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 CHRISTIAN FOUNDATION 4
피터 워커 지음, 박세혁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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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바울만큼 중요한 사람도 많지 않다. 그는 기독교회가 팔레스타인의 신흥종교, 혹은 유대교의 작은 분파에 머물지 않고 지중해 세계 전체로 퍼져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바울이었다. 물론 그가 직접 방문해 보지 않은 곳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에 의한 교회 개척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 범위와 결과물에 있어서 바울은 단연코 가장 앞 자리에 있는 인물이다.


이 책은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들을 중심으로 바울의 행적을 재구성한 책이다. 기본적으로 성경의 내용이 베이스가 되지만, 여기에 역사적인 맥락과 지리적인 내용들, 그리고 성경의 진술들 사이의 빈 공간을 적절한 감각으로 채워 넣는 작업도 이어진다. 물론 여기에는 바울과 그 주변 인물들(적대적인 유대인 보수주의자들 같은)의 성격과 당시의 역사적,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감각이 중요하게 작용했고.





개인적으로는 한 지도를 보고 이 책을 계속 두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아시아 남부 밤빌리아 해안을 그린 지도인데,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도착했던 도시 중 하나인 “버가”의 위치가 흥미롭다. 오늘날 지도에 따르면 버가는 내륙으로 깊이 들어간 곳이지만, 고대에는 무려 항구도시였다는 것(인근의 강에서 퇴적물이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해안선이 한참 남쪽으로 더 내려오게 되었다).


사실 비슷한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현상이었는데, 수많은 지도들을 보면서도 관성에 따라 떠올리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던 부분이다. 이런 식으로 한 번씩 환기를 시켜주는 책들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 저자가 성경을 재구성 해 나가는 방식도, 과도하게 현대적인 관점을 우겨넣는 대신 좀 더 역사적으로 타당성을 인정받을 만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서 읽기에 편하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현대적인 해석도 들어가서 재미도 있고.



바울의 행적에 관한 좋은 텍스트북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나중에 이 책의 내용으로 영상 시리즈를 하나 만들어 봐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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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권력, 영광
팀 앨버타 지음, 이은진 옮김 / 비아토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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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다. 사탄은 예수님에게 세상의 모든 나라들(kingdoms)을 보여준 후, 그 모든 권력(power)과 그 영광(glory)을 주겠다고 유혹했다(KJV 번역 기준). 그리고 또 다른 장면. 마태복음 6장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문의 마지막 자락에 이런 구절을 덧붙이신다. “나라(kingdom)와 권세(power)와 영광(glory)이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것들이 사탄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속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던 것이다.


이 책의 제목도 여기서 나왔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 복음주의라고 칭해지는 보수적 정치관을 공유하는 기독교인 무리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하나님이 아닌 세상에서 찾고(얻으려고)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고발한다. 미국 복음주의의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책 속 한 목회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너무 많은 이들이 미국을 숭배한다”고.





책은 제목에 따라 크게 3부(나라, 권력, 영광)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1부인 “나라”에서는 단순히 교회(댈러스제일침례교회, 플러드게이트교회)나 단체(모럴 머조리티) 단위만이 아니라 교단(남침례교)과 신학교(리버티 대학교) 차원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정치 종속(정확히는 트럼프로 상징되는 미국 극우 정파와의 결합)의 문제를 다룬다.


물론 기독교인들이 각자의 판단에 따라 특정한 정당을 지지하거나 정파에 소속되는 것은 가능하다. 문제는 정치가 기독교의 중심 무대로 올라올 때다. 실제로 여기 소개되는 사례들을 보면, 교회 강단에 정치인을 세워 정치발언을 하도록 내버려두고, 이 과정에서 성경은 언급되지 않거나 부정확하게 인용될 뿐이다. 심지어는 성경의 명백한 진술들은 무시되거나, 반대 주장이 환호를 받기도 한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희생된다. 정치와 신앙 사이의 긴장 관계를 고수하는 사람들, 희생자와 억눌린 자들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주장 속 모순과 허위를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다. 그들은 교회에서, 학교에서, 교단에서 쫓겨나고, 사람들로부터 폭언과 따돌림을 당했다.


이 모든 것이 “교회” 안에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기독교와 교회를 지키는 일이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여기에는 세속사회가 기독교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전제되어 있고, 그 공포를 자극시켜 극단적인 행동으로 나서게 만드는 사기꾼들(목사와 정치인)들이 있다. 저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기독교적 가치를 지키는 첫 번째 단계는 기독교적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미국 복음주의의 극우화는 자연스럽게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온갖 난리를 일으켰던 이상한 목사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들의 전범은 미국에서 진작부터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사실 문제는 앞에 있는 그들만이 아니라, 이런 사태에 대해 내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왜곡된 정적주의에 빠져 있는 수많은 목회자들도 이런 사태에 일조한 셈이다.


책의 저자는 목사였던 아버지의 죽음 후,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교회에서 일어나는 이상 반응들을 처음에는 그냥 넘기고자 했었다. 교회와 극우정파의 과도한 일체화에 경계를 했던 그에게, 일부 교인들은 사이버불링으로 대응했다. 별 생각 없이, 그저 흥미로운 반응 정도로 여겼던 일들이, 실은 더 큰 위기를 예고하는 경고등이었음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후회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최근 한국 교회에서 크게 불거진 문제들을 보면, 어쩌면 이미 그런 경고등 점멸의 단지는 지나가 버린 것 같기도 하다. 폭동을 선동하고, 폭력까지도 동원해 자기의 의사를 관철시키면서도, 시종일관 성경과 하나님을 운운하는 신성모독적 행위를 보면서도, 소속 교단은 제명과 같은 실제적인 조치를 할 생각이 전혀 없고, 틈만 나면 “장자 교단” 운운하며 큰 규모를 경쟁적으로 과시하던 주요 교단들 역시 명확하게 선을 긋지 않고 있다. 실은 내심은 그들에게 (폭력까지는 아니라도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에는) 동조하고 있기 따름이리라.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교회가 특정한 정치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자체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렇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세속에서 찾으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온갖 종류의 부적절한 타협이 정당화되고, 자연히 교회 내 다양한 범죄들도 은폐되고 만다는 점이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신 가장 큰 이유가 여기 있을 텐데, 오늘날 교회는 이를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책의 후반부에는 그래도 작은 희망을 찾을 만한 내용이 등장한다. 정치화된 교단과 교회로부터 배척당했던 이들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지고 있었다. 2대에 걸쳐 리버티 신학교를 지배했던 팔웰 부자 중 아들은 결국 이사회에서 축출되었고, 남침례교단의 집행위원회에는 교단 내 추문과 문제를 은폐하려던 세력이 선거에서 패했다. 그리고 저자의 아버지가 목회하던 코너스톤의 교회는 기존의 교인들이 대거 떠난 자리에, 정치적인 문제에 좀 더 균형적인 시각을 원하는 새로운 교인들이 들어와 자리를 채웠다.


물론 모든 상황이 이런 식으로 극적인 전환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소망의 흔적들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세상의 권세를 이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그분의 최종적인 승리를 담고 있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이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기억한다면, 이런 모습들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선물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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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의 안경 - 곤충이라는 작고 오묘한 세계
성영은 지음 / 홍성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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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의 “곤충기”라는 책은 읽어보지는 못했더라도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게다. 사실 나도 딱 그 정도였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곤충을 관찰한 기록을 책으로 엮었다 정도. 이번에 손에 든 책 제목에 실린 “파브르”가 바로 그 파브르다. 저자는 그의 곤충기에 나오는 다양한 곤충들의 식생 중 일부를 옮기면서 생명의 신비라는 주제에 집중한다.


사실 책을 손에 들기 전에는 그냥 곤충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을 줄 알았다. 물론 곤충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저자는 그 사이에 파브르의 자연(과 곤충이라는 생명)에 대해 보여주는 경이라는 태도, 관찰을 통해 진리에 접근하고자 하는 귀납적 연구 방식과 함께, 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겸손히 인정할 줄 아는 지적인 겸손,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었던 기독교 신앙(그는 가톨릭 신자였다)에 대해 아울러 덧붙인다.


요컨대 단순히 파브르의 곤충기를 요약해 놓은 게 아니라, 제목처럼 파브르의 관점(안경)을 또한 설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저자의 기독교 신앙도 함께 배어든다. 과학자로서의 정체성과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나름의 안정된 지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책의 전반적인 문체가 친절하다. 단순히 경어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이라든지, 사이사이 저자의 의견을 제시하는 모양이 꽤 부드럽다. 마치 학창시절 교실에서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는 느낌이랄까.


책에 담긴 전반적인 내용은 곤충의 경우 저학년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재미있기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앞서 언급한 파브르의 관점이라든지, 저자가 설명하는 기독교와 과학 사이의 관계 같은 부분은 청소년들과도 교회나 가정에서 이야기 주제로 삼아 읽고 대화를 해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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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4-18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 파브르 곤충기는 저자의 고향인 프랑스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다고 합니다.왜냐하면 전문적인 곤충학자도 아니고 교사생활을 하면서 몇십년에 걸쳐 관찰한 곤충에 대한 연구중 상당수가 현대에선 큰 학문적 평가를 못 받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신종 말벌이라고 자신의 부인과 자녀의 이르믈 딴 벌들이 실은 이미 기존에 있었던 종이라는 것 등이죠.
실제 파브르의 곤충기는 일본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데 그 이유는 일본에서 히트를 치고 그 이후 그 중역본이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파브르 곤충기는 저자가 80대 노년에 완성한 책으로 뛰어난 스토리텔러로서의 저자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지요.

노란가방 2025-04-18 19:13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은 곤충기를 읽어 보셨나요?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한 권쯤 읽어볼까(어린이용 편집 말고) 생각해 보았네요.
 
창조자의 정신 (양장) IVP 모던 클래식스 2
도로시 L. 세이어스 지음, 강주헌 옮김 / IVP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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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도로시 세이어즈는 옥스퍼드에서 최초로 학위를 받은 여성들 중 한 명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 사회는 극심한 인력부족에 시달렸고, 대학에서도 그때까지 허용하지 않았던 여성에 대한 학위 수여를 결정하게 된 것이라는 사정이 있었다. 물론 세이어즈는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고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세이어즈는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다. 출판사 편집자이기도 했고,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보다 주목받는 건 작가로서의 그녀의 업적이다. 양차 대전 전후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추리소설계에서도 나름 유명한 인물이었고(체스터턴도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유명세를 얻은 걸 보면 확실히 그 시절 추리소설이 인기이긴 했나 보다. 루이스는?), 나중에는 희곡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유독 그녀가 주목을 받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잘 담아 녹여낸 작품들을 썼기 때문이다. 드러내 놓고 기독교 교리를 옹호하기 보다는 문학 작품 속에 그 내용을 녹여내는 방식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창조자의 정신”은 꽤 이례적인 책이었던 듯하다. 이제까지의 작품 활동과 달리 이번에는 기독교 교리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책을 썼다는 반응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머리말에서 작가는 극구 그런 관점을 거부하면서, 자신이 책을 쓴 것은 자신의 종교적 견해를 드러내며 기독교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기독교가 진술하고 있는 교리들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기 위해서였다고 강조한다. 이런 주석 작업이 필요하게 된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사실의 진술과 개인적인 감정 표현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작가가 여기에서 시도한 작업은 요컨대 기독교 신앙은 그저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에 관한 이해라고 보는 자유주의적 견해를 반박하면서, 정통 교리(특히 삼위일체에 관한)가 일상 언어를 통해서도 충분히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이 책이 흥미로운 건, 이 작업을 저자의 직업이기도 한 작가와의 유비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떠올릴 때 그와 비슷한 현실 세계 속 무엇과 비교하면서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데, 가장 비슷한 것이 바로 창조적인 예술가들의 작업(주로 시인이나 작가 같은)이라는 것이다. 창조라는 작업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인데, 예술가들이 하는 일(특히 시인과 작가들이)이 바로 그런 일이라는 의미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책 제목인 “창조자의 정신”은 하나님과 예술가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다.


책 전반에 걸쳐서 삼위 하나님의 본질과 사역을 예술가에 비견해 설명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이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비록 삼위일체가 우리의 논리로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으나, 그 존재 양식과 기능하는 과정은 충분히 일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다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를 범신론으로 설명하려는 오류에 관해서 “창조적 정신이 작품들을 하나씩 생산해 내지만 창조적 정친이 곧 작품 하나하나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작가와 그가 쓴 책이 곧 동일한 것은 아님을 보여주며 빠져나간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속성을 예술가의 작업으로 빗댄 부분이 인상적이다. 창조와 예술 사이의 공통점에 관해서는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서도 발견되는데, 나니아의 세계는 아슬란의 노래로 창조되는 장면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을 정말로 좋아했는데, 세이어즈는 이 부분을 이 책에서 좀 더 설명적으로, 하지만 그러면서도 문학적으로 잘 그려낸다.


확실히 루이스가 인정했던 작가다운 글솜씨인데다, 논지를 전개하는 방식에서 루이스의 향기도 살짝 묻어 나와서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20세기 초중반 영국에선 루이스와 톨킨과 체스터턴과 세이어즈도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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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대에 선 그리스도 - 우리의 판단을 뒤흔드는 복음에 관하여 로완 윌리엄스 선집 (비아)
로완 윌리엄스 지음, 민경찬.손승우 옮김 / 비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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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 안에 담겨 있는 예수님의 재판에 관한 기록들에 관한 긴 주석이다. 아니, 주석보다는 일종의 탈굼이라고 해야 하나. 탈굼은 원래 유대 랍비들이 구약 성경의 내용에 길게 해설을 붙여둔 글을 말하는데, 이 책은 그 본문이 신약 복음서로 바뀌었을 뿐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또 주석과는 다른 게, 주석은 주로 학문적인 연구와 비평을 하는 데 반해 이 책의 경우 그런 종류의 접근을 하지는 않는다. 굉장히 자유롭게 다양한 글을 인용하면서(꽤 자주 문학 작품을 언급하기도 한다) 본문에 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돕는다.





네 권의 복음서에서 공통적인 장면을 각각 한 개의 장으로 구성을 했으니, 자연스럽게 각 복음서에 실린 서술의 차이점에 집중하게 된다. 저자는 마가복음에서는 침묵으로 초월의 세계를 바라보는 모습을, 마태복음에서는 참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전문지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누가복음에서는 배제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서의 선택을 요구하는 내용을 읽어 낸다.


다섯 번째 장에서는 심판의 한 결과인 순교에 관한 내용을, 여섯 번째 장에서는 심판대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하는 대답의 내용에 관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전반적으로 딱 제목에 나온 것처럼 심판 행위 자체에 집중하면서, 그것이 그리스도에 관해 무엇을 드러내 주는지, 또 그 본문들이 우리가 어떤 존재임을 가리키는지를 설명하는 책.


개인적으로는 고난주간을 앞두고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한 책일까 하면서 폈지만, 그런 내용은 아니었던 셈이다. 저자는 심판의 과정과 결과로 일어난 고난과 나아가 부활이 중요함을 언급하면서도 여기에서 그 부분에 집중하지는 않는다.





로완 윌리엄스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읽어가는 맛이 있는 글이다. 성경 본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를 신앙생활로 연결시키는 능력은 탁월하다. 다만 이번 책에서 아쉬운 점은 복음서의 공통 본문의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에서 생각보다 본문 자체에 천착하는 부분이 약했다는 부분이다. 저자가 각각의 복음서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려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그리스도의 재판을 다룬 각 복음서의 서술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이 부분은 각 복음서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인데, 저자가 각각의 복음서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얼마든지 다른 복음서와도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복음서를 그저 빌려 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드는 정도. 물론 그 내용이 전혀 엉뚱한 건 아니지만.


C. S. 루이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나서 쓴 책 “헤아려 본 슬픔”에서 “오직 극심한 고통만이 진실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말한다. 극심한 고통은 카드로 만든 우리의 집을 허물어 진짜를 드러낸다는 의미다. 그리스도가 서셨던 심판대는 그분에게 임해 있는 심오한 진리를 드러냈고, 나아가 우리에 관한 진리 또한 드러낸다. 이런 면에서 저자가 선택한 주제는 꽤 의미가 있었다고 봐야 할 터. 조금은 현학적인 쪽으로 흘러가는 느낌이 있긴 해서 살짝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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