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넌 이래로, 로마는 벌써 오랫동안 내전 상태였다. 지중해 전역을 돌아다니며 이어졌던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와 그 잔당) 사이의 내전이 간신히 끝났지만, 카이사르의 암살로 다시 한 로마는 내전에 말려든다. 자칭 해방자들은 지리멸렬한 채 암살 이후 정국을 제대로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을 보이지 못했고, 결국 유언장에 의해 카이사르를 계승하게 된 옥타비아누스와 힘으로 카이사르의 후계자를 자칭하는 안토니우스의 주도로 결성된 제2차 삼두와 두 번째 내전을 벌인다.
실력과 명분을 가진 삼두 쪽 리더와 달리, “해방자”들 쪽에서는 그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이 두 번째 내전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양측을 이끄는 지도자들 사이에는 공통점도 보인다. 군사적 재능이 제로에 가까웠다는 건 옥타비아누스와 브루투스의 공통점이고, 군사적 재능은 있지만 냉정함이 부족했던 건 안토니우스와 카시우스 모두를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이니까.
하지만 옥타비아누스에게는 브루투스 따위가 지니지 못한 냉철한 판단력과 불굴의 의지가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에 비해 브루투스는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를 가늠하지 못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었고, 이런 태도는 전투 중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되어버렸다.
양측의 충돌은 필리피 전투에서 사실상 끝나고 만다. 양측의 네 명의 사령관 모두 군사적 재능이 A급은 아니었기에 전투는 깔끔하게 끝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양측 모두 사상자 수도 많았지만, 결국에는 결정적인 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공화파의 패배로 끝난다. 그렇게 BC 1세기 로마의 두 번째 내전은 끝나는데, 곧이어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사이의 세 번째 내전이 또 벌어진다. 이 시대 로마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말 그대로 세상 망하는 줄 알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