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기독교 신앙에서 여행의 모티브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한 집을 짓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있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시간과 자리는 여행지에서 보내는 일정일 것이다.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 뽑아버릴지 모르는 텐트의 고정못을 마치 보물처럼 여기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야곱이 파라오 앞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는 평생 나그네로 사는 사람들이다.
책의 저자는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약자들의 위치에 서보지 않는 종류의 여행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변화나 도전을 줄 수 없다고 보는 듯하다. 모든 사람들이 나그네로 살지만 그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진정한 나그네의 입장(연약하고,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구해야 하고, 무엇인가를 비는 입장)에 서 볼 때에야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는 말로 보인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떠나는 종교 관광을 떠올려 보자. 여행 내내 무슨 성경 이야기가 나오고, 가끔 기도를 한다고 해도 아마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결국 돈을 내고 현지의 자원을 소진시키는 일에 동참하는 소비자(Consumer, 소진시키는 사람)로 다녀오는 것뿐이라면, 그저 휴대폰 사진첩 속 자랑용 여행이었을 뿐일 게다. 예수님이 함께 하셨던 사람들과의 어떠한 교류도 없다면, 굳이 그 비싼 돈을 들여서 온갖 환경오염과(비행기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어마어마하다) 자연파괴, 쓰레기 생산을 일으킬 이유가 뭐란 말인가.
진정한 순례란 무슨 유명한 건축물이나 자연물을 보고 오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은혜와, 특별히 그 은혜를 여전히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는 약하고 가난한 이들과 (우리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가 되어 보는 것, 과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그런 경험을 했던 자리를 밞으면서 동시에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