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치인이 단 하나의 사례로 더 큰 추세를 반박하려 들거든
이것이야말로 나쁜 과학의 전형적인 특징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자문해보자.
그 반대 사례 하나가 정말로 전체적인 개념을 깨뜨릴 수 있을까?
우리 지도자들의 발언 뒤에 과학적인 뭔가가 더 있는 것은 아닐까?
- 데이브 레비턴, 『과학 같은 소리 하네』 중에서
“즐거움을 얻기 위해 책을 읽어요!”
그가 힘주어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책을 읽지 않도록 하라.
책 읽기를 의무로 생각하지 말라.
남보다 앞서 나가거나 뒤처지지 않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지 말라.
정말 좋아하는 것을 읽으라.
- 캐스린 린즈쿡, 『C. S. 루이스와 기독교 세계로』 중에서
사실 실력은 경제적 우위와 구별해서 보기가 어렵다.
SAT처럼 표준화된 시험은 그 자체로 능력주의를 의미하며,
따라서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배경을 가진 학생이라 할지라도
지적인 장래성을 보일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SAT 점수와 수험생 집안의 소득이 비례관계를 나타낸다.
더 부유한 집 학생일수록 더 높은 점수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와 기도 가운데 알고 부를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가 이 인격적 하나님의 개념을 놓친다면,
기독교는 신앙이 아니라 종교 철학이 된다.
영국의 철학자 로저 스크러턴은 이 점을 아주 산뜻하게 표현했다.
“철학자들의 신은 세상 뒤로 사라졌다.
그들이 그를 3인칭으로 묘사할 뿐 2인칭으로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학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고통이 의미를 상실할수록
경미한 고통조차도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에게는 고통을 지붕으로 덮어주고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어떤 의미연관도, 서사도, 더 높은 심급이나 목적도 없다.
고통을 주는 완두콩이 사라지면
인간은 부드러운 매트리스로 인해 고통 받는다.
- 한병철, 『고통 없는 사회』 중에서