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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괴물 사기극 (저자 친필 사인 수록) - 거짓말, 실수, 착각, 그리고 괴물 퇴치의 연대기
이산화 지음, 최재훈 일러스트 / 갈매나무 / 2025년 5월
평점 :
갈매나무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근대 괴물 사기극]이라는 제목에서 혹하는 대목이라면 사기극이라는 키워드만으로는 부족하고 괴물이 더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부제는 [거짓말, 실수, 착각, 그리고 괴물 퇴치의 연대기]이지만 괴물 창조는 거짓말, 실수, 착각보다는 근원적인 기대와 바람이 담겨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언가 일상의 것들과는 다른 것에 대한 기대나 바람은 하나님이나 예수 같은 종교적 환상만이 아니라 수퍼맨 등 수퍼히어로와 그의 대극일 빌런이나 괴수를 상상해내게도 하니 말이다. 그리고 거짓을 창조하는 내면에는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일종의 자아충족과 자기 망상의 경향도 역할을 하지 않나 싶다. 대개의 모든 바들이 원형적인 것들이지 않은가 싶다.
본서에서는 물론 실수와 착각도 많이 언급된다. 1763년의 찰턴멧노랑나비, 1854년의 수정궁의 이구아나돈, 1857년의 황제벼룩, 1892년의 늪 살무사, 1926년의 보스로돈 등은 전문가들의 착각과 실수로 시대적 괴물로 잠시 등극한 경우이다. 이 사례들은 전문성의 한계가 있던 시대적 한계나 검증할 과학기술력의 한계 등도 있겠으나 이런 실수 역시 전문가의 기대가 작용을 해 대중에게 오해를 사도록 한 경우가 아닌가. 실수와 착각이라는 자체가 대상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고 자신의 학문적 업적에 눈이 어두워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한 이유 역시 기대와 허영 즉 바람(원함)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의도적 사기, 기만도 적지 않았다. 1770년의 체스 두는 로봇인 튀르크인이나 1882년의 피지 인어, 1869년의 카디프의 거인, 1917년의 코팅리의 요정 등은 명백한 사기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대중을 기만하고 부를 쌓으려는 의도이거나 어린이들의 치기였거나 하는 경우지만 이건 명백히도 속이려는 의도 하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에 속아 넘어간 대중에게도 책임은 없다고 할 수 없으니 모든 괴물 사기극의 근본은 감정적 고양이든 혐오 등의 감정적 추락이든 특이하고 괴이한 타 대상을 매개로 정서적 지성적 변화를 바라는 인간의 욕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바람이나 기대나 두려움이라고 해야 할 것들은 1758년의 동굴 인간이나 1835년의 달의 박쥐 인간, 1938년의 [우주전쟁] 속 화성인과 같은 미지의 대상을 가공해낸다. 다른 괴물 사례들처럼 전문가의 착오나 의도적 사기만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 누구나의 기대나 바람이 괴물이 현현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그것들은 인간들의 내면에 원형들이 현현하는 것이고 대중의 바람과 기대와 두려움과 혐오가 어우러져서 야기되는 상황이다. 착각과 실수는 그저 거드는 역할만 할 뿐이다.
세상에는 용의주도한 악인들이 있고 그들의 사기는 철두철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진실은 밝혀질 수도 있고 누군가를 억울하게 만들 수도 대중을 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 외의 지적 생명체들도 알겠지만 모든 인간도 결국 죽고 영혼이 된다. 영원히 이어질 수 있는 사기는 없다. 그래서 억울한 죽음도 세상에서 밝혀지지 않더라도 세상을 넘어서는 순간 억울함은 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들린다고 보인다고 모두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언젠가 공간이 데이터 저장소라는 것을 과학이 파헤치게 된다면 그리고 연구가 지속된다면 공간 속에서 시간을 너머 과거의 진실들을 실제로 보고 들으면서 알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때까지 배우던 것, 듣고 보아서 믿던 것들에 이면, 진정한 진실을 알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세계 속 억울했던 낱낱의 사람들에 억울함이 풀릴 것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괴물 사기극들도 결국 신문 지상이나 라디오로 들리고 형상으로 보였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사람은 감각을 매개로 살아가지만 감각만이 실체는 아니다. 속을 때는 속는 상황에서 주어진 것들이 현실이겠으나 현실이라는 것이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도 충분히 넘치게 알 수 있었다. 진실은 진정으로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저 건성으로 대강 확인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않는다. 진실은 집요한 자의 것이다.
그리고 시대에 괴물들은 거듭 창조되고 있다. 학교괴담이나 지역괴담 등도 그렇겠지만 이제는 AI가 창조해내는 영상들로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시대이다. AI가 대중을 자살로 유도한 사례가 AI 대중화 초창기부터 알려졌다. 인간의 악의만이 아니라 기계랄까 인공정신이랄까의 무감정한 유도로 야기되는 사건들까지 인간을 피폐케 하는 시대다. AI 문제는 짧게 언급할 사안이 아니니 이쯤에서 접지만 시대는 또 다른 괴물을 창조했고 아직 그것이 지나친 우견이나 염려인지 어떨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살아가다 보면 진실이 드러나는 시대가 다가올까? 정치와 세계를 보면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보면 나로서는 아마도 그전에 인류는 멸망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속이고 속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고 속이지 않는 자에게 오히려 자신을 속였다고 말한다. 그것도 인간의 본성이다.
[거짓말, 실수, 착각, 그리고 괴물 퇴치]라는 부제 속 주제를 가지고 생각하면, 인생이란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자신이 진정한 괴물이며 그 괴물이 퇴치되어야 한다는 걸 자각하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괴이하게 생긴 대상이 괴물이 아니라 자신의 아기를 아파트 고층에서 던지는 엄마, 자신의 미취학 아동인 아들을 갈비뼈가 부러지고 온몸이 멍과 담뱃불과 다리미로 지져진 상처를 남긴 채 때려죽이는 부모, 죽은 자기 아기를 냉장고 냉동칸에 얼려 버리는 부모, 죽은 자기 엄마를 옆방에 놓은 채 일상생활을 몇 개월째 이어가는 자식, 게임처럼 해보고 싶었다며 자기 초등학생 동생을 난자해서 죽인 중학생 형, 자기 친딸을 강간한 아버지, 자기 여동생을 평생 강간해온 법조인 오빠와 그걸 숨기려는 친부모들, 자기 중학생 조카를 강간한 이모. 그들은 인간이다. 괴물은 인간과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신이 인간이라고 호소하는 모두이다.
이 책의 감상은 주제를 숙고하며 그렇게 인간 본성에 대한 사유로 이어졌고 그래서 난 더 이상 진실을 알아달라는 호소를 할 생각이 없다. 미래에도 인간이 존재한다면 그 미래인들은 공간 속 데이터를 읽어내 진실을 알 것이고 현재 살아있는 인간들은 결국 모두 죽어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거짓과 기만이 가득한 세상에서도 숨이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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