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초, 나는 인생 최대의 무모한 여행을 감행했다. 영국 런던의 킹스칼리지에서 열린 한국학 학술대회에 가서 세월호 추모 방식에 대한 발표를 한 것이다. 학술대회는 6월 4일 토요일이었고 6월6일 월요일이 현충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6월 3일 금요일에 수업을 마치자마자 인천공항으로 가서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방콕을 경유하여 17시간 비행 끝에 - P24

(예산과 일정에 맞는 비행기가 그것뿐이었다) 현지 시간으로 6월 4일 아침에 런던에 도착해 곧바로 학술대회장에 가서 발표를 한 뒤 숙소에서 쓰러져 자고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면 6월 5일은 공중에서 사라지고 6월 6일에 귀국해 잠시 쉬고 6월 7일 화요일에 수업하러 가는 일정이었다.
왜 그런 짓을 했냐면, 2016년에 접어들자 아무도 세월호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5년 1주기 때처럼 광화문 현판 앞에 앉아 있기만 해도 경찰이 와서 차벽으로 막고 아버지들 목을 졸라 연행하고 어머니들 눈에 최루액을 뿌리거나 하지 않았다.
농성장에 보수단체들이 쳐들어오지도 않았다. 언론에서도 세월호 얘기를 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종료 저지라든가 선체 인양이라든가 진상 규명을 위해서 할 일이 많은데 아무리 외쳐도 아무도 듣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면 학술 발표라도 해서 어딘가의 논문 데이터베이스에 자료라도 남기기로 결심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에서 한국 민속학을 연구하는 교수님과 공동으로 세월호 추모의 방식과 노란 리본의 기원에 대한 논문을 두 개 썼다. - P25

그러니까 이제는 경찰 개인이 노동자 몇 명을 대공분실로 끌고 가서 사람 대 사람으로 물리적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21세기 대한민국 경찰은 기계문명의 화려한 결과물을 활용해서 무방비한 개인을 때리고 죽이고 위협한 뒤에 위협과 폭력과 살상에 사용된 비용을 피해자에게 물어내라고 강요한다. 그엏게 끝없는 재판과 소송이 빙글빙글 돌면서 노동자의 생명을 빨아먹고 가족의 삶까지 전부 으깨놓는다. - P110

2022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향권에서 벗어나 유럽연합에 가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하게 요약했지만 나의 지역학 전공 지식을 바탕으로 검증된 논문을 조사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뉴스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모은 정보를 근거로 하여 내린 결론이다. - P137

전쟁은 끝나지 않고, 2023년 10월 7일에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언론에서는 계속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고 하는데, 가자지구에는 독립된 군대가 없다. 한쪽에만 군대가 있고 한쪽만 일방적으로 폭격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다. 학살이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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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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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읽고 싶었던 건 내가 궁금한 지점이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하는것. 나 역시 아마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을것처럼, 이 나라의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너무나 놀랐고, 그래서 그를 비롯한 그의 지지자들이 '극단적 소수'이며 그들이 어떻게 대한민국 국민들을 두려움과 위험에 빠뜨렷는가가 궁금했던 거다. 이 책은 어떻게 사악한 지도자가 국민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가, 에 대한 이야기일거라고 짐작했다. 생각해보라, 계엄이라니. 그 계엄을 선포하는 것이 다수의 의견일 수는 없지않나. 이건 윤석열이란 대통령을 지지하고 지지하지 않고를 떠나서 당연히 '극단적 소수'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책은 내가 기대한 지점과는 약간 어긋나면서 그러나 크게 다르지는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트럼프라는 대통령이 미국에서 어떻게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혐오를 조장하고 불안으로 내모는가에 대한 것, 거기에는 그러나 트럼프라는 개인의 '악함'이나 '모자람' 혹은 '멍청함' 보다는 그렇게까지 만들었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제도가 있었던 거다. 


미국의 선거제도에 대해서 직접선거, 보통선거가 아니라 선거인단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는 걸 처음 알고나서부터 지금까지 쭈욱, 도대체 왜그럴까, 이 선진국인 미국이 도대체 왜 선거인단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걸까 의문이었지만 속시원한 답을 찾지는 못했었다. 그저 미국이라는 50개주의 연합국이 나름의 이유가 있는것인가보다 했다.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보통선거의 표를 차지하면서도 선거인단제도로 인해 대통령이 될 수 없었던 힐러리 클린턴 같은 어쩔 수 없는 피해자가 나오는구나,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선거인단 제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문제를 가져오고 또 생각보다 그런 식으로 패자가 되는 일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선거인단 제도는 더 많은 다수의 표를 받았다해도 대통령이 되지 못하게 막기도 한다. 그렇게 실질적으로 더 '적은' 표를 가지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었다. 이건 상원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모든 주가 인구수에 상관없이 두 명의 상원을 배출해야 하고, 그래서 인구 밀도에 따라 어떤 주는 상원이 과잉대표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상원에게는 하원에서 입법하고자 하는 사안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소수로 뽑힌 대통령과, 그가 임명한 소수를 대표하는 대법관, 그리고 과잉대표되는 상원은 그동안 미국 역사를 통틀어 낙태 합법화를 무효화했고, 최저임금 상승도 방해했으며, 총기 소유 규제에 대한 것도 없던 일로 해버렸다. 미국의 국민 70프로가 낙태 합법화를 지지해도, 최저임금 상승을 원해도, 총기 소유를 하자고 아무리 외쳐도, 그 다수는 힘이 없었다. 


또한 민주주의 제도를 갖춘 모든 나라에서는 국민들 모두가 투표권을 기본적으로 장착하게 되는데, 미국은 '내가 유권자다' 라고 스스로 등록해야 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아, 미국이여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게다가 대법원 판사의 임기 제한이나 정년도 없이 종신제란다. 그렇다면 소수가 대표하는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가 언제까지고 대법원에 있다는 말이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이 책에서 표현한 대로 '한 세대는 필연적으로 미래 세대의 손을 묶게(p.213)' 되는 경우가 아닌가. 


선거인단 제도는 결국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상원은 공화당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미국에서도 선거인단 제도를 직접, 보통선거로 바꾸려는 시도가 아주 여러차례 일어났지만, 그러나 번번이 상원에서 막혔다고 한다. 제도가 국민을 힘들게 하는데 헌법을 바꾸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니, 그러다보니 이 저자들이 책을 출간한 뒤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트럼프 어게인, 을 미국은 기어코 일어나게 만든것이다.


물론 선거인단 제도가 아니어도 어떤 나라에서는 다수가 나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아놓은 대한민국이 그랬다. 국민 다수가 뽑은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한채 탄핵당해야 했다. 국민들이 이것이 옳지 못하다고 끊임없이 부르짖어서 우리는 이제 다시 대통령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지금의 국민들이 나쁜 선택을 다시 할 리 없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사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될 때도 그랬다. 나는 사람들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지는 않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더랬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이번 대선이 아니라 그 다음 일들이 두렵다. 제2의 윤석열이 또 나올까봐 두렵지만, 사실 나는 지금 이 나라가 이준석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에도 두렵다. 



나는 이준석을 사악한 선동가라고 생각한다. 그가 실질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느냐 하면, 사실 그의 뚜렷한 업적이라는 것은 없다. 그는 30년 이상을 백수로 지내다가 국회의원이 되어서 한 달에 세후 급여를 9백만원 이상 받아가고 있다. 그런 그가 여성을 혐오하고 장애인과 싸운은 걸 공개적으로 드러내 보임으로써, 그 생각을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젊은이들에게 '그래도 된다'는 싸인을 보내고 있다. 나는 이 책의 초반에 나온 인용구에서 바로 이준석을 떠올렸다.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반민주적 극단주의자를 보호하는 선에서 멈추지 않고 이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까지 한다. 반민주적인 극단주의자는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는다. 언론은 그들을 무시한다. 그리고 정치인과 기업가 및 사회적 평판을 우혀하는 제도권 인사들 모두 그들과의 접촉을 꺼린다. 하지만 유명 정치인들이 그들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인정할 때, 상황은 완전하 바뀐다. 극단주의자와 그들의 이념은 이제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받는다. 주류 언론 역시 다른 정치인을 두둔하듯 그들을 두둔하기 시작한다. 그들을 인터뷰나 토론에 초대한다. 경영자들은 그들의 선거 운동을 후원한다. 그들을 외면했던 정치 컨설턴트들은 이제 그들의 전화를 받는다. 또한 개인적으로 동조했지만 감히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못했던 많은 정치인과 활동가는 이제 거리낌없이 그렇게 한다. -p.74



『출근길 지하철』에서 '박경석'은 '실제로 이준석이가 그렇게 사실 왜곡해가지고 합리적으로 잘 포장해다가 전장연 직접행동 공격해대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그러자마자 전장연에 대한 혐오 발언이 대중들사이에서 압도적으로 증가를 했어요' 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준석은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전장연의 시위에 대해 논의해보자고 박경석을 불러 토론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지만, 박경석을 비롯한 전장연의 시위를 비문명적이라 말하며 그것은 자신이 노상방뇨하는 것과 같다는 취지의 얘기를 하는 사람이다.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는 장애인들의 시위는 이준석이 노상방뇨하는 것과 동급이 되어버렷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언론은 자꾸 데려다가 마이크를 준다. 그에게 힘이 실리면서 여성과 장애인을 혐오하는 모든 젊은 남성들에게도 동시에 힘이 실린다. 그런 사람이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이 끔찍하다. 미국에서는 젊은 세대들이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항의를 하고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을 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다수라는데, 이 나라에서 젊은이들은 성별로 의견이 갈린다. 극단적으로. 거기에는 나쁜 시민들이 지지하는 나쁜 정치인이 있다. 그를 정치인이라고 칭하는 것 자체가 좀 저어되긴 하지만 말이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고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그를 탄핵해야 한다고 했을때, 많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계엄은 나쁘지만', 탄핵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보엿다. 많은 국민들이 기막혀하고 놀랐듯이 나 역시 어떻게 그런 생각이 가능한지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계엄을 선포한 사람에게, 국민들의 자유를 앗아가려고 한 사람에게, 권력을 가지고 횡포한 사람에게 어떻게 계속 대통령의 권한을 주자고 그들은 주장할 수 있었던걸까. 그러다 거듭되는 그들의 부르짖음이 결국 그들 개인의 이득에 가 닿는다는 걸 알았다. 미국의 선거인단제도는 부조리하고 불합리한데, 각 정당들은 그걸 이용하고자 '게리맨더링'을 한다고 한다. '경쟁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을 몇몇 선거구에 집중적으로 몰아넣고 나머지는 다른 대다수 선거구에 골고루 분포시키는 방식으로 선거구를 구획함으로써 경쟁 정당의 표를 희석시킬 수 있다. 그런 경우에 경쟁 정당은 몇몇 선거구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선거구에서는 패하게 된다(p.262)' 는 거다. 그렇다. 선거구를 기획함으로써 권력을 잡고 싶은거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 정치인이 정치를 하고자 하는데에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은 사라진지 오래고 결국 자기 당선, 자기 권력을 위한 것이 되어버린거다. 나는 국민의 힘 다수 의원들이 계엄 후 보여준 태도에서 바로 그것을 보았다. 개인의 이익, 자신의 이익.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일단 그 대통령이 있는한 자신의 기득권은 보장받는다. 지금 살던대로 살면 된다. 그러나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이라도 사라져버리면 그들의 기득권은 더이상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국민의 불안과 두려움 불안정을 인질로 잡아두고 자신의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이기적임, 그게 그들에게 있었다. 



이 책의 42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결론적으로 프러시아 보수주의자들은 선거 패배 그 이상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사회에서 지배적인 기득권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p.42)


나는 이걸 이렇게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국민의 힘 의원들은 윤석열의 탄핵 그 이상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사회에서 지배적인 기득권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정치 세계에서는 권력이 권력을 만든다.(p.282)'



지금까지의 미국은 권력이 권력을 만드는 정치 세계를 갖고 그걸 유지해왔다. 그래서 저자들은 선거인단 제도의 개선부터 선거권 확보, 대법원 판사의 임기 제한까지 민주주의를 위해 지켜야할게 무언지 이 책을 통해 제안한다. 대한민국의 정치도 권력이 권력을 만드는 정치였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잘 유지되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 무수히 권력은 또다른 권력을 만들고 낳았고 유지했다. 민주주의 수호는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이 책의 저자들은 말한다. 정치 세계에서 권력이 권력을 만드는 것을 지속하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가 광장에 나갔듯이 나쁜 지도자를 뽑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다행히도 우리는 직접선거, 보통선거 제도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다. 이준석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지 않는 것을, 제2의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지 않는 것을 우리는 할 수 있다. 사악한 소수가 지도자가 되어 엉뚱한 방향으로 다수를 이끌고자 하는 걸 처음부터 방어할 수 있다. 



그리고 곧 대통령 선거이다.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는 이러한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민주주의는 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시스템이다." 패배는 가슴 아프지만 민주주의 안에서는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 P29

정당이 지는 법을 배울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 때, 정권 교체는 일상적인 일이 되고 국민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 P36

결론적으로 프러시아 보수주의자들은 선거 패배 그 이상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사회에서 지배적인 기득권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 P42

두려움은 때로 사회를 독재로 되돌리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정치권력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더 중요하게는 기존의 지배적인 사회적 지위를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바로 그러한 힘으로 작용한다. - P52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반민주적 극단주의자를 보호하는 선에서 멈추지 않고 이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까지 한다. 반민주적인 극단주의자는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는다. 언론은 그들을 무시한다. 그리고 정치인과 기업가 및 사회적 평판을 우혀하는 제도권 인사들 모두 그들과의 접촉을 꺼린다. 하지만 유명 정치인들이 그들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인정할 때, 상황은 완전하 바뀐다. 극단주의자와 그들의 이념은 이제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받는다. 주류 언론 역시 다른 정치인을 두둔하듯 그들을 두둔하기 시작한다. 그들을 인터뷰나 토론에 초대한다. 경영자들은 그들의 선거 운동을 후원한다. 그들을 외면했던 정치 컨설턴트들은 이제 그들의 전화를 받는다. 또한 개인적으로 동조했지만 감히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못했던 많은 정치인과 활동가는 이제 거리낌없이 그렇게 한다. - P74

오늘날 다수는 과거에, 때로 아주 먼 과거에 내려진 의사결정으로부터 제약을 받는다. 이러한 상황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일어난다. 첫째, 헌법은 수십 년, 혹은 수 세기 동안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한 세대는 필연적으로 미래 세대의 손을 묶게 된다. 법률ㅇ 이론가들은 이를 일컬어 ‘죽은 손의 문제problem of the dead hand‘라 부른다. 헌법 수정이 더 까다로울수록 죽은 손의 힘은 더 강력해진다. - P213

민주주의는 숫자의 게임이다. 즉,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정당이 승리한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서는 다수의 표를 얻은 정당이 통치할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때로는 선거에서 승리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 P248

1992~2020년 동안 치러진 모든 대선에서 공화당은 2004년을 제외하고 보통선거에서 패했다. 다시 말해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공화당이 더 많이 득표한 것은 ‘단 한 번‘에 불과해다. 그럼에도 공화당 대선 후보들은 그동안 ‘세 번‘이나 대통령이 되었다 이로써 공화당은 28년 중 12년간 대통령 자리를 유지했다. - P255

소수의 지배를 뒷받침하는, 그리고 당파적 편향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는 두 번째 기둥은 상원 제도다. 미국 전체 인구에서 20퍼센트 미만을 차지하는 인구수가 낮은 주들만으로도 상원에서 과반을 차지할 수 있다. 그리고 전체 인구의 11퍼센트에 해당하는 주들만으로도 필리버스터로 입법을 가로막을 수 있는 충반한 상원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 P256

1980년에 태어나서 1998년, 혹은 2000년에 처음으로 투표한 미국인을 떠올려보자. 그가 성인이 된 이후로 민주당은 상원 선출을 위한 6년 단위의 보통선거에서, 그리고 한 번을 제외한 모든 대선의 보통선거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그는 공화당 대통령가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 그리고 공화당이 임명한 대법관이 다수를 차지하는 대법원 체제에서 성인기의 삶 대부분을 살아가고 있다. 과연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얼마나 신뢰할까? - P266

선거 제도가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게 과잉대표를 허용할 때, 그래서 정당들이 ‘유권자 다수를 확보하지 않고서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 때, 유권자의 생각에 반ㄴ해야 할 압박이 줄어든다. 그럴 때 정당들은 그들의 주장을 확장해나가야 할 경쟁적인 압박에서 벗어나 내부에 집중함으로써 급진화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 P280

공화당은 시골 지역에 편향된 제도를 기반으로 전국적인 보통선거에서 계속 패하면서도 대선에서 승리하고 상원까지(그리고 결국 대법원도)장악했다. 말하자면 공화당은 경쟁해야 할 동기를 무디게 만드는 "헌법적 보호 장치"의 수혜자가 되었다. 그들은 전국적인 선거에서 자동적으로 먼저 출발하는 어드밴티지를 누렸고, 이를 통해 경쟁 압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 P281

반다수결주의 제도들은 전제적인 극단주의를 뒷받침할 뿐 아니라, 정치적 소수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이를 더 강화한다. 그럴 때, 정치적 소수는 그 힘을 가지고 다른 제도에 대한 그들의 통제력을 더욱 강화한다. 정치 세계에서는 권력이 권력을 만든다. - P282

1945년 이후로 사법심사 제도를 도입한 민주주의 국가들 모두 고등법원 판사에 대한 정년 및 임기 제한을 실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오랫동안 재임한 판사들이 미래 세대를 구속하는 문제를 완화하고 있다. - P308

선거인단 제도를 보자. 전 세계 모든 대통령제 민주주의 국가들이 2-세기에 걸쳐 간접선거를 폐지했던 반면,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는 그대로 남았다. 선거인단 제도를 개혁하거나 폐지하려는 시도가 수백 번 있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 P311

너무나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헌법이나 법률이 보장하는 "투표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수정헌법 제2조는 미국인에게 무기를 소지할 권리는 보장하지만, 헌법 어느 조항도 투표할 권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후 수정헌법은 인종(수정헌법 제15조)인아 성별(수정헌법 제19조)을 기준으로 투표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는 있지만, 국민의 투표권을 적극적인 형태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많은 연방법도 모든 성인 시민에게 투표할 권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 정부는 역사적으로 투표를 어렵게 만들고 심지어 억압하기까지 했다. 지금도 미국은 유권자로 등록해야 할 책임을 전적으로 개별 시민에게 지운은 지구상 몇 안되는 국가(벨리즈 및 브룬디와 더불어)중 하나다. - P335

헌법은 결코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 어쨌든 인간의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선거인단 제도가 설계자들의 예상과는 어긋난 임시방편의 차선책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매디슨이(해밀턴과 마찬가지로)상원의 평등한 주 대표 방식에 반대했음에도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서 수적으로 밀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이렇게 만들어진 제도에 신성한 부분이란 없다. 그리고 대단히 잘 설계된 헌법조차 때로 수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헌법이 작동하는 세상이 변하기 때문에, 그리고 때로는 대단히 급격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법도 언제 어디서나 "최고의 상태로 기능"할 수 없다. 국경은 변하고 인구는 증가한다. 신기술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이전 세대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을 한다. 평등이나 자유와 같은 근본 원칙은 그대로 남아 있겠지만, 사회 규범이 진화하면서 우리는 그 원칙을 정의하는 방식을 어쩔 수 없이 바꿔야 한다. - P346

민주주의 수호는 이타적인 영웅의 과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선다는 말은 우리 자신을 위해 일어선다는 뜻이다. -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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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6 0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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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6 16: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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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6 1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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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6 16: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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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메이드 2 - 하우스메이드의 비밀
프리다 맥파든 지음, 황성연 옮김 / 북플라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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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여자가 다 좋은 여자인 것은 아니다. 모든 남자들이 다 나쁜 남자는 아닌 것처럼.
음, 그렇지만, 어쩐지 조금 아쉬운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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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마지막 도서는 '클레어 혼'의 『재생산 유토피아』입니다.
















5월 한달 여러분과 이 책을 같이 읽고나면 2018년 11월부터 이어져온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마치게 됩니다.

꾸준히, 쉼없이, 게으르지 않게 이 책들을 읽어올 수 있었던 건 같이 읽어주시는 여러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달 말일이 가까워올 쯤이면 같이읽기 도서가 서재에 주르륵 노출이 되는데, 세상에 그게 그렇게나 뿌듯하더라고요.

다들 성실하게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사정상 5월을 끝으로 마치지만,

1년쯤 뒤 다시 같이읽기를 시작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 때가 되면 함께 읽을 도서가 있는데요, 세상에, 펀딩을 하고 있지 뭡니까.

아마 1년쯤 뒤 같이 읽자고 하면 그 땐 이미 많은 분들이 이미 읽은 책이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마라 비슨달'의 『남성 과잉 사회』인데요,

제가 이 책을 여러분과 같이 읽고 싶었으나, 저는 가지고 있는데 책이 품절이었어요.

출판사에 문의를 넣었더니 재고가 없다고해서 안타깝게도 이 책을 같이읽기 리스트에 넣지 못했었는데요,

이렇게 펀딩이 되어 새로운 책으로 나옵니다.

관심있는분들, 참고하세요.
















2025년도 벌써 5월이라니, 시간 정말 빠르지 않나요?

자, 우리 5월도 열심히 읽어봅시다.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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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4-30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
다시 시작!!!🥳🥳🥳

다락방 2025-05-02 07:53   좋아요 0 | URL
일단 마지막은 마지막이고 다시 시작은 또 다시 시작이니까요! (뭐라는건지 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5-05-01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식년…푹 쉬시다 다시 멋진 모습으로 컴백하시길 바랍니다.^^
전 그동안 밀린 책들이라도 빨리 읽어둬야겠어요.ㅋㅋㅋ

다락방 2025-05-02 07:53   좋아요 1 | URL
네, 책나무 님. 5월 책을 마지막으로 함께 읽고 그리고 한동안 각자 책 읽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단발머리 2025-05-01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가 올라오니깐 비로소 이게 마지막 책인가... 하는 생각이 ㅠㅠㅠ 드네요.
그래도 작은 희망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책나무님 말씀처럼 안식년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고요.
<남성 과잉 사회> 준비해 둘게요.

다락방 2025-05-02 07:5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마지막 책이 맞기는 합니다만 안식년 후에는 또 첫 책이 올라올 수도 있겠지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ㅋㅋㅋㅋㅋ 아무튼 우리의 함께읽기 화이팅입니다!

독서괭 2025-05-0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동안 이끌어 오신 게 대단하고,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려요. 덕분에 여성주의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5월 책도 완독할게요. 다시 돌아올 약속을 해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쉬시는 동안 함께 영어원서나 읽을까요? ㅎㅎ

다락방 2025-05-02 07:56   좋아요 1 | URL
독서괭 님, 영어원서... 라고요? 흐음... 나쁘지 않은 제안입니다. 음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제안이에요. 음 그런데요 독서괭 님, 같이 읽는 영어 원서.. 로맨스 소설이어도 괜찮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05-02 08:04   좋아요 0 | URL
저 로맨스 좋아합니다 다락방님 ㅋㅋ 일단 제가 생각해둔 건 에드워드툴레인이랑 스릴러물1권인데요 로설 추천해주시면 같이 읽어요!

다락방 2025-05-02 08:11   좋아요 0 | URL
스릴러물은 어떤거에요?

독서괭 2025-05-02 08:14   좋아요 0 | URL
Good Girl‘s Guide to Murder 입니다! 드라마도 있다네요. 영어공부 동영상에서 추천하는 거 봤는데 재밌어보여요 ㅎ

다락방 2025-05-02 08:33   좋아요 1 | URL
오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 원서군요! 저 이 책 있거든요. 일단 이거 번역본 좀 읽어보고 생각할게요.
만약 같이 읽게 된다면 저는 잭 리처도 한 권쯤 같이 읽고 싶어요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05-02 08:36   좋아요 0 | URL
아니 이미 가지고 계시다니🤣🤣🤣
잭리처 좋죠!!
 

나는 중학생이 되고나서부터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미친듯이 영화를 빌려다 봤더랬다. 영화가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유명한 영화도 보고 그러다 볼 게 없어지면 사람들이 모르는 별로 잘되지 않은 영화도 봤다. 비디오만 빌려보는 것뿐만 아니라 당시에 주말이면 해주던 주말의 영화나 토요명화도 봤었다. 토요일 비슷한 시간대에 kbs 랑 mbc 에서 영화를 보여줬었는데 항상 신문에서 줄거리를 보고 어떤걸 볼까 선택한 뒤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놓치기 싫어 녹화해놓고 보고는 했었다. 더빙되었고 또 많은 장면이 잘리기도 했을텐데 그때는 그 영화가 왜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때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영화들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영화들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메릴 스트립' 주연의 <폴링 인 러브> 였다. 우연히 만나게 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들이 우연히 스친 장소가 뉴욕의 '리촐리 북 스토어' 였고, 나는 그들이 서점에서 만나 부딪치고 서로가 구입한 책이 바뀌었던 이 스토리를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스물아홉이 되어 처음 뉴욕으로 여행갔을 때 그 리촐리 북 스토어를 다녀왔더랬다.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네.


그보다 더 인상깊었던 영화는 '카트린 드뇌브' 주연의 <사랑할 때와 이별할 때> 였다. 남배우도 유명했던 배우같은데 싶어 지금 검색해보니 '크리스토퍼 램버트'라고 한다. 아마 나랑 비슷한 또래는 다 아는 배우일것 같다. 이 영화는 일하다 만난 연상의 여인과 가수인 젊은 청년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영화이다. 여자는 남편과 사이가 안좋고 자식들도 있었는데 새로이 사랑에 빠진 이 청년과의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어느날 그에게 이별을 말한다. 그녀와 이별하고 괴로웠던 청년은 그녀를 잊을 수가 없어서 만나달라고 그녀에게 전화를 한다. 그녀는 알겠다고 하고 그를 만나러 집밖으로 그를 만나러 나왔는데, 그는 그녀를 기다리다가 그녀가 혼자 나오지 않음을 그녀가 자신의 가족들 모두와 함께 나오는 걸 보게된거다. 그리고 바로 그 때, 그 역시도 이 관계가 정말로 끝난 것이라는 걸 인지한다. 나는 이 영화의 이 마지막 장면을 정말 좋아한다. 어떤 쓸쓸함과 고독함과 뭐 그런게 다 담긴 것 같아서 말이다. 가족들 모두를 데리고 오는 걸 보는 그 때,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족들 모두와 함께 나온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70대의 남자 피아니스트인  '비톨트'는 공연 때문에 만나게 된 40대의 여자 '베아트리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음, 그가 일방적으로 그녀에게 빠진 것이니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는 건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한 번 공연을 주최한 후 그에 대해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가 그녀에게 연락하고 만나자고 하고 그녀를 좋아한다고 하니 자꾸 마음이 쓰이기는 한다. 그러다가도 이 노인이 나에게? 라고 생각하며 어느 순간 혐오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는 그를 만나고 싶어졌고 흐음, 그런데 우리는 이상한 관계는 아니잖아 싶어서 남편에게도 이 일을 얘기하고 우리 별장에 휴가갈 때 그도 부를까? 묻는다. 남편은 괜찮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을 만나고싶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그에게 그러면 우리 별장으로 오라고 한다.



"'발데모사‘에서 멀지 않은 곳이에요. 남편과 나는 10월에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일이 다 끝난 후에 우리와 합류하시겠어요? 집이 널찍해요. 당신만의 독자적인 공간을 갖게 될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려주세요. 베아트리스 올림."

그가 답장한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러나 나는 가족의 친구가 될 수는 없어요. 비톨트 올림."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가족의 친구는 유명한 폴란드 소설 제목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폴란드의 베르테르‘라고 부른답니다." -p.85


바로 이 부분이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나는 영화 [사랑할 때와 이별할 때]가 생각났다. '가족의 친구는 될 수 없다'고 말하는 부분. 비톨트가 원한건  그녀 가족의 친구가 아니었다. 그녀의 연인이었지. 그녀와 개인적인 관계를 원했던거지 가족과 다 아는 사이가 되고자 함이 아니었다. 예전에 존 쿳시의 소설을 몇 권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이 등장해서 '꼭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성향을 보여준다고. 이 책에서도 그랬다. 비톨트는 자신이 원하는 대상이 그녀라는 걸 분명히 알고 그리고 그녀만을 원한다. 다른 관계가 아니라, 다른 식으로가 아니라. 그저 그녀와 일대일로 만나기를 원하는거다. 나는 그가 70대이지만, 사실, 사랑 이야기로 몰입이 잘 되지 않는 대상이긴 햇지만, 그렇지만 '나는 가족의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부분이 너무 좋았다. 나는 그렇게 분명하게 의사표현을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분명한 관계, 분명한 의사표현. 애매한 표현은 애매한 관계로 이어진다. 그러나 분명한 표현은 분명한 관계가 될 수 있다. 그 끝이 어떻게 되든 말이다. 나는 가족의 친구가 될 수는 없어요, 라는 문장이 왜이렇게나 좋은지 모르겠다. 



그는 폴란드인이었다. 그녀는 스페인사람이었다. 그는 그녀의 언어인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고 그녀는 그의 언어인 폴란드어를 할 줄 모른다. 그들의 대화는 영어로 이루어지고 둘다 영어가 아주 유창했던건 아니라서 간혹 그녀는 그의 말이 어떤 뜻인지 곰곰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녀는 이 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와 며칠을 함께 지내고 차갑게 그와 헤어지는데, 그에게 물을 수 없는 상태에서 그가 그녀를 상대로 시를 썼다는 걸 알게 되고 그걸 갖게 된다. 시는 한두편이 아니었다. 그녀는 폴란드어로 써진 그 시를 모른다. 알고싶다, 그런데 모른다, 그에겐 물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자, 어떡하지. 그녀는 그 시를 읽고 싶다. 그가 도대체 나를 상대로 무슨 시를 쓴걸까.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녀는 이 시를 번역해줄 사람을 수소문한다. 그렇게 결국 폴란드어에서 스페인어로 번역해줄 사람을 찾아 번역을 의뢰한다. 상대는 시를 번역해본 적은 없어서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번역해준다. 그녀는 한두편만 번역해 듣고 비용에 대해 합의하고 그리고 다른 시들 모두의 번역을 부탁한다. 번역해주는 사람은 '나는 이걸 번역해줄 수는 있지만 이 시에 담긴 뜻에 대해서까지 번역할 순 없어요, 그건 당신의 몫이에요" 라고 말한다. 그래, 그 시에 담긴 뜻은 베아트리스가 알아채야 한다. 



아아, 이래서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를 알아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일지 어떤 언어를 쓸지 어떻게 알고 단지 모국어만 한단 말인가. 외국인과 사랑에 빠질 가능성을 생각하며 영어만 공부한다는 건 또 얼마나 시야가 좁은가. 생전에 5개국어까지는 마스터하자고 생각한 나였지만, 그 안에 폴란드어가 없었기 때문에, 아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내가 폴란드 남자랑 사랑에 빠지게 될지 또 어떻게 알아?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것. 그가 폴란드어로 시를 써놓고 사라지면 어떡하지. 그러면 나 역시도 번역해줄 사람 찾아서 돈 주고 딜해야 되는데, 아아 물론 당장 읽고 싶은 마음에 일단 그 방법을 쓰기는 하겠지만, 결국엔 폴란드어를 배우는게 궁극적 답이 아닌가. 그 왜, 그 뭣이냐, 휴 그랜트 나오는 영화... 거기서 보면 다른 나라의 여성과 사랑에 빠져서 콜린 퍼스가 그 나라 말을 배우려고 하지 않나. 알고보니 그녀도 콜린 퍼스의 말을 배우려고 하고 있었고. 하여간 언어가 통해야 뭐가 돼도 되지 않겠는가. 그가 쓴 시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내가 그 언어를 알고 직접 읽고 직접 번역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 말이지. 물론 그 글의 장르가 시.. 이니만큼 내가 폴란드어를 '할 줄' 안다고 해서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자, 다시,

그녀는 스페인어를 하고 그는 폴란드어를 하고 그 둘은 서로 영어로 의사 소통한다. 그리고.


그들은 나머지 시간에 같이 있을 때면 말이 없다. 그녀는 보통 말이 없는 편이 아니다. 친구들과 같이 있으면 말이 많고 수다스럽다. 그런데 폴란드인에게서는 사소한 말이라도 냉기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속으로 언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폴란드인이거나 그가 스페인인이라면 보통 커플처럼 더 쉽게 얘기할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스페인인이라면 다른 남자일 것이다. 그녀가 폴란드인이라면 다른 여자일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다. -p.119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ㅋ ㅑ ~ 존 쿳시.. 한 부분이 여기이다. 소주 한 잔 들이켜고 싶은 부분. 와인이어도 상관 없다. 너무 좋지 않나. 그녀가 폴란드인이거나 그가 스페인인이라면 당연히 더 쉽게 얘기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가 스페인인이라면 다른 남자일 것이다. 그녀가 폴란드인이라면 다른 여자일 것처럼 말이다.



우앙 완전 뿌잉이다. 너무 맞는말인데 그래서 너무 근사하지 않나요. 왜냐하면 정말 그렇잖아. 내가 당신의 모국어를 쓰는 사람이라면 혹은 당신이 나의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대화는 더 잘 진행될 것이다. 말이 없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당신의 모국어를 쓰는 사람이라면 혹은 당신이 나의 모국어를 쓰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일 것이고,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렇게 서로를 보고 있지 않았을 수 있다. 한 공간에 있는 일이,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일어나리란 보장은 없다. 우리가 하필 인생의 이 시점에 만나고, 또 만나고 싶어지게된 건, 당신이 폴란드인이어서 내가 스페인인이어서이다. 운명의 흐름은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그가 70대라는 사실 그리고 그녀가 40대라는 사실 앞에서 또 할 수 있는 것들의 많은 부분들이 뒤틀린다. 그가 70대이기 때문에, 그들이 앞으로 더 만나게 될 확률은 그가 20대일 때보다 적다. 반드시 그런건 아니지만, 자연스런 흐름대로라면 어쩔 수 없다. 그의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너무 늦게 왔고 너무 멀리 살았다. -p.223




이게 바로 작가가 하는 일인것 같다. 책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버리는 일. 더이상 어떻게 이 사랑을 더 잘,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 늦게 왔고 너무 멀리 살았다.




때로는 정말 너무 늦게 오고 너무 멀리 산다. 정말 미칠것 같은 문장이다. 돈까스나 먹어야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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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4-30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늦게 왔고 너무 멀리 살았다˝ 더 보탤 말이 없습니다.

다락방 2025-04-30 13:25   좋아요 0 | URL
네, 정말이지 충분한 문장입니다. 더 보탤 말이 없어요.

관찰자 2025-04-30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릴때 6.25 전쟁에 참전하시고 내내 우울증을 앓으셨던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었는데요. 좁은 안방에서 할아버지가 보시던 <주말의 명화>인지 <토요 명화>인지를 자는 척하면서 이불 속에서 몰래 보면서 할아버지가 눈치 챌까봐 숨죽여 울면서 봤던 기억이 아직까지 너무 선명하게 나요.그 영화는 <다잉 영>이었어요. 오. 줄리아 로버츠.

다락방 2025-04-30 15:24   좋아요 0 | URL
오, 다잉 영!
저는 고등학교때 비디오로 빌려서 본 영화입니다. 줄리아 로버츠를 그 당시 너무 좋아했는데 이 영화는 좀 우울했어요. 병든 남자를 간호하고 그 남자랑 춤도 추고 그랬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잠들지 못한 남자가 잠든 줄리아로버츠의 방문 앞에 서자 줄리아 로버츠가 침대 한 켠을 내어주며 살짝 비켜 눕던 장면도 생각나고요. 특히나 영화음악은 압권이었죠! 케니 지의 색소폰 음악도 좋았지만 둘이 춤 출 때 나오던 all the way 도 정말 ㅠㅠ
아 세상에 진짜 좋은 영화가 많았네요!!

망고 2025-04-30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움가트너>에서도 70대 남자가 50대 여자에게 청혼을 하던데... 노년의 작가들이 한번씩은 꼭 쓰는 소재일까요😆
너무 늦게 왔고 너무 멀리 살았다. 크흐~ 문장 좋네요

다락방 2025-04-30 15:23   좋아요 1 | URL
제가 나름 영어공부 열심히 해서 영어로 로맨스 소설을 쓰자,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망고 님의 이 댓글을 보니 그 꿈이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집니다. 영어로 쓰게될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은 여성의 나이를 훨씬 많게 하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5-0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트라우트의 최근 소설에서도 루시의 그런 마음이 전해져요. 사랑이 찾아왔는데... 좋은 사람인데... 같이 있고 싶은데.

너무 늦게 왔고 너무 멀리 살았다.

쿳시를 읽어야겠어요. 알고 보니 제가 쿳시 좋아했었네요.

다락방 2025-05-02 07:52   좋아요 1 | URL
‘너무 늦게 왔고 너무 멀리 살았다.‘ 이 문장과 ‘나는 가족의 친구가 될 수는 없어요‘ 이 문장이 궁금해서 이 책의 영어책을 사고싶어졌습니다, 단발머리 님. 아놔.. 짐을 줄여야 되는데 자꾸 늘이면 안되는데 큰일입니다. 그렇지만 쿳시 영어책 딱 하나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05-01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늦게 왔고 너무 멀리 살았다
와 멋지네요.. 저도 쿳시를 읽어봐야겠어요.
이제 폴란드어까지 욕심낼 기세의 다락방님 ㅎㅎㅎ

다락방 2025-05-02 07:50   좋아요 1 | URL
현실은 듀오링고 영어도 어려워한다는 것.. 하하하하하.
쿳시 너무 좋았어요, 독서괭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