고 다 남겨놓고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남겼죠.. 유언장 집행하던 변호사 '브래드(카일 앨런)'은 알렉스에게 엄마가 남긴 건 따로 있다면서 DVD 를 준다. 영상속에서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 알렉스에게 부탁을 한다. 알렉스가 어릴 적에 작성했던 라이프 리스트를 죄다 실행해보라는거다. 하나씩 실행하면 그 때마다 dvd 를 하나씩 변호사로부터 받을 것이고, 그걸 다 실행하고 나면 그 뒤엔 계획이 있다는 거였다. 사랑하는 막내딸이 아직 인생에서 헤매이는 것 같아 엄마는 나름의 다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
알렉스는 당황했지만 그러나 자신이 어린 시절 작성한 리스트를 하나씩 완수하고자 한다. 그 안에는 '달빛 완벽하게 피아노로 연주하기', '모비딕 정독하기' 도 있었고 '진정한 사랑 찾기', '좋은 선생님 되기'도 포함해 여러가지가 있었다. 모비딕 1장 읽다 덮기가 수차례였지만, 결국 모비딕을 읽어낸다.

비록 열세살에 작성했던 리스트지만 살면서 도전할 것들을 적어놓고 그걸 실행해보고자 행동하는 걸 보는게 좋았다. 사실 '아빠랑 화해하기'도 있어 큰 용기를 내보지만 또 싸우게 되고 아빠는 그제야 사실 알렉스의 친아빠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래서 알렉스는 친아빠를 찾아 만나고 싶어한다. 그리고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여성 쉼터에 가서 교사생활도 시작하면서 역시 그곳에서 봉사하는 닥터 '개릿(세배스천 데 소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연인이 된다.
개릿과 만나 데이트를 하면서 참 좋은데, 너무 좋은데, 그런데 어째서 리스트에서 '진정한 사랑찾기' 항목을 지울 수가 없는걸까. 그리고 왜 내 친구들과 개릿이 있을 때 알렉스는 인지하지 못한채 그를 소외시킬까. 여하튼 그래서 그랑 싸우게 되고 서로 연락없이 지내게 되는데, 친아빠를 만나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알렉스를 위해 그동안 자주 만나 친한 친구가 된 변호사 브래드가 함께 가준다. 이 길에 브래드의 아름다운 여친 '니나(마리아 정)'도 함께하는데, 먼 길 드라이브를 하고 호텔을 체크인하는 과정에서 니나는 브래드와 알렉스의 묘한 기운을 눈치채고 갑자기 일이 있다며 호텔을 떠나버린다. 그날밤 알렉스는 아버지를 만났고 기분도 좋아서 브래드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술도 잔뜩 마신다. 호텔로 돌아와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지만, 그들의 방은 커넥팅 룸이었고, 방 한가운데의 커넥팅 룸 문을 마냥 바라보고만 있다가, 역시 마찬가지 감정으로 그 방문을 열어버린 브래드와 똭- 마주치게 되고 그들은 키스를 하는데.........
15세이상 관람가여서 이 키스 장면이 나왔고 여기가 호텔이니만큼 그 다음 장면이 너무나 뻔한데, 나는 퇴근길의 지하철.. 이었습니다. 후다닥 정지 시켰다. 그 뒤로 더 보지 않고 있다. 앞으로 이어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ㅠㅠ 아니, 브래드야, 너 니나 있잖아. 물론 현재 애인 니나 보다 친구로 지낸 알렉스가 더 좋을 수 있겠지. 그러니 아 나도 모르겠다 내 욕망에 나를 맡겨 둠칫 두둠칫 이러면서 그녀를 안을 수 있겠지. 알렉스 역시 마찬가지. 브래드의 여친과도 알고 지내고 친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스욕망이 나를 찾아와 잠재울 수 없어 둠칫 두둠칫 뜨겁게 나를 맡긴다, 뭐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욕망 이라는 것이 나도 모르게 예기치않게 찾아오고 또 절제하기 힘들 수 있지. 나라고 뭐 그런 일 없었겠니. 인간이라면 무릇 그런 순간들 앞에 무릎 꿇을 수 있지.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겁니다.
불빛만이 가득한 이밤 그대와 단둘이 앉아서 그대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네
사랑스런 그대 눈가에 슬픈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나의 마음을 아프게만 하는데
이 밤이 지나면 우린 또다시 헤어져야 하는데 아무런 말없이 이대로 그댈 떠나보내야만 하나
이 밤, 그래 네가 있고 내가 있다. 우린 이글거린다. 그렇게 우린 서로를 포갰다. 그러나 다음날 눈뜨면 이것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어있을 것이다. 너와 내가 서로를 원했으니 쌍방 러브 이치아덜 러브러브 에브리씽 오케이면 좋겠지만, 그런데 브래드에게 여자친구가 있었잖아요. 난 여자가 있는데~ 자꾸 이러면 안되는데~ 그러니까 브래드는 그리고 알렉스는 이것을 어떻게든 수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니나가 상처받을 것은 너무 뻔한 일 아닌가. 그들의 관계를 눈치채고 니나가 설사 먼저 헤어짐을 말한다해도 니나가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여간 나는 이 뒤가 너무 보기 싫은거다. 그들에게 일어날 갈등, 문제, 수습, 분노.. 이런것들을 너무 보기가 싫어 ㅠㅠ 싫다 ㅠㅠ
그래서 안봤다는 말씀. 앞으로 볼지도 잘 모르겠다는 말씀.
그래서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한다, 고 생각했다. 이렇게 내가 중간에 멈춰버려서. 끝까지 못봐서. 극장에서는 어쨌든 보잖아.
OTT 로 보니까 중간이나 시작 부분에 보다 그만두는 영화들이 생긴다. 지금은 제목도 기억 안나는 영화중에 초반에 주인공이 거짓말하는 장면이 나와서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그만 본 영화도 있다. 나는 거짓말 진짜 너무 싫어서, 왜냐하면 거짓말은 계속 기억해야 하고,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 또다른 거짓말을 덧입혀야 하고, 들키면 어쩌지 내내 초조해야 하고, 그 스트레스 감당이 너무 힘들어서 그 영화를 볼 자신이 없었다. 안봄. 이것도 극장이라면 봤을텐데..
하여간 책이 재미있다는 말이다. 책이 최고라는 말이다.
그래서 책을 또 샀고 책이 또 내게로 오고 있다는 말이다.
아니 어제 프리다 맥파든 페이퍼 쓰다가 갑자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너무 씐났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니까 하우스 메이드 영어책을 살려고 했단 말이야? 그랬는데 우리 프리다 맥파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직 번역 안된 책이 넘나 많네요?!
씐난다!! 만세!!
프리다 맥파든 님, 언제 이렇게 많은 작품을 다 쓰신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책이 최고다.
그렇지만 라이프 리스트는 만들어두는게 좋을 것 같다. 나로 말하자면 사실 그런거 어릴 때부터 만들고 살아온 것 같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나의 경우,
1. 뉴욕에서 살아보기
2. 책 써서 타임지 표지모델 되기
3. 칠봉이랑 연애해보기
이정도를 어린 시절부터 젊은 시절에 거쳐 가지고 있었는데
1. 뉴욕을 몇 번 여행해보고 살아보기를 포기
2. 타임지 표지 모델은 되지 못했지만 지금은 절판된 책을 씀
3. 지금은 헤어졌지만 칠봉이랑 연애도 함
이렇게 뭔가 라이프 리스트, 인생의 목표 같은걸 정해두면 그걸 해나가는 기쁨이 있다. 그리고 인생이 방향성을 찾는다. 사소한 순간의 선택들 하나하나가 내 목표를 향한 것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지금은 아름다운 중년 여성이 되었고(응?) 다른 라이프 리스트들을 갖고 있다.
1. 한국어 포함 5개국어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2. 유럽 시골에서 한동안 살아보기(이를테면 이탈리아라든가)
3. 회사 다니는 게 아닌 돈벌이 찾기
4. 오로라 보기를 포함 세계 이곳 저곳 많이 다니기
5. 영생하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마도 살다보면 여기에 몇가지 더 추가될 것 같다.
아 충동적으로 페이퍼 쓴게 또 길어졌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