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 -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과 마르티노 마르티니의 《구우편》
마테오 리치.마르티노 마르티니 지음, 정민 옮김 / 김영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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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는 대항해시대의 정점이었다. 이 시기 유럽 각국은 아시아로 향했고, 이 바람을 타고 이제 가톨릭교회의 주요 조직으로 성장한 예수회 출신의 선교사들도 중국에 도착했다. 그 스타트를 끊은 인물이 바로 마테오 리치다.


오랫동안 절대군주제가 유지되어 오던 중국에서, 리치는 무엇보다 이 귀족계층과의 친분 없이 선교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방식으로 유학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저술들이 나왔는데, 그 중 초기의 것으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교우론”이라는 책이 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친구를 사귀는 일과 관련된 내용인데, 정확히는 서양의 다양한 격언이나 고전의 일부를 발췌해서 중국어로 소개하는 책이다.


그리고 약 반 세기 정도가 지난 후, 다시 예수회 출신으로 중국에서 비슷한 사역을 했던 인물이 있었으니 마르티노 마르티니다. 그 역시 앞서 리치의 작업과 비슷한 순서로 교우 관계에 관한 서양의 격언과 고전을 소개하는 책을 썼으니, 그 책이 바로 “구우편”이었다. 이 책은 “교우론”과 “구우편”이라는 두 권의 책의 전문을 그것의 원출처와 함께 실어 소개하는 책이다.





교우론이 처음 나왔을 때 당시 명나라 지식인들 사이에 크게 유행을 했다고 한다. 세계가 자기들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믿어왔던 중국인들에게 먼 서양에도 오래된 문명이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여기에 (마테오 리치의 적절한 편집이 들어갔겠지만) 서양의 격언이 유학의 그것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점도 그들에게 더욱 흥미를 자아내는 부분이었을 거고.


반면 마르티니의 책의 경우 리치의 것만큼의 유행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책 후반에 그 이유에 대해 편역자의 생각이 좀 실려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미 비슷한 책이 앞서 나와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확대 증보판만으로 눈길을 끄는 데는 무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과, 그새 중국의 왕조가 명에서 청으로 교체되었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짧게 짧게 인용을 하고 있는 리치의 글과 달리, 마르티니의 책은 좀 더 길게 설명이 붙는다. 애초에 이런 식의 격언들은 짧고 굵은 게 여운이 남는 게 아닐까 싶지만, 마르티니의 생각은 좀 달랐나 보다. 그래도 두 권의 책에 다양한 시대를 지나면서 여러 문인들이 덧붙인 서문들까지 읽다 보면, 동서양의 만남이 꽤 흥미롭다.




친구를 사귐에 관한 다양한 조언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책이다. 살아가면서 중요해 보이는 것들이 여럿 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 뿐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이기도 하다. 이런 면은 역시 옛 사람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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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환자에게

교회란 완전히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거나

활력을 더하기 위한 곳이라고 속이는 것이다.

교회는 비교적 도덕적인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교제하기 위해 좋은 장소라는 생각을 심어라.

각종 행사와 예배를 위한 헌신으로 환자를 바쁘게 만들어라.

환자가 교회 활동을 아무리 열심히 한들 우리에게 해될 것은 없다.

환자가 영생을 깨우치는 일만 막아라.


- 앤드류 팔리, 『스크루테이프 비밀보고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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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게임 믿음의 글들 383
랍비 데이비드 포먼 지음, 김구원 옮김 / 홍성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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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저자 이름에 주목하자. 데이비드 포먼. 여기까지는 그냥 미국인 이름이구나 싶지만, 그 앞에 붙어있는 호칭이 흥미롭다. ‘랍비’, 유대인 교사를 가리키는 칭호이다. 출판사에 알아보니 저자는 유대인이고, 정식 랍비라고 한다. 이 책은 랍비가 유대교의 관점으로 출애굽 이야기를 풀어낸 내용이다. 유대교와는 적어도 몇 단계에 걸쳐 멀어져 있는 한국의 개신교인으로서 일단 기획 자체가 흥미롭다.


사실 출애굽 이야기는 구약 성경 전체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주제다. 이건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출애굽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예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독교적 해석 말고, 이 책은 유대교에서 이 주제는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꽤 인상적이다.


물론 이런 접근은 단순히 저자의 독창적인 발상은 아니고, 유대교 성현들로 불리는 앞선 세대 랍비들의 해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본문의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오경 내 다른 본문들과의 연결성까지 이어가는 작업에는, 물론 저자의 글솜씨도 한 몫을 했을 거고.





우선 책에서 저자는 기존에 접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질문을 출애굽 본문에 던진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출애굽 과정에서 나타난 열 가지 재앙들(이집트 측에서 보면)과 관련해서 우리는 흔히 재앙의 종류와 강도에 대해 집중하곤 한다. 그런데 저자는 파라오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강도가 아니라 정확도였다고 지적한다. 정확한 시점에 정확한 강도로 재앙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에 관한 논의라는 것.


또, 출애굽 본문에서 가장 곤란한 부분 중 하나인, “하나님이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본문에 대해서도 저자는 흥미로운 해석을 제안한다. 히브리어로 이 구절은 두 가지 서로 다른 단어로 표현되는데, 하나는 어떤 이의 마음에 “용기를 주었다”이고, 다른 하나는 “완고하게 하다”이다. 저자는 이 중 하나님은 파라오가 두려움에 (유일신에 대한 아무런 생각의 변화도 없이) 그저 뒷걸음치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마음에 용기를 준 것이라고 해석한다.


출애굽 본문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하지만 그냥 쉽게 지나치곤 하는) 장자됨의 개념에 대한 강조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에 따르면 출애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장자로 확인되는 사건이었다. 이는 하나님과 하나의 큰 가족이 되는 의미도 내포하는데, 흥미롭게도 여기서 저자(와 유대교 성현들)는 이 이야기를 요셉의 이야기와 연결시킨다.(전형적인 유대교적 접근 방식이다)





우리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들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은 묘한 재미가 있다. 특히 그 대상이 성경일 경우 이건 단순히 재미만이 아니라 큰 유익을 주기도 한다. 성경을 “새롭게” 읽는 것만큼 우리의 신앙에 도움이 되는 일도 몇 없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유대교의 관점으로 출애굽 사건을 능숙하게 읽어내는 이 책은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만 저자 자신이 유대교 랍비이기에, 이 책의 접근에서 기독교인들이 원하는 그런 내용으로의 전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 사건이 십자가와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하지만 뭐 이런 부분이 크게 문제가 되는 내용은 아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활동하는 저자답게, 초강경파 유대교인들(유대교 내에도 수많은 분파들이 존재한다)과 같은 식의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인 정서는 보이지 않으니까. 사실 개인적으로는 극단적인 현대주의자들보다 이쪽이 기독교인들에게 좀 더 잘 어울리지 않나 싶다.


저자의 주장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는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로 소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 하는 독자의 역량에 달렸다. 책 후반 저자는 요셉의 이야기를 출애굽의 프로토타입으로, 요셉의 채색옷에서 장자권의 전달을 읽어내는데, 흥미로운 주장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받아들일 지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뭐 그건 이 책만 그런 건 아니니까.


간만에 홍성사에서 흥미로운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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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평등을 가져다주는 위대한 존재라는 유토피아적 개념은

데이터 침해, 감시 자본주의, 편향된 알고리즘,

역정보의 만연과 같은 디스토피아적 스토리에 자리를 내줬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일까?

초기의 개척자들이 꿈꿨던 탈중앙식의 자유로운 인터넷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지 않은가!


- 롭 라이히, 메흐란 사하미, 제러미 M. 와인스타인, 『시스템 에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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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수준이 높은 세련된 현대인이라도

철저하게 추상적이거나 과학적인 언어로 신 관념을 갖거나

신에 관해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성경의 신인동형론적 표현을 벗어나겠다고

왕이나 전사, 연인, 목자로서의 신을 거부할 때,

오히려 “어떤 확산된 가스나 액체 이미지”와 같은 모습으로 신을 상상하기 쉽다.

즉, 아무리 과학적 세계관에 충실한 현대인이라도

실재를 생각하거나 표현할 때는

이미지나 은유적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숙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 김진혁, 『순전한 그리스도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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